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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대함은 관대함을 낳는다
    파수대—1972 | 8월 15일
    •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였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지식과 이해를 얻은 다음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였다. 거저 받은 다음 거저 줄 수 있었을 때에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은 어떠한가? 다분히 독립 정신으로 물들어 있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관대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 가운데서 이러한 관대한 정신을 관찰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들의 시간과 재산을 들여가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성서 지식을 얻도록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탄복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의 결과, 지난 30년 동안 왕국 소식은 크게 확장되었다. 기원 1941년에는 106,137명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에는 1,510,245명이나 되었다. 이 사람들 가운데는 선교인 훈련을 받고 외국어를 배운 다음 새로운 곳으로 파견되어 왕국 사업을 시작한 선교인들도 많이 있다. 사업이 확장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왕국회관 곧 집회 장소를 구하고 유지하는 문제도 있었다. 많은 나라에서는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여호와의 증인들의 법적 기구)의 지부를 새로이 설립하기도 하였다. 새롭고 더 큰 지부 건물과 인쇄 공장들이 건설되었고, 현재도 건설 중이다.

      이렇게 확장하는 데는 항상 상당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러한 자금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방법으로 조달되었는가? (마태 6:1-4) 그렇지 않다. 그러한 자금은 개개인이 바친 소액의 헌금을 모은 것이다. 헌금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헌금은 왕국회관이나 기타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 장소에 놓여 있는 헌금함에 익명으로 넣는다. 또한, ‘120 서울 서대문 우체국 사서함 제 7호,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 직접 헌금을 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헌금은 모두 자진적이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지방에 왕국 사업을 개시하고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관대하게 부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러한 헌금을 한다.

      헌금이 언제나 풍족하였다는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혜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에게 관대한 정신을 넣어주셨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왕국 소식 전파 사업이 하나님께서 지휘하시는 사업임을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적적으로 달성하실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관대하시게도 하나께님서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동료 일군”으로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고린도 전 3:9)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여 지상의 많은 거민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 불공평, 압제 등을 보고 탄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자기들의 시간과 정력과 재산을 바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독자로부터의 질문
    파수대—1972 | 8월 15일
    • 독자로부터의 질문

      ● 사도 행전 9:7에서는 ‘사울’과 같이 가던 동료들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였는 데, 사도 행전 22:9에서는 동일한 사건을 말하면서 그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아르헨티나’의 한 독자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다소’의 ‘사울’(후에 ‘바울’이라고 함)에게 나타나시어 들을 수 있게 그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사울’과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 9:7) 그 동일한 사건에 대한 ‘바울’의 말을 직접 인용한 사도 행전 22:9은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듣다”라는 희랍어 단어의 의미를 고려해보면, 모순같이 보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단어는 어떤 말을 이해는 못하고 듣기만 한 경우를 뜻할 수 있읍니다. ‘바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를 듣기는 하였지만, 그 소리가 웅웅거렸기 때문에 ‘바울’에게 전달된 소식의 뜻은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고린도 전서 14:2 참조. 거기에는 “듣다”라는 단어가 “알아듣다”라고 번역되었음.

      ‘바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이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사도 행전 9:7과 22:9에 “소리”라는 희랍어 단어가 “듣다”라는 동사와 관련해서 사용된 방법으로 보아서도 확실해집니다. ‘바인’편 「신약 용어 해설 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사도 9:7의 ‘소리를 듣다’에서 ‘소리’라는 명사는 부분 속격[예, ···의 (어떤 것을) 듣다]인데 22:9에 ‘소리는 듣지 못하다’에서는 구분이 대격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모순같이 생각되는 점을 제거해 버린다. 전자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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