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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라’파수대—1979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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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게 하는 것을 묵인하신 기간이 모두 지나간 후의 “마지막 날”일 것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께서 구속받은 인류를 과거의 모든 죄로부터 해방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에게 지상의 회복된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그들이 갖추어야 할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날”이 될 것입니다.—이사야 26:9; 로마 6:7.
26. (ㄱ) 부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자기 차례”는 어떠합니까? (ㄴ) 데살로니가 전서 4:16은 순위 혹은 지위 혹은 중요성의 차례가 있음을 어떻게 알려줍니까?
26 그러므로 구속이 필요한 인류의 부활이 있으려면 먼저 “구속자”의 죽음과 부활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순위상 먼저 있게 되었읍니다. 그분은 중요성에 있어서도 “자기 차례대로” 부활되셨읍니다. 또한 ‘욥’의 부활과 ‘베들레헴’에서 죽임을 당한 아기들의 부활 그리고 다른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기 전에 순위 혹은 지위 혹은 중요성의 차례에 따라 부활받을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 우리의 주의를 이끄는 영감받은 말씀이 데살로니가 전서 4:16에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리라.]” 먼저 부활을 받게 될 이들은 누구이며,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 부활이 있을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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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남’파수대—1979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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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남’
1. 죽은 인류가 어디에서인가 다시 살려면 왜 그들에게 부활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필요한 부활에 대한 기초를 놓으셨읍니까?
죽은 인류에게 약속된 부활이 없다면 무슨 희망이 있겠읍니까? 죽은 자들에게 부활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 영혼은 불멸(不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이 죽을 때 영혼이 보이지 않는 세계인 더 높은 층으로 가서 더 나은 생명을 갖게 될 수 없읍니다. (에스겔 18:4, 20; 이사야 53:12) 죽은 사람이 어디엔가에서 다시 살려면 부활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초를 닦아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진적으로 희생한 자기 아들을 사흘만에 다시 살리심으로써 이 자격있는 아들이 이전에 있던 곳인 하늘로 올라갈 길을 열어 주셨읍니다. 이 아들은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구속(救贖)의 가치를 온전히 가지고 올라 가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다시 죽으실 필요가 없읍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한 인간 희생을 영원히 바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두번째 오실 때에는 다시 죽음을 직면하시지 않을 것입니다.—히브리 9:28; 로마 6:9.
2. 고린도 전서 15:22, 23은 하나님께서 부활에 있어서 차례를 지키실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는 데 있어서 특정한 차례를 따르십니다. 사도 ‘바울’이 이 점에 대하여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다. ‘바울’은 친히 부활받으신 예수의 영광을 보았고 그분과 이야기를 한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약 18년 후에 ‘바울’은 희랍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를 쓸 때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 전 15:12) 이 질문에 이어 ‘바울’은 영감받은 대답을 발전시켜 나아갔읍니다. 계속되는 말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임재; 희랍어: ‘파로우시아’]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니라].” (고린도 전 15:22, 23) 하나님께서만 예수의 부활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계십니다.
3. 예수께서는 어떻게 부활 문제에 있어서 “첫째”가 되셨읍니까?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6일에 부활되셨읍니다. 그 날은 ‘유대’인 대제사장이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바치는 날이었읍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인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다는 것과 온전히 일치합니다. (고린도 전 15:20)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 “순위”에 둡니다. ‘유대’인들의 보리 수확에 있어서 나중 열매도 거두어야 했었던 것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에 있어서도 나중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째로 꼽히시기 때문에 ‘바울’은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고 하였읍니다.—골로새 1:18.
4. 인간 죽은 자들 중에 처음 부활될 사람들까지도 어떠한 공식적 사건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것은 언제 시작하였읍니까?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희생적 죽음으로써 “‘아담’ 안에서” 죽어가는 인간 가족 모두를 구속(救贖) 즉 되사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에게 붙’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인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첫째로 부활받을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臨在) 즉 ‘파로우시아’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공식적인 임재는 예수의 재림으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징조”에 의하면 그리고 또한 특정한 성서 시간 계산에 의하면, 예수의 보이지 않는 “임재” 즉 ‘파로우시아’는 기원 1914년 가을에 시작하였읍니다.—마태 24:3.a
5, 6. 데살로니가 전서 4:13-17은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을 수확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차례와 “순위”를 지키실 것을 알려 줍니까?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 안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부활의 나중 열매로 수확되는 사람들의 부활에 있어서 차례와 “순위”를 지키실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 가운데] 자는 자들”의 유가족인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6 “우리가 주[여호와, 신세]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도 자는 자[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 전 4:13-17.
7. 여기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떠한 특정한 죽은 자들에 관한 것이며, 계시록 14:12, 13은 그들이 부활될 특별한 때를 어떻게 시사하고 있읍니까?
7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류의 죽은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 가운데 자는 자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성서 마지막 책에서 사도 ‘요한’은 이러한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죽음의 잠에서 일으킴을 받을 시기에 관하여 할 말이 있었읍니다. 계시록 14:12, 13에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세계 조직과 관련하여]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러면 여기 “자금 이후”라는 말은 언제부터 해당됩니까?
8. “자금 이후”라는 말이 왜 주께서 영으로 임재하시는 기간을 의미하며, 그들이 죽는다면 그 때 그들의 행위가 끝납니까?
8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 4:16, 17에 쓴 것으로 볼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 기간이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시작하기 전이 아니라 후라야 합니다. 그분이 영으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신 동안이라도 지상에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될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특히 주의 “임재” 기간에 죽을 때 “복이 있”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들의 육체의 죽음이 한 동안 그들의 ‘행위’를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저희의 행한 일이” 바로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희랍어 사본에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뒤따른다’고 되어 있읍니다.
9. 그렇다면 계시록 14:13에 의하면 그 때 죽는 “성도”들은 왜 “복이 있”읍니까?
9 이렇게 되려면 활동상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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