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에서 즐거움을 얻음
1, 2. (ㄱ) ‘솔로몬’ 왕은 두 어머니가 관련된 무슨 사건을 다룬 적이 있으며, 그가 사건을 올바로 판단하는 데는 무엇이 도움이 되었읍니까? (ㄴ) 혈연 관계는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현명한 왕 ‘솔로몬’은 재위 기간에, 한 집에 살면서 각각 아들을 낳은 두 여인 사이의 사건을 다룬 일이 있읍니다. 밤중에 한 아기가 죽자 그 죽은 아기의 어머니는 몰래 그 아기를 산 아기와 바꿔쳤읍니다. 아침에 실제 어머니는 죽은 아기가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고 그 부정직한 산모를 도둑으로 고발하였고, 마침내 그 사건이 ‘솔로몬’ 앞에 오게 된 것입니다. 진상을 가려낼 수 없으므로 ‘솔로몬’은 그 아기를 반으로 갈라서 두 어머니들이 절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명령하였읍니다. 그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는지라] ···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열왕 상 3:26, 27) ‘솔로몬’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그 자신이 아버지였으므로 자기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성경에 표현된 바 가족 마련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잘 알고 있었읍니다.
2 밀접한 가족 관계는 하나의 축복입니다. ‘벳새다’의 ‘안드레’가 메시야를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 좋은 소식을 맨 먼저 누구에게 알렸읍니까?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니라.]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한 1:41) 혈연 관계는 부정할 수 없는 결합을 만들어 줍니다. ‘안드레’의 반응은 자연적인 것이었읍니다.
3. 왜 그리스도인 형제 관계는 더욱 강한 연합의 띠입니까?
3 오히려 그보다 더욱 밀접한 결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 형제 관계입니다. 성서는 로마서 12:10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고 말하였읍니다. 베드로 전서 5:9에는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전체 형제들의 연합체”(신세)에 대한 언급이 있읍니다. 마가 복음 10:29, 30에서 예수께서는 혈연적인 친척 관계와 진리 내의 형제 관계를 비교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내의 형제들은 친 형제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읍니다.—요한 13:34, 35.
4. 왜 그리스도인 가족은 다른 가족이 가지지 못한 연합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4 그러나 당신의 가족이 이 두가지 관계를 다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실로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헌신하고 침례받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가진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넣어주신 자녀에 대한 선천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족을 밀접히 연합시켜, 다른 방법으로는 이룩할 수 없는 행복과 만족을 가져올 수 있읍니다. 그들은 자녀들도 하나님의 충실한 종이 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읍니다. 이 점은 가족을 서로 더욱 가깝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일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예견함
5, 6. (ㄱ)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들을 예견하는데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의 통로가 항상 열려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5 가족을 부양하는 데는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징조가 나타나는지 항상 눈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조그마한 문제를 가지고 당신에게 왔을 때 간단한 대답으로 그를 물리쳐 버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 때야말로 자녀의 머리 속에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리한 관심을 나타내고, 질문을 사용하여 그의 생각을 알아보기 좋은 기회입니다. 자녀들에게 말을 하게 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자녀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 이유는 아마 과거에 자녀들이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을 때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였을 때에 부모 자신이 대화를 묵살해 버렸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기분이 내키지 않는 때라고 하여 자녀와의 대화를 묵살해 버리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6 자녀와 함께 이야기할 만한 화제거리를 살피고, 어떤 화제든지 자녀와 논의하기를 즐기는 부모는 대화의 통로가 단절되는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대화의 통로가 항상 열려 있고, 자녀가 알고싶어하는 이야기, 가족 관계를 따뜻하고 이해성있게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넘쳐 흐를 것입니다.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부모의 자녀는 일반적으로 기꺼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작은 문제들을 들어주지 않고, 친절과 이해성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자녀들이 큰 문제가 생길 때에 부모에게로 가겠읍니까? 당신에게는 바로 지금 당신이 신뢰할 수 있고, 당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에 그에게 가서 의논해도 그가 당신의 말을 다 들어주고 또 그러한 문제 때문에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읍니까? 모든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그렇게 느껴야 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읍니까? 잠언 17:17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자녀가 가정 밖으로 나가서 그러한 관계를 구해야 한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7. 집안을 훌륭한 방법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7 사도 ‘바울’은, 감독자는 마땅히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썼읍니다. “훌륭한 방법으로 자기 집안을 관리하며, 근엄하게 자녀들을 복종시키는 자여야 하며, (사실이지 어느 사람이든지 자기 집안을 관리할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회중을 돌볼 수 있겠읍니까?)” (디모데 전 3:4, 5, 신세) 이 귀절은 아버지가 다른 관심사에 얼마의 시간을 바치든지간에 자녀가 말썽을 일으켰을 때에 그가 서둘러서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집안을 훌륭하게 관리하고, 주의깊이 살피고, 문제를 예견하고, 자기 관할하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를 미리 내다볼 필요가 있읍니다. 예방을 위한 충고가 시정을 위한 충고보다 훨씬 낫읍니다. 문제 예방을 잘 하는 아버지는 문제가 발생한 연후에 해결하려고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아버지보다 현명합니다.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싸워서 명성을 얻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아버지들은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관리함으로써 훌륭한 명성을 세워 나갑니다.
‘경험이 없는 자’를 위한 지침
8. 부모들은 자녀들이 경험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8 자녀들은 인생의 경험이 별로 없읍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그 사실을 자녀들에게 항상 강조한다면 별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자녀로 하여금 성경에서 경험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각 경험으로부터 배우도록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 주면, 그 자녀는 부모가 주는 도움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질 것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자기 생활에 부닥치는 갖가지 사건들로부터 과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경험을 할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들도 여러 가지 입장으로부터 배우려고 한다는 것을 인식하면, 그들도 경험 부족에 대해 원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배우는 과정에 대하여 더 반응이 좋을 것입니다.
9. 성경에서는 경험을 통하여 배우기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 성경에서는 경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성경은 경험으로부터 듣고 배우기를 완고하게 거부하는 자들을 강력히 힐책하였읍니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경험이 없는 자들, 신세]은 어리석음[무경험, 신세]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잠언 1:22, 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경험이 없는 자들, 신세]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언 22:3.
10. 자녀들은 경험이 부족하지만 이 점을 보충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읍니까?
10 부모들은 자녀들의 무경험을 보충시켜 줄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읍니다. 생각깊은 부모들은 자녀들을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는 일이 없이 어려운 고비에서 친절하게 도와줄 수 있읍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면, 일평생의 모든 경험보다 더욱 지혜롭게 해주는 지식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시편 19:7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경험이 없는 자, 신세]로 지혜롭게” 한다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시편 119:130에서는,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경험이 없는 자, 신세]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하고 부언하였읍니다.
11. 어린 것 그리고 경험이 없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11 어린 것 그리고 경험이 없는 것 그 자체가 수치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장 과정이므로 단지 참아야 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자녀가 자신의 무경험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성급히 어리석은 행동이나 불법적인 행동을 저질러서 자기 가족과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수치를 가져온다면, 그 일이야 말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자녀도 그 점을 인식하도록 능란하게 도와주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성장 발전함에 따라 풍부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12. 부모들은 자녀들이 존경심의 중요성을 배우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12 여호와의 길에서 경험을 쌓아가는 사람은 또한 존경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도 자라갈 것입니다. 부모들은 이 점에 있어서 자녀들 앞에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을 동료로 인정하고, 어머니에 대해 존경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베드로 전 3:7) 아내 또한 ‘남편을 깊이 존경’해야 합니다. (에베소 5:33, 신세) 부부 다 회중의 장로들을 존경하고 다음과 같은 성경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히브리 13:17) 이렇게 여호와의 길에 고착함으로써 그들은 여호와께 그리고 그분의 신권적 마련에 존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고린도 전 11:3.
13. (ㄱ) 친구와 같은 느낌은 부모 자녀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ㄴ) ‘텔레비전’ 상업 광고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 관계에 대해 왜곡된 견해를 나타내는 일이 있읍니까?
13 부모들이 그처럼 훌륭한 본을 보이면 자녀들이 존경의 원칙을 터득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 부모를 높이 받들 것이며, 부모를 여러 면으로 존경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친구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들 사이에 온정과 우정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며 가정 내에서 다른 면으로 실제 동등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서 원칙을 적용시키려면, 누가 아버지이며, 누가 자녀인가에 대해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텔레비전’의 상업 광고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가르치고, 부모를 구식이라고 하고, 시정하고, 깨우쳐 주는 일이 흔히 있읍니다. 그러한 광고에서는 아버지에게 압력을 넣어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자동차를 사도록 아들을 자극합니다. 혹은, “새로운” 또는 “유별난” 의복, 향수, 제취제, ‘샴푸’ 기타의 물건—실은 그러한 것들이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닌데—을 사게 허락해 달라고 딸이 어머니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조장합니다. 이것은 가정에 주는 악영향은 아랑곳 않고 돈을 벌어들이려고 하는 상업계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자녀들이 경험이 적다는 것과, 자녀들은, 연륜이 많고 인생 경험이 많은 분들을 존경해야 함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읍니다.
14, 15. (ㄱ) 왜 자녀들에게 그들 스스로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합니까? (ㄴ) 자녀가 생각하는 능력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데 있어서 부모에게 도움이 될만한 제안을 하십시오.
14 물론, 자녀들은 어떤 일들은 스스로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자신의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며, 어릴 적의 훈련이 이 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서는 사고력의 개발을 높이 격려하고 있으며, 부모가 자녀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점입니다. 자녀들은 사고 방식의 어떤 형태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길에 대한 성서의 말씀에 기초하여 추리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잠언 5:1, 2에서는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사고력, 신세]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고 하였읍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사고 능력을 발전 시켜주고자 한다면 그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대신 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면서, 듣는 자를 대화 가운데 이끌어 넣고, 그를 참여시켜, 그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 내고, 다음에 그로 하여금 추리하여 올바른 결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읍니다. 자녀들이 사고력을 발전시키도록 부모가 도울 때에도 이러한 방식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5 이러한 능력은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할 만한 문제들이 많이 있읍니다.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니?” 하고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아마 도움을 더 주어야 할 대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추리하여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해 주십시오. 화를 내거나 성급하게 하지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어린 시절을 돌아 보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 전 13:11) 그는 자라감에 따라 사고력을 발전시켰읍니다.
16. 심지어 세상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 자녀들을 미래를 위해 준비시키려고 노력합니까?
16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하지 않은 부모들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자녀들을 앞날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후에 자녀들이 나이가 들면 아무 것이나 원하는대로 자기 길을 선택하도록 막연하게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러한 부모들은 아마 자녀가 어릴 적부터 가족의 사업을 관리하도록 준비시키거나, 가족의 살림 혹은 새로운 직업을 위해 준비시킬 것입니다. 자녀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이 별로 혹은 전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흔히 자녀들이 후에 스스로 결정하도록 버려둡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준비와 교육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인정합니다. 그것도 매우 깊이 인식합니다. 그러나 영적 문제에 있어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면에서 그러합니다.
세워주는 충고를 하는 일
17. 단순히 정확한 충고를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더 필요한 것이 있읍니까?
17 사람들이 충고를 받은 다음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수가 있읍니다.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고 또 당연한 말입니다. 다만 그가 말한 그 방법이 싫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가정 내에서는 충고가 우호적인 방법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땅히 그 충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충고를 받아들이기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이 기억해야 할 점들이 있읍니까? 분명히 있읍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가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알고 또 말하는 방법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18, 19. (ㄱ) 충고를 주는 데 있어서 시기와 장소는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ㄴ) 충고를 받아들이기 용이하도록 만드는 데 또 다른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됩니까?
18 고려해야 할 한가지 점은 충고를 주는 시기입니다. 흔히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지른 직후가 적절한 시기이지만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가 좀 더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읍니다. 또한 장소도 고려해야 합니다. 회중 집회 장소에서, 어떤 사람의 집에서 혹은 시장에서 잘못을 저질렀다면, 충고를, 적어도 기다란 충고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9 말하는 방법에는 친절, 침착, 재치, 이치적임 등이 포함됩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당신 자신이 전체 양상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내용을 말하라고 할 수도 있읍니다. 그리고 자녀가 요점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할 수도 있읍니다.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또 충고를 잘 받아들이면 미소를 짓는 것도 적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엄격한 충고를 요하는 심각한 경우에는 미소가 그릇된 인상을 줄 수도 있읍니다. 모든 경우에 충고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20, 21. (ㄱ) 자녀 교육에 있어서 왜 위협은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합니까? (ㄴ) 더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20 위협과 경고는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그러한 언사는, 범죄를 미워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적 형벌에 대한 두려움만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시 97:10) 에베소 6:9에서는 상전들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위협]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21 더 좋은 방법은, 여호와의 방법으로 일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또 가능하다면, 그 일이 나쁜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낙관적으로, 올바른 길을 격려하고, 동시에 불순종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를 인자하게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어떤 행동이 틀림없이 이르게 될 결과를 설명해 주는 것과 위협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호감이 가도록, 올바른 길을 권장하시는 여호와의 방법을 살펴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면] ···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 (잠언 2:1-5) 그러나 이 장 뒷 부분에서는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방법으로 그에 대한 결과들을 말하였읍니다.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언 2:20-22.
교제
22, 23. 교제는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그러므로, 이에 대한 부모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22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웃 아이들이나 학교 친구들과 사귀기 시작할 때에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를 흔히 당합니다. 그들은 물론, 외부 사람들과 어느 정도 교제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오늘날 완전한 고립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또 권장할 만한 것도 못됩니다. 세상적인 벗들은 그들이 발휘하는 비그리스도교적 영향력이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노는지 알 필요가 있읍니다. 오늘날 어떤 세상 사람들은 칭찬할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여호와의 숭배자가 아닌 사람을 좋은 벗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고린도 전 15:33.
23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교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읍니다. 잠언 13:20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누구인가는, 물론, 여기에 밝혀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성서 다른 곳에서는 여기서 어떤 종류의 지혜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읍니다. 시편 111: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숭배자들이야 말로 바로 당신의 자녀들이 교제해야 할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이러한 교제는 그들이 참으로 지혜롭게 되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상적인 입장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자세한 계획을 세워주되, 외부 사람과 교제할 시간이 거의 혹은 전연 없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가족 혹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매우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되면 다른 교제가 유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되면, 부모들은 시간을 내어 자녀에게 그 문제에 대한 성서의 견해를 분명히 설명해주고, 동시에 그들은 엄격히 조절을 해야 할 것입니다.
24. 나쁜 교제에 대한 성서의 말씀을 왜 자녀들도 이해할 필요가 있읍니까?
24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사실 자녀들에게 세상적 교제에 대해 그렇게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가르쳐야 합니까? 물론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녀들은 오해가 없도록 문제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어떤 자녀들은 어른들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방법으로 관계할 수 있도록 친절과 재치를 가르침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들만 나쁜 교제의 위험성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녀들이 보호를 받으려면, 그들도 위험성을 알아야 하고, 그 점을 명확히 설명해 주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25. 자녀 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누구에게 인도를 구할 필요가 있으며, 왜 그렇습니까?
25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 있는 여러가지 시련을 살아남기 위하여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튼튼한 특성을 길러주는 데 있어서, 부모들은 힘과 인도를 여호와께 구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 3:10-15)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이 때때로 걱정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 곧 기본적으로 즐거움을 가져오는 특권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일은 과연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일입니다.
[228면 삽화]
자녀의 조그만한 문제도 참으로 기꺼이 들어주는 것이 대화의 통로를 항상 열려 있게 하는 데 중요하다
[232면 삽입 성구]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 ···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잠언 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