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박힌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형주]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걸려 넘어지는, 신세]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고린도 전 1:22, 23, 신세 참조.
1. (ㄱ)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어떠한 상태 때문에 ‘바울’은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강조하였읍니까? (ㄴ) 이제 우리가 고려하는 고린도 전서 1:17-25에서 ‘바울’은 무엇을 지적하였읍니까?
‘바울’이 “못 박힌 그리스도”에 관해 위와 같이 편지를 써 보낸 곳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이었읍니다. ‘바울’ 당시의 ‘고린도’ 시는 ‘로마’인, 희랍인, 동양인, ‘유대’인 등이 섞여 사는 국제 도시였읍니다.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는 어떤 집단들이 유력한 사람들과 부동이 되어 얼마간 분열이 있었읍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하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13) 또 그곳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일부 특정한 율법에 고착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일부 다른 인종에 속한 사람들은 희랍 철학의 웅변에 솔깃하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복음은 어려운 말로 전파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종교적 전통이나 철학적 사색에서 나온 지혜와 섞여서도 안되었읍니다. ‘고린도’의 사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바울’은 전파하는 일을 “못 박힌 그리스도”로 제한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했읍니다. 고린도 전서 1:17-25에 있는 그의 말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였으며, 이 점이 바로 본 기사와 다음에 이어지는 기사의 기조를 이루고 있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형주]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형주]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배[서기관, 신세]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변론가, 새번역]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형주]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걸려 넘어지는, 신세]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 예수의 기름부음받는 일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었으며, 그분은 어떠한 활동을 하셨읍니까?
2 이 인용문에서 알려주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물론 풍부한 표적을 보여 주셨읍니다. 그분은 기원 29년에 ‘요단’ 강으로 나오셔서 침례로 자신을 제공하셨읍니다. 그분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비둘기 형체로 된 하나님의 성령이 그분께 내려왔고, 여호와의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읍니다. 광야에서 40일을 지내시고 마귀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물리치신 후에, 예수께서는 왕국을 전파하고 기적들을 행하기 시작하셨읍니다. ‘마태’는 이러한 활동의 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마태 3:13-17; 4:23-25.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 예수께서는 어떠한 표적들을 행하셨으며, 그런데도 서기관들은 어떠한 요구를 하였읍니까?
3 사람들은 그분이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놀란 나머지 그분을 약속된 메시야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찌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고 말했읍니다.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고, 물 위를 걸으셨으며, 바람을 명하여 풍랑을 잠잠케 만드셨고, 기적으로 몇개의 떡과 생선을 가지고 수천명을 먹이셨으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셨고,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문둥병자들을 고치셨으며, 죽은 자들까지도 일으키셨읍니다. 누가 이보다 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었읍니까? ‘유대’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자들이었고, 그렇게 요구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의 목격자들이었읍니다. 그리고 더 많은 기적들에 대한 보고를 받았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와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였읍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요한 7:31; 마태 12:38.
4, 5. 이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직업을 고려할 때, 그들은 예수가 메시야임을 확신할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였읍니까?
4 예수가 메시야라는 부가적인 증거를 요구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이들 종교 지도자들은 그러한 질문을 해서는 안될 사람들이었읍니다! 서기관들은 일생을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는 데 바쳤읍니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연구하는 데 철저하였으며, 그것을 적용시키는 데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하여 오랫 동안 그리고 끈질기게 서로 토론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면밀하게 설명하고 명확하게 밝혀 주는 광범위한 구전에 관한 지식을 쌓아왔읍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연구 결과로 그들은 약속된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에 관해 잘 알고 있었읍니다.
5 그들은 메시야가 ‘유다’ 지파, ‘다윗’ 가계를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할 것과 그분의 오심은 ‘엘리야’와 같은 자에 의하여 전파되어야 할 것, 그리고 그분은 ‘유대’인의 질고를 짊어지셔야 할 것 등을 알았읍니다.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300여 가지 ‘히브리’어 성경 예언이 예수께 이루어졌으며, 그들 중 많은 것들은 그들이 예수께 표적을 구하러 오기 전에 이미 성취되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성경을 연구했으므로 그분에 관해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상기시키셨읍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 5:39.
6. 예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듣고 어떻게 대답하셨으며, 왜 조롱하시지 않으셨읍니까?
6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말했을 때 조롱조로 대답 하셨읍니까? 읽어보도록 합시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마태 12:38-40) 그렇지 않았읍니다. 예수의 대답은 이미 베푸신 여러 가지 기적을 무시한다고 해서 또는 그분에게 이미 성취된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그들이 확신하지 않는다고 해서 꾸짖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그들 즉 그들의 바라는 점, 그들의 과오를 이해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의 대답은 그러한 상태를 잘 파악하신 것이었읍니다.
그들이 구한 표적
7, 8. ‘유대’인들은 어떤 표적을 보기 원했으며, 그들이 보게 될 표적은 무엇뿐이었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예수께서는 그들이 보기를 원하는 징조가 무엇인지를 아셨읍니다. 그 징조가 다니엘 7:13, 14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8 이것은 메시야의 재림을 의미하였으며, 그 때 메시야 왕국은 모든 압제적인 인간 정부들을 대치하고 여호와의 숭배를 위해 온 땅에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 올 것입니다. ‘유대’인 통치자들은 메시야가 왕권을 가지고 와서 그들의 목을 누르고 있던 ‘로마’의 압제적인 멍에를 벗겨 버리고 그들에게 정치적 승리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보다 앞질러 가고 있었읍니다. 그 때는 메시야의 초림 때였으며, 그분은 고통을 당하시고 대속물로 돌아가셔야 하였고, 3일 동안 무덤에 계셔야 하였읍니다. 그들이 보게될 것은 바로 이러한 초림의 징조뿐이었읍니다.
9.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무엇을 분별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무엇을 열망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 보지 못하였읍니까?
9 이들 ‘유대’인들은 메시야에게서 그들이 원하는 표적을 얻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걸려 넘어지게 된 일, 즉 메시야의 못박히시는 것을 보게 되었읍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형주]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걸려 넘어지는, 신세]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 (고린도 전 1:22, 23) ‘유대’인이 걸려 넘어지게 된 이유는 그들이 메시야가 두번 오신다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성경내에는 메시야에 관해 두 가지 부류의 예언이 있었읍니다. 한 가지는 초림에 관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재림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보조서 1148면에 나오는 도표에서 초림에 관한 예언들과 그 성취를 참조해 보라. 재림과 관련된 성귀들 중 몇가지를 들면, 다니엘 7:13, 14; 2:35, 44; 시 2:1-9; 110:1-6 등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두 가지 오심을 분별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만 믿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메시야가 권능을 가지고 와서 자기들의 목에 걸려 있는 ‘로마’의 멍에를 꺾어 주기를 열망한 나머지, 그분이 고통을 받으시고, 박해를 받으시며, 거절당하시고, 못박히신 메시야로서 오시는 일을 깨닫지 못했읍니다. 사실,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혼란되어 있었읍니다.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그러한 많은 예언들을 그들은 분별하지 못했읍니다. 심지어 어떤 ‘유대’인들은 메시야 자체를 믿지 않았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와서 ‘로마’와 적대 관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이기적인 이유에서 원치 않았읍니다. (요한 11:47, 48)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군사 전문가로 와서 자기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을 갈망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약한 것”
10. (ㄱ)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하나님의 약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그분은 제 1세기의 거짓 메시야들과 어떻게 달랐읍니까? (ㄴ) 「해설자의 성서」에서 밝혀 주는 바에 의하면, 그 당시 ‘팔레스타인’의 어떠한 사태가 예수를 ‘유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읍니까?
10 이 예수가 그들의 눈에는 약하게—‘로마’ 제국을 멸망시켜 주리라는 자기들의 희망을 이룰 메시야로서는 너무나 약하게 보였읍니다. 그분은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자기의 종들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왕권을 제시받았지만 그것을 분명히 거절하셨읍니다. 그분은 다른 편 뺨을 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은 그 당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분을 원하지는 않았읍니다! (요한 18:36; 6:15; 마태 5:39; 누가 3:15) 「유대인의 지식에 관한 책」에서는 “메시야”라는 제목하에서 기원 제1세기에 메시야라고 주장하던 자들이 여러 명 있었음을 밝히면서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제 1세기에 메시야라고 주장하던 이들에 관하여 특이한 사실은 각자가 ‘로마’의 통치에 항거하는 ‘유대’인 반란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예수와는 달리 ··· 그 시대의 기타 ‘메시야들’은 예외 없이 군사적 봉기자이며 애국자들이었다.” 이와 같이 앞서 말한 대로 예수께서 자신을 강력한 메시야로 나타내시지 않은 점은 그들의 눈에 매우 못마땅하게 비쳤으며, 그가 형주에 달려 불명예스럽게 돌아 가시자, 그것은 그분을 결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어 버렸읍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25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못박힌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약한 것”으로 보았으며, 온전히 걸려 넘어졌음을 말하였읍니다. 「해설자의 성서」 제 10권 29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다: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의 종교적 희망은 ‘로마’의 압제자들로부터 극적이고 격변에 의한 구출에 대한 묵시적 기대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그 민족을 온 세상의 민족들 가운데 뛰어나게 만들어 줄 구출자를 고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육으로 계시던 당시에 그분께 대한 깊은 실망의 일부는 ‘마카베’파 이후 그 민족의 군사적 지도권을 그분께서 거절하신 것에 직접 관련이 있다. ‘바울’ 당시, ‘팔레스타인’은 불을 파묻어 놓은 곳과 같았다. ‘로마’의 행정관들은 이따금씩 지방에서 발생하는 폭동의 불길을 끌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묻혀 있는 불은 달랐다. 만일 예수가 인기 절정에서 한 마디 하였다면 수천개의 칼이 칼집에서 나왔을 것이고, ‘로마’는 억제되어 있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이상과 광신적 국가주의의 폭발을 막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과 그러한 계시적 희망에 의하여 자신의 생각과 영이 불붙여진 사람에게는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표적은 말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들에게는 십자가라는 말이 매우 불쾌한 느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11.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까지도 어떻게 잘못 이해하고 일했으며,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읍니까?
11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까지도 얼마 후까지 메시야가 두번 오시는 일에 관하여 그리고 이 첫 번째 오심은 “못박힌 그리스도”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읍니다. 옥중에서 침례자 ‘요한’은 예수의 표적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지만,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던 것 같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보내 예수께 물었읍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베드로’는 예수를 메시야로 식별했었읍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초림의 성취에 나타난 징조들을 이해하지 못했읍니다. (마태 16:16, 21-23)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되신 후까지도 그분의 제자들은 이 초림 때에 지상에 왕국이 설립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물었읍니다.—마태 11:2, 3.
형주는 헛되게 되지 않음
12. 마침내 어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야의 두번의 임하심과 관련된 이 두 부류의 예언들을 어떻게 해석하려 하였읍니까?
12 기원 33년 오순절 날 성령이 부어진 후, 예수의 제자들은 두 가지 오심을 이해하였으며, 도처에서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즉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전파되었읍니다. (사도 26:22, 23)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한 그리스도인들의 논리 및 산산히 깨진 ‘유대’인의 희망은 나중에 ‘유대’ 학자들로 하여금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다시 해석하게 만들었읍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7:13에서는 메시야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였으나 스가랴 9:9에서는 그가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오시리라고 되어 있었읍니다. 「탈무우드」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견해는 한 가지 임하심만을 가르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읍니다. 즉 만일 ‘이스라엘’이 가치가 있으면 메시야가 구름을 타고 올 것이고, ‘이스라엘’이 무가치하게 처신한다면 그가 나귀를 타고 온다는 것이었읍니다. (「산헤드린의 바벨론 탈무우드」 98ㄱ) 또 다른 해석은 초림과 재림에 대한 두 부류의 예언을 인정하였으며, 두 메시야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요셉’의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의 아들이며, 그들 사이에서 그 두 가지 부류의 예언들이 성취되리라는 것이었읍니다. (‘에데르샤임’의 「예수 메시야의 생애와 시기」 제 2권 434, 435면) 그러나 그 두 부류의 예언은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13. (ㄱ) ‘유대’인들의 어떠한 믿음이 예수를 메시야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읍니까? (ㄴ) 이러한 ‘유대’인들의 믿음은 형주를 어떻게 헛된 것으로 만들었읍니까?
13 하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이 두 메시야 중 어떤 쪽도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서기관들의 구전을 따르지 않으셨으며, ‘탈무우드’에 의하면, 그 구전을 거스르는 것은 ‘히브리’어 성경을 거스르는 것보다 더 중한 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이 ‘모세’의 율법을 이루시므로 그것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이 영원한 것이며 결코 폐기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은 구원을 위하여 메시야가 필요치 않다고 믿었읍니다. 그들은 세 가지 방법 즉, 율법의 일을 행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동냥을 하고,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가짐으로써 왕국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읍니다. (마태 3:7-10; 로마 3:20; 4:2, 3; 9:31, 32) 서기관들의 그러한 지혜는 형주를 헛된 것으로 만들고, 구원을 위해 필요치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읍니다. ‘바울’은 이러한 거짓 지혜를 염두에 두고, 그러한 지혜의 무가치함을 하나님의 능력, 못박힌 그리스도와 대조시켰읍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형주]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말의 지혜”를 “복음”으로 선포하지 않았읍니다. 그 이유는 “[형주]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었읍니다.—고린도 전 1:17, 18.
14. (ㄱ) 누가 형주에 달리신 예수를 조롱하였으며, 무슨 말로 조롱하였읍니까? (ㄴ) 그 당시 있었던 사건들은 실제로 무엇을 확증해 주었읍니까?
14 만일 예수께서 양과 같이 도살자에게 가서, 괴롭힘을 받고, 멸시를 당하며, 싫어 버림을 받고, 배척을 당하였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이사야 53:1-7) 만일 그가 약하고 무력한 자처럼 형주에 달리셨다면 어떠할 것입니까? 실상 어떤 자들은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형주]에서 내려오라” 하고 조롱하였읍니다. (마가 15:29, 30) 또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읍니다. (마태 27:41, 42)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의 자격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메시야임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읍니다.—시 118:22; 이사야 8:14; 28:16; 베드로 전 2:4-8.
15. 멸망받을 사람들과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못 박힌 그리스도”가 각각 어떻게 보이며, 비웃는 자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떠한 사실이 참됩니까?
15 ‘바울’은 구원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여호와의 대속 마련을 강조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할지 모르며,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할지 모르지만, ‘바울’은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할 것입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 전 1:22-25)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못 박힌 그리스도”를 약하고 미련한 것으로 본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유대’인의 전통과 ‘헬라’의 철학보다 더욱 강하고 더욱 지혜로운 분입니다. 다음 기사에서 그 이유를 더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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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등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으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표적”—그분이 메시야라는 부가적인 증거를 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