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박힌 그리스도, “하나님의 지혜”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배[서기관, 신세; 학자, 새번역]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변론가, 새번역]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고린도 전 1:20.
1. (ㄱ) ‘유대’인들의 어떠한 종교적 상태가 예수에 의하여 뒤바뀌게 되었읍니까? (ㄴ) 그분의 추종자들의 전파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읍니까?
‘유대’ 민족은 15세기 이상 ‘모세’의 율법 언약하에 있었읍니다. 그들의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그들의 일상 생활에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구전(口傳)을 상당히 발전시켜 왔읍니다. 이렇게 하는 의도 중 한 가지는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분리시켜 그들의 종교가 이교 교리에 오염되지 않게 보존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메시야라고 주장하였으며, 그는 그들의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의 구전을 비난하였고, 자기가 ‘모세’의 율법을 이루어 종결시키리라고 하였으며 마침내는 신성 모독자로서 못 박힘을 당하였읍니다. 그 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추종자들은 ‘팔레스타인’과 ‘로마’ 전역에 그의 부활과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였읍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수천명씩 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으며, 도처에 그리스도인 회중이 생겨났읍니다. 율법 언약은 종결되었읍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서의 역할을 한 다음 그리스도의 형주에 못박혔읍니다. 이제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새 언약 아래로 들어 왔읍니다. 율법은 더 이상 돌판에 새겨 있지 않고 인간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읍니다.—갈라디아 3:10-25; 히브리 10:15-18.
2.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에게는 어떠한 점이 어려운 일이었으며, ‘바울’은 그러한 위험성을 어떻게 논파하였읍니까?
2 이러한 중대한 사건들은 종교적으로 말해서 땅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었읍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일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모세’의 율법을 성취시켰고 따라서 그것을 지킬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읍니다. 그들은 일부 율법의 요구 조건들을 그리스도인 회중내로 들여오려고 하였읍니다. (사도 15:1-19)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이러한 시도를 강력히 배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라디아 5:1-4; 3:10-14)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은 대속 희생으로 “못 박힌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율법의 행위에 의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형주를 헛되게 만들고’ 있었읍니다. 일부 ‘유대’인 개종자(改宗者)들은 율법에 고착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율법에 예속된 자가 되었고, 그로 인하여 ‘못 박힌 그리스도를 헛되게 만들었’읍니다.—고린도 전 1:17.
‘바울’과 희랍 철학자들
3. (ㄱ) 희랍 철학자들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읍니까? (ㄴ) 이들 철학자들은 ‘아덴’에서 ‘바울’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3 ‘바울’은 또 희랍 철학자들의 행로를 본받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읍니다. ‘로마’는 희랍을 대신하여 세계 강국이 되었읍니다. 그러나 문명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희랍의 문화와 철학이었읍니다. 그 당시 사물의 제도 내의 ‘유대’인들과 희랍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지혜있는 자들, 서기관들, 학식있는 자들, 변론가들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배[서기관, 신세]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변론가, 새번역]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희랍 철학자들과 ‘유대’인 ‘랍비’들은 변론가들로 이름이 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두 집단을 통털어 함께 말했읍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형주]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걸려 넘어지는, 신세]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다].” (고린도 전 1:20, 22, 23) ‘바울’ 자신은 희랍 철학자들 및 그들의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아덴’에서 그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7:16-21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쌔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4. 일부 철학자들은 ‘바울’을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바울’은 그들에게 무엇을 전파하였읍니까?
4 그 철학자들은 ‘바울’을 깎아 내려 말쟁이라고 하였는데, 희랍어 ‘스페르몰로고스’라는 말을 번역하면 “씨를 쪼아먹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까마귀나 기타 씨를 쪼아 먹는 새를 의미하였으며, 항상 길거리나 시장에 모여 있으면서 짐에서 떨어져 내린 조각들을 줍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읍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식객에게도 적용되었읍니다. 상징적으로, 이 표현이 ‘아덴’의 속어로는 지식 부스러기를 주어다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상깊게 그것들을 사용하지만 실상은 무식한 표절자에 불과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읍니다. 그러나 ‘바울’은 게으른 수다꾼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셨고 “만민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셨으며,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신 하나님에 관하여 전파하였읍니다. ‘바울’은 예수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말하였읍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 일부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또 일부 사람들은 믿고 ‘바울’과 함께 하게 되었읍니다.—사도 17:24-26, 31-34.
철학자들은 영혼불멸을 가르쳤다
5. (ㄱ) 철학자들의 어떠한 가르침이 부활을 어리석은 일로 보게 만들었읍니까? (ㄴ) ‘오르피우스’ 이론 중 어떤 가르침이 오늘날의 지옥설과 면죄설에 대한 종교적 가르침보다 앞선 것입니까?
5 부활에 관한 말을 듣고 왜 일부 사람들은 비웃었읍니까? 이것이 그들의 철학적인 어떤 지혜와 충돌이 되어, 그들이 부활을 어리석은 일로 보게 만들었읍니까? 성경적으로는 부활이 이치적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사람이 죽으면 짐승과 같이 무의식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 죽은 영혼이 된다면 부활이야말로 다시 살아나기 위한 유일한 희망입니다. (시 146:4; 전도 3:18-20; 9:5, 10; 에스겔 18:4) 그러나 이들 희랍 철학자들에게는 부활이란 비이치적으로 보였읍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였읍니다! 많은 희랍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으며 따라서 부활이 필요 없다고 가르쳤읍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스도이고’파 철학자들은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이 살아 있다고 믿었읍니다. 오래 전에 희랍 철학자 ‘탈레스’(기원전 7세기)는 광물, 식물, 동물 및 사람 속에 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가르쳤읍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형태는 바뀌지만 이 원동력은 결코 죽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a 기원전 6세기에 유명한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사후에 영혼이 ‘하데스’로 가서 정화된 다음, 새로운 육체로 다시 들어가며, 그것이 완전하게 고결한 생명에 이를 때까지 이러한 윤회의 순환을 계속한다고 주장하였읍니다.b ‘플라톤’은 “영혼은 분명히 불멸인 것같다”는 ‘소크라테스’(기원전 5세기)의 말을 인용하였읍니다.c 기원전 7세기에 신비한 종교 의식의 창시자인 ‘오르피우스’는 ‘오르피우스’ 이론을 주창하였는데, 이것은 사후에 영혼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데스’로 간다고 가르쳤읍니다. ‘윌리엄 듀런트’의 저술인 「문명의 이야기」 제 2부 190, 191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판결이 유죄라면 심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 이 교리의 한 가지 형태는 이 형벌이 영원하다는 것인데, 후기 이론인 지옥에 관한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 사상에서 나온 또 한 가지 형태는 윤회설이다. 즉 영혼은 이전의 존재가 순결한가 불순한가에 따라 더욱 행복하게 또는 더욱 고통스럽게 생명으로 반복해서 다시 태어나며, 이 재생의 수레바퀴는 완전히 순결해질 때까지 계속 돌 것이고, 영혼은 극락도에 들어갈 허락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죽기 전 그 개인에 의하여 그리고 사후에 그의 벗들에 의하여 행해진 참회를 통해 ‘하데스’에서의 형벌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였다. 이리하여 연옥설과 면죄설이 생겨났다.”
희랍 철학자들은 진화론을 가르쳤다
6. ‘바울’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든 생물의 창조주라고 전파하는 것이 또한 그들의 눈에 왜 어리석게 보였읍니까?
6 ‘바울’은 ‘아덴’에 있는 철학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즉 식물들과 동물들과 인간들을 포함하여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선언하였읍니다. 이리하여 그는 다시 한번 희랍 철학자들을 당혹케 만들었읍니다. 그의 청중 가운데 끼어 있던 ‘에비구레오’ 철학자들은 생명이 자연 발생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을 통하여 우연히 발달하였다고 믿었읍니다. (‘듀런트’의 「문명의 이야기」 제 2부 647면) ‘스도이고’ 철학자들은 창조주를 전혀 믿지 않았읍니다. 지상의 모든 생물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에 대한 개념이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였읍니다. 여러 세기 동안 희랍 철학자들은 생명이 우발적으로 스스로 생겨난 다음, 우연에 의하여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을 통하여 변화되고 진화되었다고 가르쳤읍니다.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제 10권 606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읍니다:
“희랍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유기체의 점진적인 발달에 대한 개념, 생식을 통한 과오의 감소의 개념, 따라서 부분 적응 즉 어떤 목적을 위하여 어떤 구조를 부합되게 만드는 개념, 자연에 부단히 작용하는 지성적 의도에 대한 개념, 또한 우연의 법칙에 따라 시초에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연에 대한 개념을 제창하였다.”
7. 진화론이 현대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음 사람들의 가르침에 어떻게 나타나 있읍니까? (ㄱ) ‘아낙시만더’ (ㄴ) ‘아낙사고라스’ (ㄷ) ‘엠페도클레스’ (ㄹ) ‘아리스토텔레스’.
7 좀 더 구체적으로, 기원전 6세기 사람인 희랍 철학자 ‘아낙시만더’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읍니다:
“생물체는 원시의 습지에서 점진적인 단계를 거쳐 생겨났다; 육지 동물들은 처음에는 물고기였으며, 땅이 마르자 그들은 현재와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 역시 한 때는 물고기였다. 인간은 최초에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태어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자기의 먹을 것을 구하기에는 너무나 무기력하였으며 멸망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d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세기)의 가르침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 볼 수 있읍니다:
“모든 유기체들은 원래 흙, 습기 및 열로부터 발생했으며, 그 후 그것으로부터 다른 것이 발생하였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발달하였다. 왜냐 하면 그의 곧은 자세는 물건들을 잡을 수 있도록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e
‘엠페도클레스’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읍니다:
“예를 들어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3-435년)는 ‘진화 사상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사람인데, 그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서 자연 발생을 믿었으며, 또한 다른 모양의 생명체들이 동시에 나오지 않았다고 믿었다. 식물이 처음에 생겼고, 장기간의 여러 가지 시련을 거친 후에 동물이 나왔는데, 유기체의 발생은 매우 점진적인 과정이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기형체들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부자연한 생성체는 곧 멸종되어 버렸는데, 이는 그들이 번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형 생물들이 멸종된 후에 스스로 지탱해 나아갈 수 있고 번식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생물들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유의해 보면, ‘엠페도클레스’의 사상 가운데서 적자생존 또는 자연도태설의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f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다음과 같이 썼읍니다:
“자연은 조금씩 조금씩, 정확한 계통을 분간해 내기 어려운 방법으로, 무생물로부터 동물체의 생명으로 전진해 나아간다 ··· 그리하여 그 위 수준에 있는 무생물이 나온 후에는 식물 종류가 나타난다 ··· 식물 가운데서는 그 수준이 계속 동물 수준으로 높아진다 ··· 그리하여 동물 수준을 거쳐서 등급이 다른 파생이 있게 된다 ··· 손톱은 발톱의 상사기관이고, 손은 게의 집게 발, 깃털은 물고기의 비늘과 상사기관이다.”g
자신들의 지혜로 눈이 멀다
8. ‘유대’인들과 희랍인들의 어떠한 지혜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눈멀게 만들었읍니까?
8 ‘유대’인 서기관들과 희랍 철학자들의 지혜는 모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와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하여 눈멀게 만들었읍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전도가 ‘유대’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였읍니다. 그들의 지혜는 자기들에게 율법의 행위와 동냥을 하는 일과 그들의 조상 특히 ‘아브라함’의 공로를 통하여 그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쳤읍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을 형주에 못 박도록 내 주는 그런 나약한 메시야를 원치 않았읍니다! 그 전도는 희랍인들에게도 어리석게 보였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멸시를 받는 죄인처럼 죽는 ‘유대’인을 필요로 하지 않았읍니다.—그들에게는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고린도 전 1:21.
9. (ㄱ) ‘바울’은 자기의 전도를 더욱 잘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려 하지 않았읍니까? (ㄴ) ‘바울’과 ‘베드로’는 무엇을 미리 알았으며, 그에 대하여 어떻게 하였읍니까?
9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경고의 편지를 보냈읍니다. 인간의 지혜는 그것이 구전의 복잡한 규정에 대한 ‘유대’ 서기관들의 지혜이든지 능변과 궤변에 통달한 희랍 철학자들의 지혜이든지 간에, 그들이 그러한 지혜에 의해서 설득을 당한다면 그리스도의 형주가 그들에게 헛된 것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들의 이전의 신앙을 끌어 들이기를 원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나 희랍인 그리스도인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타고자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리석게 보이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러한 불순한 것들을 섞고자 하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후 2:17; 4:2; 11:13) 사도 ‘바울’과 ‘베드로’ 모두는 앞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거짓 가르침들이 못박힌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오염시킬 때가 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읍니다:
사도 20:29, 30: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디모데 후 4:3, 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베드로 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10. 그들의 경고가 틀린 경고가 아니었음을 무엇이 증명해 줍니까?
10 뒤이어 일어난 역사는 사도들의 경고가 옳았음을 확증해 줍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1976년판)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기원 2세기 중엽부터 희랍 철학을 얼마간 배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지적인 충족감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교육받은 이교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데 그러한 어휘들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또한 「신 샤프-헤르조그 종교 지식 백과사전」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수는 다시금 ‘플라톤’의 이론에 독특한 매력을 느꼈으며, 그리스도교를 옹호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무기로서 그들을 이용하였으며, 또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들을 ‘플라톤’식 틀속에 집어 넣었다.”
11.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대다수가 ‘바울’과 ‘베드로’의 경고를 무시해 왔음을 어떠한 사실이 알려 줍니까?
11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대다수의 교회들은 기원 2세기부터 희랍 철학으로부터 배교한 그리스도교로 스며들어온 영혼불멸설, 삼위일체설 등 그러한 교리들을 아직도 가르치고 있읍니다. 희랍인들 역시 그러한 교리들을 더 오래된 문화로부터 받아들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것들은 모두 ‘이집트’와 ‘바벨론’ 종교로 소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들은 자기들의 교리를 현대화한다는 생각에서 하나님께서 진화를 이용하여 창조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실은 희랍 철학의 오류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 위에 생명을 창조하셨고, 생명은 “종류대로” 번식을 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며, 그리스도 예수는 시작이 있으신 그분의 아들로서 그분께 복종하신다는 성서 진리를 일축해 버립니다. 그리고 제 1세기의 ‘유대’인들과 같이, 일부 사람들은 순종하는 인류가 그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대속물로 예수를 더 이상 보지 않습니다.
12. 오늘날 충실한 수백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 보낸 소식에 어떻게 호응하고 있읍니까?
12 다행히도 오늘날 지상에 사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못 박힌 그리스도를 어리석고 약한 것으로 보는 이러한 종교적 철학적 지혜 자체를 헛되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고 있읍니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선언한 말에 잘 호응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그들은 생명을 주는 이러한 지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외침을 온 땅에 높이 외치고 있읍니다: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다!’—고린도 전 1:24, 25.
[각주]
a 「문명의 이야기」 제 2부 137면.
b 동 165면.
c ‘플라톤’의 「파에도」에 여러 차례 언급됨.
d 「문명의 이야기」 제 2부 139면.
e 동 340면.
f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제 10권 606면.
g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의 역사」 viii, I; i, I.
[10면 삽화]
‘바울’이 부활에 관하여 ‘아덴’의 철학자들에게 이야기할 때, 일부는 조롱하고 또 일부는 그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