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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무엇인가?깨어라!—1971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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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읍니다].”—에베소 2:1, 2, 새번역.
흥미롭게도, 현대 신학자들 간에 죽음을 실제 죽음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한 예로 ‘뉴저지’ ‘프린스턴’ 신학교의 ‘제임스 랍슬리’는 죽음이라는 제목을 다룬 몇 가지 서적에 대한 평론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 서적은 서양 문화 속의 전통적 믿음인 영혼 분멸 사상이 쇠퇴되고 있음을 반영, 확증하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세속화를 확증한 것이다. 유명한 신학적 견해로 죽음의 문제를 다각도로 다룬 여러 논문을 편찬한 「죽음에 대한 관찰」이라는 책에서 ‘로우 에이치. 실비만’과 ‘네안 더 케크’는 영혼불멸 사상이 성서에 근거가 전혀 없음을 설명하였다.”—「오늘의 신학」, 1970년 4월호.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직자들은 지금도 장례식 때,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는 옛날의 신조에 따라 연설을 한다. 만일 ‘프로테스탄트’의 복음 주의자들이나 정통주의자들이라면, 죽은 자가 사망 즉시 천당에 갔다고 말할 것이며, 죽은 자가 ‘로마 가톨릭’교인이라면, 사제들은 그 사람의 영혼이 고초받는 연옥에 갔다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어떤 장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 장의사는 ‘가톨릭’교인, ‘프로테스탄트’, ‘유대’교인 등을 많이 매장한 사람인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 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그들의 연설을 듣고 그 사람을 매장하고 나서는 “내가 죽은 사람을 매장한 일은 이번이 처음입니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 영혼의 불멸성의 신화를 배격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자기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 중서부의 어느 대학교에서 종교 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민튼’ 박사는 “죽음의 신학의 필요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후에 개체가 생존한다는 문제는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문제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장님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크리스챤 센츄리」 1970년 3월 25일호.
‘세속적인’ 교직자들에게 죽음이 문제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들이 실제 천당과 인간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신화만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에 대한 성경적 희망까지도 배격해 버려서 신도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제시해 줄 수가 없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인생에 참된 의미가 없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죽은 자가 참으로 죽는다고 가르치더라도, 성서를 참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성서는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 있다는 희망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훌륭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놀라지 말라. 때가 올 터인데 그때에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소리를 듣고 나올 것이[다].”—요한 5:28, 29, 새번역.
따라서 부활의 희망은 장래에 대한 희망이 되기 때문에, 현재의 생명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쌓아올린 올바른 행실은 죽을 때 영원히 말소되는 것이 아니고, 부활 때에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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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근원깨어라!—1971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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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근원
● 물 분자는 두개의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 한 개로 구성되어 있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되어 물이 되면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된다. 만일 1.1‘파운드’의 순수한 수소를 8.9‘파운드’의 순수한 산소와 결합시켜 물을 만들면 60‘와트’짜리 전구를 325시간 켜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나온다. 이러한 반응을 이용한 연료 전지가 생산되어 일부 우주 비행선에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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