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가정 폭력이 당장 주의를 기울일 만한 심각한 문제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족이 폭력으로 괴로움을 당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먼저, 가정 폭력이 어떠한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분노라는 감정이다. 한쪽 배우자가 잔학한 대우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폭력이 존재하는 결혼 생활은 비교적 없다. 그와는 반대로, 대부분의 경우에, 가정 폭력은 욕구불만, 질투심, 고독 혹은 불안 등에 의해 초래되는 억제되지 않은 분노한 감정 때문에 야기된다.
앞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유전받은 죄와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로마 5:12) 우리의 감정을 온전히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서글픈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화에 못이겨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다가 나중에 그를 후회하게 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성서에는 이러한 약점을 나타낸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에 관한 상당히 많은 기록이 들어 있다.—창세 34:1-31; 49:5-7; 요나 4:1, 9.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과 같은 가까운 관계내에서는 노를 발하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고 기대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럴 수 없다. 만일 그것이 불완전한 가족 성원 중 어떤 사람이 의롭거나 사려깊거나 사랑스러운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분개하는 일일망정, 때때로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사무엘 상 20:34; 욥 32:3 비교) 사실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용적인 충고를 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에베소 4:26.
그러나, 당신이 화를 낼 때, 소위 “싸움조 생활” 식으로 항상 화를 낼 자유가 있다는 말인가? 아마 당신은 그러한 글을 읽거나 그러한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심리학자 ‘게오르게 바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언쟁은 ··· 매우 바람직하다. 서로 싸우는 부부란, 그들이 적당히 싸우는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함께 어울려 사는 부부들이다.”—「친근한 적」.
그러나 당신이 생활 가운데서 보아온 사실로 볼 때, 분개한 언사로 노를 터뜨리는 것이 정말로 바람직한가? 가정 사회학 교수인 ‘머레이 A. 스트라우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였다.
“배우자들 사이의 싸움조 생활은 가정 불화를 해소하는 데 아무런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수백만의 생활에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하고 지나친 단순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아내와 남편 쌍방은 거의 언제나 동일한 기분에서 상대방에게 거칠고 적의에 찬 대꾸를 하였다.”
그것은 폭발을 일으키는 핵 연쇄 반응과 같다. ‘스트라우스’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지었다.
“험악한 말을 마구 사용하는 부부들은 거의 틀림없이 마침내는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 또한 말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신체적으로 해를 입히게 되는 일로 발전하는 일이 점차로 다반사가 된다.”—「맥콜」지 1975년 10월호.
그러므로 심리학적 이론이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할지라도, 실제 사람의 경험은 노를 억제하라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충고의 지혜를 증명해 준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방어]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잠언 29:22; 25:28; 시 37:8)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해온 (또는 그에 가까운 일을 해온) 사람들은 누구나 분노와 자제에 관한 하나님의 충고를 연구하고 적용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a
많은 사람들은 “좋소, 그러면 당신이 실제로 당신의 아내(혹은 남편)에게 화가 났을 때는 어떻게 하오?” 하고 질문할 것이다. 한 가지 가능한 방법이 있다. 약 60초를 기다려 보라.—실제로 천천히 60(또는 그 이상)까지 세어 보라. 만일 당신이 자신의 노를 지연시키는 일에 성공한다면, 아마도 감정을 폭발하는 일도 덜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충고를 고려해 보라.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이 말은 당신의 배우자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기분이 상하거나 심지어 화가 났을 때, 참고 잠시 동안 다른 방이나 근처 어디엔가로 가서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 보았는가? 이렇게 하는 것은 특히 아내의 비이치적임, “변덕” 혹은 억제력의 상실이 고의적인 일이 아닐지 모르므로 남편에게 있어서 훌륭한 묘안이다. 아마도 그것은 아내가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게 만드는 일시적인 ‘호르몬’ 변화의 증세일 수 있다.—잠언 17:14; 19:11.
그와는 달리, 만일 당신의 배우자가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격분한 언사를 퍼붓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는 말에 지혜가 있다. (잠언 15:1) 이것은 6면에 나오는 소년이 말한 경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순하게 대답하는 것은, 가정 폭력을 초래하게 할 수 있고 또 아마도 이미 그러한 결과를 가져온 태도로 분개하여 대답을 하는 것보다 훨씬 좋고 훨씬 실용적이다. 흥미있게도, ‘스트라우스’ 박사는 거칠게 대꾸하는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거칠게 반응을 보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음을 언급한 후에, 앞서 인용한 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 “부드럽고, 사려깊으며 사랑스러운 언사만이 화해의 대답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것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상 성서에 근거한 제안들은 가정 폭력을 해결하는 데 관한 단순한 이론이 아니다. 그 제안들은 여러 경우에 효과를 거두었다. 예를 들어,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에 사는 ‘톰’은 난폭한 기질을 가진 남자였다. 그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화가 날 때면 주먹으로 하도 벽을 두들겨댔기 때문에, 마침내는 내 손이 다시 다치지 않도록 못이 있는 곳에는 표를 해 두었읍니다.” 그는 주말이면 흔히 술에 취해 있곤 했다. 한번은 그와 그의 아내가 몹시 술에 취해 싸운 후,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는지 알아 보기로 결심하였다. 한동안 그는 정기적으로 감리교회에 나갔다. 어느날 그는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두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집 밖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방문하였다. 얼마 동안 그는 그들과 함께 성서 연구를 하고 나서, 그것을 적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아내는 때때로 그를 비웃으며, 그의 성서 서적들을 찢어 버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거나 폭력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진리는 정말로 내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읍니다. 내가 아내에게 이렇게 잠잠히 있어 본 일이나 이토록 친절을 나타내 본 적이 결코 없었읍니다.”
다른 조치들
분노에 관한 하나님의 충고를 적용시키는 것은 가정 폭력 문제를 극복하는 적극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다른 조치들이 있다.
‘톰’의 경우와 기타 다른 경우들에서 ‘알코올’이 흔히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주가 폭력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나무에 불이 붙을 때와 같이 처음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킨다. 술도 그럴 수 있다.
만일 당신의 가정이 가정 폭력으로 인해서 시달려 왔다면, ‘알코올’이 때때로 관련되어 있는지 고려해 보라. 성서는 ‘알코올’을 절도있게 사용하는 일을 단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잠언 20:1; 시 104:15; 에베소 5:18) 만일 음주가 가족 내의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는 일에 빠지게 만든다면, 그에 대하여 어떤 대책을 세울 수—아니, 세워야 할 것이다. 가정을 보호하고, 신체를 해하는 일 또는 살인을 피하려는 사랑에 찬 관심에서, 술을 마시는 때와 주량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일을 상호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험 또는 ‘위험도’로 봐서 그 제한선이 너무 높다면 그것을 조금 낮출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술을 아예 끊어 버려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정 폭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니겠는가?
싸움이 아니라 의사소통
우리가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욕구불만, 질투심, 및 불안 등은 종종 가정 폭력의 원인이 된다. 이에 대하여 어떠한 대책을 세울 수 있는가? 가장 훌륭한 대책 중 한 가지는 의사소통을 개선하는 것이다. 한 사회과학자는 “대부분의 부부들이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며, 그 결과 많은 경우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는 얼마간의 욕구불만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 예를 고려해 보라. 한 남자는 선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 보는 것이 꿈이었으나, 결혼을 하고, 노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구두끈 공장에 들어가 한 구석에 고정되어, 소음 속에서 일을 하며, 거만한 작업반장에게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다. 당신은 그가 결코 욕구불만의 상태로 귀가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아내는 세명의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평화로운 농장에서 키우는 것을 꿈꾸어 왔다. 그러나 그는 자녀를 임신할 수 없었고, 현재는 노부모 가까이에 있기 위해 도시에서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욕구불만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창세 30:1; 사무엘 상 1:4-11.
그러나 만일 남편과 아내가 그들의 감정얽힌 활동에 관한 의사소통을 발전시킨다면, 이 제도 내의 불완전한 생활에서 흔히 겪는 욕구불만이 발전하여 폭력의 형태로 폭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데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그들을 도와 준다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한다면, 이것은 남편의 욕구불만을 누그러지게 할 것이다. (디모데 전 5:8) 그들은 서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노부모를 위해 하고 있는 선한 일을 인식하는 데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또 그들은 함께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거나 낚시질을 하거나 혹 다른 일거리를 알아 보는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의 사랑을 확신시켜 주는 것과 남편 역시 아내의 감정과 희생을 이해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내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편이 그러한 점을 이야기할 때 자기의 양팔로 아내를 감싸 준다면 더욱 효과적이다.
또한 쉽사리 싸움이 시작될 수 있는 순간에 의사소통은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아내는 남편이 귀가하였을 때 즉시 남편의 심경이 상해 있거나 비정상적으로 긴장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지난번의 대화를 통해서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 아내는 동정심을 보이며 조용히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 아내는 “폭탄”이 아니라 달래어 가라앉혀 줄 수 있다. 아내는 ‘오늘도 작업 반장이 못되게 굴었어요?’ 또는 ‘교통이 복잡했지요?’ 하고 친절하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남편들에게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기 위해 아내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한 민감도를 발전시킬 여지가 많이 있다.—잠언 25:11 비교.
가정 폭력의 요인은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다. (빌립보 2:4) 아내는 자기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남편이 자기의 새로운 머리 모양을 눈여겨 보고 평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남편은 대개, 자기가 귀가하면, 아내는 기적적으로라도 교통이 얼마나 혼잡했는가를 알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바로 폭력으로 인도하는 부부싸움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 좀더 솔직한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남편은 ‘오늘같은 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놓이는군’. 또는 아내가 ‘저 오늘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할 수 있었어요’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당신의 느낌을 이끌어 낼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당신이 그렇게 하라. 그렇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대화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가정의 재정 문제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그러한 문제를 원망이나 긴장의 원인이 되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내도록 하라. 한 연구자는 “아내 구타 사례의 28‘퍼센트’가 돈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특히 아내가 남편에게, 그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경제적인 상태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든가 아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거듭 지적할 때 많은 폭력적인 싸움이 발생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남편으로 하여금 열등감을 갖게 하고, 가족 부양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느낌을 갖게 할 것이다. 가족의 수입과 경제적인 계획들을 가족적으로 토론해야 할 훌륭한 근거는 디모데 전서 6:6-10, 17-19 및 마태복음 6:24-34에 있는 영감받은 충고이다. 부부는 함께 이러한 귀절들을 소리내어 읽은 후, 새로운 가구, 의복 혹은 기타 물건들을 사는 문제를 세밀히 고려할 수 있다.
조용히 의견을 나누는 그러한 기회들은 질투심과 같은 감정, 그것이 다른 남자 또는 여자에 대한 것이든, 어떤 친척이나 심지어 남편의 직업에 기울이는 관심에 대한 것이든, 그와 같은 감정을 논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이다. 앞서 언급한 그 연구 조사는 “[아내 구타의] 35‘퍼센트’가 질투심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잠언 6:34과 그 귀절이 들어 있는 문맥에서는 질투심을 일으킬 만한 실제적인 근거가 있을 경우, 분노와 복수하려는 욕망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 폭력이 뒤따르는 그러한 동일한 감정들은 거의 또는 전혀 근거가 없는 질투심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질투심이 ‘보일러’ 내의 수증기 압력처럼 맹렬히 폭발할 때까지 점점 더 커지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남편과 아내가 함께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때에 은근하게(비난하는 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언급하는 것이 좋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는 참으로 노력이 들겠지만, 만일 그렇게 해서 감정에 대한 상호 이해가 발전된다면, 폭력을 피하기 위한 장족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잠언 14:30; 27:4.
만일 당신이 가정 문제들 및 아내 또는 남편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으며, 폭력이 행사되어 왔다면, 중립적이면서도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장성되고 균형잡힌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을 고려할 것이다. “이혼 가능성있는 가정 내에서의 폭력”에 관한 연구를 한 사회학자 ‘존 E. 오브리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불안한 감정이 발생한 일찍부터, 그러한 문제를 끌어 내어 토론하는 것이 좋다. 만일 배우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은 중재자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봉사자들은 그러한 요청을 받았을 때, 종종 성서 연구생들, 심지어 결혼 생활상의 문제를 겪고 있는 회중 성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남편과 아내의 요청이 있을 경우, 그리스도인 봉사자는 그 부부에게 그들의 감정 또는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사물을 바로잡는 일”에 유익한 성서에 입각하여 그러한 문제를 고려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디모데 후 3:16, 17, 신세.
성서로 향하는 이유?
당신은 아마도 가정 폭력 문제를 극복 또는 방지하기 위한 가장 훌륭하면서도 가장 실용적인 많은 충고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음을 관찰해 왔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왜냐 하면 성서의 저자가 가정 생활의 창시자이시며, 인간 역사를 통해서 폭력적인 가정과 평화스러운 가정 모두를 보아 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점증하는 가정 폭력 문제를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성경적인 충고를 기록해 놓으셨다.
예를 들면, 성서는 반복해서 남편과 아내가 자신들을 “한 몸”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세 2:24; 마가 10:8; 에베소 5:31) 만일 부부가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에 대한 참다운 영을 흡수한다면 그들의 가정에서 폭력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베소서 5:28, 29은 신중하게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말의 진실성을 인식할 수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손가락에 몹시 화를 내서 단지나 망치를 들고 그 손가락을 때리거나 자신의 목에 화를 내서 그 목을 쥐어짜는 일을 하는가?
또 우리는 자신의 육체의 약점이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성벽을 알게 되고 그것을 조절하지 않는가? 그러한 조절은 결혼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많은 부부싸움에서 강조되는 점은 ‘왜 당신은 좀 더 나처럼 되지 못하는가? 왜 당신은 나와 같은 식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나처럼 그 일을 처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이 꼭 그러한 말로 표현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아마도 다음과 같을지 모른다. ‘왜 당신은 ‘텔레비젼’ 앞에 앉기 전에 상을 치우지 않았는가?’ 혹은 ‘왜 당신은 더러운 양말을 벗어서는 빨래 통에 넣지 않고 그냥 구두 속에 넣어두는가?’ 이면의 뜻은 똑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배우자가 한 몸이라는 하나님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남편 또는 아내는 상대방이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사랑스럽게 고침을 받아야 할 성벽 또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람으로 쉽사리 받아들인다. 성서는 현명하게도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언 19:11.
성서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부부는 또한 정기적으로 함께 기도할 것이다. (베드로 전 4:7) 도움과 자비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가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가까와 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라. 흥미롭게도, 가정 폭력에 관해 ‘뉴우요오크’의 심리학자 ‘S. 디데이토’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종종 부부들에게 그들의 결혼식날 밤 기도하라고 이야기한다. 내 생각에, 그들이 이러한 습관을 들인다면, 폭력을 사용하게 되는 일은 더욱 드물게 될 것이다.”
성서 원칙과 일치하게 드리는 기도는 ‘조일라’와 ‘데이빗’의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페루’ 원주민인 ‘조일라’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재앙과 같았읍니다. ‘데이빗’은 나를 버려 두고 밤마다 나가서는 있는 돈을 모두 써버리곤 하였으며, 종종 내게는 생활비마저 주지 않았읍니다. 그는 걸핏하면 나를 때렸으며, 심지어 내가 아기를 임신했을 때에도 한쪽 눈을 멍들게 하고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렸던 일도 있읍니다. 나는 뱃속에 있는 아기가 다칠까봐 배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얼마 후, 여호와의 증인인 ‘데이빗’의 숙모가 방문하여 이들과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데이빗’은 자기의 과거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으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자기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땅에서 제거하실 때 여호와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성서를 적용함으로써 여러 가지 성품들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가정 폭력은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비록 ‘뉴우스’ 보도들이 가정 폭력—아내 구타, 남편 구타 및 자녀 학대—이 만연해 있음을 계속 강조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해결 불가능한 또는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일로 인하여 피해를 입어온 사람이거나 심지어 그러한 일을 자행해온 사람일지라도, 당신 역시 하나님의 완전한 충고를 적용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따라서 가정 폭력이 과거의 일이 되게 할 수 있다.
[각주]
a 교훈적인 예들: 창세 4:3-8; 사무엘 상 20:30-33; 에스더 1:10-20. 그 밖의 현명한 충고: 잠언 12:16; 16:32; 19:19; 22:24, 25; 골로새 3:8; 야고보 1:19, 20.
[14면 삽입]
“성인답게 당신은 다른 사람과 충돌이 생겼을 경우 당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성인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당신이 폭력을 행사하고 서로 치고 받는다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진다면 ··· 당신은 어린 아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격분시킨 것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비이치적인 방법으로 대드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그러한 행동은 자신을 파괴하는 데 그칠 뿐이다.”—‘리베카 리스우드’ 박사 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구급책」.
[16면 삽입]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잠언 12:25.
[17면 삽입]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언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