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에베소 5:1.
1. (ㄱ) 다른 사람을 본받으려는 선천적인 성향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ㄴ) 성서는 우리에게 특히 누구를 본받으라고 권고합니까?
사람은 누구나 한 때 다른 사람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본받으려고 하며, 왕왕 함께 노는 아이들을 본받으려고 합니다. 그들이 좋은 성품을 본받으면 본인들에게 유익합니다. 만일 나쁜 것을 본받으면 해가 됩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에베소 5:1)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읍니까?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읍니다.
2. 창세기 1:26, 27에 따르면, 첫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러므로 그의 모든 후손은 어떠합니까?
2 약 6,000년 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당시에 관하여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창세 1:26, 27) 성서의 첫째 책인 「창세기」에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창세 1:28)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존재해 왔으며, 모두가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그들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니고 있었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셨읍니다. 그 점은 ‘누가’의 복음서 3장 38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읍니다. 거기 보면, 족보에서 ‘아담’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우리 모두는 ‘아담’으로부터 나왔읍니다. ‘아담’은 창조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특성 곧 하나님의 훌륭한 속성인 지혜, 공의, 사랑 및 능력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아담’은 완전한 사람이었읍니다.—신명 32:4.
3. 오늘날 인간이 하나님의 특성을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3 그러나 상태가 달라졌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원래 그 완전한 사람에게 포함되어 있던 훌륭한 특성을 어느 정도 나타내지만,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12에서 그 점을 잘 표현하였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리하여, ‘아담’ 이후 지금까지 “사망이 왕노릇”하였읍니다. 이 얼마나 큰 수치입니까! (로마 5:14) 그것이 모든 것의 종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제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 전 15:22) 그것이 어떻게 마련되었읍니까?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
4. 무슨 마련에 의하여 ‘아담’의 자손에게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게 되었읍니까?
4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아담’이 범죄한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인간이 이 지구에 가득차게 할 목적을 가지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에 부합되어야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을 위해 구속주 곧 대속주를 보내셨읍니다.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훌륭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심으로써 완전한 인간으로 나타나셨읍니다. 그분은 사실상 둘째 ‘아담’, 다시 말하면, 지상에서 두번째 완전한 사람이셨읍니다. (고린도 전 15:45) 그분은 자기 생명을 주고 전 인류를 사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읍니다. “인자가 온 것은 ···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 20:28)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느니라].”—디모데 전 2:5, 6.
5. (ㄱ) 첫 사람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었읍니까? (ㄴ)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면 누구의 본을 따라야 합니까?
5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히브리 1:3)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입니다. (골로새 1:15)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합당히 행하여 모든 일에 그분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골로새 1:10)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으로 받들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를 것입니다.
6. (ㄱ) 어떠한 성품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응할 수 있었읍니까? (ㄴ)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공부할 때에, 우리는 또 누구와 친숙해지는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으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꾀하지는 않으셨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 (빌립보 2:5-8)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지시하시는 모든 일에 순종하셨읍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한 14:24) 예수께서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매우 닮으셨고, 그분의 의로운 길과 생활에 매우 일치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자기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서는 이렇게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시느니라].”—요한 5:19, 20.
7.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세워 놓으신 훌륭한 본을 어디서 볼 수 있읍니까?
7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 가운데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본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지상에 계시던 33년 반 동안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를 닮으셨음을 증명하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자로서의 완전한 본을 보이셨읍니다. 그분은 인간이셨지만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둘째 ‘아담’’이셨읍니다.—요한 1:29.
8.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기울인다면 무슨 희망을 달성하게 됩니까?
8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라는 교훈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노력을 포기할 이유가 없읍니다. 오늘날 지상의 희망을 가지고 있어 그리스도 예수의 1천년 메시야 통치가 끝난 후에 영원히 살기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때 가서 틀림없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넘겨 주실 때에는 그 때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첫 인간 부부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토록 한 여호와의 목적이 완수될 것입니다.—창세 1:26-28; 로마 8:20, 21.
죄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는가?
9. (ㄱ) 우리가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ㄴ) 특히 어떤 성품을 보임으로써 우리는 노력하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9 사실이지, 현 사물의 제도 하에서는 사람의 선천적인 성향이 나쁜 길로 기울어져 있읍니다. 그것은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났고 불법 가운데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에베소 5장 1절부터 읽어보면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음과 형주에서 그분이 희생되심으로써 대속물을 지불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하셨읍니다. 그분은 우리가 따를 완전한 본을 남기셨읍니다! 그분은 성실성을 나타낸 사람이셨으므로 우리가 사랑으로 그분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읍니다. 그렇지 않으셨다면, 대속물로 희생되시기 위해 처참한 죽음 곧 형주에서의 죽음을 당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 예수께서 세우신 이러한 본은 여호와 하나님께 매우 기쁘고 즐거움이 되는 생활이었읍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피로 대속의 가치를 지불하시기 전에도 침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고 말하였읍니다.—요한 1:29.
10. (ㄱ) 불완전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순전하고 정직”할 수 있음을 어떤 성서의 본으로 알 수 있읍니까? (ㄴ) ‘사단’은 ‘욥’에 대해 어떤 도전을 하였읍니까?
1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생활의 길을 걷는다면, 우리도 예수의 아버지이며 우리의 아버지인 분 곧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불완전함으로 예수처럼 할 수는 없읍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불완전한 사람 중에도 성실하게 행하였으며, 생애의 끝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예수께서 지상에서 오시기 오래 전 사람이었읍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욥’입니다. 성서 「욥기」에서는 이 사람이 ‘우스’ 땅에 살았으며, “순전하고 정직”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욥 1:1) ‘욥’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으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고 매우 부유하였읍니다. 양떼와 소떼와 약대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동방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읍니다. ‘욥’이 이 모든 번영을 누리고 또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던 때에 이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찌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6-12.
11, 12. (ㄱ) ‘욥’은 어떠한 입장에서 하나님께 충실함을 입증하였읍니까? (ㄴ) 그는 하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한 결과 어떤 보상을 받았읍니까?
11 그 순간부터 ‘사단’은 여호와의 종 ‘욥’의 성실성과 순전함을 깨뜨리기 위해 온갖 수작을 다 썼읍니다. 그러나 ‘욥’은 ‘사단’의 혹독하고 잔인한 처사에 굴복하지 않았읍니다. 자녀를 모두 잃고, 재산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후에 지혜있다고 하는 자들이 와서 그를 책잡으려고 하였어도 ‘욥’은 충실한 행로를 굽히지 않았읍니다. 소위 벗이라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욥’은 대답하기를,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번뇌케 하는 안위자로구나” 하였읍니다. (욥 16:2) 사실상, 만사가 매우 비참하였기 때문에 ‘욥’은 “무덤이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하나님께 외쳤읍니다. (욥 17:1) 그러나 ‘욥’은 죽지 않았읍니다. 그는 반대자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하나님께 충실성과 순전함을 고수하였읍니다. 드디어, 다음과 같은 축복을 받았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욥 42:12-17.
12 ‘욥’의 평생에 대한 기록을 전부 읽어보고 그가 모든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아갔는가를 본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도 그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읍니다. 그는 그 성실성에 대해 보상을 받았으며, 때가 되면 또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에 관하여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고보 5:11.
13. 이러한 본을 보고 어떻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까?
13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완전한 사람인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에 성실성을 고수하고 순전하게 행하기가 용이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불완전한 사람인 ‘욥’도 그와 비슷하게 한 것은 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성실을 지킬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시대에는 어떻게 그러한 행로를 취할 수 있었읍니까? ‘바울’은 ‘에베소’ 회중에게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에베소 5:1, 2) ‘바울’은 그 그리스도인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였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불순종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녀”가 됨
14.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미워해야 합니까?
14 「시편」 필자는 그 점을 잘 표현하였읍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시 97:10) 우리가 악한 것을 미워하려면 악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반대의 것을 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십시오! ‘바울’은 악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우리에게 충고를 주고 있읍니다.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에베소 5:3-5) 이 말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단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에 그 말은 정확해야 합니다. 탐욕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위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 정직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면 악한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다면, 앞에서 ‘바울’이 언급한 일들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15. (ㄱ) ‘바울’은 누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불순종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15 ‘바울’이 언급한 것들, 곧 음행, 희롱의 말, 탐욕 등을 자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에베소 5:6, 7) 하나님은 매우 분명하십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아담’은 불순종하였읍니다. 그는 지혜, 공의, 사랑, 및 능력의 속성을 받고, 모든 것을 공급받아 훌륭한 생활 조건을 갖게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읍니다. 그는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 하는 것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권은 여호와께만 속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요 모든 생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지성있는 모든 생물이 그분과 같이 되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불완전함에도 우리에게 그렇게 되라고 권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시며 인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만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거절하고 우리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충고에 반대되게 우리 자신이 모든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불순종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진노’를 기대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강력히 권고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불순종의 아들들” 곧 하나님의 길에 반대되게 가는 자들에게 참여하지 말라고 하였읍니다.
16.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사람은 음행에 관해 어떤 태도를 버려야 합니까?
16 우리는 음행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들은, 혼전 성관계도 나쁘지 않고 동성애도 나쁘지 않다고 뻔뻔한 말을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부부의 침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하며, 남자와 더불어 동침하는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히브리 13:4; 로마 1:27, 3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인생 행로를 걷는 데 있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과 풍성한 축복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는 점에 있어서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고린도 전 6:18; 데살로니가 전 4:3, 8.
17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에서 나타내야 할 변화에 대해 말하면서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였읍니까?
17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생활에 큰 변화를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점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러분은 순종하는 자녀와 같이 하나님께 복종하시오. 그리고 전에 알지 못할 때에 가졌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오히려 여러분을 부르신 그 거룩하신 분을 따라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들이 되시오. 성서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베드로 전 1:14-16, 새번역) 흥미롭게도,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회중을 “순종하는 자녀”라고 불렀읍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들은 자기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않아야 하며, 이전 방식대로 행동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을 본받고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유익받음
18.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려면 사랑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8 예수께서는 이곳 지상에 계시던 때에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읍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마태 5:43-46)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바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려면 이웃 사람만을 사랑할 것이 아니라 원수에게도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합니까?
19. 에베소 3:17-19에 언급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19 하나님의 말씀, 요한 1서 4:11에 이러한 말씀이 있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온전히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 점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 3:17-19)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사랑을 깨닫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20. 로마서 8:31-39에서 사랑에 관해 ‘바울’이 기록한 내용은 우리에게 어떤 훌륭한 격려를 줍니까?
20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훌륭한 격려를 받고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 8:31-39.
21. (ㄱ) 왜 ‘바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어떤 책임이 있읍니까?
21 ‘바울’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읍니다. 따라서 ‘빌립보’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4:9) 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온전히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열심히 노력하여 형제들에게 올바른 본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확신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형제들이여, 다 같이 나를 본받으시오.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의 모범이 되어 있으니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시오.” (빌립보 3:17, 새번역) 장로들과 기타 진리 안에서 오래 된 사람들, 심지어 연륜이 짧은 사람들이라도 ‘바울’이 행한 바와 같이 올바른 본을 보일 커다란 책임이 있읍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조직 내에 있는 다른 형제들을 실족하게 할 수 있읍니다. ‘바울’은 우리를 이렇게 권고합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린도 전 10:32, 33.
22. 하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22 ‘바울’은 인류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바와 동일한 정신을 가졌읍니다. 그는 이것을 여호와로부터 배웠읍니다. 그는 이웃을 사랑해야 함과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온전히 주어야 할 필요성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다음 귀절에서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11:1)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았읍니다. 예수께서 완전하셨음과 아버지와 같이 되려고 한 점에 있어서 훌륭한 본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꼈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기록된 내용을 알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히브리 13:7) 우리는 낡은 세상의 길을 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 살기는 하지만, 거기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따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본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시던 때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9)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으려 하고 그분과 같이 되려 한다면, 성실을 지키신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104면 삽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는 모두 ‘아담’으로부터 나왔다
[105면 삽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에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와 같았기 때문이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