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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는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않는 사람들
    파수대—1979 | 10월
    •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악을 생각조차 해서는 안되므로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왜 욕정을 상징하는 것에서 ··· 쾌락을 발견해야 하는가? 사람은 구경하는 것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 우리가 듣고 우리가 보는 것은 즉시 우리에게 익숙해지게 마련이다.”—‘사이프라이안’.

      20. (ㄱ)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왜 타락한 오락을 피하였읍니까? (ㄴ) 그들의 행실이 눈에 띄게 달랐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이 사람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보다 여러 해 후에 살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무엇이었는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타락한 오락을 멀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암흑에서 나와 높여진 사람들이 즉, 생활 가운데서 음담과 폭력, 부도덕을 멀리 한 사람들이 일부러 앉아서 그러한 것을 오락으로 구경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행위임을 이해할 수 있었읍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는 ‘바울’의 충고를 청종했읍니다.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의 그들의 순결한 일상 생활은 이방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책망’이 되었읍니다. 이들이 불경건한 세상에서 “사람의 원수”라는 낙인을 받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이들 제자들은 육적인 생각으로 가득찬 이웃 사람들보다 더 나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기꺼이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정신에 작용하는 힘 안에서 새롭게 되”었음을 전시하였읍니다. 그 “힘”은 얼마나 다른 것이었읍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읍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빛의 열매”를 나타내든지 혹은 이방 사람들처럼 행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에베소 4:23, 신세; 5:9, 11.

      21. 어떠한 이유로 오늘날 우리는 오락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이 되어야 합니까?

      21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오락 선택에 관하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또는 우리의 자녀가 ‘텔레비젼’을 켜거나 영화관에 가서 구경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경하기로 선택한 것과 ‘부끄러운 ‘로마’의 연극 및 야수적인 투기장’ 사이에 실제로 다른 점이 있읍니까?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습관적으로 구경하는 것의 영향을 받아 나타내졌고 부도덕에 말려들어간 실제 경우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22. (ㄱ)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들로서 걷는 일이 쉬운 일이었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읍니까? (ㄴ) 대답을 요하는 어떠한 질문들이 또 있읍니까?

      22 이와는 반대로, 그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도덕적 힘을 전시하였읍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무디어져서 그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수치감과 예의라는 것을 통째로 잊고 있는 세상 가운데서 살면서도, 그들은 계속 정신을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할 만한 것, 칭찬할 만한 것, 덕이 있는것, 기림이 있는 것’에 집중시킬 수 있었읍니다. (빌립보 4:8) 부도덕한 분위기 가운데서 그들은 어떻게 그러한 힘을 유지하였읍니까? 기억하십시오.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이 혈과 육을 가진 단순한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들도 기본적으로 오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들의 “다른 쾌락”이란 어떤 것이었읍니까? 우리는 어떻게 “빛의 자녀들”의 그러한 가치있는 본을 더욱 더 밀접히 따를 수 있읍니까? 이러한 것들이 다음 기사에서 고려될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파수대—1979 | 10월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베소 5:8.

      1, 2. (ㄱ) 비유 가운데 나오는 사람은 왜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이방인들처럼 행하지 않으려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나운 바람을 거슬러 애써 걸어가는 사람이 있읍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을 주어 꿋꿋하게 앞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읍니다. 이렇게 온갖 힘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단순히 뒤로 돌아 바람을 등지고 쉽게 걷지 않습니까? 바로 그의 뒤에는 캄캄한 심연(深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기를 원한다면 별 수가 없읍니다. 바람을 거슬러 고생하며 걸어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2 오늘날에도 ‘사단’의 지휘 아래 있는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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