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를 따름
1. (ㄱ)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의 조상이 ‘시내’ 산에서 내린 결정은 왜 그 후손들이 새 언약에 접하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하지 않았읍니까? (ㄴ) 그 ‘유대’인들은 누구를, 어떤 방법으로 본받아야 하였읍니까?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에게 사태가 달라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 올라가 그의 귀중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그분께 바치신 후였읍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를 통한 구 언약은 말소되었으며, 새 언약이 이 언약의 중보인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써 유효하게 되었읍니다. 이 새 언약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먼저 육적 ‘유대’인에게 열려졌읍니다. 십오 세기 전 그들의 조상들은 중보 ‘모세’에게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선언하였었읍니다. 그러나 이 일이 새 언약에 대하여 그들의 후손들에게 책임을 부여하지는 않았읍니다. 이 후자의 언약에는 ‘모세’보다 더 큰 새로운 중보 곧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읍니다. 새 언약에 들어가려면 그들은 이 더 크고 더 나은 중보에게 “여호와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기꺼이 행하고 순종하겠읍니다” 하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이신 중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들 육적 ‘유대’인들은 여호와께 그들 자신을 제공해야 하였고, 그리하여 이 새롭고 더 크신 중보를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되는 그분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2. 기원 33년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한 말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육적 ‘유대’인들의 입장을 변경시킨 어떤 일을 예수에게 행하셨읍니까?
2 육적 ‘유대’인들은 참으로 새로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들 각자는 이에 따라 자신들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기원 33년 오순절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의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다음에,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이 점을 지적하였읍니다. ‘베드로’는 기적이 일어난 일과 왜 일어났는지를 사방에서 모인 수천명의 ‘유대’인들에게 설명한 후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형주]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사도 2:34-36, 신세 참조.
3. (ㄱ) ‘시내’ 산에서 그의 조상들이 행한 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그 ‘유대’인들은 새 언약에 들어갈 자격이 있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행하라고 한 일을 행한 다음, 그 ‘유대’인들은 새 언약으로 들어갔음을 어떻게 알았읍니까?
3 그러면 그 말을 듣던 ‘유대’인들은 전혀 새로운 환경하에서 어떻게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선언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새 언약에 들어갈 자격이 있음을 나타냈읍니까? 그들은 한 때 나무에 달린 바 있는 예수를 그들의 주로 그리고 여호와의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로, 그리고 예언자 ‘모세’에 의하여 예언되었고 전영된 그들의 중보로 받아 들임으로써 그렇게 하였읍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들에게 구원이 올 수 없었읍니다. 그들 수천명의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 하고 질문하였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생명의 수석 대행자에게 그들의 주의를 이끌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사도 2:37-40) 만일 그들이 물로 침례를 받은 후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선물을 받는다면, 이것은 그들이 새 언약으로 들어갔음을 의미하였읍니다.
4. 그러면, 그 ‘유대’인들의 물 침례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4 그러면 그들이 물에서 받은 침례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또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한 후에 받았으므로 그들의 침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주신 “주”로 인정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인정하는 것이 포함되었읍니다.
5, 6. (ㄱ) 그들은 누구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게 되었으며, 그때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던 죄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히브리서 9:14에 의하면, 그들의 죄 사함은 그들에게 무엇을 갖게 해 주었읍니까?
5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는 그들이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하여 주신 이러한 죄들은 그들이 ‘모세’의 율법 언약을 범한 죄가 아니었읍니다. 육적 ‘이스라엘’과 맺은 그 언약은 이제 지나갔고 말소되었으며 이제 약속된 새 언약이 더 나은 중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 할 필요가 있는 죄는 주로 하나님께 대하여 저지른 죄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는데 참여한 죄와 그들의 일반적인 죄였읍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죄사함을 받으면 그들은 선한 양심을 갖게 될 것이었읍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6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브리 9:14.
7. 새 언약에는 죄에 관하여 무엇이 약속되었으며, 그 침례받은 ‘유대’인들은 누구를 통하여 그 언약에 들어갔읍니까?
7 하나님께 대한 선한 양심을 갖게 하는 이 죄 사함은 하나님께서 새 언약 가운데 약속하신 것이었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새 언약을 예언하실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그 예언을 마치셨읍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 하리라.” (예레미야 31:31-34) 여러 세기 후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이었던 그리스도인들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 8:12, 13)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볼 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삼천명의 ‘유대’인들은 ‘더 나은 중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 안으로 들어 왔읍니다.—사도 2:41.
8, 9. 며칠 후 성전에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누구를 지적하였으며, 그는 그들에게 무엇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하였으며,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이라고 하였읍니까?
8 오순절에 그러한 일이 있은지 며칠 후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게 되었읍니다. 그들에게 모여든 군중에게 연설하는 가운데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수석 대행자를 지적하였읍니다. 또한 ‘베드로’는 그들이 회개하고 전환할 필요성을 지적하였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때 오는 상쾌함을 구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읍니다. ‘베드로’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9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수석 대행자, 신세]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사도 3:13-26.
10. 그 때에 왜 회개한 ‘유대’인들이 침례를 받지 못하였으며, ‘베드로’와 ‘요한’은 법정에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유일한 이름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회개한 ‘유대’인에게 침례를 베풀 마련을 하기 전에 사태가 돌변하였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였더라.]” (사도 4:1, 2)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밤새도록 감금되었다가 이튿날 심문을 받고 석방되었읍니다. 법정에서 그들은 천하에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선언하였읍니다. (사도 4:3-23) 사도들은 그러한 고귀한 이름을 지닌 분을 따르는 것을 중지하기를 거부하였읍니다.
11. (ㄱ) 복음 전도자 ‘빌립’은 어떻게 하여 ‘사마리아’에서 전도하게 되었읍니까? (ㄴ) 믿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누구의 제자들이 되었읍니까?
11 그 후에 ‘예루살렘’에서 혹독한 박해가 일어났으며, 충실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었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읍니다. 열두 사도를 제외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읍니다.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 복음 전도자 ‘빌립’도 들어 있었읍니다. 그는 북쪽 ‘사마리아’ 시로 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읍니다. ‘빌립’은 전도와 기적을 행하여 그 도시에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가 기록한 오경 즉 다섯권의 책만을 믿었으며 할례를 행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모세’로 전영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나은 중보’로 받아들였읍니다. 이들 ‘사마리아’인 신자들에게 ‘빌립’은 예수께서 명하신 일을 수행하였읍니다.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라.]” (사도 8:1-13; 마태 28:19, 20; 사도 1:8) 그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그들은 예수를 믿는 침례받은 제자들이 되었읍니다.
12. (ㄱ) ‘빌립’은 어떻게 하여 병거를 타고 가는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전도하게 되었으며, ‘빌립’은 그를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주었읍니까? (ㄴ) 그 침례는 그 ‘에디오피아’인이 어떤 길을 취하였음을 알려 주었읍니까?
12 할례받은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 많은 제자를 삼은 후에 ‘빌립’은 하나님의 천사의 인도에 따라 할례받은 ‘유대’교 개종자에게 갔읍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였던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숭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이었읍니다. ‘빌립’이 병거를 보고 다가 갔을 때에 그 ‘에디오피아’인은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읍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가 읽던 곳은 이사야 53장이었읍니다. 그 ‘에디오피아’인은 ‘빌립’에게 ‘이사야’가 누구에 관하여 묘사하였는지를 질문하였읍니다. 그러자, 사도 행전 8:35에 있는 바와 같이,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읍니다. 또한 ‘빌립’은 ‘에디오피아’인에게 물 침례를 설명하였으며, 그는 물있는 곳에 이르자마자 침례를 받겠다고 자청하였읍니다. 물론 ‘빌립’은 그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읍니다. (사도 8:36-39) ‘사마리아’인 신자들과 같이 이 할례 받은 ‘에디오피아’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제공하였읍니다.
이방인들의 개종
13. (ㄱ)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율법의 저주에 대하여 이방인들은 어떻게 ‘유대’인들과는 달랐읍니까? (ㄴ) 언제 그리고 누구로부터 시작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방인들에게 회개를 주기 시작하셨읍니까?
13 ‘예루살렘’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데 대하여 공동 책임이 있던 할례받은 ‘유대’인들과는 달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무죄한 아들을 나무에 단 일에 대하여 회개할 이유가 없었읍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 언약의 저주 아래 있지 않았읍니다. (갈라디아 3:13) 그러나 그들은 죄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려온 죄인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이교인으로 저지른 죄가 많았읍니다. 그에 대하여 그들은 회개하여야 하였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음으로 정죄하셨읍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읍니다. (에베소 2:12) 그들은 일반적으로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러나 기원 36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기 시작하셨읍니다. (사도 11:18) 제일 먼저 회개한 사람은 ‘가이사랴’의 ‘고넬료’였읍니다. 이 도시는 ‘유대’ 도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행정 중심지였읍니다.
14.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전부터 예수에 대해 약간 알고 있었읍니까?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죄 사함을 받는 것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4 이태리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얼마쯤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도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요한’이 그[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이어서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사도 10:37-43.
15. 듣고 있던 그 이방인들이 죄 사함을 받았는지를 무엇으로 알 수 있읍니까? 그리고 ‘베드로’의 말에 따라 그들은 무엇이 되었읍니까?
15 ‘고넬료’와 그와 함께 모인 이방인들은 조용히, 마음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되었으며, 그들은 그의 이름을 통하여 이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선한 양심을 갖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결과에 이르렀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기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사도 10:44-48) 이들은 그리스도의 침례받은 믿는 제자들이 되었읍니다.
16.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하여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투옥되었으며, 거기서 밤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읍니까?
16 이것을 출발점으로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할례받지 않은 다른 이방인들이 개종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기원 50년경에 ‘마게도니아’의 ‘빌립보’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귀신 들린 점장이 소녀를 고쳐 주었을 때에 그와 그의 동료 ‘실라’는 거짓 고발을 당하여 투옥되었읍니다. 밤중에 그들이 소리를 내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큰 지진이 일어나 모든 죄수들의 결박이 기적으로 풀렸읍니다. ‘바울’은 겁에 질린 간수에게 아무도 탈옥하지 아니하였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소리쳤읍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 났읍니까? 기록을 읽어봅시다.
17. ‘바울’과 ‘실라’는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하라고 하였으며, 그 말을 듣고 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17 “간수가 ···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여호와]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 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사도 16:29-34.
18. (ㄱ) 그 간수와 그의 가족은 무슨 집단의 성원이 되었읍니까? (ㄴ) “주 예수를 믿으라”는 명령에 따르면, 구원을 위해 주로 예수께 대한 행동이 요구되었읍니까? 그 다음에 있었던 어떤 일을 고려하면 대답을 얻는데 도움이 됩니까?
18 할례받지 않은 이 ‘빌립보’인 간수와 그의 가족은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침례받은 성원이 되었으며, 두말할 것도 없이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을 받았읍니다. (빌립보 1:1)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간단한 표현 속에 있는 많은 의미를 그들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이 사실과 아울러 또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집에 있던 동료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사실은 한 가지 질문을 일으킵니다. 즉 ‘구원을 얻으려면 주로 누구에 대한 행동이 요구되었는가—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행동인가,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행동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대답을 얻기 위하여 다음의 사실을 고려하면 도움이 됩니다. 즉 ‘바울’과 ‘실라’는 ‘빌빕보’인 간수에게 “구원을 얻”는 방법을 간단히 말한 다음에 그와 그의 가족에게 “주[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으며, 그 간수는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9. ‘바울’의 말에 따르면, 할례받지 않은 이교인들의 종교적, 영적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누구에게 헌신해야 하였읍니까?
19 우리는 이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었으며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에베소 2:12) 그들은 ‘바울’이 기록한 이러한 이방인들에 속하였읍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여러분은 이방 사람이었을 때에 끌리는 대로 말못하는 우상에게 끌려갔었읍니다.” 또한 “여러분이 우상에게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읍니다.]” (고린도 전 12:2; 데살로니가 전 1:9, 새번역) 그들은 그러한 우상 혹은 그러한 우상이 대표한 거짓 신들에게 헌신하였었읍니다. 그들은 특히 어느 신에게 헌신하였는지를 공개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의 몸에 표를 하는 일도 하였을 것입니다. (에스겔 9:4-6 비교; 호세아 9:10) 그러므로 이러한 무지한 무할례 이방인들은 기초부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하여 들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 다음에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그 분의 뜻을 행하기로 그분께 헌신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께 대한 이 헌신이 누구를 통하여 가능한가를 알려줄 것이었읍니다. 그분께 순종하여 그들은 침례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
20, 21. 로마서 10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가까이 있음에 대하여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무슨 말을 ‘바울’은 인용하였읍니까?
20 이러한 절차를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명백히 설명하였읍니다. 5절부터 10절까지를 보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신명기 30:11-14에서 ‘모세’에게 영감을 주어 말하게 하신 것을 적용시켰읍니다. 신명기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2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22. (ㄱ) ‘모압’ 평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어떻게 가까이 그들의 입과 마음에 있게 되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만 하면 되었읍니까? (ㄷ) 이 사실은 그들이 그때에 하나님과 무엇을 맺은 점에 나타났읍니까?
22 영감받은 ‘모세’가 “명령”이라고, 즉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행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부른 점에 유의합시다. ‘시내’ 산으로부터 이 “명령”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알려졌읍니다. 사십년 동안 그들이 이 기록된 율법을 되풀이하여 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었고, 훤히 알고 있어서 외울 수 있었읍니다. 그 율법은 또한 그들의 마음에 심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그 율법의 의미를 깨닫고 인식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남은 것이란 그들이 율법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결심하는 것뿐이었읍니다. 분명히 이렇게 하도록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그 분과 보충적인 언약을 맺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셨읍니다. 이에 관하여 신명기 29:1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23. (ㄱ) 누가 그것의 실체적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며, 어디에서 설명합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의를 위한 마련을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가깝게 두셨으며, 그러나 왜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않았읍니까?
23 그 모든 것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읍니다. 그것은 더 크신 ‘모세’이며 ‘더 나은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어떤 것을 예표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 10장에서 우리에게 실체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의에 이르고 그분에 대하여 선한 양심을 가지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 점을 설명하였읍니다. 이렇게 하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자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서는 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대해 한 믿음을 실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바로 가까이에, 그들 사이에, 그 마련을 두어 그들이 쉽게 혜택을 받게 하여 주셨는데도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읍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믿음 없는 ‘유대’인과는 아주 달라야 합니다.
입으로 고백함
24. (ㄱ) ‘모세’는 율법과 생명을 얻는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의 계명이 가까이 있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ㄷ) 의와 구원에 관하여 마음과 입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24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이러한 요구 조건과 일치하게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 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무저갱, 신세]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세]”—로마 10:5-10.
25. (ㄱ) ‘바울’은 그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가깝게 만들었으며,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특히 어떻게 하셨읍니까? (ㄴ) 그 “말씀”이 대단히 가깝기 때문에 구원을 찾는 자들에 관하여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25 특히, “이방인의 사도”였던 사도 ‘바울’과 그의 동료 선교인들에 의하여,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이방 사람들에게 가까와 졌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 말씀을 그들의 입으로 반복할 수 있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그 말씀을 간직할 수 있었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하나님과 그의 목적에 관하여 증거하심으로 그들에게 이 지식을 전해 주셨읍니다. 그리고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죽은 자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으며 하나님의 목적의 실현성과 현실성에 대한 산 증거가 되셨읍니다. 또한 이로써 그 분은 “주”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의 수석 대행자라는 것이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원하는 “말씀”은 이들 이방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곳에, 그들의 입과 마음에 있을만큼 그들 가까이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만일 영원한 구원을 바란다면 그들이 해야 할 오직 한가지 일이 있었읍니다. 또한 그들이 구원을 위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명령하셨읍니다. ‘모세’가 그 “말씀”을 “내가 오늘날 명한 이 명령”이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명 30:11-14) 구원을 얻으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26, 27. (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물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희랍인들에게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임을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26 그렇습니다. 구원을 위한 모든 조건을 설정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며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셨다는 것을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는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바로 그러한 대답을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6:28, 29) 이것은 비 ‘유대’인 즉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얻게 된 이방인들이 해야 할 유일한 행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때까지 우상에 불과한 거짓 신에게 헌신했었지만 이제 그 거짓 신들로부터 돌아서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에 모인 희랍인 이방인들에게 말한 바와 일치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7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사도 17:30, 31.
‘구원을 위한 공개적 선포’
28. (ㄱ)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읍니까? (ㄴ)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ㄷ) 우리는 어떻게 하여 마음에 그러한 믿음을 기르며, 그렇게 하여 우리는 무엇을 하게되어야 합니까?
28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그의 뜻을 행하려고 그분께 헌신한 것과 일치하게 우리는 “마음에 믿”으라는 명령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애정 혹은 사랑이 마음에서 솟아나며 그의 소유자를 움직일 힘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마음으로 우리는 감사를 느낍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가까이에 두신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면 이 “말씀”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파한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믿음이 필요하였으며, 우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파되는 그 “말씀”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그 “말씀”에 대한 사랑을 배양해야 합니다. 바로 마음으로 우리는 그 “말씀”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길러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우리를 움직여서 즉 자극하여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을 두게 하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 말씀에 입각하여 행동하게 합니다.
29.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에 관하여 믿어야 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주로 누구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까?
29 무엇에 대하여 우리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요구되어 있읍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에 대해서 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것이 단지 “주 예수를 믿”는 것만이 아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도 16:31) 우선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듯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은 여전히 참됩니다. (로마 10:13)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불멸의 생명으로 일으키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로 여호와를 위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바로 이 분에게 우리는 그의 뜻을 행하고자, 그의 명령을 지키고자 헌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로마 10:8, 9.
30. (ㄱ)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행하신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ㄴ)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내용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읍니까?
30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인식이 가득한 우리의 헌신한 마음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음을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 올라가시어 온 인류를 위하여 속죄 희생의 가치를 바칠 수 있게 하셨으며 그렇게 하여 온 인류를 사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희생의 죽음으로 “무저갱”에 내려 가셨지만 여호와의 영 즉 활동력은 “무저갱”에까지 내려 가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올’렸읍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실 수 있었으며, 그 “말씀”에 내용 혹은 요점을 넣어 주실 수 있었고, 그는 그 “말씀” 속에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는 소식을 포함시키실 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바침으로 주로 여호와를 위해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이 일을 그 분의 수석 대행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로마 10:6, 7; 히브리 2:9, 10; 5:8, 9.
31.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누구의 이름을 불러야 하며, 그러나 왜 우리는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고백해야 합니까?
31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로마 10:13; 사도 2:21; 요엘 2:32) 이렇게 하려면 마음의 자극을 받아 입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또한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가 전파하던 믿음의 “말씀”에 대하여 논하면서 이러한 말을 하였읍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는 주이시라는 ‘당신의 입에 있는 말씀’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이르키셨다는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있는 믿음을 실천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 사람이 의를 위하여는 마음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하지만 [2]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로마 10:9, 10, 신세.
32. (ㄱ) 우리의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한다는 이 말이 다른 성서 번역판에는 무엇이라고 표현되었읍니까? (ㄴ) 구원을 위하여 구두로 고백하는 이 일은 언제 있게 됩니까?
32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할 때는 언제입니까? 그 일은 헌신한 신자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기 전에 있을 일이며 또 그래야 합니다. (마태 28:19, 20; 사도 16:31-33; 17:33; 19:1-7) 이 공개적 선포는 「왕국 행간 번역」과 기타 성서 번역판들에 의하면 고백(confession)입니다. (새번역; 개표; 모팻; 예루살렘; 미표) ‘바잉튼’의 번역과 「미국인 역」은 그 말을 “자인”(acknowledgment)이라고 번역하였읍니다. 이러한 고백 혹은 자인을 우리는 이제 헌신한 신자로서 물 침례를 주재하는 그리스도인 전도인에게 혹은 그 앞에서 구두로 합니다. 물론 그 후에도 우리는 우리의 회중 집회에서 이 고백을 계속합니다. (히브리 10:23) 또한 우리의 그리스도인 소망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정부 권세자들이나 사법관 앞에서도 고백합니다. (베드로 전 3:15) 또한 공개적인 호별 방문 전파를 수행할 때와 우리가 발견한 관심자의 가정을 재방문할 때에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필연적으로 침례 전에 시작됩니다. 헌신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침례 전에 단순히 구두로 증거하는 것은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33. 고백이란 무슨 뜻이며,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백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3 물론 고백이란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에게 어떤 일을 선포하는 것, 발표하는 것, 시인하는 것 혹은 자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입의 말로 무엇을 선포하거나 자인하여야 합니까? 물론 “말씀”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만일 당신이 예수는 주이시라는 ‘당신의 입에 있는 말씀’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면] ···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로마 10:9, 신세)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목적과 마련에서 제외할 수 없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구원의 수석 대행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2:10, 신세) 우리는 예수께서 ‘다윗’ 왕의 “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주”이시기도 하다는 것을 구두로 선포하고 고백하고 시인하고 자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 110:1; 사도 2:34-46)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은 “말씀”에 따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러한 선포를 해야 합니다.
34. 고린도 전서 12:2, 3에 의하면, 우리는 무엇의 인도를 받아 예수께서 주이심을 고백하며,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그 고백에 얼마 동안이나 고착합니까?
34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너희[이전 우상 숭배자들]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하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 전 12:2, 3)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지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른 고백, 자인 혹은 선포를 하게합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주라는 것을 선포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살아 있는 주가 되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되신 예수를 그의 오른 편에 앉히시고 다른 모든 창조물보다 높은 “주”가 되게 하셨읍니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바란다면 우리가 물 침례를 받기 전에 행한바에 고착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돌보도록 하나님의 임명을 받으신 주이심과 우리가 그분을 사랑으로 받아들인 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고백하고 자인한 바에 고착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
35.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35 우리의 입으로 예수께서 우리의 주이심을 고백하면 우리는 어떤 의무아래 있게됩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형주에 달려 죽으실 길을 가지 말라고 권유하는 ‘베드로’를 꾸짖으신 후에 이 점을 말씀하셨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 16:24) ‘바잉튼’의 번역판은 이러합니다. “누구라도 나를 따라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십시오.” 「아메리칸 콜레지 사전」에 의하면 “부인하다”의 의미의 일부는 “4. 인정 혹은 자인하기를 거절하다;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다. 거부하다, 거절하다”입니다.
36. (ㄱ) ‘베드로’는 언제 예수를 세번 부인하였으며,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를 인정하였읍니까? (ㄴ)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함으로써 누구에게 속해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까?
36 예수께서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세번 부인하였읍니다. ‘베드로’를 수상히 여긴 사람들이 그를 예수의 동료라고 세번 고발하였을 때 마태 26:74에 의하면,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읍니다. 그와 같이 예수를 부인하여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의 동료 혹은 추종자들로부터 떼어 놓았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베드로’는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떼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는 자신을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들,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자들과 함께 혹은 그들 편에 세운 것입니다. “부정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달리 말한다면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의 지도자이며 선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의 지도자와 선생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예수를 부정함으로써 ‘베드로’는 쟁점의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 독립해 있는, 다른 아무와도 관련이 없는 중립적 위치에 자신을 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정함으로써 다른 어떤 자에게 속해 있음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37.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의 뜻에 따라 이 일을 합니까?
37 예수께서 마태 16:24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형주를 지고 예수를 계속 따르는 것은 단순히 어떤 때에는 자기의 한가지 욕망을 거부하고 또 다른 때에는 자기의 다른 욕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서의 자기 인생의 남은 행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그는 자기를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인생 행로를 배척 하고 예수의 추종자가 되어 예수께서 지신 것과 같은 죽음의 형주를 지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의 지도자이며 결정자임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지도자이며 선생으로 인정하고 자인합니다. 물론 이 단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취하게 됩니다.
38.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예수와 같이 누구의 노예가 됩니까?
38 「신세계역」에는 마태 16:24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읍니다. “누구라도 나를 따라오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의 형주를 지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이 경우에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자기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경우에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양도하고 즉 넘겨주고 우리가 그 사람의 소유라는 것을 자인하고 인정합니다. 단순히 우리의 소유자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주를 지고 예수를 계속 따르려고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소유권을 부정할 때에 누가 우리의 소유자가 됩니까?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을 부인하신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즉 그 분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과 자신은 여호와의 노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인하셨읍니다. 이와 일치 하게, 우리가 예수의 추종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소유권을 부정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여호와께 양도하는 것이며, 넘기는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그리스도 같은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39. (ㄱ) 그러면, 이것은 그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요구합니까? (ㄴ) 그것은 어떻게 상징되며, 무슨 고백을 한 후에야만 그렇게 됩니까?
39 그러면 이것은 이러한 행로를 택하는 우리에게 무슨 행동을 요구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뜻을 행하고자 무조건으로 우리 자신을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그의 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우리의 “주”로 선포하고 고백하고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권세가 있고 우리에게 의무를 부과하실 권세를 가지신 우리의 상전이 되십니다. 물론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이처럼 헌신하는 때는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께로 전향한 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바로 우리의 변화한 인생 행로를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 이르게 합니다. 이 헌신을 우리는 물 침례로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이 뜻을 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분께 헌신하였읍니다. 물 침례를 받기 전에 구원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입으로 공개적 선포 혹은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믿는 바를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65면 삽화]
헌신한 신자들의 ‘구원을 위한 공개적 선포’는 침례 전에 그들이 침례식을 주재하는 전도인의 질문에 구두로 대답할 때에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