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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깨어라!—1979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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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하나님]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서의 또 다른 예로는 “한 사람” ‘아담’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음을 알려 준다. (로마 5:12, 공동번역) (‘아담’ 이전에는 그에게 사망에 이르게 한 인간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아담’이 사망을 “미치게” 한 “모든 사람” 가운데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는 인간이었다. 마찬가지로, 비록 예수께서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만물”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분은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물로 창조된 분이시다. 어떤 문맥에서는 ‘판타’라는 단어가 고린도 전 15:24과 6:18에서 처럼 “다른 모든 것”을 의미한다. (「공동번역」을 보라) 그러므로 「신세계 역」은 이렇게 번역하였다. “그분에 의하여 다른 모든 것이 창조되었읍니다. ··· 그분은 다른 모든 것 이전에 계셨읍니다.”—골로새 1:16, 17.
예수께서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시라는 것은 장자 상속법 즉 처음 난 자가 갖는 권리를 수반한다. 옛날부터 실제 장자는 가정의 가장권을 이어 받고 아버지의 재산 중 두배의 몫을 상속받는 것을 포함한 특별한 권리를 누렸다. (신명 21:15-17) 왕권과 제사직 또한 고대 ‘이스라엘’ 시대의 왕이나 대제사장의 장자가 상속받았었다.—역대 하 21:3을 보라.
만물에 앞에 태어나신 분으로서 예수께서는 창조된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성경은 여러 번 예수를 하나님께 복종하는 입장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고린토 전 11:3, 공동번역)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영감받은 “계시”를 주셨을 때, 자신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승리하는 자를 내 하느님의 성전 기둥으로 삼을 것이며, 그가 다시는 그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의 이름,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로운 이름을 그 이기는 자 위에 새기겠다.” (묵시 3:12, 공동번역) 당신은 이 귀절에서 예수께서 아버지 여호와를 “내 하느님”으로 네번이나 언급하셨음에 유의하였는가?—빌립보 2:5, 6 비교.
예수께서 하나님 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다는 것이 그분의 높은 위치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28:18, 공동번역) 그 아들이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그러한 권세를 ‘주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장자 상속권과 정확히 일치하게도 사도 ‘바울’은 예수에 관하여 이렇게 편지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 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 놓으셨읍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읍니다.”—에페소 1:20-23, 공동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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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양심이 관련될 때깨어라!—1979 |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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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 2
다른 사람의 양심이 관련될 때
성서에는 성공적인 인간 관계를 위한 비할 데 없는 충고가 들어 있다. 두드러진 지침으로는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기록을 들 수 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 2:2-4.
오늘날 이러한 충고를 적용하는 데는 상당한 도전이 따른다. 1970년대를 “‘자아’ 십년간”이라고 일컬어 왔다. 우리는 자애 및 이기적 정신이 편안한 때에 살고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낫게” 여긴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가?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양심에 미치는 영향을 특히 고려함으로써 나타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믿지 않는 사람의 가정에서 베푸는 식사에 초대될 때 다음과 같은 성경 충고에 주의깊이 유의할 것이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라].”—고린도 전 10:27-29.
성서는 동료 신자들을 대하는 그리스도인 행동에 관해서도 유사한 충고를 준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로마 14:20, 21) 분명히, 다른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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