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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참 믿음의 표현인가?깨어라!—1973 |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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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리지 말라’는 따위의 규정말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한번 쓴 다음에는 없어져버릴 것이며 인간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규정은 제멋대로의 예배와 가장된 겸손과 부질없는 금욕주의 따위로 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힘은 없읍니다.”—골로사이 2:20-23.
여기에서 마지막 귀절과 관련하여 「예루살렘 성서」의 각주는 이러하다: “문자[적으로] 이러한 일들은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명예롭지 않다’: 이 말은 그러한 것이 ‘육체’를 정복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전혀 없다는 뜻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것이 아무 가치가 없고 단지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제멋대로의 예배”와 “가장된 겸손”과 “금욕주의”는 사실 아무 가치도 없음에 유의하라. 그러한 일을 하는 일부 사람들이 성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으로 자신들의 경건함에 주의를 이끌려고 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들 모두가 종교적 행위를, 보이는 이로 하여금 흔히 반감을 느끼게 하는 종교 행위를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있지 않는가?
이것은 예수의 충고와 일치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합니다.” (마태오 6:1, 공동 번역) 또한 종교 행위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교만의 증거일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가톨릭’의 「신 아메리칸 성서」 골로새 2:23의 번역이다. “이러한 것은 그들의 일부러 꾸민 경건과 겸손과 육체의 학대로 확실히 지혜를 나타내지만 주된 결과로 그러한 것은 사람의 교만을 충족시킨다.”
우상 숭배가 관련되어 있는가?
특정한 형상이 수많은 성지의 주된 인기물이라는 사실이 또한 주목할 만하다. ‘알퇴팅’에서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작은 ‘마리아’상(높이가 약 68‘센티미터’)이 숭배를 받는다. 이 성지에 있는 ‘마리아’가 수많은 병을 기적으로 고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적절하다. 만일 ‘마리아’ 자신이 이러한 병고치는 일을 하였다면 다른 모든 ‘마리아’상은 왜 그러한 병고치는 일을 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형상 자체에 특별한 능력이 부여되었음을 시사하는가? 이것은 사도 ‘요한’이 “나의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하고 충고한 말과 조화될 수 있는가?—1 요한 5:21, 공동 번역.
중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순례자들은 병 고침을 받으려는 희망에서 이곳 저곳을 자주 방문한다. 그러한 곳 중 한 군데가 ‘프랑스’의 ‘루우데’이다. 이른바 기적들 중 대부분에 대하여 「의학계 뉴스」지는 그러한 것이 “계획적인 속임수이다. 때때로 허무, 명성이나 돈을 벌려는 희망, 혹은 의학계에서 거짓을 탐지할 수 없음을 보이려는 욕망이 이러한 일의 동기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종교적 순례에 대한 비평은 중세와 마찬가지로 1975년에 ‘로마’로 방향을 돌릴 계획에 있는 순례에 대하여도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으로, 순례와 관련된 숭배 행위는 2 고린토 5:7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고 참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말한 것에 반대되지 않는가? (공동 번역) 따라서 과거와 같이 오늘날도 순례는 참 믿음의 표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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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진리인가?깨어라!—1973 |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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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진리인가?
◆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리를 제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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