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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바랄 만한 성서적인 근거깨어라!—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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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산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이사야 65:21-23) 그에 필적하는 상태가 장차 있을 지상 낙원에서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정력과 재능을 그러한 일에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울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가?—전도 2:24.
당신은 낙원을 회복시키는 일을 즐거이 돕고 싶은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것을 그들의 희망으로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성서를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과 생명을 위한 그분의 요구 조건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이러한 보람있는 활동에 참여할 특권을 누리는 데 필수 조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살아서 낙원을 볼 전망에 관하여 더 많이 알도록 그들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
그들은 지상 낙원의 회복에 관한 이러한 격려적인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왕국과 축복에 관하여 이야기하신 그들의 지도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고 있다. 그가 운명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기록된 말씀 중에는 그분 곁에 있는 형주에 달린 행악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누가 23:43, 신세.a
예수의 행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만이 좋은 것을 간직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자 해야 한다. 사실상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장차 있을 지상 낙원에 대한 이러한 위안이 되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알려 줄 의무가 있다. 장례식은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때때로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망으로 잃은 친구나 친척을 위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러한 장례사에 포함된 성경적인 사상 얼마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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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있게 될 낙원으로 위로하는 일깨어라!—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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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있게 될 낙원으로 위로하는 일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기술한 사도 ‘바울’은 부활의 소망에 관하여 보증을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 전 4:13, 18) 장례식에서 연사가 기본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위로를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위로를 줄 수 있는가?
슬픔이란 인간에게 있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성서에는 사랑하는 자들을 잃었을 때에 슬픔을 나타냈던 하나님의 종들의 실례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요셉’이 [돌아가신] 아비의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었다고 알려 준다. (창세 50:1) 또한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가 죽자 “‘모압’ 평지에서 ···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였다. (신명 34:8) 슬픔이 불완전의 표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해시켜 주는 것으로 요한복음 11:35은 완전하신 예수께서 친구 ‘나사로’의 사망과 관련하여 “눈물을 흘리”셨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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