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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파수대—1983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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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 한 당신이 어느 정도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그들은 흔히 알지 못할 것이다.
자기 친구 세명이 자살한 한 소녀는 괴로와하면서 이렇게 질문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읍니까? ···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는데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가 어떻게 그곳에 있을 수 있었겠읍니까?” 자기의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말문을 열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거침없이 쉽게 나오는 것에 당신은 놀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돕고 싶어 한다는 점을 확신하라. 그러면 이들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누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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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돕고 싶어한다파수대—1983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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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돕고 싶어한다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 마음이 약한 자[우울한 영혼, 신세]를 안위하[라.]” (데살로니가 전 5:14) ‘데살로니가’ 회중에 보내는 이와 같은 말로써,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울한 사람들을 지원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중요한 근원이 바로 그리스도인 회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괴로운 감정들로 중압감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인 형제들 가운데서 위로와 도움을 발견할 수 있다.
제자 ‘야고보’는 임명된 그리스도인 장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면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회중]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여호와]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야고보 5:14, 15.
어떤 사람이 장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린다면 어떠한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한 부인은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한다. “나는 속으로 장로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그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가정적으로 심각한 위기의 국면에 직면하여 그는 장로들을 찾아 가기로 하였다. 그는 무엇을 발견하였는가? “장로들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확실히 이해해 주었어요.”
하지만 사도 ‘바울’이 회중 전체가 ‘우울한 영혼들을 안위’하도록 권면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라. 장로들은 돕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울해 있는 사람들은, 함께 있음으로 편안을 느끼는 장성된 사람 누구에게든지 찾아갈 수 있다. 청소년들이라면 아마 자기 부모에게 갈 것이다. 여자들은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인 경험있는 그리스도인 자매들과 문제를 상의하는 것을 더 좋아할지 모른다. (디도 2:3)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기 소침해 있는 사람이 당신에게 와서 도움을 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그런 사람을 돕는 일에서 당신이 솔선한다면 어떠한가? 당신이 기억해야 할 점들이 있다.
위로와 동료감
우울한 사람들의 영성을 속단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은 위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편지하는 가운데 언급한 특성들을 그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 격려가 있다면, 사랑의 위안이 있다면, 영에 참여하는 일이 있다면, 애정이나 동정심이 있다면, 여러분이 같은 정신으로 같은 사랑을 가짐으로써 나의 즐거움을 가득하게 하십시오.” (빌립보 2:1, 2 신세) 우울한 사람에게 격려, 사랑, 위안, 영에 참여하는 일, 애정 및 동정심은 놀라운 치유 효과가 있다.
사도 ‘베드로’는 또 하나의 훌륭한 특성을 부가하였다. 그는 이같이 말했다. “여러분 모두는 같은 정신을 품고 동료감을 나타내고, 형제애와 부드러운 동정심 ··· 을 가지십시오.” (베드로 전 3:8, 신세) “동료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신뢰를 획득하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우울한 영혼들을 돕기 위한 훌륭한 선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우울증
하지만 회중 내의 어떤 사람이 중우울증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 어떠한가? 그가 자신이 아주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고 죄책감, 좌절감 혹은 절망 그리고 어느 누구의 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문제로 괴로와한다고 하자. 우선, 그에게는 의학적인 도움을 받도록 조언이 주어져야 한다. 중우울증에는 흔히 신체적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a 그러나 그가 어떠한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든지 간에 여전히 회중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회중 성원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비평하거나 그에게 ‘정신을 차리라’, ‘태도를 변화시키라’고 말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내를 둔 한 남편은 아내가 때때로 자살하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아내에게 나타내는 이해심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남편은 시인한다.
일부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그들이 한때는 알고 있었으나 아마 지금은 우울증으로 그들의 정신이 혼란해졌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해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라. (고린도 후 1:3) 그에게 여호와는 기꺼이 “널리” 용서하시는 분임을 상기시키라. (이사야 55:7) 여호와의 창조물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이 점과 관련하여 그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유쾌한 경험을 상기시키라. 그가 회중 안에서 즐겨온 행복한 동료 관계와 그가 그의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며 그의 가족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하여 말하라. 설혹 당신이 그의 기분이 얼마나 상해 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그것이 개선될 것임을 알려 준다는 것을 강조하라.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의 감정상의 번민으로 그가 아무리 비논리적일지라도, ‘형제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지고 그의 말에 기꺼이 귀기울이라.
만일 그가 자살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라. 그리고 그가 자살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자살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 문제를 끄집어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이러한 식으로 말하고자 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기분이 지금 매우 상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쁠지 모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사람들이 당신처럼 기분이 상해 있을 때는 종종 모든 것을 청산해 버리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요. 당신도 그와 같이 생각해 본 적이 있읍니까?” 만일 그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말은 그가 전체 문제를 속시원히 털어놓게 하여 그러한 생각이 초래하는 죄책감으로부터 그가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장로의 한 사람이기도 한 어느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나는 계산기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밧데리’가 소모되면 무슨 수자를 눌러도 신빙성 있는 대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중우울증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그의 ‘밧데리’가 잠시 소모된 상태라고 말해 줍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어 괴이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번민 상태에 있을 동안만 그러합니다. 문제가 사라지면 상태가 개선될 것입니다.”
이 동일한 의사는 다음과 같이 부언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하에 있을 때 문제의 관건이 항상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그들의 감정을 공감해 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장로들은 인생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청하여 함께 앉아 그들과 이야기하게 하거나 단지 듣기만 하게 할 수도 있읍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몸소 중우울증으로 괴로움을 당한 일이 있는 연로한 그리스도인 자매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 왔읍니다. 그 자매는 그저 앉아서 괴로와하는 사람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당신의 기분을 나는 알아요’ 하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극복할 수 있다
사실 감정적인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굉장한 노력이 들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것은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이는 일이다. 그러나 자살이 해결책은 아니다. 한 여자는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 그는 먹고 싶지도 않았고, 잠을 잘 수도 없었으며, 맥이 빠지고 짜증스럽고 불안하였으며 죽고만 싶었다. 이제 그는 이렇게 기술한다. “용기를 내십시오. 아무리 장기간 고통을 받아왔을지라도, 그리고 문제가 어떠한 것이든지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으며 또 도와주실 것입니다. 내가 바로 그에 대한 증거입니다.”—빌립보 4:13.
우울한 영혼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이 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본받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 후 2:16, 17.
[각주]
a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알려면, 본지의 자매지 「깰 때이다」(1981년 12월 15일호 및 1982년 2월 1일호) 기사 “우울증을 격퇴할 수 있는 방법” 및 “중우울증 격퇴—전문적 치료법”을 참조하라. 우울한 자들을 돕는 방법에 대한 더 많은 제안을 알려면,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시오”란 제목의 기사(파수대 1982년 9월 1일호) 및 “곤핍한 자를 격려하도록 교육받은 혀”란 제목의 기사(파수대 1982년 9월 15일호)를 참조하라.
[10면 네모]
당신이 아는 사람 가운데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일 그가 심히 우울해 있거나 다음과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생각한다.
● 삶, 가족 및 친구들에 대한 관심의 상실.
● 잠을 못이룬다.
● 식욕이 없다.
● 성욕의 감퇴.
● 극도로 흥분하다가도 갑자기 조용해진다.
● 자기의 신변을 정리하며 자기의 생활 방식을 변경하거나 자신을 경시한다.
● 친척이나 친구가 사망하거나 자살했을 때 우울해진다.
● 신체적인 중병을 앓고 있다.
● 실직하거나 자기 가족과 분리되어 있다.
「메디컬 트리뷴」지에 게재된 일람표에 근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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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을 금치 못한 한 이주자파수대—1983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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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을 금치 못한 한 이주자
소련 정부에 동조하지 않는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는 소련 형무소에서 12년간 복역한 후에, 1976년에 영국으로 이민을 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에 정착했다. 그의 저서 「자유를 위해 겪은 고통」(Cette Lancinante Douleur De La Liberté)에서 발췌해서 ‘캐나다’판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 게재된 한 발췌문에서는 한 소련인이 서구 사회에서 겪은 몇가지 놀라움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이같이 쓰고 있다. “나는 어느 날 저녁 ‘런던’에서 ‘여호와의 증인 ···’이라고 써있는 한 간판이 어느 건물에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멍하니 바라보면서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무엇 때문에 그는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가?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소련에서는 살아있는 ‘증인’들을 단지 감옥이나 집단 수용소에서나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건물의 간판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 당신이 ‘코사 노스트라’ 주식회사, ‘마피아’ 참모 본부라고 쓴 간판이 붙은 한 건물을 마주치게 되었다고 잠간 상상해 보라. [소련]에서는 서구 사회에서 ‘마피아’단이 쫓기고 있는 것 만큼이나 ‘증인’들이 격렬히 쫓기고 있다.”
“정말 아무나 들어가서 그들과 차 한잔을 함께 할 수 있읍니까?” 하고 ‘부코프스키’는 물었다. 물론 그는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차를 위해서가 아니라 성서 교육을 위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이라고 부르는 집회 장소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왕국만이 인류를 위한 확실한 희망임을 이해하도록 활동적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는 투옥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고 있다. (마태 24:14; 28:19, 20)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추종자들이 그러한 학대를 받을 것을 다음과 같이 예언하신 바 있다.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 옥에 넘겨주[리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부언하셨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누가 21: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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