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을 경계하라!
1, 2. 종교에 대하여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름지기 예수의 무슨 말씀을 고려해야 합니까?
당신은 성서 연구생의 방문을 받았을 때에, ‘나는 종교란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토론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혼란스럽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고 말해본 적이 있읍니까? 당신은 자기만족에 빠져 있기를 더 좋아 합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 시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3-5. 근거없는 사상으로 말미암은 자기만족에 대하여 성서와 다른 사실들은 무엇을 알려줍니까?
3 물론, 정신적 평화를 가진 자기만족은 좋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근거없는 희망이나 사상에 의지하는 자기만족은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읍니다.
4 예를 들어 ‘라디오’에서, 폭풍우가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피난하라고 경고하고 있는데도, 자기만족의 태도로 방안에 앉아 있다면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자기만족에 빠져 경고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성서 잠언의 말이 합당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자기만족, 신영성]은 자기를 멸망시키[느니라].”—잠언 1:32.
5 최근 홍수를 만난 어떤 지역의 주민들처럼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읍니다. “1946년 그 유명한 ‘백년만의 대홍수’ 후에 건설된 제방과 기타 홍수 조절 설비가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자기만족에 빠져 있던 일반 대중은 그 보다 더욱 심한 홍수가 올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하였다.”
6. 홍수, 폭풍 등에 관한 경고를 듣고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것보다 무엇이 더욱 어리석습니까?
6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경고, 특히 그 경고가 여러 해에 걸쳐서 주어졌고, 또 사실을 공정하게 검토한 결과 그 경고가 이유있음이 증명된 그러한 경고라면, 어떻겠읍니까? 그렇다면, 자기만족이 더욱 어리석지 않겠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의 붕괴는 가까왔는가?
7-10. 그리스도교국 교회들의 어떠한 경력이 자기만족의 태도와 그 안에서의 안전감을 버려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줍니까?
7 그러한 경고가 있읍니다. 그 경고는 그리스도교국 종교들과, 이러한 종교와 얽혀 있는 사회적 요소가 함께 붕괴하리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사실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경고가 근거가 있으며, 그러한 교회제도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만족의 태도를 버릴 필요가 있읍니까?
8 그러면, 교회들의 경력을 고려해 보십시오. 그들은 참으로 사람들의 도덕 표준을 높였읍니까? 아니 자기 교인들의 도덕 표준이라도 높였읍니까? 오히려 그들은 세상과 동조하였으며, 상서 표준을 버리고, 그들을 따르는 것이 세상의 다른 조직을 따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까지 자기들의 표준을 낮추지 않았읍니까? 교회들은 자기 교인들을 좀더 다르게 좀더 단정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만들 수 있었읍니까?
9 정치, 국가적 분열, 전쟁등에 관하여는 어떠합니까?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사람을 의지하는 것의 위험성을, 그것의 절망성을 경고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의 다스림을 후원하였고 국가주의를 조장하였읍니다. 그들이 교인들에게 정치적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경우까지도 있었읍니다. 그들은 살륙 전쟁에서 민간인까지를 포함하여 대량 살륙을 촉구 및 권장하였읍니다.
10 결과적으로, 소위 그리스도교 나라라고 하는 곳에서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겠읍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리스도교국은 무너질 수 없으며, 멸절될 수 없다고 믿어야 하겠읍니까?
자기만족의 위험성이 비유되다
11-13.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5년 전인 기원전 612년에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태도와 입장은 어떠하였읍니까?
11 자기만족에 빠져 그리스도교국에 재난이 임하리라는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만족의 정신을 버리도록 해주는 성서적인 비유를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2 오늘날 특히 서방 세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비유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강력하고 상징적으로 정확합니다.
13 이 비유는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5년전에 ‘에스겔’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에스겔’은 환상중에 스물 다섯명의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들을 보았읍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방백들이었읍니다. 그들은 그 도시의 저명한 인물들이었으며, 왕의 고문들이었는데, ‘예루살렘’에게 나쁜 조언을 해 주었읍니다. 그들은 예언자 ‘에스겔’과 ‘예레미야’가 발한 경고에 반대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틀림없이 ‘시드기야’ 왕에게 ‘바벨론’에게 반역하고,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로 맺은 언약을 파기하도록 권장하였을 것입니다. (역대 하 36:11-13; 열왕 하 24:18부터 25:1) 그들은 애굽의 군대, ‘육체의 병기’가 자기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기대하였읍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본(기원전 612년) 후 3년도 못되어 ‘시드기야’ 왕은 그들의 승인을 받아 반역을 일으켰읍니다.
14, 15.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에스겔’에게 주신 비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4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서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보고하였읍니다.
15 “때에 주의 신[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여호와의 전 동문 곧 동향한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그 문에 이십 오인이 있는데 내가 그 중에서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를 보았으니 그들은 백성의 방백이라. 그[여호와]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은 불의를 품고 이 성중에서 악한 꾀를 베푸는 자니라. 그들의 말이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즉[가깝지 않은가?, 신세]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 하나니[라.]”—에스겔 11:1-3.
16. 비유의 의미를 설명하십시오.
16 이들 정부의 방백들과 ‘시드기야’ 왕의 고문들은 튼튼하게 방비되어 있는 ‘예루살렘’ 안에서 자기만족을 느꼈읍니다. 그 도시의 성벽은 가마솥의 가장자리 같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읍니다. 금속 가마 속에서 요리되고 있는 고기처럼 그들은 거기서 쫓겨나거나 몰려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였읍니다. 그 고문관들은 애굽 왕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에 저항한다면 거기서 항구적으로 거주할 것으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기서 장기적으로 거주할 계획을 가지고 집을 지을 때라고 생각하였읍니다.
17, 18. ‘에스겔’은 ‘예루살렘’ 방백들에게 무슨 경고를 하였읍니까?
17 이렇게 자기만족에 빠지고 과신한 사람들과 나머지 ‘예루살렘’ 사람들은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대단히 예리하고 강력한 예언을 하도록 명령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8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너희가 이 성읍에서 많이 살륙하여 그 시체로 거리에 채웠도다. 그러므로 나 [주권자]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읍 중에서 너희가 살륙한 시체는 그 고기요 이 성읍은 그 가마려니와 너희는 그 가운데서 끌려 나오리라.”—에스겔 11:5-7.
19. 방백들이 ‘가마 속의 고기’처럼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남아있게 될 것이었으며, 방백들은 어떻게 될 것이었읍니까?
19 그 사람들은 심지어 그 도시 내에서 ‘바벨론’에 계속 복종하기를 바랐던 사람들까지도 죽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자기들이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그 방백들이 ‘예루살렘’ 안에 계속 남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거기에 계속 남게 될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지나치게 자신을 가졌던 방백들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자기 집에서 끌려 나올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의 칼에 너머지기 전에 자기 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할 것이었읍니다. ‘에스겔’은 그 방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0-22. (ㄱ) 여호와께서 가져오실 “칼”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휘두를 “타국인”은 누구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방백들을 어떻게 “‘이스라엘’ 변경에서” 심판하셨읍니까?
20 “나 [주권자]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칼을 두려워하니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고 너희를 그 성읍 가운데서 끌어내어 타국인의 손에 붙여 너희에게 벌을 내리리니 너희가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변경에서 너희를 국문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에스겔 11:8-12.
21 물론, 이 말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실제 심판을 집행하실 분임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실제 죽이는 일을 위하여는 “타국인”인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있는 “칼”을 사용하실 것이었읍니다. “칼”을 살아남은 사람들도 상징적 “가마”인 ‘예루살렘’ 성벽 안에서 안전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밖으로 끌려 나와 “‘이스라엘’ 변경에서” 벌을 받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었었읍니다. ‘다윗’ 왕이 정복하였던 땅의 북방 곧 ‘하맛’쪽에 있는 ‘립나’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 났던 것입니다.
22 “시위대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칠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명이라. 시위대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예레미야 52:24-27.
여호와는 언약 파기자들에 대하여 자기만족을 하시지 않으신다
23. 여호와께서는 언약 파기자들에 대하여 자기만족을 하시지 않음을 어떻게 보여 주셨읍니까?
23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언약을 지키시는 분임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는 일단 맺은 계약에 대하여 자기만족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조항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그분은 자기들의 계약을 준수하지 않은 자들과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하고, 준수해도 별 것이 없으며 자기들은 안전하다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묵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자기만족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너희를 국문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너희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느니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읍니다.—에스겔 11:11, 12.
24. (ㄱ) 그리스도교국은 자기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방백들과 거짓 고문들처럼 어떤 행동을 하였읍니까?
24 현대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천여 개 언어로 수억부의 성서를 배부하였읍니다. 이러한 성서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또는 야훼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며, 자기들이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레미야 31:31-34; 누가 22:20; 디모데 전 2:5, 6)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였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범하였읍니다. 피흘린 죄를 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교인들 사이의 부도덕을 용납하였으며, 하나님은 죽었고 하나님이 인간에 관심이 없고 역사에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자기의 새 언약을 잊어 버렸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경고를 해 주면 그들은 그것을 무시해 버리거나 비웃기까지 합니다. (베드로 후 3:3, 4) ‘유다’ ‘시드기야’ 왕의 고문들처럼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정치, 상업 제도에 대해 좋은 앞날을 예언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육체의 병기’에 의지하도록 말하고 있으며, 사실상 교인들과 다른 사람들을 자기만족에 빠져 있도록 만들고 있읍니다.—예레미야 6:14.
25.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방백들이 느꼈던 바와 같이 어떻게 느끼고 있읍니까?
25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예루살렘’과 같이 주위를 두르고 있는 성벽은 없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자들과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방백들과 같이 자기네가 쇠 가마 속의 고기처럼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성벽”은 자기네가 의지하고 있는 것 바로 국가들의 군사력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사람의 다스림을 옹호합니다. 특히 국제 연합과 같은 세계 기구를 통한 사람의 다스림을 옹호합니다. 사실 미국 그리스도교회 연방 협의회는 국제 연합의 전신인 국제 연맹을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불렀읍니다.
26, 27. ‘에스겔’이 환상을 보고 있는 동안 다음에 무슨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읍니까?
26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에 모독을 돌린 그리스도교국의 행위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가들 곧 자기네가 이끄는 나라들이 그리스도교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뒤흔들어 놓으실 것입니까? 그들은 자기만족에 빠진 태도에서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까? ‘에스겔’의 경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 보십시오.
27 “이에 내가 예언할 때에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기로 내가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권자]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니라.”—에스겔 11:13.
28. ‘에스겔’은 환상 중에 ‘블라댜’의 죽음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28 환상 가운데서, “백성의 방백” 스물 다섯명에게 ‘에스겔’이 예언을 하고 그들에게 통고를 한 후에 무엇이 방백 ‘블라댜’를 죽어 넘어지게 하였읍니까? 예언자 ‘에스겔’이 두려워서 부르짖은 말로 보건대 그는 그것을 여호와로부터의 직접적인 심판 집행으로 간주하였읍니다. 그는 나머지 스물네 방백들의 죽음이 임박하였다는 징조로 생각한 것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 모두의 멸절이 임박하였다는 징조로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 모두를 멸절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리에 대해 도전하지는 않았읍니다.
29.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해 하신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에 대해 무슨 질문을 해볼 만합니까?
29 과거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범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물질주의적으로 세속적인 세력을 의지하고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던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셨던가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국과 그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보시겠읍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계속하여,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도록, 자기들이 연합해 있다고 주장하는 새 언약의 법을 무시하도록, 현재 공개적으로 반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경고를 비웃도록 놔두실 것입니까?
30.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30 자기만족에 빠져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큰 환난’이 임박하였다는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졸립고 안일한 상태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에 일치하게 이 세상에 대한 다가오는 위기에서 그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대답을 요하는 질문들
31, 32. ‘에스겔’의 이 예언을 살펴보면, 무슨 두려움이 나올 만하며, 어떤 사람들은 무슨 질문을 할 것입니까?
31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하였을 때에, ‘에스겔’이 여호와의 언약 백성의 멸망을 두려워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국과 참 그리스도교를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는 종교인들도 비슷하게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교국의 태도와 그리스도교국의 실패는 그리스도교의 실패를 의미합니까?
32 이러한 생각을 해보고서 어떤 사람은 아마 두려워서, ‘전체 사물의 제도에 대한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여호와께서 모든 그리스도교국과 그의 세속적인 연합자들을 멸절하신다면, 참 그리스도교도 전부 멸망될 것인가?’ 하고 질문할 것입니다.
33. 위선적 거짓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참 숭배까지도 멸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읍니까?
33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성서의 그리스도교를 증오하는 공산주의자들과 기타 과격 분자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위선적인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순수한 종교” 곧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참다운 그리스도인 숭배까지도 일소해 버릴려고 할 것입니다.—야고보 1:27, 흠정.
34. 무슨 질문에 대해 답을 알아볼 필요가 있으며, 진실한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입니까?
34 이러한 종교심없는 과격파들은 지상에서 그리스도교가 일소되는 것을 보는 만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까? 아니면, 위선적인 거짓 종교와 참 그리스도교 사이의 분명한 한계선이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을 것입니까? 그리스도교국을 멸하는 데 세속적인 나라들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집행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예언자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음에 들은 바를 계속 보아야겠읍니다. 이 점은 본 간행물 다음 호에서 논의될 것입니다. 그 동안 진실한 사람들은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고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생존 방법을 알아 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