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 후 6:10.
1. 돈은 어떤 면으로 필요를 충족시켜 줍니까?
확실히 돈은 일상생활에 필수 불가결합니다. 돈이 없이 현 사물의 제도에서 어떻게 살아가겠읍니까? 생활 필수품들을 어떻게 구입하겠읍니까? 지구상 많은 지방에서는 돈으로 병원 치료비, 교통, 전기, 연료, 수도물 등 인간의 유익한 것들을 살 수 있읍니다. 그런데 돈이 없다면 자신과 가족의 식품과 의복을 어떻게 마련하겠읍니까? 거처할 장소를 어떻게 마련하고 그것을 유지하겠읍니까? 전도서 10:19에서는 그 점을 현명하게 표현하였읍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응용되느니라.”
2.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러므로, 현 사물의 제도가 존속하는 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돈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읍니다. 특히 왕국 봉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돈의 사용가치가 크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돈(재화, 물질적 재산)을 제 위치에 두도록, 즉 그것이 하나의 도구, 종임을 기억하도록, 자제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 즉 ‘마음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의미를 생각할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3. (ㄱ) ‘바울’은 재물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가지도록 도움을 줍니까? (ㄴ) 그는 어디에 마음을 두었읍니까?
3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히브리’인이었고 ‘유대’교에 있어서는 ‘바리새’파(돈을 사랑하기로 유명하였음)였기 때문에, 자기의 과거 경험을 통하여 올바른 영적 균형을 유지하도록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었읍니다. (빌립보 3:5; 누가 16:14) 그는 학식있는 ‘바리새’인 ‘가말리엘’에게서 교육을 받아 능력과 지식이 있었으므로 물질적 재산을 축적하기로 하였다면 틀림없이 크게 성공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5:34; 22:3) 그러나 ‘바울’은 참된 재산이 어디 있는가를 나타내었읍니다. 그는 전 시간 전파 활동에 25년 이상을 보낸 다음, 그리고 그 때문에 감옥에도 갇힌 다음, 재물을 많이 모을 수도 있는 생활을 포기한 결심 곧 확신에 대하여 이렇게 썼읍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바울’은 자기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그리고 자기 생애에서 무엇이 참으로 가치있는 것인지를 나타내었읍니다. (빌립보 3:8-14; 히브리 6:10-12) 재물에 대한 그의 태도가 건전하였기 때문에 그는 유익한 견해를 유지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악영향을 받은 사실을 관찰하였읍니다.—디모데 후 4:10.
이기적 욕망의 올무
4. 디모데는 무슨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았읍니까?
4 ‘바울’은 청년 ‘디모데’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뜻에서 ‘디모데’가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있을 때에 그에게 편지를 보내었읍니다. 그 당시 ‘에베소’는 매우 풍요한 상업 도시였읍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을 기르는 것이 위험함과 그의 해로운 결과를 경계하면서 이렇게 주의를 주었읍니다. “부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 전 6:9, 10) 당신은 이 충고를 깊이 인식합니까? 당신은 그것을 따릅니까? 당신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서 이 점이 사실임을 보았읍니까?
5. (ㄱ) 재물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올무”가 될 수 있읍니까? (ㄴ) 왜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읍니까?
5 돈에 대한 당신의 관심이 생활필수품을 구입하는 것으로부터 부자가 되고자 하는, 혹은 필요 이상의 물건을 얻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으로 변한다면, 돈은 당신의 도구, 당신의 종의 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주인이 됩니다! 이제 그것은 “올무”가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 6:24) 성서는 재물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당신이 재물의 노예가 되는 것을 정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물질적 이득에 대한 욕망이 매우 강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읍니다. (마태 22:37)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말한다” 즉 “돈이면 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의 노예가 되면 돈은 당신의 생각까지도 좌우합니다!
6. (ㄱ) 돈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해를 미칠 수 있읍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봅니까?
6 돈(재물)에 대한 이 갈망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그리스도인 특성도 삼켜버릴 수 있읍니다. 그것은 사람을 짐승처럼 타락시킬 수 있읍니다. 그것은 공의, 진리, 정직, 관대함, 자비 등을 잊게 할 수 있읍니다. (신명 16:19, 20; 출애굽 23:8) 물질적 부에 대한 강한 욕망은 쉽게 세상의 부정직한 사업 습관에 빠져들게 합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언 28:20)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난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 어찌 내가 돈에 대한 사랑을 기를 수 있겠는가? 아무튼 돈은 종이에 불과하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구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기울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주인이 되고 있읍니까? ‘데이빗 배즐론’은 그의 저서 「종이 경제」에서 솔직하게 피력하였읍니다. “돈은 꿈이다. 돈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꿈이 보이지 않는 ‘잉크’로 그려 있는 종이 조각이다. ··· 거대한 미국의 아귀다툼 속에서 철저한 패배자가 아닌 우리 대부분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어느 것보다도 돈 자체를 더 사랑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열광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관하여 ‘바울’은 예언적으로 디모데 후서 3:1, 2에서 지적하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 돈을 사랑하”리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고 재물에 대한 한없는 욕망을 경계하는 것이 실로 중요합니다!
7. 재물을 위한 고생은 흔히 어떤 결과를 낳았읍니까?
7 재물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위한 고생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애와 고민과 불행과 실망과 유혈을 초래하였읍니다. 균형을 잃고 탐심을 기른 사람들은 가련합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며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 되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로마 15:4; 고린도 전 10:11.
“재리의 유혹”
8. (ㄱ) ‘아간’은 무슨 마음 상태를 나타내었읍니까? (ㄴ) 이로부터 우리는 무슨 교훈을 받습니까?
8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어 그 백성이 약속의 땅을 점령하려 하던 때를 기억해 봅시다. ‘여리고’ 도시는 정복의 첫 열매로서 여호와께 속하여 있으므로 전부 멸하라는 지시를 ‘이스라엘’ 백성은 받았읍니다. 보통은 도시를 점령할 때에 약탈을 하지만 그 곳에서는 약탈을 하지 말고 불로 사르라고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셨읍니다. 은과 금은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게 되어 있었읍니다. (여호수아 6:17-19) 그러나 ‘유다’ 지파의 ‘아간’은 마음에 탐심을 품게 되었읍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읍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여호수아 7:21) 재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간’은 불충하고 부정직하게 되었으며,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이 그 다음에 ‘아이’라는 도시를 점령하려 하였을 때에, 범죄자인 ‘아간’이 폭로되기 전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부터 영을 거두어 버리셨읍니다. 그가 폭로되자 ‘아간’과 그의 가족과 그의 전체 가축을 돌로 쳐 죽이고 불로 살랐읍니다. 썩어질 보물을 위하여 실로 큰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여호수아 7:1-26.
9. (ㄱ) ‘게하시’는 ‘돈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무엇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생명을 상실하였읍니까?
9 또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생각해 봅시다. ‘엘리사’가 ‘아람’(‘시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준 다음에 ‘나아만’은 감사의 표현으로 ‘엘리사’에게 선물을 주고자 하였읍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절하였읍니다. 하지만 ‘게하시’는 재물을 사랑하였읍니다. 그는 기적을 개인적 이득을 위하여 이용하려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아만’과 ‘엘리사’에게 거짓말을 꾸며댔읍니다.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열왕 하 5:20-27) 또한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읍니다. 그들은 자기네 토지를 판 값의 일부를 은밀히 감추었다가 그 결과 생명을 잃었읍니다.—사도 5:1-10.
10. 탐욕적인 마음은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행동하게 할 수 있읍니까?
10 그 다음에 예수의 사도라는 놀라운 특권을 가졌던 사람 ‘가룟 유다’의 예가 있읍니다. 틀림없이 처음에는 충실하게 신뢰할 만하였기 때문에 그는 예수와 열두 사도를 위한 공동 재정을 관리하였읍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탐심을 품게 되어 도둑질을 하게 되었읍니다. (요한 12:6) 그의 탐욕적인 마음은 단지 은 30개를 위하여 자기 주인을 배반하게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어떤 결과를 당하였읍니까? 예수께서 정죄되시는 것을 보고 그는 나가서 “목메어” 죽었읍니다. (마태 27:3-5)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그러한 위험성이 있읍니다!
11. 재물은 어떤 면으로 속임이 됩니까? 설명하십시오.
11 성서는 “재리의 유혹”에 대해 말합니다. (마태 13:22) 이 귀절의 “유혹”을 「신세계역」에서는 ‘속이는 힘’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속임이 되는 것은 재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것의 한계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열렬히 추구하는 재물에서 자기가 갈구하는 만족을 결코 얻지 못하기 때문에 속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작은 재산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많은 재산으로는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더 많이, 더 많이, 더 많이 벌고자 허덕이며 결코 만족을 모릅니다. 흥미있는 것은 거기에 더욱 몰두할수록 이 욕망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가 ‘벤자민 프랑클린’은 한 때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하였읍니다. “돈은 아직껏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앞으로도 못할 것이다. 돈의 본질 가운데는 행복을 만들어낼 만한 아무 것도 없다.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원한다. 그것은 공백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공백을 만든다. 만일 그것이 한가지 욕구를 만족시키면, 다른 면으로 두배, 세배의 욕망을 만들어낸다. 이 말은 현자의 참된 잠언으로서 믿을 만하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리라.’”—잠언 15:16.
12. 재물의 한계성을 이해하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견해를 유지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2 재물의 한계성을 이해한다면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를 물질적 재산은 이루어 주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의 생명은 그의 물질적 재산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누가 12:15-21)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에 돈이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읍니까? 돈으로 죽은 사람을 ‘스올’ 즉 무덤으로부터 돌아오게 할 수 있읍니까? 청춘이 지나가고 노쇠 과정에 들어섰을 때에 증권이나 채권이 주름살을 없애고 다시 젊고 강하게 할 수 있읍니까? 자신의 건강이 나빠진다면 은행에 돈이 가득 들어 있다고 해서 무슨 행복이 있겠읍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났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돈이 그로 하여금 부모의 얼굴에서 사랑의 표현을 보게 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일몰 광경이나 강아지들의 재롱을 보게할 수 있읍니까? 농아로 태어났다면, 아름다운 교향악이나 바다의 소리, 아니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을 산더미 같은 황금으로 대신할 수 있겠읍니까? 물질적 보화의 능력은 심히 한정되어 있읍니다!
13. 잠언 30:8, 9은 무슨 견해를 알려 줍니까?
13 여호와의 승인과 축복을 얻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 않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읍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언 30:8, 9) 만일 우리가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올바른 견해를 갖지 않는다면, 세상의 재산을 적게 가지고 있든지 많이 가지고 있든지 위험할 수 있읍니다.
14. (ㄱ) 세상의 재물에 있어서 가난한 일부 사람들은 어떤 견해를 갖습니까? (ㄴ) 이러한 논리가 올바릅니까?
14 물질적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물에 대해 매우 강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는 아마 자기가 갈망하는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나, 다른 방법으로 부정직하게 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의 소유물을 선망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전부 바치는 것이 완전히 정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마, 오늘날 많은 사람들처럼, 그는 세상이 자기를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견해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이 사람도 다른 나라에 사는 다른 사람에 보기에는 비교적 부유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예레미야 9:23) 여기서는, 어떤 사람이 지혜가 있든지 용맹이 있든지 또는 부하든지 올바른 태도가 중요함을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람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고린도 전 1:31.
15. (ㄱ) 재산을 많이 가지는 것이 나쁘지 않음을 바울은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그러나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떤 위험성이 있읍니까?
15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재물을 풍부히 가지는 것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부유하다는 것을 알고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훈할 때에, 그 부유한 형제들로 하여금 재산을 버려 가난하게 살도록 하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는 재물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지라고 권고하였읍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 전 6:17-19) ‘바울’은 너무 많이 소유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읍니다. 재물에 희망을 걸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재물은 영적인 것에서 정신을 빼앗아갈 수 있읍니다. 재물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일에 노예가 될 수 있읍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먹고 입는 분량에는 한계가 있읍니다. 우리가 얼마를 소유하고 있든 우리는 만족해야 하며, 그것을 왕국 관심사를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해야 하며, “참된 생명을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참된 재산을 추구함
16. 물질적 재산에 관하여 장래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6 그러면, 우리는 물질적인 것을 어느 정도 염려해야 합니까? ‘바울’은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디모데 전 6:7, 8)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에 관하여 교훈하시면서,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읍니다. (누가 11:3) 양식을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셨읍니다. 그 날에 필요한 것만 염려하고 장래에 무엇을 갖게 될 것인가를 문제삼아서는 안됩니다. 당신에게 결코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를 때를 위하여 재물을 쌓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나가버리는 세상에 보화를 쌓을 이유가 무엇입니까?—요한 1서 2:15-17.
17, 18. (ㄱ) 우리는 염려를 어떻게 경계합니까? (ㄴ) 예수의 비유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17 만일 당신이 생활에서 하나님의 왕국 관심사를 첫째로 둔다면 여호와께서는 물질적 필수품을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적절한 견해를 밝히셨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 6:25) 예수께서는 중요한 것, 걱정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 즉 “목숨”, 영혼을 강조하셨읍니다. 그는 또한, 여호와께서 새들을 어떻게 먹이시는가 보라고 하셨으며, “들에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염려의 기본 바탕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 6:26-33) 당신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까?
18 이 말은, 가만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음식과 의복을 주실 것을 기다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의 비유는 새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찾아내는가를 말하고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그렇게 할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 4:13) 여기서 강조된 것은 물질적인 것을 과도히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를 보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한없는 축복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재물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비교할 수 없는 재산을 받게 됩니다.—로마 11:33.
19. 영적 재산은 왜 물질적인 것과 비교할 수 없읍니까?
19 이러한 재산의 가치가 월등함이 잠언 3:13-18에 잘 설명되어 있읍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이러한 재산으로부터 참된 평화와 행복이 오며, 사실상, 우리의 미래의 생명 자체가 나오게 됩니다!
20. (ㄱ) 물질적 재산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무슨 본을 세우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무엇을 주셨읍니까?
20 당신은 이러한 보물을 인식합니까? 예수께서는 인식하셨읍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4:34; 6:38) 그의 생애에서 기타 모든 것은 둘째 자리를 차지하였읍니다. 그분은 참된 재산을 올바로 평가하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는데도 지상에 계시던 때에 물질적 재산을 많이 가지고 계셨다는 기록이 없읍니다. 그와는 반대였읍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누가 9:58) 그러나 그는 가난하면서도 부유하셨읍니다. 그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그분이 행복하고 평화롭고 만족스러웠음을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은 세상의 재물은 거의 없었지만 전 인류를 대속할 수 있었으며, 최대의 재산 곧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전망을 주셨읍니다. 그 외에 다른 영적 재산도 그들에게 돌아갔읍니다.—고린도 후 8:9; 로마 8:14, 19; 야고보 2:5; 골로새 1:27; 2:2, 3.
21. (ㄱ) 예수의 사도들은 천적 보물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우리는 무슨 질문들을 고려해 볼 수 있읍니까?
21 사도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읍니다. 그들도 하늘의 보물을 첫째로 둠으로써 올바른 견해를 유지하였읍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어부였는데 예수의 부름을 받고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읍니다. (마태 4:20) ‘요한’과 ‘야고보’도 비슷하게 호응하였읍니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 4:22)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깊이 인식하였읍니다! 만일 당신이 그 당시 거기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였겠읍니까? 당신은 즉시 그물을 버렸겠읍니까? 아니면, 당신은 고기잡이 사업이 이윤이 많기 때문에 재정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그 일을 좀더 계속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일을 주저하였겠읍니까? 오늘날 우리는 참다운 보물이 있는 곳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읍니다! 당신은 현재 이러한 영적 보물이 당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생활로 입증하고 있읍니까? (마태 13:44-46) 당신은 영적 보물에 대해 그리고 여호와의 은총과 축복을 얻는 일에 대해 인식이 자라가고 있읍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조직을 통하여 우리에게 흘러오는 모든 영적 유익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것들로부터 온전한 유익을 받고 있읍니까?
“눈”의 초점을 맞춤
22. (ㄱ) 우리의 눈은 어떻게 하여 “몸의 등불”입니까? 설명하십시오. (ㄴ) 우리 ‘마음의 눈’을 초점에 맞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2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순전하면; 한 방향이면, 초점을 맞추면, 관대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악하면, 이기적이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태 6:22, 23) 이 충고는 실로 적절합니다! 어두운 곳에 빛이 있으면 우리가 넘어지거나 부딪혀 몸을 다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인식하지 않습니까? 올바로 보기 위해 우리의 눈은 순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한 방향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초점을 맞추고 목표물에서 나오는 광선을 충실하게 포착하여 그 물체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 1:18) 그것도 역시 초점을 맞추고 한 방향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문제를 올바른 관점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순전한(관대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을 과도하게 염려하지 않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자 할 것입니다. (빌립보 2:4) ‘나쁜’ 눈을 가지고 있으면, 즉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방종의 길을 가게 되며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 전체가 전부 어두울 것입니다.
23. (ㄱ) 우리는 어떻게 하여 가난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전 시간 봉사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질 수 있읍니까?
23 ‘관대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한 ‘바울’의 말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고린도 후 6:10)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에 계속 종사해야 할 만큼 재정적 의무는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지방 회중에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천막을 만들었읍니다.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보물과는 비할 수 없읍니다. ‘바울’과 같이 오늘날도 자기들의 눈을 “순전”하게 유지함으로써, ‘파이오니아’, 특별 감독자 및 ‘벧엘’ 집에서의 일군으로서 전체 시간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들은 돈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영적 축복을, 세속 일에 시간을 바쳐서 벌어들일 수 있는 물질적 재산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24. 주는 것이 어떻게 보물이 될 수 있읍니까?
24 우리 눈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진리를 배우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고 진리가 다른 사람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목격하는 무한한 즐거움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여기에 참된 행복의 기초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사도 20:35) 영적인 면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즐거움과 축복은 아무리 많은 물질적 재산보다 더욱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당신은 이 사실을 인식합니까?
25. “영의 열매”는 어떤 면으로 축복입니까? 왜 오늘날 특히 중요합니까?
25 또한 하나님의 성령의 보물을 고려해 보십시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읍니다. (사도 8:18-20) 하나님의 영의 열매도 돈을 주고는 살 수 없읍니다. 성서는 이 보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읍니다. “영의 열매는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지금과 같은 전세계적인 분쟁의 시대에 이러한 특성이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겠읍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것입니다. (빌립보 4:7) 이 세상의 돈을 사랑하는 정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고, 하나님의 영과 이해를 간구하고, 그것이 당신의 생활에 강한 힘을 미치도록 함으로써 당신도 이 보물의 축복을 맛볼 수 있읍니다.
26. 자기의 눈을 “순전”하게 유지하는 “다른 양”에게 무슨 보상이 있읍니까?
26 당신의 영적 시야를 청명하게 함으로써 다른 보물 즉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볼 수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낙원이 된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현재 자기 눈을 “순전”하게, 한 방향으로 유지하는 “다른 양”에게 그러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 10:16; 디도 1:2; 요한 1서 2:17; 디모데 전 6:12) 아무리 많은 재물로도 이것을 획득할 수는 없읍니다. (누가 12:15-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른 양”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27. (ㄱ) 우리가 사는 시대를 생각할 때에 물질적 재산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간직해야 합니까? (ㄴ) 무슨 즐거움과 특권이 우리의 것입니까?
27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재물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유지함으로써 영적 견해를 깨끗하게 갖고 이 사물의 제도의 모든 돈은 과거의 것이 되고 무가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스겔 7:19; 누가 16:9) 얼마 안가서 “큰 환난”으로 인해 지상의 모든 나라들이 종말을 당하면 죽은 자에 대해서나 “환난” 생존자들에 대해서나 이 세상의 재물은 무가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충고를 따르고 우리가 가진 것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사용해야 하겠읍니다. (요한 15:8) 우리는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가 여호와의 여러 가지 마련으로부터 온전히 유익을 받음으로써 영적 재산을 첫째로 둔다는 것을 나타내도록 합시다. 왕국의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영적 재산을 얻도록 도와 주고, 우리의 물질적 재산을 제 위치에 두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관련하여 기록을 쌓아가도록 합시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서의 즐거움과 특권이 우리 것이 되도록 합시다.—고린도 후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