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온 세계의 구경거리’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맨 끝자리에 세워 온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읍니다.”—고린도 전 4:9, 새번역.
1, 2.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그러한 사람들은 무슨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까?
예수와 사도들처럼 고통당할 생각을 하고 무서워한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인생에 대하여, 영적이고 고상한 견해를 가지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 훌륭한 유익이 따른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는 있읍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은 장차 믿음을 파괴하려고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강한 공격을 이겨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당신도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그렇다면, 잠간 생각해 보십시오. 앞 기사에서 당신도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위안을 받지 않았읍니까? 그렇습니다. 외무 사원, 공장 직공, 가정 주부 등 당신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질 수 있읍니다. 당신은, 이 육적인 세상의 어느 구석으로부터 아무 시험이 닥치든지 그것을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마찬가지로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3.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3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 10:29, 30) 이 말씀은 사도들의 경우에 그대로 맞았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날의 참 그리스도인들 곧 참으로 영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들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들, 곧 영적인 사람들은 “핍박” 곧 박해를 받았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4. 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 중 영적인 사람들은 왜 박해를 받았읍니까?
4 예수께서는 아버지 여호와께 드리는 기도에서 그 점을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세상이 저희[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 저희[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요한 17:14, 17, 18, 25.
5. 육적인 세상이 어떻게 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십시오.
5 사도들 곧 예수로부터 교육을 받은 영적인 사람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읍니다. 그들 영적인 사람들과 육적인 세상과의 뚜렷한 차이는 아무가 보아도 명백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이 땅을 떠나신 다음, 사도들은 “땅 끝까지” 가서 전파하고 가르치라는 사명을 꾸준히 수행하였읍니다. (마태 28:16-20; 사도 1:6-8) 그들의 사업은 시초부터 강력한 반대를 당하였읍니다. 맨 처음에는 자기 나라 사람들이 저항을 하였읍니다. (사도 5:40; 12:1-5)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을 넘어서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이방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과도 충돌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숭배의 대상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릴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사도 19:23-41; 14:1-7.
‘세계의 구경거리’—어떤 의미에서?
6, 7. 사도들이 ‘세계의 구경거리’였다고 한 고린도 전서 4:9의 ‘바울’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6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4:9(새번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였읍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맨 끝자리에 세워 온 세계와 천사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읍니다.”
7 여기서 ‘바울’은, 사도들이 생활상의 보통 일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며, 정직하고 건설적인 생활을 하는 사도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생활 방식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사도들이 온 세상 앞에서 치욕적으로 극장에 끌려나온 것같이 고통을 겪은 일을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서에서 말한 “구경거리”라는 말은 ‘인간적 표준에서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섭섭하고 모욕적인 것’이라고 「신약 신학 사전」에서는 말하였읍니다.
8, 9. (ㄱ) ‘터툴리안’과 ‘제임스 모팻’의 번역판을 보면 사도들이 “구경거리”였다는 ‘바울’의 말이 그들이 겪은 고통을 의미하였음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바울’은 실제 원형 극장에 섰던 적이 있었읍니까?
8 제 3세기에 ‘터툴리안’이 번역한 고린도 전서 4:9을 보면, 고통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뚜렷하게 상상할 수 있읍니다. 거기서는 그들을 “야수들과 싸우도록 작정된 사람들”이라고 하였읍니다. (「겸손에 대하여」, 제 14장) 20세기 성서 학자 ‘제임스 모팻’에 의해 의역(意譯)된 성서에 표현된 바와 같이, 그들은 “운이 다한 원형 극장 내의 검투사” 같았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시대의 의기양양한 행렬을 상상하게 됩니다. 행렬의 맨 끝에는 충실한 사도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범죄인처럼 이끌리어 원형 극장으로 가고, 그곳에서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뻐하는 관객들의 광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9 고린도 전서 15:32(새번역)에 기록된 바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 ”라는 말로 보면, 사도 ‘바울’도,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원형 극장에서 실제 야수들을 대항하였을 가능성이 있읍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상징적 “극장”에서 “맹수와 같은” 사람들을 대항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도 19:29-41) 그러나, 그가 고린도 후서 1:8-10에서 한 말을 유의하십시오. 그는 “‘아시아’[그곳에 ‘에베소’가 있었음]에서 당한 환난”을 말하면서,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나] ··· [하나님이] 이같이 큰 사랑에서 우리를 건지셨”다고 하였읍니다. 이 말로 보건데, ‘바울’이 ‘에베소’의 원형 극장에서 실제 맹수를 대항하였던 것 같습니다.
10. ‘바울’의 말을 보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겪은 여러 가지 고통을 열거하십시오.
10 하지만, 고린도 전서 4:9에서 ‘바울’은 비유적인 설명을 하였읍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이 봉사 사업을 수행하면서 당한 모욕과 반대와 박해를 ‘사람들과 천사들’ 곧 우주적인 관객들이 구경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그는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었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있는 자가 되었읍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받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시간까지도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학대를 받으며, 집 없는 자로 유랑합니다. 우리는 심한 노동을 합니다. 제손으로 일해서 살아갑니다. 조롱을 받으면서 축복해 주고, 박해를 받으면서 참아 견디고, 능욕을 당하면서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폐물 같이 인간의 찌꺼기 같이 살아 왔읍니다.”—고린도 전 4:10-13, 새번역; 또한 히브리 10:32-34 비교.
11. 사도들이 그러한 처지를 당하도록 누가 허락하였읍니까?
11 사도들이 고통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그 당시 영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후원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건설적인 활동은 그 점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또한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마치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맨 끝자리에 세”웠다는 점도 알았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4:9, 새번역)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세상적 표준으로 볼 때에 비천하게 보이도록 하셨읍니다.
12, 13. (ㄱ) 그러므로 누가 오늘날 고통을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합니까? (ㄴ)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12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도 세계적인 봉사 활동을 수행할 때에 비슷하게 고통을 겪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배척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회중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앞 기사에서는 잘 설명하였읍니다. 세상에서 인기있는 자들에게는 진리가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디모데 후 3:12.
13 그러나,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늘날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이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도 박해를 받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을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참다운 영적인 사람들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행한 동일한 것을 믿고 그것을 옹호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과 동일한 이유로 반대를 받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현대적 ‘세계의 구경거리’인가?
14.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고통을 받고 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 중에는 참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교회가 있읍니까?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읍니까? 그리하여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한 이유로 미움과 박해를 받고 있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회들은 오늘날 괴로움을 받고 있읍니다. 그들은 교인들과 돈을 상실해 가고 있읍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사도들처럼 의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전 2:19-21 비교)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다음 사실을 고려해 봅시다.
15. 살인이 옳은지 나쁜지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교회들과 사도들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읍니까?
15 사도들은, 살인하는 것, 아니 미워하는 것까지도 나쁘다는 것을 믿었읍니다. (요한 1서 4:20, 21; 계시 21:8)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세상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무더기로 살인을 하는 것을 용인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지지하고 격려까지 하지 않았읍니까? ‘리처드 오코너’가 저술한 「블랙 재크 퍼싱」이라는 책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 줍니다. 그 책에서는 미국이 제 1차 대전에 개입하게 된 경로를 알려 줍니다.
“미국의 전쟁 개입을 주장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일군들보다 더욱 적극적인 자들은 없었다. ‘뉴욕’ 교회 연합회는 3월 11일을 ‘전쟁 일요일’로 선포하였다. 방방곡곡에서 호전적인 목사들은, 그리스도가 평화주의자라는 사실, 전쟁이 악이라는 사실, 독일인을 죽이는 것이 계명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전도자 ‘빌리 선데이’가 ‘타임스 스퀘어’에 운집한 군중에게 연설할 때, ‘지옥을 엎어본다면, 그 밑바닥에는 분명히 “독일제”라는 표지가 있을 것이다!’ 하고 소리친 것은 그들의 생각을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낸 것에 불과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나 그 지도자들이 금지를 당한 곳도 있지만, 그것은 보통 그들이 정치에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1973년 10월 21일자 「뉴욕 타임즈」지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읍니다. “‘칠레’의 군사 정부는 오늘 세명의 외국인 사제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스페인’인이 두 명이고 ‘프랑스’인이 한 명인데, 정부 소식통에 의하면, 그들은 ‘과격파들의 활동’에 가담하였었다고 한다.”—9면.
16, 17.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ㄱ) 도덕 문제에 있어서, (ㄴ) 거짓말하는 문제에 있어서, 사도들과 같이 믿고 행동합니까?
16 사도들은, 간음, 음행 및 동성애를 가증하게 여겼으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그들 가운데서 추방하였읍니다. ‘바울’은,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 명백히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5:11-13; 6:9-11) 그러나,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당신의 교회에서, 아니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교회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추방하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읍니까?
17 초기 사도 시대의 회중에서는 거짓말장이들을 용납하지 않았읍니다. (사도 5:1-11) 그런데, 당신은 정치가들이나 사업가들이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읍니까?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교회 성원이 아닙니까? 아마 당신의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18. 왜 그리스도교국은 ‘세계의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8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명백합니다. 그러한 행위를 용인하는 많은 조직들은,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더라도, ‘세계의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과 혼합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자기들이 ‘세상의 벗’임을 나타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야고보 4:4.
19. 그리스도교국은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게 됩니까?
19 이상과 같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은 그들이 예수와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때문에 겪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심은 것을 거두고 있읍니다. 그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그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계시록」에서 호화롭게 단장하고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로 묘사한 거짓 종교의 전세계 제국에 닥칠 재난의 전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은 그 상징적인 음녀와 같이 짐승과 같은 나라들을 조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은 그 여자에게 달겨들어 그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모든 거짓 종교의 종말은 매우 가까왔읍니다. 현재 그 음녀에 속한 사람들은 의를 위해 고통을 받고 있는 영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염려할, 아니 무서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읍니다.—계시 16:12-21; 17:15-18; 제 18장; 또한 에스겔 24장; 마태 13:42 참조.
여호와의 증인들—박해 때문에 현대적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다
20-22.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있읍니까?
20 한편, 여호와의 증인들은 근년에 많은 고통을 당해왔읍니다. 그들은 ‘나치’ 독일에서 혹독한 미움을 받았읍니다.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 대주교구의 ‘에큐메니칼’ 관계 위원회를 위하여 발행되는 신문에서도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읍니다. “독일의 ‘유대’인들만이 ‘히틀러’의 강제 수용소에서 고생을 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 사는 여호와의 증인들로 알려진 사람은 모두 투옥되었다. 투옥 후 그들은 항복하고 신앙을 포기하면 석방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 교수형이나, 총살형이나, 잔인한 신체적, 정신적 고문도 그들을 흔들어놓지 못하였다. 증인들이 멸절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체포할 비밀 경찰의 분노는 극악하였다.”
21 좀 더 세월이 지난 지금은, 여러 정부 아래서 증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읍니까? 「1917년-1967년 소련 내의 종교상」이라는 책에 보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체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하였읍니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역시 증인들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구경거리가 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터어키’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범죄”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읍니까? 그들에게 완전히 거짓 죄를 씌우고 있읍니다. ‘터어키’에 사는 여호와의 증인들 개개인은 일년 수입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거액의 벌금형을 받게 됩니다.
22 ‘아프리카’ 대륙의 ‘말라위’에서는, 여러 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이 극심한 증오의 초점이 되어 왔읍니다. 남자들은 구타당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읍니다. 그들은 직장을 잃고,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였읍니다. 그들은 가축처럼 쫓겨났읍니다. 자기들의 집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실제 자기 나라 밖으로 쫓겨났읍니다.
23, 24. (ㄱ) 증인들은 그 나라의 정치에 간섭하기 때문에, 혹은 부도덕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읍니까? (ㄴ) 그러면, 왜 그들은 고통을 당합니까?
23 그러나, 그들은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았읍니까? 그들이 사는 여러 나라의 정치에 간섭하려고 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와 사도들이 따랐던 높은 도덕을 포기하였읍니까? 외부 인사로서 편견이 없이 관찰한 한 사람이 증인들의 행실에 대해 논평한 말을 고려해 보십시오. ‘옥스포드’ 대학교의 ‘브라이안 윌슨’은 ‘아프리카’에서의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그러나, 금지조치는 겉보기보다는 희생이 많을 것이다. ··· 증인들은 교인들이 높은 도덕 표준을 준수하고 자기 수양을 닦아나아가도록 하는데 있어서 유별나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근면, 시간 엄수, 술취하지 않는 것, 긍지 등에 관한 가치관을 심어 준다. 그들과 교인들은,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훌륭한 가족 관계를 가지게 된다. 교육을 실시하고 교리를 주입하는 그들의 기술은 도덕면에서나 교리 문제에 있어서 극히 효과적이다. ··· ‘아프리카’의 정치인들이 자주 언급하는 한가지 문제는 부족 사상을 금하라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증인들은 다른 어느 집단보다도 신입 교인들에게서 부족 간의 차별 의식을 신속히 제거하는 점에 있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뉴 소사이어티」 1973년 7월 12일호 75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법과 질서에 위협적 존재가 아님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모든 문명 국가들이 자기 시민들에 대해 원하는 그러한 생활을 그들은 하고 있읍니다.
24 여호와의 증인들은 참으로 순수한 그리스도인 회중을 대표합니다. 이 점은 그들이 성경 말씀을 자기들의 생활에서 얼마나 철저히 실천하려고 하는가 하는 점으로 증명됩니다. 그들의 현대 회중은 제 1세기에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감독하였던 회중의 구조와 동일합니다. (에베소 2:20-22) 그 사람들은 동일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겪었던 바와 동일한 고통을 당하면서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읍니다. 그리고 조직적인 견지에서 그들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까지 환난을 계속 당할 것을 알고 있읍니다.—데살로니가 후 1:6-10.
당신은 현대 원형 극장 안에 들어오겠는가?
25. 각 사람은 무슨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까?
25 그러나, 각 사람은, “나 자신은 그와 동일한 반대와 현대의 영적인 사람들이 속해 있는 현대적 ‘세계의 구경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원한다면, 당신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읍니다.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 후 1:8.
26. 어떻게 하여 참된 영적 사람으로서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읍니까?
26 그러나 어떻게 하여 그러한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읍니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굳게 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견지에서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가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마태 5:11) 그러나, 육적인 생각이 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가 세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진리의 길을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압력을 받을 때에 자신을 합리화하고 타협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영원한 파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세상이 어느 정도 평온한 지금 “그리스도의 정신”을 기르고 그것이 자기의 모든 생활 부면을 조종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서 어느 때라도 승인하실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사람으로 만들도록 노력하십시오.
27. 영적인 사람은 무슨 경향을 피하고자 합니까? 오히려, 그의 견해는 어떠해야 합니까?
27 미래의 시련에 관해 암담한 공포심을 길러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앞으로 원수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심한 변태적인 행동을 자행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젖어 있는 것도 이치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하루 하루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입증할 것입니다. 사도들이 당하였던 반대는 단순히 폭력적인 극심한 박해만이 아니었읍니다. 고린도 전서 4:10-13에 기록된 ‘바울’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새번역) “우리는 약하[고] ···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읍니다 ···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학대를 받으며, 집 없는 자로 유랑합니다. ··· 조롱을 받[습니다].”
28. 참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로부터 폭력적인 심한 박해 외에 오늘날 어떤 방법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읍니까?
28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천대를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원수”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가족으로부터(베드로 전 2:18-3:6), 혹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사람들로부터 올 수도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높은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대우를 받을 수도 있읍니다. 혹은 그리스도인은 보수가 좋은 탁월한 지위가 성경으로 훈련받은 자기 양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해야겠다고 느낄 수도 있읍니다. 이 때문에 그는 심한 압력을 받거나 조롱을 받을 수도 있읍니다. 또한 어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옳다고 아는 점에 대해 그리스도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급우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읍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그러한 모든 입장을 이겨낼 수 있고, 또 매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장래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사람은, 사도들이 행한 바와 같이, 자기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당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사도들이나 예수처럼 담대함을 유지하며 즐거움을 가질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읍니다.—요한 16:33; 로마 12:12; 골로새 1:24; 베드로 전 1:6, 7; 3:14; 4:12-16.
29. 참으로 영적인 사람 각자에게 어떠한 전망이 있읍니까?
29 확실히,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겉만 살짝 변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대한 충성을 계속 강화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장차 어떠한 문제와 박해를 당하든지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박해 아래서 인내함으로써 당신은 이 전체 사물의 제도의 끝까지 ‘세계의 구경거리’에 계속 속하여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영적인 사람으로서 “세상 중앙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곡’의 집중 공격을 살아남아 감탄스런 새 사물의 제도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4:9; 에스겔 38:12; 계시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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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의 대상으로서 ‘세계의 구경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