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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생물깨어라!—1974 |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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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번 겨울을 지내며 폭설을 견디고 헤일수 없이 많은 건조한 여름의 가믐을 늠늠하게 견딘 그 능력은 우리의 제한된 이해력으론 상상하기 어렵다. 부산한 다람쥐들은 그러한 나무 그늘에서 실제로 수백 세대를 살아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세대를 두고 사슴과 호저와 회색 여우가 이 나무 기부의 잔가지에 코를 비벼왔다. 다른 나무들은 싹이나고 자라고 늙고 죽어 여러 세대에 걸친 후손에 의하여 대치되어 오는 동안, 세계수는 변함없이 제자리에 버티어 조용히 그 최고의 권좌를 보존하여 왔다.
수천 수만의 관광객들이 이러한 나무밑에 서서 처음에 외경감에 압도되고 다음에는 공손한 태도로 올려다 보아왔다. 일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더 큰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장엄한 모습을 가능하게 하신 분의 지혜를 찬탄하게 되었다. 그러한 나무는 ‘바울’의 이러한 말을 상기시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그 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들]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 1:20.
성서는 지금 매우 임박한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의 상태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수명이 “나무의 수한”과 같을 것이라고, 즉 장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팔레스티나’에도 천년 이상 산 나무가 있었다. (이사야 65:22) 그러한 나무가 존재하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지상의 인간에게 영구적인 생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것이 그분께는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성서에서 약속하신 분은 이러한 거대한 나무의 성장과 생명을 가능하게 하신 분이다. 그것은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세기 전에는 ‘시쿼이어’ 나무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나무의 존재가 사실이 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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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상의 정직성—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깨어라!—1974 |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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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사업상의 정직성—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정직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옛 속담을 비꼬아, 요즈음 사람들은 “하지만, 충분치 않다”고 대꾸한다. 「거짓말의 중요성」이란 책은, 그러한 견해에 호응하여, 정직은 “고결한 이상(理想)일지는 몰라도, 생존과 안전을 위한 생존 경쟁에는 별 가치가 없다. 인간은 그 문제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도 그렇게 믿고 있는가? 많은 사업가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부정적이 어찌나 널리 퍼졌든지 사업 경영을 모방한 “가족 놀이”의 선전문구 가운데 ‘걸리지만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까지도 있다. 그러나 사업에서 부정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부정직이 “놀이”가 아니다. 그들은 종종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변명을 한다.
양심을 무시했던 지난 세기의 금융업자 ‘다니엘 드루’는 양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사소한 것은 자잘구레 따지지 않았다. ··· 가책을 받는 양심이란 대장장이가 흰 비단 앞치마를 두른 것처럼 거북한 것이다. 때때로 손을 더럽히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양심을 억눌러야 한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 사업가는 정직할 수 없는가? 양심이 관련된 이상, 성서의 견해는 가치가 있다. 성서는 양심을 올바로 밝혀 주며, 부정직한 행실이 사실상 어떤 것인지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한 가지 요구 조건은 그들이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점이다. (디모데 전 3:8, 신세; 디도 1:7) 일확천금이나 손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은 정직한 양심을 희생하게 만든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언 28:20.
“그것이 사업이다” 하는 말로써, 부정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입자 위험 부담” “구매자는 조심하라”는 말로 책임을 소비자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부정직을 행하면 그것이 조금이라도 더 합법적인 행위가 되는가? 도둑이 자기 도적질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의 희생자들은 조심하라” 하고 말할 수 있는가? 성서는 사업상의 부정직과 공공연한 도적질을 같은 범주에 놓는다. ‘모세’의 율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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