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의 장소인 하나의 참된 전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더라.]”—계시 11:19.
1.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거의 모두 어떻게 보도됩니까?
오늘날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미쳐 그 모든 ‘뉴스’를 다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뉴스’들은 너무나 다양함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잡지, 신문, 전신, 전화, ‘래디오’ 및 ‘텔레비전’과 같은 ‘뉴스’ 매개체를 통하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거의 모두 다 보도되고 있읍니다.
2.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어떠한 사건이 이러한 현대적 통신 기관에 의하여 항상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읍니까?
2 그러나 이러한 모든 통신 기관에 의하여 항상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읍니다. 이 소식은 우리가 가장 심각한 관심을 기우릴 만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해인 1914년 이래 국제적 전쟁과 정부의 변동이 심한 이 세기에 인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일어난 일입니다. 이 희귀한 사건은 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날 일로 미리 결정되어 있었읍니다. 영감에 의하여 미리 기록된 역사 즉 하나님의 예언에 그것이 거의 19세기 전에 우리를 위하여 예언되었고 기록되었읍니다. 이제 우리가 이 예언의 기록을 읽어 보면 우리는 이 사건이 지금까지 일어난 세계사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어디에서 볼 수 있으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3 우리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성서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 혹은 「묵시록」 11장 15절부터 19절에서 볼 수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왕국, 신세]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어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4. (ㄱ) 이 사건에 대하여 설명할 때, 세상 나라의 통치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ㄴ)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4 오늘날 이 예언적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설명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이것입니다. 즉 1914년 이래 민주주의 국가 진영과 독재주의 국가 진영이 서로 인류 세계 지배를 위해 다투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께서 바로 그 1914년 이래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으로서 통치를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 해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하나님]와 그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이 “세상 나라”의 현 소유자로서 그의 성전에 와 계십니다. 이 거룩한 곳에 그 분이 임재하셨음이 “하나님의 언약궤”라고 불리우는 거룩한 그릇으로써 상징되었읍니다. 이 환상을 본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은 이 “궤”의 크기나 모양을 설명해 놓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없으며 인간의 말로써 충분히 묘사할 수 없는 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였읍니다. 이 상징적 “궤”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새 언약”의 궤이며 이 언약은 기원 33년 이래 효력을 발생해 왔읍니다.
5. 역사적으로 볼 때, 성전이란 무엇이며, 끝없는 생명을 얻기 위하여 모든 민족은 어느 성전에 와서 숭배해야 합니까?
5 역사 기록을 보면 성전이란 신 혹은 신들을 섬기며 숭배하기 위한 건물 혹은 장소입니다. 이 상징적 “언약궤”가 있는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의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바로 모든 민족들이 와서 일치 연합하게 숭배해야 할 곳입니다. 의로운 자들과 불의한 자들의 약속된 부활로써 모든 민족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킴을 받아서라도 그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 (계시 11:18; 사도 24:15, 신세) 이 곳만이 그리고 이 길만이 모든 민족의 사람들이 마침내 지구 전체가 낙원으로 변화된 이 땅에서 끝 없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 나라”의 소유자이시며, 그의 성전에서 영원히 왕으로서 다스리실 분을 인정하고 숭배하고 섬겨야 합니다.—계시 11:15.
6, 7. 낙원 거주자들이 이 성전에서 숭배하는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전 건물에 거하신다는 문제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6 낙원이 된 땅에서 이 숭배가 행해진다면 모든 민족이 하늘로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만일 그들이 하늘에 가지 않는다면 계시록 11:19에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갈 수 있겠읍니까? 그것은 아주 적절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하나의 건물 즉 성벽이 있고 대문이 있는 대사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기원 전 11세기에 웅대한 전을 건축한 사람이 그 전을 봉헌할 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은 현명한 왕 ‘솔로몬’이었으며, 그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있는 그 웅대한 전을 처음에 건축한 사람이었읍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열왕 상 8:27.
8. “언약궤”는 어디에 있었으며,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으며, 그러므로 성전 지성소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8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성전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을 지성소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길이와 나비와 높이가 각각 20‘큐빗’인 정입방체였읍니다. 그 방의 크기는 분명히 이 땅의 물질로 만든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에는 충분하였읍니다. 이 궤 안에는 하나님의 손가락이 쓴 10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었읍니다. (열왕 상 6:19, 20; 8:6-9; 출애굽 34:1, 27, 28; 40:20) 그러나 그 전의 제일 안쪽에 있는 방 즉 지성소의 크기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기에는 충분치 않았읍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해마다 속죄일이면 속죄 제물의 피를 뿌릴 거룩한 물건이었읍니다. 이렇게 해서 그 궤는 하늘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였읍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할 때 궤가 놓여 있던 성전의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친히 거처하시는 하늘에 있는 무한대한 부분을 상징하였읍니다. 그곳은 그분이 계시기에 충분하였읍니다.
“장막” 혹은 “성막”
9. ‘솔로몬’의 성전은 무엇을 본 따서 지었으며, 이 건물에 있는 두 개의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9 ‘솔로몬’ 왕이 건축한 성전은 ‘아라비아’ ‘시내’ 산 광야에서 예언자 ‘모세’가 세운 장막 혹은 성막을 본 따서 지었읍니다. 이 장막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휘장으로 나뉘어져 있었읍니다. 마당을 향해서 있는 바깥 휘장을 지나 제사장들이 들어간 첫째 방은 성소라고 불렀읍니다. 안쪽 휘장을 지나 대제사장이 들어간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은 지성소라고 불렀읍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그는 향로를 가지고 들어가 지성소를 향 연기로 가득 채웠읍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 희생의 피를 금언약궤에 뿌릴 준비를 할 때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9장 2절로 10절에서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10. 히브리서 9:2-10에 의하면, 이 방들에는 무엇이 있었으며, 누가 이 방들에 들어 갔으며, 언제 들어 갔읍니까?
10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컸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컸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대제사장]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식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
11. 이 “장막”은 이미 지나간 어떤 것의 비유입니까? 혹은 앞으로 올 어떤 것의 비유입니까?
11 이 필자는 예언자 ‘모세’가 세운 이 성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말한 것에 유의하십시다. 이 필자의 경우에 있어서 “현재”는 기원 61년경 즉,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에게 멸망되기 9년전이었읍니다. 그 때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지 28년이 된 때였읍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세운 성막이 예언자 ‘모세’ 시대 이전에 있던 어떤 것을 “비유”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어떤 것을 “비유”한 것이었읍니다. 대제사장 ‘엘리’ 시대에 와서 그 비유적인 “성막”은 “전”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사무엘 상 1:9; 3:3; 또한 사무엘 하 22:7; 시 18:6; 27:4 참조) 그러므로 ‘모세’에 의하여 세워진 성막 혹은 전은 ‘모세’ 시대 이전에 존재하였던 어떤 전을 비유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12. ‘모세’ 이전의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은 지상에 성전을 세웠었으며, 그 때 여호와께서는 하늘에 성전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12 우리가 ‘모세’ 이전 시대를 살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어떠한 충성스러운 숭배자도 심지어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까지도 지상에 전을 세웠다는 기록을 볼 수 없읍니다. (히브리 7:1; 창세 14:18-20) ‘아벨’이나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및 ‘욥’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하나님께 희생을 바쳤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세우지 않았읍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상에는 아무런 물질적 전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전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즉 ‘모세’에 의해서 세워진 장막이나 ‘솔로몬’ 왕에 의하여 세워진 전으로 비유된 바와 같은 전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13. 하나님의 창조 활동의 여섯째 날 끝에는 왜 전의 필요성이 없었으며, 예언적 기록에 나오는 여호와의 전의 언급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합니까?
13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 인간 완전성으로 창조해 놓으셨을 때에 하늘에 그러한 전이 필요치 않으셨음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섯째 창조의 날 끝에 완전한 남녀를 창조하신 때 즉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신 때에 하늘에나 땅에는 어떤 창조물에게도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대제사장이 있어서 속죄의 희생을 하나님께 바칠 필요도 없었으며, 전 뜰에 제단이 있어서 거기에서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도 없었읍니다. (창세 1:26-31; 2:7-24) 시편 11:4이나 미가 1:2 및 하박국 2:20에 나오는 전의 언급은 예언적인 것이었으며, ‘모세’가 장막을 세웠고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한 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있게 될 영적 성전을 비유 혹은 전영하였읍니다.
14. 기원 33년 오순절 날 여호와의 참 성전이 있게 되었는지의 여부를 우리는 왜 질문합니까?
14 그러므로 이제 ‘모세’가 세운 장막과 ‘솔로몬’이 건축한 전으로 비유된 그 참 성전이 언제 있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회중 혹은 교회가 세워진 기원 33년 오순절날이었읍니까? 우리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그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이렇게 편지 하였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 전 3:16, 17)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모세’가 건축한 성막과 ‘솔로몬’ 왕과 ‘스룹바벨’ 총독, 그리고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에 건축한 전들은 비유적 전으로서 그리스도인 회중을 상징 혹은 예표하였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까? ‘바울’ 자신은 이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15. 히브리 9:11, 12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5 그러므로 히브리 9장으로 돌아가서 나머지 부분에서 ‘바울’의 설명을 들어 보기로 하겠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거룩한 곳]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 9:11, 12, 신세 참조.
16. ‘유대’인 속죄일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로 들어갔읍니까? 혹은 그 분이 들어가신 곳은 성전으로서 그리스도인 회중이었읍니까?
1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 속죄일(‘티쉬리’월 10일)에 희생적 죽음을 당하시지 않았으며, 그날 자기의 피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전의 지성소로 들어가시지 않았읍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읍니다. 그는 ‘레위’ 대제사장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그는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속죄일에 ‘예루살렘’ 전의 지성소로 들어갔었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면 그분은 무슨 “거룩한 곳”으로 자기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읍니까?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들어가시지 않았읍니다. 그 회중은 예수께서 부활되시던 날에도 또는 기원 33년 오순절 날로부터 10일 전에 하늘에 올라가시던 날에도 세워지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그 “거룩한 곳”은 무엇이었읍니까? 다시 우리는 히브리 9장으로 돌아가서 ‘바울’의 대답을 들어 보기로 합시다.
17. 히브리 9:23, 24에 의하면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로 들어가셨읍니까?
17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거룩한 곳]에 들어가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니라].”—히브리 9:23, 24, 신세 참조.
참 성전이 있게되다
18, 19. (ㄱ)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참 지성소에 어떻게 거하십니까? (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하여 어떤 간막이를 지나지 않으면 안되셨으며, 히브리 6:18-20에 의하면 이것은 어떻게 상징되었읍니까?
18 우리는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의 희생의 피의 가치를 가지고 들어가신 거룩한 곳이 그 당시 몇 명에 불과한 제자들이 있던 지상의 어떤 거룩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는 즉 하나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거하시는 곳인 “하늘 그 자체”(새번역)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에 대하여 ‘바울’에게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참 “거룩한 곳” 즉 “하늘 그 자체”가 참 전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아니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손으로 지은 지상의 성막과 전에 있는 지성소 곧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거하시던 지성소가 이들 거룩한 건축물에 들어 있던 것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는 단지 지상 건물에 있던 제일 안쪽에 있던 방에 불과하였으며, 휘장으로 첫째 방과 분리되어 있었읍니다. (마태 27:50, 51) 이 안의 휘장은 예수께서 천적 지성소로 들어가시기 위하여 통과하지 않으면 안될 육체 간막이 즉 그의 육체, 그의 인간성을 비유한 것이었읍니다. ‘바울’은 자기의 희망을 이야기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19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 6:18-20.
20. 뜰에서 분리된 장막의 성소는 어떠하였으며, 그 뜰에는 놋으로 만든 무슨 물건이 있었읍니까?
20 우리는 장막 혹은 성막의 첫째 방은 성소라고 불리웠고 성전 밖 뜰에서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 뜰에 그리고 성전 앞(즉 동쪽)에 큰 놋 제단이 있었읍니다.
21. 무슨 제단으로부터 ‘유대’인 제사장들이 먹을 권이 없으며, 이 제단은 누구의 희생과 관련이 있읍니까?
21 성전 자체의 경우와 같이 이 제단도 예표적이었읍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제사장들과 그리스도인 침례받은 제자들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이 점을 알려 주었읍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 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즉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 13:10-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제자는 예수의 인간 희생과 관련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이 제단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또한 지상 장막 혹은 성전에 있던 첫째방 즉 성소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이제 성서의 도움을 받아서 그것을 알아 보도록 합시다.
22. (ㄱ) 성전 안 휘장은 무엇을 비유하였으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지나셨읍니까? (ㄴ) 그러므로 그 휘장 밖 즉 동편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떠한 것들과 관련이 있었읍니까?
22 성전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있는 안 휘장은 경계선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완전한 인간 몸을 희생으로 바치심으로써 영원히 포기하기 위하여 지나셔야 할 육체 간막이를 비유합니다. 이제 안 휘장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영으로서가 아니라 친히 거하시는 곳인 “하늘 그 자체”를 상징함으로 그 휘장 밖(혹은 그 휘장 동쪽)에 있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육체와 관련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 법칙이 놋 제단에 적용되었읍니다. ‘솔로몬’과 ‘헤롯’ 전의 경우, 그 제단은 안뜰 즉 대제사장과 제사장보들이 그들의 희생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인 제사장의 뜰에 있었읍니다. 그러면 이 제단은 무엇을 예표하였읍니까?
제단의 실체
23, 24. (ㄱ)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그분은 희생 제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무엇이 폐하여졌으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거룩하게 됩니까?
23 사도 ‘바울’은 히브리 10장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명백히 알려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그 자신의 피의 가치를 가지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하늘에 들어가신 사실을 설명한 후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어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르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들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 10:1-10.
25. 그러면 예수께서 자신을 희생으로 바치시려고 오서셔 제공하신 제단은 무엇이었읍니까?
25 이로 보건대 성전 뜰에 있는 놋 제단에 해당하는 실체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완전한 인간 희생을 기꺼이 받아 드리고자 하시는 그의 “뜻”임이 분명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이미 예언되어 두루마리 책에 기록되어 있었읍니다. (시 40:6-8)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 희생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받아 드리기를 원치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 희생은 받아 드리시기를 원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속죄일에 들이는 동물 희생을 끝 없이 원하시지도 승인하시지도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의 뜻과 목적에 따라 그는 인간 죄를 대속할, 참으로 “죄를 없이”할 완전한 인간 희생을 원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셨으며, 마치 제단에서 있는 일 같이 인간 희생을 위한 완전한 예수의 제공이 받아 드려지고 그의 예비된 완전한 인간 몸이 바쳐진 것은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의 “뜻”의 제단 위에서 바쳐진 이 완전한 인간 희생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브리 10:10.
26. 그리스도인 제사장보들이 먹을 수 있는 “제단”으로부터 ‘유대’인 제사장들은 먹을 권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6 그러기 때문에 또한 ‘바울’은 후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 13:10-12) 즉 영적 제사장보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의 제단 위에 속죄 제물이 있읍니다. 이 속죄 제물은 ‘예루살렘’에 있던 ‘헤롯’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새 언약의 중보이신 여호와의 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먹을 권리를 가지지 못한 희생물입니다.
27. 예수께서는 언제 희생을 위하여 자신을 제공하셨으며, 희생을 위한 무슨 근거가 있게 되었으며, 어떤 “날”의 실체가 시작되었읍니까?
27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께서는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의 제단에서 희생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제공하려고 언제 오셨읍니까? 그것은 기원 29년 ‘요단’ 강에서 잠기시기 위하여 침례자 ‘요한’에게 자신을 제공한 때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자기 희생을 받아 드리셨다는 것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 물침례를 받으신 후에 여호와께서는 예수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셨으며, 그를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삼으셨고 하늘로부터 들리는 음성으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3:13-17; 요한 1:29-34) 따라서 하나님의 “제단”의 실체가 있게 된 것은 그때였고 그 제단 위에는 합당한 속죄 제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자기의 인간 희생을 관리하면서 제사장의 뜰의 실체에서 걸으셨읍니다. 속죄일의 큰 실체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예루살렘’ 전에서 ‘아론’의 대제사장이 매년 속죄일 즉 ‘티쉬리’월 10일이면 봉사하듯이 하나님의 참 영적 “제단”에서 봉사하셨읍니다.—히브리 8:1-6.
[157면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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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평면도
북
서
남
동
지성소
궤
휘장
성소
상
향단
촛대
막
뜰
대야
번제단
문
[158면 삽화]
‘솔로몬’의 성전, 및 성막은 하나님의 영적 성전 즉 예수의 화목의 희생을 근거로 숭배를 위하여 여호와께 가까이 가는 마련을 예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