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인내가 필요하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브리 10:36.
1. (ㄱ) 1914년 이후에 어려운 때가 계속될 것을 기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대단히 정확하게 예언된 난관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1914년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 이후, 온 인류에게 고통스러운 때가 계속해 왔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읍니다. 우리 시대에 관한 성서 예언은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마태 24:7, 8)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기 때문에 이 시대에 지상에 “화”가 있을 것을 계시록 12:12에서는 예언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마지막 날”이 왜 “처신하기 어려운 때”이며,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성실성이 없는 때인가를 디모데 후서 3장(신세)에 설명하였읍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어려운 상태를 인내해야 합니까?
2 뿐만 아니라, 마태 24장에 있는 예수의 예언은, 이 시대의 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배신을 당하고 죽임까지도 당할 것인가를 예언하였읍니다. 이 시대에 지상에 거짓 예언자들이 있을 것과, 불법이 증가할 것과,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도 예언되었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이를 것이라고 묘사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4:13; 계시 12:17.
3. (ㄱ) 누가 복음 21장에 들어 있는 비슷한 기록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을 알려 줍니까? (ㄴ) 그러므로 인내가 왜 대단히 중요합니까?
3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내의 필요성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이 누가 복음 21장에 기록된 예수의 동일한 예언 가운데서도 강조되었읍니다. 거기서는 이 시대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과 박해가 있을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문제가 관련되어 있읍니다.—누가 21:12-19.
4. (ㄱ) ‘마지막 때’의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특별한 일을 수행해야 합니까? (ㄴ) 그 일이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4 이 어려운 기간에 인내하고 고통을 참으면서도, 성서 예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이 이르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게 되어 있읍니다. 「1973년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을 보면 전세계 208개 나라에서 그러한 전파 활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마태 24:14.
5. 예수 그리스도의 본은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5 이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1914년도 이제 여러 해가 흘렀읍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종들은 수많은 시험을 당하였읍니다. 그러한 시련 상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한가지는 고통을 받을 때에 인내하신 그리스도의 본이었읍니다. ‘베드로’는 그 점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2:21-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버지께 얼마나 의지하셨으며 꾸준히 기도하셨는가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도 인내하도록 도움을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해야 합니다.—마태 26:39, 42, 44.
6. (ㄱ) 왜 우리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까? (ㄴ)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에 왜 여호와께 도움을 달라고 의지할 수 있읍니까?
6 고통을 인내하는 외에 시험을 저항할 필요도 있읍니다. “마지막 날” 인류의 악한 행동에 관한 ‘바울’의 말은 지상에 악행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칠 것을 시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대단히 주의해야 하며, 시험을 받을 때에 도움을 주실 것을 항상 여호와께 의지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 음행 등 옛날 여호와의 종들이 당하였던 시험을 열거한 다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 10:12, 13.
7. (ㄱ) 우리에게 격려의 근원이 되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ㄴ) 영적으로 약해진 사람들이 있다는 어떤 증거가 있읍니까?
7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인도와 격려를 주시어 시험을 인내하고 고통을 이겨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동료 증인들이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증가하도록 해 주셨읍니다. 이 점은 우리에게 격려가 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우리 가정이나 회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도록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왜냐 하면 진리를 받아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한 다음 영적으로 약해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의에 대한 인식을 잃고 영적인 일에 무활동이 되어 버립니다. (마태 5:3) 봉사의 면에서 그 처럼 무활동이 된 사람들은 깨어나서 재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강한 사람들이 할일이 많이 있읍니다.a—갈라디아 6:1.
8. 무활동이 되는 것은 얼마나 심각한 일이며, 이 때문에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8 어떤 사람이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하다가 그만두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 3:15, 16) 또한 시험에 말려 들어가 하나님의 법을 심각하게 범하여, 그 결과 회중에서 추방당하는 사람의 경우도 심각합니다. 제명 처분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회중 성원에 대한 표준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 5:9-13) 그러므로, ‘이러한 일이 우리 자신이나 우리 측근자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인내를 증가시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기원 제1세기에는
9. (ㄱ) 어떠한 상태와 환경 때문에 기원 제1세기 ‘히브리’ 그리스도인에게 인내가 대단히 중요하였읍니까? (ㄴ) 초기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만한 압력을 당하였을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9 다른 사람을 인내하도록 돕는 방법에 대한 흥미있는 한 가지 실예는,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 사람들과 관련해서 볼 수 있읍니다. 그 사람들은 동물 희생을 드리는 일, 제사직을 인정하는 일, 성전을 후원하는 일 등 율법 언약하에서 수행했던 일들을 뒤로 버렸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 희생을 통하여 효력을 발휘하게 된 새롭고 더 좋은 하나님의 마련을 받아들였읍니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에 살았으며,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악독하고 광적인 반대를 인내하였읍니다. ‘바울’ 자신도 ‘가이사’에게 상소하도록 ‘로마’로 송치되기 전에 ‘유대’인들로부터 동일한 광적 박해를 당하였읍니다. (사도 22장과 23장) 그러한 압력하에서도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성실을 지켜야 하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는 누가 21:20-24에 있는 예수의 예언이 성취될 날이 가까왔읍니다. 현재 우리는 그 때가 그들에게 대단히 어려운 시기였음을 알고 있읍니다. ‘유대’인들의 반역(기원 66년) 때문에, ‘로마’ 군대가 그 지역에 쳐들어 왔다가 갑자기 철수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을 청종한 사람들은 도망할 기회를 갖게 되었읍니다. 물질을 중요시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시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집과 재산을 버리고 ‘유대’를 떠나기 위해서는 참으로 믿음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처럼 마태 24장과 누가 21장의 소규모적 성취가 있었읍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에는 더 크게 성취되고 있읍니다. 우리 시대의 상태로 보아서 우리는 제1세기에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동안 얼마만한 압력이 미쳤을 것인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읍니다.—「파수대」 1969년 2월 1일호 참조.
10. (ㄱ) 왜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편지를 썼읍니까? (ㄴ) ‘바울’은 그들을 어떻게 격려하였으며, 과거의 시험을 회상해 보는 것은 다음의 시험을 담대히 직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0 몇 사람의 열정이 식어진 것 같이 보였을 때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편지를 썼읍니다. (히브리 13:22) 사도 ‘바울’이 말한 바를 관찰한다면, 우리는 인내를 기르기 위해 우리 자신을 돕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읍니다. 사람들을 격려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커다란 시험을 당했을 때에 그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브리 10:32-36) 그렇습니다, 그들은 혹심한 시험들을 통과하였으며, 재산을 상실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까지 살았으며, 입을 것과 먹을 것과 기타 필수품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께 감사하고 계속 그를 섬길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인내함으로써 영생을 얻을 전망이 있었읍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보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장래에도 많은 시험을 통해서 그들을 보호해 주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올 시험을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한 격려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여호와의 일에 대한 인식과 성실을 지킴으로써 장차 얻을 상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11. 어떤 ‘히브리’인들이 영적 경각심을 상실하였음을 무엇이 시사합니까?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왜 위험합니까?
11 ‘바울’은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솔직하게 썼읍니다. 그들은 “듣는 것이 둔”하여졌읍니다. (히브리 5:11) 이 말은 그들의 귀가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의 영적 청각과 영적인 일에 대한 경각심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과 목적에 대해 약간 냉담해졌으며, 그들의 영적 필요에 대해 무관심하였읍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다른 사람이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묘사하기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대한 초보적인 것부터 가르쳐 주어야 할것이라고 하였읍니다.
12. (ㄱ) 영적으로 듣는 일에 둔해진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바울’은 그들에게, 초보적인 진리로 만족치 말고 회복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2 그것 곧 진리를 다시 가르치는 것이 바로 무활동이 되어 영적으로 잠든 사람들을 돕는 공식입니다. 만일 그들이 영적인 것들을 듣는 데 둔하게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아기와 같이 되어 젖만을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강한 진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히브리 5:13) 어린 아기는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아이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릇된 결정을 내리면 여호와의 은총과 생명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인내하려면 그들은 지각력과 성경을 사용하여 단단한 음식을 섭취해야 하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할 만한 근거를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인들의 경우, ‘바울’은 그들에게 진리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장성으로 매진할 것을 촉구하였읍니다. (히브리 6:1, 2) ‘바울’은 그 그리스도인들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이 떨어져 나가버린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 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 6:9-12) ‘바울’의 이러한 말은 우리에게도 대단히 격려가 됩니다.
인식을 강화함
13.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강화하기 시작하셨읍니까?
13 사도 ‘바울’이 기록한 이 편지를 살펴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정신에 영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강화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 편지의 서두, 곧 제1장과 2장에서, 사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종들에게 말씀하신 일을 언급하였읍니다. (예언자들은 흔히 천사들에게서 소식을 받았읍니다.) (갈라디아 3:19 비교.) ‘히브리’인들은 역사를 잘 알고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자기 조상들을 대하실 때에 천사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읍니다. 만일 어떤 여호와의 천사가 우리에게 직접 말을 해 주게 된다면 그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1세기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읍니다. 훨씬 더 웅대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천사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읍니다.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히브리 1:13.
14. 우리가 들은 바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여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지성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러한 위대한 진리를 인식하고 이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에 이렇게 썼읍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신세]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번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라.]” (히브리 2:1-3) 그러므로 우리가 들은 바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흘러 떠내려 가 영원한 생명을 상실할 것입니다.
15. (ㄱ) 흘러 떠내려 가는 것을 어떻게 배의 예로 설명할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어떻게 흘러 떠내려 갈 수 있는가를 설명하십시오.
15 ‘바울’이 ‘흘러 떠내려 간다’는 표현을 쓴 것은 대단히 흥미있는 일입니다. 아마 당신은 어떤 사람이 조그만 배를 타고 해변에 닿자 마자 그 배를 매어두지 않고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았을지 모릅니다. 살펴보고 있으면, 바람과 물결의 세기에 따라 배가 처음엔 서서히 흘러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배가 점차 호수 안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만일 보지 않고 있다가 한참 후에 보면, 배가 호수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흘러 떨어져 나가는 과정도 일반적으로 서서히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들은 것에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듣기에 둔하다면, 그러한 일을 당할 수 있읍니다. 영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을 잃게 됨에 따라 그 사람은 점차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되어, 아마 공부를 안하게 될 것이며, 다음에 그리스도인 집회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말해 주는 일에 비정규적이 되는 것은 쾌속정이 호수를 달리는 것 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배가 해변에서 조금씩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서서히 일어납니다. 그것은 사실상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입니다.
16. (ㄱ) 우리는 히브리 2:10, 14, 18에 언급된 바 무슨 중요한 진리를 인식해야 합니까? (ㄴ) 우리의 인내가 시험을 받을 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16 고통을 일으키고 구원을 잃게 하려는 우리의 원수는 ‘사단’ 마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마귀를 없이하실 방법은 확실해졌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수석 대행자가 되셨으며, 이 마련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셨읍니다. (히브리 2:10, 14)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구원을 위한 이 영광스런 마련을 깊은 인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고통받고 있는 ‘히브리’ 형제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시며, 그분께서도 한 때 인간으로서 고통을 받으셨음을 강조하였읍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크게 격려를 주었읍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브리 2:18; 4:15, 16)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살아 계시며, 그들이 시험을 당할 때에 도와 주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다음에 당신의 인내와 성실성이 심히 시험을 당할 때에 이 신성한 도움을 기도로 구하십시오.
[각주]
a 그리스도인으로서 인내하는 데 실패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사실이 증명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 나라의 예만 보더라도, 1970년 봉사 연도에 미국에서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일에 무활동이 된 사람이 총 13,732명이었다. 이 사람들에 대해 지방 회중 감독자들은 영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다른 4,332명은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심각하게 범하여 제명을 당하였다. 제명당하였던 사람이 회개하여 결국 회중에 다시 들어온다는 점은, 이전에 추방당하였다가 1970년 봉사 연도에 복귀된 사람이 총 1,642명이란 점에서 볼 수 있다. 1970년에 미국에서 총계 13,469명이 재활동하였다. 이 수자는 미국의 왕국 선포자 최고 수인 388,920명에 비하면 소수이지만, 그 사실로 보아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적 건강을 유지하도록 자극을 받아야 할 것이다.—디모데 전 4:16.
[198면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1920년 이래 왕국 전파자들의 증가 상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전세계적으로 동료 증인들이 증가 하도록 해 주셨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격려가 되며, 인내하도록 도움을 준다
1920 8,402
1940 74,804
1960 851,378
1972 1,596,442
[200면 삽화]
옛날에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1세기에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시어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셨다. 우리는 성서에서 그 아들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