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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행복하다’깨어라!—1972 |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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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4:13.
현 시대에도, 참 그리스도인들은 마찬가지로 행하였다. ‘왙취 타워 협회’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드’와 7명의 간부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입장 때문에, 장기간의 형을 언도받아 미국 ‘애틀란타’ 교도소에 복역하게 되었을 때에, 그 협회장은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하고 말하였다. 마찬가지로, 「1971년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을 보면, ‘쿠바’의 몇몇 증인들이 그리스도인 집회를 가졌다는 이유로 금고형을 언도받았을 때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것을 여호와께로부터 온 특권으로 생각하고, 형무소 안에 있으면서 전도하고 집회를 가짐으로써 그들의 그러한 정신을 나타냈다. 사실상 그들은 많은 수감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는 즐거움을 가졌으며, 행실면에서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답게 좋은 본을 세웠다.”
그리고 흑인 십대 증인이 있었는데, 그는 학교에서 다른 흑인들과 함께 인종 폭동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발길로 몽둥이로 수차에 걸쳐서 구타를 당하였다. 그리고는 화재 비상구로 내던지움을 당하였다. 다행히도 2층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별로 높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그러한 경험을 치른 다음, “그러한 고난을 다 겪고 나도 저는 박해가 끝날 때까지 굳게 인내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도와 주신 것을 기뻐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왜 즐거워할 수 있는가?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 여호와의 충실한 예언자들과 동류가 된다는 것은 실로 즐거운 일이다. 그들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면, 그들이 ‘다니엘’의 경우처럼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한 것처럼]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엘리야’가 한 것처럼]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삼손’과 같이]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 학대를 받았[다].” 그렇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도 충성을 입증한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과 관련을 맺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커다란 보상이며 즐거움의 원인이 된다.—히브리 11:33-37; 사사 16:18-30; 열왕 상 19:1-8; 역대 하 36:16; 다니엘 3:1-29; 6:1-27; 야고보 5:10, 11.
예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즐거워할 이유로서 말씀하신 또 한가지는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리라는 것이다. 예수의 기름부음을 받은 추종자들에게 하늘의 보상을 확약하는 이러한 말씀은 즐거움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은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서도 천적 보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도,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상을 주시기 때문에, 하늘에서 그들의 상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보상은 하나님의 왕국의 축복 가운데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다. 그들은 고대의 충실한 족장들이 행한 바와 같이, 충실한 행동을 통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고 말할 수 있다.—마태 6:19-21; 히브리 11:10, 16.
그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으면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루어졌으며, 즐거움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장차 그들이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보상을 받을 때에도 그 약속이 이루워질 것이다.—베드로 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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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촉절(聖燭節)—모순을 내포한 성일깨어라!—1972 |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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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촉절(聖燭節)—모순을 내포한 성일
● 「가톨릭 백과 사전」에 의하면, 2월 2일에 있는 성촉절은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즉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율법이 정한대로 정결의 희생을 바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누가 2:21-24; 레위 12:1-4) 얼마나 모순되는가!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였을 때에 무염원죄였다고 가르치는데, 동 교회는 ‘마리아’가 자기도 ‘아담’의 다른 모든 후손과 같이 죄가 있으며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희생을 드린 날을 기념하기 위한 성일을 제정하여 놓고 있는 것이다.—로마 3:23;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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