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를 위하여 하나의 전으로 모든 민족이 모임
1.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예수를 영적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며, 어떤 영적 성소가 이루어졌읍니까?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큰 영적 성소가 이루어졌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이제 하나님의 영적 전의 “성소”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그의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예수를 영적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아론’ 계통의 지상의 ‘유대’인 대제사장의 영광보다 더 높은 제사직의 영광을 갖게 하심으로써 그를 하나님의 영적 아들로 삼으시기 위하여 그의 영으로 예수를 낳으셨읍니다.
2. 그리하여 예수는 어떠한 상태에 있게 되셨으며, 그는 여호와의 성전 어느 부분으로 들어가실 수 있었으며, 거기에서 무엇을 하기 위하여 들어가셨읍니까?
2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느니라.]” (히브리 5:4-6)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아직 육체를 가지고 계셨지만 영으로 출생한 상태에 있게 되셨읍니다. 이 상태에서 그는 여호와의 영적 전의 성소의 실체에 들어가실 수 있었읍니다. 그 “성소”에서 그는 하나님께 향과 같은 기도와, 찬양과 봉사의 향을 바칠 수 있었읍니다.
3. (ㄱ) 여호와의 영적 전의 다른 어떤 방이 이루어졌으며, 그 안에는 어떠한 특징이 있읍니까? (ㄴ) 그리하여 여호와의 영적 전은 언제부터 기능을 시작하였읍니까?
3 또한 이제 하나님의 영적 전의 지성소가 이루어졌읍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치 시은좌 혹은 “속죄소” 위에 앉으신 바와 같이 하늘 ‘그룹’들 위에 좌정하실 하늘의 확정적인 곳이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시 80:1; 민수 7:89; 히브리 9:4, 5) 이 하늘 부분은 이제 지성소 즉 제일 안쪽에 있는 방의 성격을 띄게 되었읍니다. 여기에서 여호와께서는 마치 새 언약궤 위 속죄소 위에 좌정하시는 바와 같이 만족할 만한 속죄 제물 즉 속죄일의 큰 실체의 절정에 바쳐진 그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말미암아 기꺼이 화해하시고 노여움을 푸시고 부드럽게 되시고자 좌정하십니다. (레위 16:1-34) 그리하여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전의 실체인 큰 영적 전이 지성소와 성소의 실체 및 희생의 제단이 있는 뜰과 함께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기원 29년 ‘요단’ 강에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부터 여호와의 참 전이 온 인류에게 베풀 축복을 담뿍 가지고 기능을 시작한 것입니다.
4. (ㄱ) 여호와께서는 언제 예수 그리스도로 “휘장”을 지나 참 지성소로 들어오게 하셨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ㄴ) 언제 속죄일의 실체가 끝났으며, 어떻게 끝났읍니까?
4 이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의 참 지성소로부터 떼어논 유일한 것은 육체 기관의 간막이인 상징적 휘장 뿐이었읍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읍니다. (고린도 전 15:50) 이러한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유월절 날에 무죄한 희생물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제단” 위에서의 그의 완전한 인간 희생을 끝마치셨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으신지 3일만인 ‘니산’월 16일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혈과 육을 가진 대제사장이 아니라 신성과 불멸성을 입은 영인 대제사장으로 일으키심으로써 앞을 막은 휘장을 지나게 하셨읍니다. (베드로 전 3:18; 고린도 전 15:42-54; 베드로 후 1:4) 이제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간막이를 비유한 성전 “휘장”을 지나 가셨으므로 그가 부활되신지 40일째 되는 날 그는 하늘에 올라가실 수 있었고, 자기의 속죄의 피의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인류를 위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속죄소 앞에 제공하실 수 있었읍니다. 이 제공으로써 속죄일의 큰 실체는 끝나게 되었읍니다.
영적 제사장보들의 회중
5, 6.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반석인 자신 위에 그의 회중을 세우기 시작하셨읍니까? (ㄴ) 회중 성원들은 어떻게 영적 제사장보가 되었으며, 베드로 전서 2:5, 9에서는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5 이상과 같은 사실로 볼 때 ‘모세’가 세운 성막과 ‘솔로몬’과 ‘스룹바벨’ 및 ‘헤롯’이 ‘예루살렘’에 건축한 전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회중을 상징하지 않았음을 이보다 더 명백히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없읍니다. 그 그리스도인 회중은 예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 되는 날까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그들을 위하여 “하늘 그 자체”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후에 있었읍니다. 자신을 상징적 바위로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그의 열 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반석 위에 나는 나의 회중을 세울 것이요, ‘하데스’의 대문들이 그것을 압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 16:18, 신세) 예수께서는 이 영적 회중을 기원 33년 그가 하늘에 올라가신 후 10일째 되는 오순절 날에 세우시기 시작하셨읍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으시고 그것을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상의 제자들에게 전달하셨읍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영으로 출생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로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 되게 하였읍니다. 바로 같은 그 영으로써 그들이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영적 제사장보들이 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사도 2:1-36) 사도 ‘베드로’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 2:5, 9.
7. 영적 제사장보들로서 이들은 무슨 구역의 실체와 또한 영적 전의 무슨 방의 실체로 들어 왔으며, 이러한 곳에서 각각 무엇을 하기 위하여 들어 왔읍니까?
7 이 “신령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보들인 “산 돌들”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그들은 이러한 권고를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 3:1) 그러한 제사장보들의 집으로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베드로 전 2:5)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제단”의 실체가 놓여 있고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그들의 “영적 희생”을 바치는 뜰의 실체로 들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로서 영적으로 출생한 생태에서 그들이 첫째 방의 실체 즉 하나님의 영적 전의 “성소” 안으로 들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마치 일곱 가지가 달린 금 촛대로부터 받는 것처럼 영적 계몽을 즐기고 있으며, 진설병이 놓여 있는 금 상에서처럼 영적 양식을 먹고 있고, 안 휘장 앞에 놓여 있는 금 향단에 서서 향을 피우는 것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과 봉사를 바치고 있읍니다.
8. (ㄱ) 그러면 장막 혹은 성전의 성소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ㄴ) 제사장들의 뜰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8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전의 성소는 하나님의 영적 제사직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를 상징 혹은 전영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이 성원들이 아직 육체로 지적인 몸으로 있는 동안에도 그러합니다. 그것은 외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영적 관계입니다. 그것은 마치 휘장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그것을 분별하거나 그것을 인식할 수 없었던 바와 같습니다. 놋 제단이 있는 제사장들의 뜰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특별한 인간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의 영적 “제단”에서 섬기기에 합당치 않은 불완전하고 단죄된 죄인으로 보시지 않고 회개하고 전향하고 침례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통하여 의롭고 죄 없는 사람들로 간주하십니다. (로마 5:1, 9; 8:1; 3:24-26) 그러므로 놋 제단이 있는 전 뜰은 하나님의 영적 제사장보들의 육체적 몸에 있어서 그들의 의로운 신분을 상징 혹은 전영합니다.
9. (ㄱ)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은 어떻게 지성소의 실체에 들어가며, 속죄 희생을 가지고 들어갑니까? (ㄴ) 그들은 그 지성소에서 어떻게 섬길 것입니까?
9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함으로 그리스도 아래 있는 이들 영으로 출생한 제사장보들은 또한 성전 안 휘장으로 상징된 바와 같이 육체 간막이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은 지상에서 인간으로 죽을 때까지 그들의 영적 제사직을 수행함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그후에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는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게 즉 신성인 영적 피조물로서 그리고 불멸성과 썩지 않음을 갖게 그들을 부활시키십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육의 몸으로 [죽음을]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고린도 전 15:42-44; 로마 6:4, 5) 이렇게 해서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하나님께 아무런 속죄 희생도 바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속죄일의 실체에서 여호와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셨읍니다. (히브리 10:19-22)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과 연합하게 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수 있을 것입니다.—계시 20:4, 6.
10. 고린도 전서 3:9, 16, 1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무슨 “집”과 비교하였으며,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것으로 비교됩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 전서 3:9에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면 무슨 “집”입니까? 16절과 17절에 그 대답이 있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것은 그들이 ‘모세’가 세운 성막이나 ‘예루살렘’에 있던 전들로 상징 혹은 예표된 전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또한 그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말한 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회중을 성전이라고 한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이 상징적 전에는 다만 하나님의 영이 거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그의 영으로 거하십니다. 왜냐 하면 그 성원들은 지상에서 육체로 있기 때문입니다.
11. 터라는 문제가 어떻게 전으로서의 회중과 하늘에 있는 여호와의 전 사이의 차이를 알려 줍니까?
11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은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전으로서의 그리스도인 회중은 그리스도인들과 사도들과 예언자들 위에 세워졌읍니다. 에베소 2:20-22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12. (ㄱ) 지상의 회중 안에 무엇이 거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에 비유하였으며, 하나님의 큰 영적 전은 어디에 있읍니까? (ㄴ) 지상에 있는 참 하나님의 “전”으로서, 회중은 그 안에서 무엇이 허락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까?
12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장보들의 연결되어 조직된 몸 안에 거하기 때문에 이 회중을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신 곳은 그의 더 큰 영적 전의 천적 지성소입니다. 아직 이 땅에 있는 성전 반열은 큰 영적 전의 “성소” 안에 있읍니다. 이 영으로 출생한 회중은 여호와께서 그의 영으로 거하실 지상의 전으로 비유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종류의 우상 숭배나 거짓 신의 숭배가 허락될 수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오?” 하고 질문한 다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린도 후 6:16.
숭배자들로 가득찬 전 뜰
13. 영으로 출생한 회중이 땅에서 떠나갈 때, 전의 한 방으로 상징된 바와 같이 어떤 상태를 지나갈 것입니까?
13 성전으로 비유된 이 영으로 출생한 회중은 거룩하게 취급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때가 되면 이 회중은 땅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떠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로 상징된) 영적 제사장보들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는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은 육체로 죽고 영으로 부활됨으로써 (성전의 안 휘장으로 상징된) 육체 간막이를 지나 하늘의 지정소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4. 계시록 21:1, 2에서 144,000명 제사장보들의 회중은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서 어떻게 상징되어 있읍니까?
14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144,000 제사장보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신 그 지정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될 때 그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거룩한 특권일 것입니까!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긴 제사장보들의 경우에서 상징되지않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서 마지막 책에 아름답게 상징되어 있읍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밑에서 섬기는 144,000 제사장보들의 회중은 결혼식 날의 그의 신부로 비유되어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은 아름다운 문체로 이 종합체인 신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시 21:1, 2.
15. 전 건물을 가지고 있는 점에 있어서 고대 지상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비교됩니까?
15 우리는 고대 지상 ‘예루살렘’이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에게 멸망될 때까지 거기에는 웅대한 전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기원 70년에 고대 ‘예루살렘’의 전이 멸망된지 약 26년 후에 사도 ‘요한’이 환상에서 본 이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어떠합니까? ‘요한’은 계속해서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관해서 우리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더라.]”—계시 21:22-24.
16. 새 ‘예루살렘’에서 144,000명 제사장보들이 있을 전 건물이 필요치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여호와께서 친히 그 전이십니까?
16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성전 즉 144,000 제사장보들이 섬길 특별한 건물이 있어서 하나님께 중간 건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거룩한 봉사를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읍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계신 앞에서 “그의 얼굴을 볼터”인데 그렇게 해야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계시 22:4)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새 ‘예루살렘’의 전이십니다. 하늘의 새 ‘예루살렘’이 전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전이십니다. 그분은 하늘 도성의 전의 자리를 채우시고 그 자리를 차지하십니다. 그분이 영으로가 아니라 친히 거기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은 새 ‘예루살렘’의 거민인 144,000 제사장보들이 그를 간접적으로 숭배하고 섬겨야 할 특별한 건물의 필요성을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아래 직접 그분에게 거룩한 봉사를 드립니다.
17. 어떻게 어린 양 역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의 전이십니까?
17 그렇기 때문에 어린 양도 여호와와 함께 새 ‘예루살렘’의 성전이 되십니다. 계시록 21:22에서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니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영적 전의 지성소에 친히 계십니다. 그분은 이미 하나님께 속죄일의 실체에 속죄 제물을 직접 바치셨읍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여호와의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18. 여호와의 영적 성전 어느 구역에서 백성들이 속죄일로부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며,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속죄일에 누구를 위하여 희생을 바쳤었읍니까?
18 성전의 성소로 상징된 144,000 제사장보들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가 더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큰 영적 전의 지상 뜰은 그대로 계속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속죄일로부터 혜택을 받을 지상 백성들은 이 성전 뜰에서 그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다행히도 속죄일의 속죄 제물이 단순히 제사장 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전에서 여호와를 숭배하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바쳐졌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19. (ㄱ) 예언자 ‘스가랴’는 “그 날에” 누가 여호와께 가담하여 그의 은혜를 구할 것이라고 하였읍니까? (ㄴ) 그러한 일의 마련이 있는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던 ‘헤롯’ 성전에는 어떠한 뜰이 더 있었으며, ‘솔로몬’은 성전을 준공 하였을 때 어떤 비-‘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읍니까?
19 하나님의 예언자 ‘스가랴’가 기원전 6세기에 ‘예루살렘’의 전을 재건한 것과 관련하여 예언할 때 그는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오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스가랴 2:11; 8: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그를 숭배하기 위하여 올 것이라는 이 예언과 일치하게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세웠던 성전 대신 ‘헤롯’ 왕이 세운 성전에는 제단이 있는 제사장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과 여인들의 뜰뿐 아니라 또한 이방인 즉 비-‘이스라엘’ 사람들의 뜰이 더 있었읍니다. 이보다 수 세기 전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처음 성전을 준공하였을 때에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숭배하기 위하여 먼 나라에서 오는 외국인들을 위하여도 기도하였읍니다.—열왕 상 8:41-43; 역대 하 6:32, 33.
20. 특히 언제부터 ‘스가랴’의 이 예언이 성취되어 왔으며, 왜 우리는 그때부터 그것을 보아 옵니까?
20 ‘스가랴’가 오래 전에 예언한 바는 이미 우리 시대 특히 기원 1935년 이래 성취되고 있읍니다. 즉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성소에서 섬기고 있는 영적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이 이 땅에 아직 있을 때에 성취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 땅 사방에서 여호와의 하나의 영적 성전 뜰로 모여들고 있는 외국인들의 “큰 무리”가 아직 땅에 있는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과 접촉하고 교제할 수 있읍니다. 기원 1935년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이 아닌 숭배자들의 “큰 무리”가 성전으로 오고 있음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해였읍니다. 왜냐하면 잊을 수 없는 그 해에 “큰 무리”에 관한 계시록 7:9-17의 예언이 그 당시 실증에 의하여 설명되었기 때문입니다. (파수대(영문) 1935년 8월 1일, 15일호 참조)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을 「계시록」에서 조사해 볼 때 우리는 마치 숭배자들의 국제적 “큰 무리”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초막절의 실체를 축하하고 있음을 보는 느낌입니다.
21. ‘요한’은 계시록 7:9-15에 있는 “큰 무리”를 어떻게 묘사합니까?
21 ‘요한’은 그가 본 환상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계시 7:9-15.
22. (ㄱ) 하나님의 영적 성전과 관련해서, 이 “큰 무리”는 어디에서 밤낮 그를 섬기고 있읍니까? (ㄴ) 요한의 환상은 영적 성전이 어떻게 “큰 환난”을 살아 남았음을 알려 주며, 거기에서 “큰 무리”는 어떠한 유익을 얻습니까?
22 이 아름다운 환상은 국제적 “큰 무리”가 여호와를 그의 성전에서 섬기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즉 “이방인의 뜰”에서 섬기는 것처럼 영적 ‘이스라엘’이 아닌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된 지상의 뜰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의 환상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 큰 영적 성전은 이 마지막 날의 “큰 환난”을 살아남았읍니다. 이 “큰 무리”가 “큰 환난”을 살아 남았고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마치 초막절에 백성들이 종려 가지를 흔든 전통적 종려 가지 절기(‘룰라브’a)와 같이 종려 가지를 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희생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구원의 은혜를 돌리며, 이제 그들은 행복한 끝 없는 생명과 낙원이 된 땅에 있을 하나님의 새 사물의 질서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향하여 가고 있읍니다. (계시 7:16, 17) 그들은 여호와의 큰 속죄일에 마련된 속죄 제물의 혜택을 감사함으로 받아 드립니다.—레위 16:1-34.
23. (ㄱ) 천년간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아래 영적 성전의 지상 뜰에 모여들 사람들은 왜 “큰 무리”만이 아닐 것입니까? (ㄴ) 이들은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지키는 일에 가담해야 할 것입니까?
23 그러나 현 사물의 제도를 끝나게 할 “큰 환난”을 살아남은 이들만이 구원의 이 뜰로 모여들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하늘 영역에서 144,000 영적 제사장보들과 함께 하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천년 동안에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사도 24:15, 신세; 계시 20:4, 6, 11-14) 이들 모두는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뜰로 와서 그를 섬기는데 가담할 것이며 또한 초막절의 큰 실체를 지킬 것입니다. 이 길 외에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받을 수 없읍니다. ‘스가랴’ 예언의 마지막 여섯 귀절들이 그 점을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열망하는 부활된 모든 자들은 영적 성전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지 않으면 안되며, ‘초막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운 때가 될 것입니다!—스가랴 14:17, 18.
24. (ㄱ)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느 전을 인정하시며,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생명을 얻으려면 모두 어느 전으로 와야 합니까? (ㄴ) 지금 무슨 사건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이미 뜰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특권입니까?
24 지금 여호와의 영적 성전 뜰에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전망도 매우 복됩니다. 우리 중 얼마가 제사장들의 안쪽 뜰에 있든지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아닌 숭배자들의 뜰에 있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만이 모든 민족의 백성들이 깨끗한 숭배에 참예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와야 할 유일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지금 살아 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찾는 모든 자들을 모으기 위하여 열려져 있읍니다. 이것은 이 놀라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참으로 큰 사건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이 좋은 소식을 “큰 환난”이 오기 전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 뜰에서 그를 섬기는 우리 모두의 웅대한 특권입니다.
[각주]
a ‘허버트 단비’ 저 The Mishnah(1933년 판) 178면 5, 6 및 7항 참조.
‘에이. 에더솨임’ 저 「성전」(The Temple)(1874년 판) 238, 242면 참조.
‘맥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 제10권 148면 “21st of Tishri” 난하 마지막 항목 참조.
[165면 네모와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헤롯’이 재건한 성전(평면도)
‘티로피안’ 골짜기
문
성벽
문
문
행각
이방인들의 뜰
왕의 행각
문
문
성벽
‘기드론’ 골짜기
동쪽으로 감람산
미문
‘솔로몬’의 행각
바깥 뜰
돌담
여인들의 뜰 5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들의 뜰 3, 4
성전 1, 2
북쪽 행각
문
1. 지성소
2. 성소
3. 번제단
4. 놋 바다
5. 성전 안 문
예언적 의미
지성소: 여호와께서 친히 보좌에 앉아 계신 하늘의 확정적인 구역
성소: 예수 그리스도와 144,000명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육체로 있는 동안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
휘장: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간막이인 휘장은 지상의 제사직을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분리하는 육체 간막이를 상징하였다
제단: 예수의 완전한 인간 희생을 기꺼이 받아 드리심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
제사장들의 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적 제사장보들의 육체로서의 그들의 의로운 신분
이방인의 뜰: 하나님을 올바로 숭배하기 위하여 모든 인류가 와서 가져야 할 의로운 신분
[161면 삽화]
기원 29년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을 때, 하나님의 큰 영적 전이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