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차림이 중요한가?깨어라!—1977 | 12월 22일
-
-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마태 5:19) 예를 들어, ‘이스라엘’인이 술달린 옷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술없는 옷을 입기를 고집하였다면, 그것은 반항적인 독립 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거만한 태도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의복에 대한 세밀한 규율을 가진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구체적인 법규보다도, 무엇이 합당한가에 대한 감각 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따라, 그들은 동료 인간의 선한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고린도 전 10:23, 24; 고린도 후 4:1, 2 비교.) 그렇다. 그들의 균형잡힌 사고와 사랑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 그들의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유쾌한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을 앞세우지 않게 할 것이다. 어느 때에도 그들의 옷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의심스럽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증거할 때 옷차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충고하였다.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겸손과 건전한 정신으로, 신세] 자기를 단장하고 ···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디모데 전 2:9, 10) 동일한 원칙이 그리스도인 남자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옷은 지나치게 화려하여 개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끌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너절해도 안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 그리스도인이 수수하고 경우에 맞는 방식으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정신 즉 옷의 선택에 있어서 이치적이고 바람직한 사고의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숭배의 시간에는 그리스도인의 옷차림이 거룩한 봉사의 존엄성과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만일 관심자가 그리스도인 집회에 나오기 시작하면, 그들도 그들의 외모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게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정신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옷차림을 근거로 그들이 진리를 듣기에 합당한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할 것이다. 제자 ‘야고보’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야고보 2:2-4.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더러운 옷”을 입고 집회에 계속 올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겸손하고 단정한 옷을 살 능력이 없다면, 그의 형제들이 그를 도울 것이다. (야고보 2:14-16 비교.) 그러므로, 비천한 환경에 있다 해도 그는 그의 하나님을 호의적으로 반영하는 옷을 입을 것이다.
그러므로, 옷차림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다. 그들은 결코 아무에게도 겸손과 건전한 정신을 의문시할 타당한 이유를 주지 않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
-
붐비는 땅깨어라!—1977 | 12월 22일
-
-
붐비는 땅
◆ 일본의 인구는 1억 1천만여명이다. 그러나 6천 4백만명(근 60‘퍼센트’)이 육지면의 불과 2‘퍼센트’ 조금 넘는 지역에 살고 있다. 그들은 동경, ‘오오사카’ 및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가 가장 조밀한 곳은 ‘사이타마’ 현 ‘히다카’인데, 그곳에는 1평방 ‘킬로미터’당 59,230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