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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비는 당신의 모든 죄를 덮어 주는가?파수대—1974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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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9:27; 15:22; 17:15; 마가 5:18, 19; 누가 17:12, 13)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면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어 그러한 사람들을 고쳐 주셨읍니다. 그것도 기계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하신 것이 아니고 “측은히 여겨” 그렇게 해 주셨읍니다.—마태 20:33, 34, 새번역.
15.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비교하였읍니까?
15 이 사실은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의 경고 곧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는 말의 뜻을 더욱 깊게 해 주지 않습니까? (야고보 2:13, 새번역)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매우 광범하기 때문에 우리는 동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의 자비가 비교적 적을지라도 그렇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 1서 4:7-11.
하나님의 자비는 얼마나 광범한가
16.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자비에 비하면 어떠합니까?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8:23-35에서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16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게 보일지 모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범죄 혹은 약점 같은 것이 매우 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나타내고 자비를 보이라는 이 말씀을 무시하고 예수께서 그러한 “극도의” 잘못을 덮어 주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고 자기를 합리화하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나타낼 수 있는 어떤 사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 5:8) 우리가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용서해야 할 죄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죄는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대속의 길을 마련해 주신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자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자비없는 사람들에게는 미칠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할 것이 있읍니까?—골로새 3:13; 또한 마태 18:23-35.
17. 우리는 헌신하였을지라도 어떻게 심판을 받을 수 있으며, 그러나 ‘야고보’는 다시 무슨 확신을 줍니까?
17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매우 심중히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나의 모든 죄를 덮어 주는가?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그 점을 물 침례로 나타냈으며, 선한 양심을 간구하였는데도,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지 않은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가? (고린도 전 13:1-3)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이 ‘야고보’는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하고 경고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야고보’는 이어서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라는 말로 위안이 되는 확신을 주었읍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어떻게 이깁니까? 그리고 우리가 ‘심판 날’ 전인 지금 자비를 나타내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로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합니까?
18. 무슨 자비의 본을 고려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은 누구의 본을 따른 것이며, 무슨 면으로 그러하였읍니까?
18 문자 그대로 자비를 온전히 나타낸 탁월한 본 한 가지는 ‘야곱’의 사랑받은 아들 ‘요셉’의 예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비를 나타낸 점에 있어서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본을 따른 것이었읍니다. ‘요셉’이 그 당시에 여호와께서 그 자신과 그 아버지의 집에 나타내신 자비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는 성서가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여호와의 구출에 전적으로 의지하였으며, 여호와의 지시를 따르고 또 자기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배운 여호와의 의로운 요구 사항을 굳게 고수하려는 결의에 있어서 절대 흔들리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요셉’이 극도의 난관에 처하면 그를 위한 여호와의 자비가 언제나 그를 구원해 주었으며, 얼마 후에 그는 그 당시 세상에서 두번째로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그 지위는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자기를 학대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만한 지위였읍니다. 혹은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그들에게 커다란 축복을 줄 수도 있었읍니다. ‘요셉’이 잘못을 범한 자들에게만 아니라 난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감정이입을 나타낸 점에 있어서 자비를 어떻게 나타냈으며, 이 실화가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 주는지 등을 다음 기사에서 살펴보겠읍니다. 다음 기사를 고려하기 전에 창세기 37장부터 47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매우 흥미를 느끼고 많은 점을 배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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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가?파수대—1974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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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가?
1. 현 세대의 자비의 광범한 결핍은 왜 핑계가 되지 않습니까?
편협하고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서 자비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참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 9)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권면하셨읍니다. (누가 6:36) 그러니 백성들과 나라들의 수많은 의심, 경쟁심, 증오심으로 인해 유발되는 상호 적대적인 상태는 현세대의 치욕입니다.
2. 하나님의 자비는 어떤 사람들에게만 미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잠언 28:27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이 점으로 보아서 ‘못본 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감상주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언제나 공의, 거룩함 등 하나님의 다른 특성과 의로운 표준에 조화됩니다. (호세아 2:19) 하나님의 자비를 당연히 받을 것으로 전제하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자비를 보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쓰라린 실망을 당할 것입니다. 자기의 행동과 생활로 하나님의 의로운 길에 대해 고의로 불경을 나타낸다면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이며, 참 하나님께서는 정당하게 ‘노하심으로 그 자비를 막으’실 것입니다.—시 77:9; 로마 2:4-11.
3. 우리 자신의 자비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어떤 질문들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3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말은 건전한 경고가 되며 동시에 위안이 됩니다.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당신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당신은 자신에게 저지른 다른 사람의 범죄를 용이하게 보아넘길 수 있읍니까? 아니면, 그러한 문제를 머리에서 지워버리기가 어렵습니까? 당신은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능동적으로 의식하고 있읍니까? 아니면, 그러한 일을 항상 당신에게 일러 주어야만 합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읍니까? 아니면, 진실하고 순진한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읍니까? 당신은 탁월한 사람이나 어느 면으로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친절한 경향이 있읍니까? 아니면, 엄격히 영적인 특성에 참다운 기쁨을 느낄 수 있읍니까?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에 비추어 자신을 저울질 해 볼 때 당신은 자비가 부족함이 나타날 것입니까? 결과는 중대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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