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야고보 2:14.
1. 믿음의 정의는 무엇이며, 그 정의 가운데 어떠한 개념이 내포되어 있읍니까?
믿음에 대해 말을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믿음은 바라는 사물의 보증된 기대이며,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실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히브리 11:1, 신세) 보증된 기대는 뒷받침해주는 것이 있는 기대입니다. 거기에는 이 기대가 보증이 되어 있으며, 장차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바라는 것들에 대한 권리 증서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또한 자기의 약속에 대한 충실성 혹은 임무에 대한 성실성도 내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충성을 나타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길에 일치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고하고자 할 것입니다.—시 145:10, 11.
2, 3. (ㄱ) 무엇이 참 그리스도인 믿음을 형성합니까? (ㄴ) 예수의 제자들은 그 참 믿음을 얼마나 전파하였읍니까? (ㄷ) 사도 ‘바울’은 그 참 믿음을 확장시키는 일을 얼마나 하였읍니까?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그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 세기에 걸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 내려온 가르침이 참 그리스도인 믿음을 형성합니다. (에베소 1:15-17; 4:5) 그리스도교의 초창기,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가르침받은 점들을 전파하였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믿었읍니다. 제자들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이 사업을 중점적으로 행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 6:7) 제자들이 전파하였던 이 좋은 소식은 널리 확장되었으며, 그 좋은 소식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널리 알려졌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로마 1:8.
3 ‘바울’은 참으로 복음 전도자, 좋은 소식의 선포자였읍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곧 형주에서 죽으심으로써 세상죄를 제거할 수단을 마련하신 분에 대하여 배웠으며, 예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되셨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그 점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수천리를 여행하면서, 그것도 걸어다니면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였읍니다. ‘바울’은 선교인으로서 새로운 구역을 개척하였으며,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믿음의 기초가 되는 소식을 전해 주었읍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
4. ‘바울’이 선포하였던 “믿음의 말씀”은 무엇이었으며, 그는 그것을 선포하는 일을 어떻게 하였읍니까?
4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고백, 신영성]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 10:8-10) ‘바울’은, 회당에서, 강변에서, 학교에서, 감옥에서, 개인 집에서, ‘유대’인, 희랍인 등 모든 민족에게, 그리고 크고 작은 여러 집단에게 연설을 하였읍니다. ‘바울’이 전해 주었을 때에 “말씀”이 그들 가까이에 와 있었으며 매우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입으로 그것을 반복하고 자기들의 마음에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고 그러한 믿음을 마음으로 실천하였읍니다.
5.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갖게하는 믿음의 표현을 위하여는 누구에 대한 믿음이 포함되어야 합니까?
5 ‘바울’은 ‘의에 이르는 믿음’에 관하여,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로마 9:30, 31) ‘바울’의 복음 전도 활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방인들이 의를 얻은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여러 도시에서 행한 가르침을 통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을 전해 주었읍니다. 이들도 의 곧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하는 의를 얻었읍니다. ‘바울’이 지적한 것을 보면,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 노력하였던 ‘유대’인들은 의에 이르지 못하였읍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 하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 9:32, 33.
6. (ㄱ) 왜 ‘유대’ 민족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배척하였으며, 그러므로 ‘예수는 주’라는 말씀이 누구에게 선포되었읍니까? (ㄴ) ‘바울’이 말한 “믿음의 말씀”은 무엇에 근거하였읍니까?
6 ‘유대’인에게 주어진 율법은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읍니다. 그것은 그들을 메시야에게로 데려다 주며, 메시야가 오실 때에 그를 알아보고 그분을 자기들의 선생과 주로 받아들이도록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갈라디아 3:24)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운 법이 그들에게 밝혀주었던 분 곧 하나님의 아들에게 걸려 넘어졌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말씀” 곧 ‘예수는 주’라고 하는 소식이 ‘유대’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고 있었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이 “말씀”은 각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르렀읍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각 개인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그 “말씀”이 참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면 그는 믿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웅대한 약속을 수행하실 것으로 믿을 것입니다. (고린도 후 1:20) 그러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식,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마련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읍니다. ‘바울’은 이 점을 사람들에게, 특히 그 당시 ‘로마’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하였읍니다. ‘바울’ 시대에, 하나님께 헌신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기본 진리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어야 할 경우가 있었읍니다. ‘바울’은 “믿음의 말씀”을 선포하였읍니다. 그 믿음은 무엇에 근거하였읍니까? ‘바울’은 매우 뚜렷한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1,900년 후에 사는 우리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말씀”을 듣고,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주이심과, 그분이 희생의 죽음으로 인류를 사셨으니 그분이 그리스도인들의 소유주임을 인정해야 하고,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물론 당신은 이들 두가지 점에 대한 증거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한 점들은 구원을 얻는데,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필수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 후 5:14, 15.
7.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신분에 대하여 무엇을 인정하였으며,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읍니까?
7 19세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와 동행하였던 제자들은 강한 믿음을 쌓을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가졌었읍니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인간으로 지상에 계시던 때에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그분이 부활되신 후에도 접촉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는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고 말하였읍니다. (마태 16:15, 16) 그러나 이 점에 대하여 믿음이 없던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대답을 할 수 없었읍니다. 마태 복음 22:41-46에 있는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여호와]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더라.]”
8, 9. (ㄱ)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에 관해 무엇을 고백해야 하며, 그들이 그것을 참으로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야 합니까? (ㄴ) 그 다음 자기의 믿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무슨 단계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8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날, 이 “주”가 누구이며 그분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사도 2:36)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주이심을 자기들의 입으로 고백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것은 단순히 입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바와 같이, 예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주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태 7:21; 요한 15:8) 그리스도인들은 또 다른 것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에 의해 죽음으로부터 부활되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오순절 날에 확언하였읍니다. 그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사도 2:32) 그러면 당신은 ‘바울’과 ‘베드로’가 말한 이 두가지 기본적 사실을 믿습니까? 즉 “예수를 주로” 인정하며,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 것을 믿습니까? 만일 믿는다면, 그 믿음에 대하여 당신이 해야할 일이 있읍니다. 곧 그 믿음을 당신의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받으라고 권고하였읍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사도 2:40, 41.
9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3,000명 가량이나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회중에 들어왔으며, 그들은 계속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였고, 그들은 직접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였읍니다.—마태 28:19, 20; 사도 8:1, 4.
10. (ㄱ) 사도 ‘바울’은 어떻게 ‘로마’ 회중이 열성적인 활동을 하도록 격려하려고 하였읍니까? (ㄴ) 그러면 그들은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였으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무슨 본을 세워야 하였읍니까?
10 여러 해 후, 곧 기원 56년 경에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를 썼읍니다. 그 회중은 아마 ‘로마’ 출신 ‘유대’인이나 ‘유대’교 개종자로서 기원 33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에 의해 설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아마 기적적으로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2:1-5, 10) 이제, 23년이 경과하였읍니다. 그 동안 ‘바울’은 이방의 사도가 되었으며, ‘로마’에 있는 회중에 관심을 가지고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더욱 광범하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더욱 촉진시키려고 하였읍니다. 침례 전에 그들이 믿음으로 고백한 점들은 침례 후에도 공개적으로 선포되어 다른 사람들도 믿을 수 있게 해야 하였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고백, 신영성]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 10:9) 그들이 이것을 참으로 믿었다면, 그들은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렬히 전파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믿음을 입증해야 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참으로 주라고 믿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여 믿음을 입증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반드시 예수께서 하나님 다음가는 둘째 자리로 높아지셨다는 사실과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믿고 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빌립보 2:9-11) 우리도 우리 자신이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을 믿으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음과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편지에서 자신이 그 점을 확신하고 있음을 나타냈으며, 자기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도 예수께서 주이심과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고 설득시키려고 하였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자는 이긴 자입니다. 그는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11, 12. 로마서 10:10은 참 믿음이 깊이 뿌리박혀야 함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11 ‘바울’은 예수께서 주이시며 부활이시라는 이 두가지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믿음은 피상적이 아니라 깊이 뿌리박혀야 합니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고백, 신영성]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로마 10:10.
12 오늘날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전세계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읍니다. 수백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배우고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실천하는 행동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말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13.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마침내 어떠한 믿음의 길을 따르게 되었읍니까?
13 예수의 이부 동생이었던 제자 ‘야고보’는 틀림없이 그의 형의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지상봉사 기간에 그가 예수를 따랐다는 증거는 없읍니다. ‘야고보’는 아마 예수를 “미쳤다”고 말한 친척중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가 3:21) 그러나 아마 이 ‘야고보’가 바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분을 본 ‘야고보’인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고]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다고 썼을 때에, 그를 염두에 두고 썼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6, 7) 그러므로, 이 ‘야고보’는 예수께서 죽으신 후 그리고 기원 33년 오순절 이전에, 그의 어머니와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였을 것입니다. (사도 1:13, 14) 그는 예수께서 주이심을 믿게 되었으며, 또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신 것도 알았읍니다. 후에 ‘야고보’는 그리스도 예수의 탁월한 추종자가 되었으며, 여러 해 후에는 장로의 회가 ‘예루살렘’에 모여서 모든 회중을 위하여 문제를 결정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사람이었읍니다.—사도 15:6, 13.
14. (ㄱ)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ㄴ) 우리는 예수께서 현재 사람들을 생명과 사망에 처할 두가지 반열로 분류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어떠한 말씀을 알고 있읍니까?
14 ‘야고보’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매우 강력한 내용의 편지를 썼으며, 이 믿음이라는 문제를 다루었읍니다. 그도 믿음을 ‘바울’과 같은 각도로 보았읍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야고보 2:14) 만일 자기 믿음을 뒷받침할 행함이 없다면 자기 믿음을 자랑할 근거가 전연 없읍니다. 사실상, 믿음이 있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적절한 행함이라는 이 중요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야고보’는 회중에게 이러한 질문을 제시하였읍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야고보 2:15, 16) 말로 표현된 소원이 진정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느니라.] ···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 25:31-40.
15, 16. (ㄱ) 마태 25:36에 나오는 “벗었”다는 단어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예수의 “형제”들에게 말로만 ‘평안하시오’라고 하지 않고 실제로 착한 일을 할 수 있읍니까?
15 어떤 사람이 문자 그대로 벌거벗은 상태에 있어야만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신세계역 마태 복음 25:36의 각주에는 이러한 설명이 있읍니다. “혹은, ‘충분히 옷입지 않았을 때에’; 이 표현의 원어는 일상 언어에서 ‘옷을 적게 입은, 속옷만 입은’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꼭 벌거벗은 것이 아니라 옷을 허술하게 입은 것을 의미한다.” 그 사람이 벌거벗었든지 허술하게 입었든지 간에, “나그네”의 딱한 처지를 보고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고 말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께 직접 그러한 도움을 베풀 수는 없지만 그분의 “형제” 곧 현재 지상에 살아 있는 영으로 기름 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그러한 도움을 베풉니까?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함을 당신이 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읍니까?—마태 10:41, 42.
16 ‘야고보’는 행동의 뒷받침이 없는 말은 가치가 없다고 지적하였읍니다. “더웁게 하라”는 말만으로는 그리스도인 형제나 자매를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다른 번역판에서는 ‘야고보’의 말을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에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여러분중 어떤 사람이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읍니까?” (공동 번역) 만일 어느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에게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말로만 ‘평안하시오’ 하고 그의 몸에 필요한 것을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보다는, 약간 노력을 들여서 그에게 필요한 것을 실제로 주어 몸을 따뜻하게 하도록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믿음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17. 야고보 2:18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17 ‘야고보’는 계속하여,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야고보 2:17)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야고보’는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이렇게 말합니다.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 2:18) 여기서 논하고 있는 요점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율법에 입각한 행함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인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하고 살아있는 믿음과 죽고 생명없는 믿음을 대조 설명한 것입니다. 다른 번역판에서는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믿음이 있지만 내게는 행동이 있소. 나는 내 행동으로 내 믿음을 당신에게 보여줄테니 당신은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내게 보여주시오.’”—공동 번역.
18, 19. (ㄱ)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참다운 믿음이 없다는 어떤 증거가 있읍니까? (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활동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무엇이라고 하였읍니까?
18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이 전연 행함이 없이 자기 믿음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나타내되,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사용함으로써 자기의 믿음이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산 믿음, 생산적인 믿음임을 나타내야 합니까? ‘야고보’는 행함 곧 행동이 우리의 믿음의 증거라고 설명하였읍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이 누구인가? 그는 무슨 일을 하셨는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 하고 물으면 대화가 끊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이 없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라는 것에 대한 보증된 기대”가 없읍니다. 그들은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실체의 명백한 증거”를 모르고 있읍니다. (히브리 11:1, 신세)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 하고 물으면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분이 부활하신 주이며, 하늘에 살아 계셔서 큰 권능을 받고 왕으로 통치하시고 얼마 안가서 악한 사물의 제도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온 기도 곧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온전히 실현시킬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마태 6:10)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믿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야 할 입장이 되면 당황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성서적 증거로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읍니다. 사실상, 그들은 예수가 주이심과,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음과, 그가 하나님의 왕국의 왕이 되셨으며, 모든 인류를 축복하기 위해 하늘 보좌에 앉으셨음을 믿지 않습니다. 당신은 믿습니까?
19 ‘야고보’는 제1세기에 하나님의 회중에 속해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 그들중에 살아있는 믿음,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참다운 사랑을 나타내도록 움직이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도록 움직이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있음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말하였읍니다. (야고보 2:19) 왜 ‘야고보’는 그런 말을 하였읍니까?
20, 21. 악귀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그러나 대홍수 때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왜 그러하였읍니까?
20 그는 악귀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였읍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보아도, 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창세 6:1, 2) 이들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 피조물들로서 화신한 자들이었읍니다.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이들 타락한 천사들은 부패하여 지상에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그들의 잡종 자손들인 “용사”들은 틀림없이 그 당시 땅에 가득하였던 ‘폭력’을 크게 조장하였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시고 ‘노아’와, 그의 아내와 그의 세 아들과 며느리들만 보존시키셨읍니다.—창세 6:4-7, 11-13.
21 홍수의 물이 쏟아졌을 때에 그들 화신한 천사들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들은 할 수 없이 영계로 돌아갔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탈하였던 이전의 임명된 자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읍니다. ‘유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느니라.]” (유다 6) ‘야고보’는 이 천사들을 귀신들, 곧 악귀들이라고 하였읍니다. 이 악귀들은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으나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않았읍니다.
22, 23. 악귀들이 그리스도 예수도 알고 그의 능력도 인정하였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22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도 알았읍니다. 그러나 그분의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는 ‘가다라’ 지방에 계시던 때에 묘지에서 나오는, 귀신 들린 두 사람을 만났읍니다. 이 사람들은 비상하게 포악하였기 때문에 감히 그 길로 지나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었읍니다. 그 악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았읍니다.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오셨나이까? 하더[라.]” 그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 악귀들을 그 사람들에게서 쫓아내시자 악귀들은 돼지 떼에게 들어갔읍니다.—마태 8:28-32.
23 그들 악귀들이 하나님이 존재하심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알고 떨었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느니라.]”—베드로 후 2:4.
24. 그러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24 이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귀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명백합니다. 그들은 반역자들이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에게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믿음이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들은 악귀들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읍니다. 악귀들은 하나님을 적대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우주에서 차지하고 계신 지위를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에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또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함은 어디 있읍니까? 그들의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산 믿음의 증거
25. (ㄱ) 우리 각자는 이제 무슨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까? (ㄴ)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5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 2:20) 헛것은 아무 것도 낳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생산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그것은 행함이 있읍니까? 그것은 어떤 것을 생산해냅니까? 당신은 자신이 믿는다고 공언하는 내용에 일치하게 생활합니까? 당신의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를 삼도록 도움을 줍니까? 당신은 왕국 관심사를 증진시킵니까?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야고보’는 하나의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 대해 말하였읍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야고보 2:21-24) 당신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읍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생명 자체보다 중요시하는 그러한 믿음이 있읍니까?
26. (ㄱ)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얼마만한 믿음을 보였읍니까? (ㄴ) 우리 각자는 어떠한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까?
26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믿음에 관해, “믿음은 바라는 사물의 보증된 기대”라고 하였읍니다. 그도 역시 ‘아브라함’에 관하여 썼으며, ‘아브라함’을 실제 본으로 사용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히브리 11:8-12) 우리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믿음 곧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평생동안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물질적 안일을 뒤에 버리도록 그를 움직였읍니다. 당신의 행함도, 마찬가지로, 당신이 하나님의 왕국을 재물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읍니까?—누가 12:29-31.
27. ‘노아’는 자신이 활동적인 믿음의 사람임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7 또 다른 사람으로, 세계적 홍수 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련을 가진 일을 목격한 사람이 있읍니다. ‘바울’은 그 사람도 참 믿음을 나타낸 사람의 예로 설명하였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브리 11:7) 방주를 짓는 일이 기적에 의해 완수된 것은 아닙니다. ‘노아’는 나무를 베고 다듬어 여러 부분을 짜 맞추었읍니다. 방주의 안팎을 역청으로 발랐읍니다. (창세 6:14) 이 방주는 조그마한 것이 아니라, 길이가 약 135‘미터’, 폭이 약 22.5‘미터’, 높이가 13.5‘미터’였읍니다. 이 거대한 상자 모양의 건물을 메마른 땅에서 건축하였읍니다. 성서는 또한 그 방주를 탄 매우 흥미있는 승객의 명단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들과 자부들 외에도 ‘노아’는 다른 동물들을 방주 안으로 이끌어들이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 6:19-22) ‘노아’는 자기의 믿음을 증명할 만한 행함이 있었다고 할만합니까?
28. ‘모세’는 활동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거절하였읍니까?
28 성서의 독자들이 성경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사람이 있읍니다. 그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를 가졌음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느니라.]”—히브리 11:24-29.
29. 두 정탐군들에게 ‘라합’이 한 일은 그가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9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논하기 위하여 ‘바울’처럼 많은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 형제 자매들에게 단지 ‘아브라함’과 ‘라합’에 대해서만 말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 2:25)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나라에서 자랐읍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큰 일에 대해 듣고 그분에게 믿음을 두었읍니다. ‘바울’도 ‘야고보’처럼 ‘라합’을 믿음의 본으로 말하였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브리 11:30, 31) ‘라합’은 정탐군들이 자기 집에 와서 한 말을 믿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행동하였읍니다. 그는 정탐군들을 숨겨주고 도망하도록 협조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자기 가족을 안전한 장소로 모았읍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말이 참말이라고 믿었읍니다.
30, 31. ‘야고보’는 몸과 호흡, 그리고 믿음과 행함 사이를 어떻게 연관시켰으며, ‘야고보’의 말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30 ‘야고보’는 “영혼[호흡, 신영]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말로 믿음에 대한 그의 설명을 끝마쳤읍니다. (야고보 2:26) 옛날에는 어떤 사람에게 호흡이 끊어졌는가를 확인하려면 유리나 거울을 그 사람의 입과 코에 가까이 가져다가 대 보았읍니다. 그 몸에 호흡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증거를 유리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호흡의 증거가 전연 없으면 그 사람이 죽었다고 결정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몸을 비유로 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공언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몸에 호흡이 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면, 즉 믿음을 뒷받침할 행동이 없으면, 그 사람의 믿음은 생명없는 시체와 같습니다.
31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 할 점은, ‘야고보’가 그리스도인들 곧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침례받았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행동하도록 격려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가 믿음에 대한 설명을 무슨 말로 시작하였는가 잊지 마십시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야고보 2:14.
32, 33.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강한 믿음을 가질만한 어떠한 이유가 있으며, 그들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나타냅니까?
32 우리는 성서 전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은 마땅히 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히브리어 성경」과 「희랍어 성경」을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 시대의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그들이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였으며, 그들은 예수의 일생과 그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려는 그분의 결심을 관찰하였고, 그 왕국에 믿음을 두고, 그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써 그분을 본받았읍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셨읍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으려고 하는 이분에 관하여 히브리서 1:3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3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강한 믿음을 가진 백 수십만명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만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입으로 예수께서 주시라는 것을 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모든 나라와 방언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파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구원의 보증된 기대를 가지고 있읍니다.
34. 우리에게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하박국 3:17, 18에 기술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34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말의 시간에 그 제도는 그들에게 극도의 압력을 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아마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들의 생존 자체가 의심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즐거워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이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 찌라도]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 18.
35. 이 시대에 특히 어떠한 활동이 우리에게 살아있는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 줍니까?
35 오늘날 우리는 그 위급한 시기에 매우 임박하였읍니다. 우리는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예언의 성취, 특히 마태 복음 24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의 성취를 보고 있읍니다. 성서 그 부분에는 이 사물의 제도가 종말을 당하기 전에 발생할 일들이 묘사되어 있읍니다. 마태 복음 24:14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신세)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것을 믿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믿음을 두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이 좋은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있읍니다. 우리 모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지난 봉사년도에 수행한 일을 살펴보는 데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전세계 보고
36, 37. (ㄱ) 본 잡지에 나와있는 봉사 도표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줍니까? (ㄴ) 지난 해에 새로운 제자들을 삼는 일이 어느 정도로 수행되었읍니까?
36 113-116면에 수록되어 있는 도표를 살펴보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1973년 봉사년도에 208개 나라와 섬들에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만한 일을 수행하였는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구역은 95개 나라에 설립되어 있는 ‘왙취 타워 협회’ 지부를 통하여 보살펴지고 있읍니다.
37 그리스도인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 그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읍니다. (마태 28:19, 신세) 지난 봉사년도에 바로 이 일이 훌륭하게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읍니다. 193,990명의 사람들이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헌신하고 이 사실을 물 침례로 표상하였읍니다. 그들은 이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들의 행동으로 믿음을 증명하고 있읍니다.
38. (ㄱ) 여호와의 증인들이 지난 해에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였는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ㄴ) 실제로는 대략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성서 연구를 하였읍니까?
38 매월 야외 봉사에 참여한 좋은 소식의 평균 전파자 수는 1,656,673명이었읍니다. 그러나 한해 중에 좋은 소식을 선포한 최고 전파자 수는 1,758,429명에 달하였읍니다. 이 사람들 각자는 엄청난 분량의 일을 하였읍니다. 그 사실은 그들이 호별 방문, 재방문, 성서 연구 사회 등 적절한 모든 기회에, 그리고 모든 경우에, 사람들에게 왕국 희망을 알려주는 일에 얼마만한 시간을 바쳤는가를 알아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소식 전파에 전념하였던 이 사람들은 야외 봉사에서 300,468,676시간을 바쳤읍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시간은 자신들이 성서를 읽으면서 보낸 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찾아 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내용을 알려주는 데 바친 시간입니다. 또한 그들은 성서에 관심 가진 사람들을 131,657,832회나 재방문하였으며, 매주 1,209,544가족과 함께 6개월간 혹은 그 이상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였읍니다. 그러한 성서 연구를 당신의 가정에서도 사회하였읍니까? 6개월 동안 연구한 다음 하나님의 왕국에 참으로 관심을 보인다면 그들은 보통 왕국회관에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전세계적으로 약 2,400,000명 정도가 자기 집에서 작년에 성서 연구를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물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인지, 자기들의 행동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믿음을 나타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였읍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193,990명이 제자가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제는 좋은 소식 전파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읍니다.
39, 40. 통계에 나타난 바와 같이, 전세계의 여호와의 백성들은 지난 해에 인쇄물을 어느 정도나 사용하였읍니까?
39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람들과 연구하면서 성서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성서 연구 보조 서적들도 사용합니다. 그들은 작년에 이러한 서적들을 많이 배부하였읍니다. 그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면서 21,761,877부의 성서와 서적들을 배부하였으며, 겸하여 9,965,259부의 소책자도 배부하였읍니다.
40 여러분 모두는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잘 알고 계실 것이며,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주 가정을 방문하여 이 잡지들을 전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지난 해에 그들은 여러가지 언어로 된 235,468,467부의 잡지를 배부하였읍니다. 「파수대」는 75개 언어로 발행되며, 「깨어라!」는 31개 언어로 나옵니다. 일년간의 정기 구독 예약도 많이 맡았읍니다. 기록에 의하면, 일년동안에 1,894,447건의 예약 신청이 협회에 접수되었읍니다. 이 잡지의 모든 예약자들과 다른 구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왙취 타워 협회’가 사용하는 37개 인쇄 공장에서 지난 12개월 동안에 총 198,177,981부의 「파수대」와 202,520,820부의 「깨어라!」를 인쇄하였읍니다. 이것은 그 전해에 비해 15,500,000부가 증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성서 연구에 관심이 있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소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41. 주의 만찬 기념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41 활동적인 증인들 외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의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전세계에 31,850개의 회중이 있읍니다. 1973년 4월 17일 저녁 ‘기념식’에는 전세계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 3,994,924명이 참석하였고, 10,523명이 표상물인 떡과 포도주를 취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음과 하늘의 영광 가운데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연합할 희망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였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호와의 하늘 왕국의 통치아래 있을 지상 낙원에서 살 것을 기대하고 있읍니다.
42. 지난 해에 철의 장막 배후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은 전도 활동을 얼마나 잘 하였읍니까?
42 때때로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철의 장막 뒤에서도 그들의 전도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러한 나라에 험난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150,448명이나 있읍니다. 사실상 지난 12개월 동안에 그들은 5.5‘퍼센트’ 증가하였으며, 그러한 나라에서 11,334명이 침례를 받았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철의 장막 배후와 기타 몇몇 나라에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침례는 물론 조용하게 거행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 일을 막지는 못합니다. 제자가 된 이 모든 사람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전세계 208개 나라에서 땅 끝까지 여호와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으며, 즐거운 한 해를 보냈읍니다.
43. 만일 참으로 활동적인 믿음을 갖고자 한다면, 그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43 당신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그러한 믿음, 하나님의 사랑에 찬 목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도록 움직이는, 하나님께 대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까? 만일 당신이 그렇게 되고자 한다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합하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당신의 노력을 축복해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요한 1서 5:14; 누가 13:23, 24.
[113-116면 도표]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1973년 봉사년도 보고
(제본 「파수대」 참조)
[110면 삽화]
당신의 믿음은 살아있는가?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하도록 당신을 움직이는가?
[112면 삽화]
‘라합’은 ‘이스라엘’ 두 정탐군을 ‘여리고’ 성벽에 위치한 자기 집 창밖으로 붉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