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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꼭 필요한 양식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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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게 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읍니다.
15. 읽을 수 없거나 읽는 데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으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까?
15 그러나 성경을 읽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성경 낭독을 듣거나 설명을 들음으로써 성서의 내용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리고 들은 내용을 묵상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읍니다. (계시 1:3; 느헤미야 8:8) 물론, 만일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그러한 사람들은 읽기를 배우거나 읽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특정 언어로 성서의 일부만이 출판되어 있다면, 성서 전체가 출판되어 있는 언어를 알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큰 책임이 놓여 있읍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사도 20:27.
말씀이 우리의 생활에 주는 영향
16, 17. (ㄱ) 사도 ‘베드로’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ㄴ) “말씀”이 참으로 신자들 속에서 작용하게 하려면 개인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16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하면, 현재 우리의 생활은 건전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동료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로 볼 때 분명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죽음에 굴복하는 인간적이고 육적인 존재의 원인 되는]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 전 1:22-25.
17 ‘베드로’의 말이 기원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고려하여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들 제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였을 때, 그들은 감동을 받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악행을 버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진리의 요구에 따라 순종적으로 순응하였읍니다. 그 결과 그들은 믿음 안에서 그들과 관련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읍니다. (요한 13:34, 35) 그러나,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이러한 놀라운 변모는 개인적 노력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영의 영향에 순응함으로써만 비위선적인 형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는 그들에게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권고할 수 있었읍니다. (베드로 전 1:22) “뜨겁게”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문자적으로 “폭넓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랑의 표현은 의심, 시기 혹은 질투로 인해 좁거나 제한되어서는 안되며,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따뜻함이 결여된 형식적 사랑이 아니라, 강렬한 감정과 애정으로 특징을 이룬 사랑입니다. 왜냐 하면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러한 제자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으시고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동료 신자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아들로서의 신분의 증거를 부지런히 나타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였읍니다.—요한 1서 3:10, 11.
18. (ㄱ)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데서 오는 변화는 왜 피상적이거나 단명하지 않습니까? (ㄴ)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죄많은 인간의 경험과 어떻게 다릅니까?
18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의 경우에,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섭취하고 그에 순응할 때 생길 수 있는 변화는 피상적이거나 단명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썩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진리의 영향을 계속 받는 사람들은 항상 선한 영향을 받습니다. 죄 많은 인간들은, 풀과 같이,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하며 죽지만, 하나님의 항상 있는 “말씀”과 영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는 그대로 남아 있읍니다.
19. 우리는 우리의 영적 필요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할 것입니까?
19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필요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고,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진리로 채우는 데 부지런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훌륭한 영적 식욕으로 영적 건강과 힘을 얻을 수 있읍니다. 또한, 우리가 “복음”과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에 겸손히 순응함으로써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임을 증명하고 다른 사람들도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도웁시다. 그렇게 한다면 항상 있는 “말씀”을 섭취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으로 자라가고 영원한 장래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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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신 본—그리스도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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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완전하신 본—그리스도
1.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어떤 사람을 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의 감동을 받으려면, 우리는 그의 본이 참으로 모범적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높을수록, 그리고 애정이 클수록, 그를 본받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강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범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정도는 다분히 그분께 대한 깊은 사랑과 인식에 달려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게 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2, 3. (ㄱ)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분을 직접 보는 것에 달려 있지 않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하나님의 아들을 실제로 본 많은 ‘유대’인들은 왜 그분을 인식하지 못했읍니까?
2 제1세기에 예수께서 사망하신 후 그리스도인이 된 많은 사람들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읍니다. (베드로 전 1:8) 그러나 우리가 육안으로 못보았다고 하여 그분을 더욱 사랑하는 데 장벽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실제로 본 사람들 중에도 그를 알지 못한 사람이 많았읍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해 그들이 원래 가졌던 견해에 따라 그를 판단하였으며, 걸려 넘어졌읍니다. 예를 들면, 그의 고향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은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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