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1. (ㄱ) 성서에서 “새 ‘예루살렘’”은 무슨 상징으로 사용되었읍니까? (ㄴ) 다른 성귀들은 이 점을 어떻게 확증합니까?
소유권의 쟁점의 해결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중심 인물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예언적 환상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 천적 도시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들로 구성되어 있읍니다. 그들은 집합적으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를 형성합니다. (계시 21:1, 2, 9) 그들은 그분께 속해 있읍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말하면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머리 직분을, ‘회중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의 머리 직분에 비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썼읍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회중]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러한 성귀들은 새 ‘예루살렘’을 분명히 밝혀 주며 사랑으로 행사되는 소유권에 대해 알려 주고 있읍니다.—에베소 5:22-25; 또한 고린도 후 11:2 참조.
2. (ㄱ) 예수의 신분에 관한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예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ㄴ) ‘베드로’는 “반석”이 누구라고 하였읍니까?
2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시던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목적을 아시고, 이 회중에 대하여 그리고 회중의 설립자인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하셨읍니다. 한번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신 다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질문하셨읍니다. 그에 대하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특별히 밝혀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회중]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6:13-18) 이 동일한 ‘베드로’는 그의 첫째 편지에서 그리스도 예수가 반석이심과 그 위에 그리스도인들이 “산 돌”로서 지어져 간다는 것을 말하고,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이라고 말하였읍니다.—베드로 전 2:5, 6.
3. ‘베드로’는 누가 결국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고 설명하였읍니까?
3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인 육적 ‘이스라엘’이 그들의 지도자들 곧 건축자들의 영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하였읍니다. 그것은,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예언과 같았읍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버리셨읍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영적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곧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영적 회중의 성원들이 어떻게 하여 선택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제자가 되는 조건은 무엇이며 이러한 동일한 조건들이 오늘날 예수의 진실한 추종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됩니까?—베드로 전 2:7-10; 갈라디아 6:16.
제자가 되는 조건들
4.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는 조건에 무엇을 포함시키셨읍니까?
4 예수께서 제자가 되는 조건들을 말씀하신 것은 이 회중의 성원이 될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셨읍니다. “(1) 자기를 버리고 (2) 자기 [형주]를 지고 (3) [계속하여] 따르라.” 다음에 우리의 지침을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6:24, 25, 새번역, 신세 참조.
5. 자신을 버린다는 말에는 무슨 강한 의미가 있읍니까?
5 자신을 버린다는 말에는 강한 의미가 있읍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소유권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 생명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마치 일부 종교 단체에서 금욕의 주일을 권장하는 것처럼, 자신에게서 어떤 것을 박탈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버리는 것은 소유권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소유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소유권을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 형주를 진다는 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읍니까?
6 자기 형주를 진다는 말에도 강한 의미가 있읍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따를 때에 그것을 문자 그대로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 말은 고통과 모욕과 수치와 죽음을 수반할 행로 곧 제자들이 자진적으로 택하였던 행로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이 점을 제자가 되는 다른 조건들과 연관시켜 고려하면 더욱 잘 인식할 것입니다.
7, 8. 예수를 계속하여 따른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는 무슨 본을 세우셨으며,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7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조건은 계속하여 그를 따르라는 것이었읍니다. 제자란 가르침을 받은 자, 배우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으로 볼 때에, 예수께서는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로 계속하여, 중단없이 예수의 본을 따를 것을 요구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사명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 20) 예수께서 세우신 본을 보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이 주로 강조되어 있읍니다. 역사에 의하면 예수의 직접 제자들은, 사실상 전체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은 그 동일한 본을 밀접히 따랐읍니다. 바로 이 사실과 세상에 속하지 않은 점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반대를 받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형주를 지게 되었읍니다.—요한 15:19, 20; 17:14-18; 사도 8:4.
8 예수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동일한 조건을 준수하는 면에서 본을 세우셨는가를 고려한다면, 앞서 말한 제자의 조건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버리고 형주를 지셨으며 그것을 계속 지고 다니셨읍니까? 그는 자기 영혼 곧 생명을 잃으셨읍니까?
9. 빌립보 2:5-8에 기술된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완전히 버리셨읍니까?
9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생각했던 것처럼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 (빌립보 2:5-8) 이보다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로서 그분께 속하여 있다면 이와 동일한 정신 태도를 간직하고 나타내야 합니다.
10. 이에 대하여 무슨 설명이 이사야 53장에 또 나옵니까?
10 다른 성귀들도 이 사실을 확증하고, 메시야께서 인류의 대속주가 되기 위하여 고통을 받고 죽으신 이유를 알려 주고 있읍니다. 예를 들면, 예언자 ‘이사야’는 그에 관하여 이렇게 썼읍니다.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이라]. ··· [각자가]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메시야]가 그 씨를 보게 되며 (혹은, 이런 방법으로 씨를 갖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 53:3-12.
11. 최종 결과로서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 예수께 무슨 웅대한 보상을 주셨읍니까?
11 예수께서 그처럼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추구하신 행로에 대하여 그의 최종 결과를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완전히 살펴보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위의 말을 기록하기 전에 영감을 받아서 장차 오실 메시야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사야 52:13) 후에, ‘바울’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동일한 메시야에 관하여 이렇게 썼읍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 2:9-11) 제자가 되는 조건을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장차 영화롭게 될 것을 확언하셨읍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마태 16:27)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 그의 계획을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시고 때가 차면 그 계획을 시행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단체 가운데서 그 시행 곧 일의 수행 방법이 19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읍니다.—에베소 1:9, 10, 새번역.
택해야 할 단계
12. (ㄱ) 많은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예수를 구속주로 받아들입니까? (ㄴ)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안전한 지침은 오직 무엇입니까?
12 당신은 예수께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여호와께 속해 있읍니까?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으로 사신 인류의 일원으로서 당신은 그분들의 재산입니다. (디모데 전 2:5, 6) 그러나 당신은 이 점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비교적 소수만이 이 점을 인정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주 예수를 대속주로 받아들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에 참석하고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들은 선한 행실의 표준을 따르고 인간 권세자들이나 인간 관계에 굴복할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확정적인 관계를 가져 그분들에게 자신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였읍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 일을 단계적으로 행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13. (ㄱ) 우리는 먼저 무엇을 인정해야 하며, 이것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합니까? (ㄴ) 무슨 다음 단계를 택해야하며, 이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13 먼저, 우리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선천적으로 불완전하고 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을 유전받았읍니다. 우리는 자신을 그 상태에서 구원할 수 없으며, 다른 어느 인간도 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유일하신 생명의 원천께서 자기 아들을 통하여 친절하시게도 그러한 마련을 하셨으며, 그 마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읍니다. 그분의 초대에 응함으로써 우리는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읍니다. 이 점을 인식하면 양심에서 우러나와 처음 두 단계를 취할 의향이 생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길로 행한 이전 행로에 대하여 진정으로 그리고 진실로 회개와 슬픔을 느껴야 합니다. 범죄자라고 불리울 만한 일을 범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만족하였고 하나님의 요구 조건과 표준에는 거의 혹은 전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만일 종교의 영향을 받았었다면, 이제 우리는 거짓 종교에 의해 잘못 인도를 받았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단계 외에 우리는 또한 전환의 단계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세상의 길을 등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하였읍니다.—사도 2:40; 3:19.
14. 세상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배운 다음 우리는 모름지기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합니까?
14 이 두 단계는 필요하며, 또 논리적으로 택해야 할 단계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현 사물의 제도를 어떻게 보시는가를 안다면, 즉 그것을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셨고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셨’다는 것을 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베드로 후 3:7) 그러나 또 세째 단계가 있읍니다. 그것 역시 논리적이며, 앞의 두 단계를 취한 다음의 자연적인 결과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양심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당신이 죽음의 길에 있었을 때에 죽음을 기다리며 죄의 노예로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께 대해 좋은 양심을 갖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그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서 그분들과 화목할 길을 주셨음을 배워 인식하였으므로 이제는 자신을 매우 다른 각도로 보게 됩니다.—로마 6:16; 5:6-8; 요한 1서 4:9.
15. (ㄱ) 그러면 우리는 무슨 중요한 결정에 도달하게 되며, 그것은 무슨 행동을 하게 합니까? (ㄴ) 이렇게 되면 무슨 제자가 되며, 받아 주리라는 것을 왜 확신할 수 있읍니까?
15 이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할 뿐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그분과의 관계에 들어가서 밀접한 관계를 누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영혼을 다한 숭배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이고 마음에 감동된 결정입니다. 이것은 헌신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자신의 결정을 알리고, 우리를 그분의 조건에 따라 받아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분께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또한 제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가 됨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아버지와 같으시므로 예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실 것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이미 도달한 정신적 결정 외에 또 다른 것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이사야 55:7; 마태 11:28-30.
16. (ㄱ)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는 일을 어떻게 상징하셨읍니까? (ㄴ) 이것은 우리에게 무슨 본이 되며, 우리의 경우에는 무슨 차이가 있읍니까?
16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다고 기록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2:21) 하나님의 때가 되었음을 아셨을 때에 예수께서 취한 눈에 보이는 첫 단계는 침례자 ‘요한’의 손에 물 침례를 받은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시편 40:6-8에 그에 관하여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는 것의 상징이었읍니다. (또한 히브리 10:5-10 참조.) 예수에게는 회개할 죄가 없었읍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좋은 양심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침례의 단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우리의 헌신의 외부적이고 공개적인 상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의 종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선한 양심을 위한 하나님께 한 간구”입니다. 아직도 불완전하지만, 우리는 이제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려고 합니다.—베드로 전 3:21-4:3, 신세; 로마 6:19.
17. 고린도 후서 5:14, 15을 볼 때에 우리는 이상의 단계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7 올바른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한 마련과 친절한 초대에 대한 사랑에 차고 열렬한 반응으로서 이러한 단계들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받거나 강제를 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웅대한 특권으로 보아야 합니다.—고린도 후 5:14, 15.
커다란 특권
18. (ㄱ) 예수께서는 요한 13:34에 있는 그의 계명이 새 계명임을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택하신 바와 동일한 행로를 택하는 것은 왜 웅대한 특권입니까?
18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두 가지 큰 계명 중 두번째 것을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하셨읍니다. (마태 22:39)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날 저녁 조금 후에는 또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 (요한 13:34; 15:13) 예수께서는 바로 그 일을 하셨읍니다. 그는 자신을 버리셨읍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영혼을 보존하려고 즉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제자들도 자기처럼 하라고 권고하셨읍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악이 허락되어 한창 번성할 동안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예지된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잠언 27:11) ‘욥’의 경우에서 잘 나타난 바와 같이, ‘사단’은 여호와께 비방하기를, 이기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또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하나님께 성실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욥 1:9-11; 2:3-5)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자신을 기꺼이 버릴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입장을 완전히 인식하시고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이러한 행로를 택할 기회를 이용하셨읍니다. 지금까지 자진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은 비슷한 행로를 택합니다. 작으나마 여호와의 이름을 입증하는 데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실로 영광된 특권이 아닐 수 없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이며 비방자에게 웅대하고 완전한 대답을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19. 현재 우리 모두 앞에 무슨 특권과 요구 사항이 있읍니까?
19 악을 허락한 기간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모든 그리스도인 제자들은 “형주”를 질 특권이 있읍니다. 왕국과 관련해서 그들의 생명의 희망이 천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큰 환난” 이후에도 헌신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현재와 동일한 사랑에서 우러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상태가 다를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온 영혼을 다한 숭배가 요구될 것이지만 “형주”를 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이사야 25:8.
20. (ㄱ) 소유권의 쟁점은 사실상 언제 해결될 것입니까? (ㄴ) 하나님의 소유권의 타당성에 관하여 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합니까?
20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권의 쟁점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이미 확고하게 되었읍니다. 쟁점에 대한 사실상의 해결은 “큰 환난” 후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무저갱에 들어갈 때에 나타날 것이며, 그들과 그들의 편을 든 자들이 영원히 멸망될 때에 그것은 영원히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소유권의 타당성은 참 그리스도인 제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자신에 의해서 풍부한 증거가 주어졌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최고 권위를 기꺼이 인정하고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의 길을 택할 만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그들은 배척할 것입니다.
21. 무슨 자극적인 일과 영광스런 전망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읍니까?
21 천년 왕국 통치 동안에는 여호와의 계속적인 타당성에 대해 조직적인 또는 지속적인 도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 어마어마한 일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죄의 다스림 아래 6,000년 동안 이 지구에 대해 가해진 모든 파괴와 해독을 해소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극적인 도전일 것입니다. 그 일이 완성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읍니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그리스도]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 15:24-28) 온 인류를 연합시키는 일이 완료되면, 모든 창조물이 참으로 여호와께 속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는 왕국을 그의 아버지께 넘기실 것입니다.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현재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늘의 노래를 함께 부르도록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시 4:11.
22. ‘당신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으며 또 대답해야 합니까?
22 당신은 누구에게 속해 있읍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설명된 바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헌신하라는 인자한 초대에 응하였읍니까? 만일 아직 응하지 않았다면, 그 일을 미루는 것이 어떤 이기적인 생각이나 애착심 때문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요청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시오.” 하나님께 속하십시오.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분과 친밀한 우정을 즐기십시오. 그분을 당신의 하나님으로 삼고, 당신을 그분의 헌신한 백성 중의 한 사람으로 삼아 상호 공동 소유감을 즐기십시오.—고린도 후 5:20; 미가 4:5; 요한 15:15; 계시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