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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서 성서 원칙을 적용시키는 일—그만한 가치가 있는가?파수대—1975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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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1-33.
그러므로, 사업가이든 고용인이든 성서 원칙을 충실히 적용하는 사람은 “주[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신다는 말로부터 격려를 받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는 말씀을 확신할 수 있다. (베드로 전 3:12; 잠언 13:21)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보상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선한 양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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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우스’의 진상파수대—1975 |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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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우스’의 진상
대학살의 유물
● 매년 그리스도교인들과 ‘유대’인들이 “대학살”—‘유럽’에서 있었던 ‘나치’ 통치 하의 ‘유대’인 집단 학살—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하여 회합을 갖는다. 지난 3월에 열린 최근의 회합에서 미국 ‘템플’ 대학교의 종교 교수 ‘프랑클린 에이치. 리텔’ 박사는 “[그리스도교국]의 심장부에서 세례받은 그리스도교인들이 6백만 가량의 ‘유대’인들을 살해한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1900년 하고도 몇년이 더 되는 기간에 일을 하지 않았지 않나 하는 의심을 일으킨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 의문이 교회들의 심한 “영적 싸움”을 야기하였다고 하였으며, “나는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을 것인가를 자신할 수 없다”고 부언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집단 학살에 대한 책임은 그리스도교에게 있지 않다. 그 책임은 그리스도교국과 그의 교회들에게 있다. 대학살의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과 교인들이 성서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버리고 정치 국가를 지지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세기 동안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와는 대조적인 현상으로, ‘유럽’에 사는 수많은 ‘유대’인들은 독일의 한 종교 집단도 ‘유대’인들이 당한 바와 동일한 박해를 당하였음을 증언해 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수백명이 집단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은 국가를 숭배하지 않고 참 그리스도교에 고착하고 그것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다.
안락사에 대한 교회의 침묵
● ‘나치’ 역사의 또 하나의 장(章)이 그리스도교국 교회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것은 ‘나치’의 소위 안락사 계획이다. 그것은, 약화시키는 요소로 간주되는 자들을 ‘솎아냄’으로써 우월한 ‘튜우턴’족을 만들어 내려는 ‘히틀러’의 계획의 일환이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그 계획으로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간질이 있거나 신체 불구인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60,000명 내지 100,000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제 와서, 독일이나 다른 곳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서도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한 후까지 전반적으로 침묵을 지켰다는 증거가 표면화되고 있다. ‘예수’회 역사가 한 사람은 그의 저서(Civiltà Cattolica)에서, ‘나치’ 관리들은 처음에 교회 지도자들이 자기네 계획에 강력히 반대하는가의 여부를 알고 싶어 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나치’ 당국자들은 독일 ‘파델보른’ 소재 ‘가톨릭’ 신학교 교수 한 사람을 임명하여 그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거기에 관계하였던 ‘나치’ 관리 한 사람은 말하기를 그 ‘가톨릭’ 신학자가 ‘교회로부터의 근본적인 반대를 예상할 수 없다’고 말하였고, 그렇게 한 다음에 ‘히틀러’가 소위 안락사 계획을 추진하였다고 하였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지는 “무시무시한 침묵”이라는 제하에 밝히기를, ‘나치’당이 그 계획을 진행한지 1년 후에야 ‘바티칸’ 방송은 처음으로 소위 안락사에 대해 비우호적으로 언급하였으며, 그러나 독일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안락사 계획은 1941년에 종결되었다. 그런지 거의 2년이 또 지난 다음 1943년 6월 29일에야 교황(비오 12세)은 안락사를 단죄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의 성명은 이미 죽은 수많은 성인들과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미심장하게도, 두 가지 경우 다(‘가톨릭’ 신학자와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 학자들은 안락사 계획이 ‘유대’인 집단 학살의 전조였다고 지적하였다.
‘바벨론’의 재건?
●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그곳에 처할 자가 없겠고 거할 사람이 대대에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사야 13:19, 20) 약 1세기 후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 왕국이 무너졌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의 한 신문은 “고대 ‘바벨론’과 ‘바벨’탑의 재건”에 관한 활동에 대해 소개하였다. ‘바벨론’은 참으로 사람이 다시 살게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보도는 사실상 ‘이락’ 정부가 여러 세기 동안 황폐되어 있던 그 고대 도시를 발굴하여 묻혀있던 것을 더 많이 들춰내려고 하는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일에 임명되어 있는 ‘이탈리아’의 한 고고학자는 ‘바벨론’이 “흙으로만 덮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로도 덮여 있어 물을 퍼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되었다. 그곳은 지금도 성서 예언에 명시된 대로 폐허 그대로이고 사람이 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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