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에서 큰 것들을 택하라!
당신의 생애에서는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가? 그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당신은 말과 행동으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작게 생각하고 무엇을 크게 생각하는지를 나타낸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은 모두 도전에 직면한다. 그들은 자기 생애에서 큰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첫째로 구’하고 있다.—마태 6:33.
그런데 무엇이 도전이 된다는 말인가? 도전이 되는 것은, 큰 것은 주로 믿음의 눈을 통하여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고린도 후 4:16-18) 또한 큰 것들은 미래에 관계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큰 것들은 열렬한 노력을 요하며, 그것을 즐기기 위하여는 몸과 정신과 마음을 징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큰 것들을 참으로 인식한 본이 되는 사람들을 많이 알려 주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작은 것들을, 사실 그대로 작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한 사람으로 ‘모세’가 있다. 그는 애굽의 모든 보화와 쾌락을, 큰 것 곧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로서 봉사하는 특권에 비하여, 작은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특권에는 모독이 뒤따랐는데도 그렇게 하였다. (히브리 11:26) ‘모세’의 판단은 정확하였는가? 틀림없이 그러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용하여 「‘히브리’어 성경」의 4분의 1 이상을 기록하셨다. 여호와는 그를 통하여 여러 가지 웅대한 일과 기적을 행하셨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고대 그의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하셨다. 그가 장래 받을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그것은 실로 놀라운 특권들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물의 제도의 쾌락과 재물을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큰 것으로 만들도록 하는 유혹을 받을 때에, 영적 보화를 희생해서라도 그렇게 하도록 하는 유혹을 받을 때에, ‘모세’는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본이 된다! 재물에 부유한 것보다는 “선한 사업에 부”하도록 노력하라는 교훈은 실로 현명하지 않는가?—디모데 전 6:17, 18.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한 또 다른 사람으로 사도 ‘바울’이 있다. ‘바울’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었다. 사실상 그는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만한 것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사도 26:5; 고린도 후 11:22; 빌립보 3:5) 그러나 그는 그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빌립보 3:8, 9.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를 본받아, 부자나 유명한 자가 되려는 등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 곧 하나님의 봉사와 하나님의 승인과 보상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생애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큰 것이 되어야 한다. 열 두 사도들은 동일한 태도를 가졌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마가 10:28-31; 고린도 전 11:1; 빌립보 3:13.
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주 등 물질적인 것들을 과도하게 갈망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것이 필요하고, 그러한 것 없이는 생활해나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것을 중심으로 우리의 생활을 구축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교훈하셨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 6:25, 32.
그럼, 예수의 이 교훈을 우리는 어떻게 오늘날의 문제에 적용할 것인가? 훌륭한 집, 훌륭한 자동차, 훌륭한 ‘텔레비’ 등등을 소유하는 것 그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에 대하여 염려하고 그러한 것을 과도하게 추구한 나머지 성서를 개인적으로 연구할 시간과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회중 집회에서 교제할 시간과 생명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활동에 참여할 시간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그의 행동으로 이러한 훌륭한 물질적인 것들이 그의 생애에 있어서 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 관심사와 영적 축복들이, 설사 작은 것은 아닐지라도, 큰 것은 못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정신 태도를 가지고서 하나님의 승인을 얻거나 하나님의 새 사물의 제도 하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신체적 욕망의 유혹이 있다. 성적 능력을 행사하는 데 수반되는 쾌락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올바른 견해를 상실하도록 한 사례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행동으로, 설사 성적 부도덕의 정도까지 이르러 그 쾌감을 맛보는 경우에라도, 성적 쾌락이, 그들의 생애에서 큰 것이고 반면에, 하나님의 승인, 동료 그리스도인과의 교제 및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는 특권 등을 비교적 작은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제명 곧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축출당함으로써만이 그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질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바울’ 시대의 어떤 그리스도인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고린도 전 5:1-13; 고린도 후 2:5-11)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하여 완전히 파탄을 당하였다.
당신은 어떠한 행로를 택하겠는가? 당신의 생애에서 진정으로 큰 것은 무엇인가?
기타 크고 작은 것들
어떤 사람들은 개인 감정에 의해 자기가 무엇을 큰 것으로, 무엇을 작은 것으로 생각하는가를 나타낸다. 만일 자신의 자존심, 소위 ‘체면’이라는 것이 생애에 있어서 큰 것이라면, 개인 감정 때문에 불행하게 되거나 원한을 가지게 될 것이다. 원한을 품게 되고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면목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형제들 간의 조화와 동료 숭배자들과의 선한 관계가 당신의 생애에서 큰 것이라면, 사소한 감정이나, 무시, 무관심 등을 간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사실 그대로 당신에게 작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꼭 그대로 보복하거나 원한을 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하라고 한 대로 다른 편 뺨을 돌려댈 것이다.—마태 5:39.
사도 ‘베드로’의 충고는 이 교훈의 핵심을 지적하였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가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개인 감정같은 것은 작은 것들이며, 사랑, 평화 및 그리스도인 사이의 조화 등이 생애에서 큰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내는 것이다.—베드로 전 4:8.
생애에 있어서 무엇을 크게 여기고 무엇을 작게 여기는가를 주의깊이 고려하려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한 문제에서 올바로 택한다면, 현재에 평화와 즐거움과 만족을 얻게 되고, 앞으로 임박한 여호와 하나님의 새 사물의 제도에서 행복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