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영혼을 다하여 거룩한 봉사를 드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온 영혼, 신세]을 다하여 [여호와]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여호와]께 받을줄 앎이니[라.]”—골로새 3:23, 24.
1, 2. (ㄱ) 신명기 30:20에 의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어떠한 천적 봉사의 특권을 즐기게 될 것입니까?
모든 인류의 창조주께 거룩한 봉사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이 즐길 수 있는 특권 중에서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러한 봉사는 현재에도 행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훌륭한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합니다.
2 성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나오는 장래에 있을 천적 장면에 대해 말하고 있읍니다. 여기에서도 인류 가운데서 취함을 받은 144,000명은 천적 왕으로 다스리면서도 거룩한 숭배를 드리고 있읍니다. 이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저희가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계시 14:1-4; 22:3-5.
3. 충실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떤 것을 기대할 전망을 가지고 있읍니까?
3 그러나 인류 중 다른 사람들 즉 “하늘의 부르심”을 받지는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그들도 역시 이 예언적인 그림에 나와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들도 들어 있읍니다. 왜냐 하면 천사가 ‘요한’에게 “생명수의 강[이] ···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오고] ···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는 장면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믿음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 “큰 환난”을 통과할 “만국” 백성은 이 생명수의 강과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생명 나무 실과의 유익을 즐길 전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계시 22:1, 2.
4. 하나님께서 ‘아마겟돈’ 생존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4 이들 ‘아마겟돈’ 생존자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당신도 그들 중에 들어 갈 수 있는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어 봅시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리라.]” (계시 7:13-17) 거기에 당신 자신도 들어 있읍니까? 당신은 이들 “큰 환난”의 생존자들 중에 들기를 원합니까? 당신은 그렇게 될 수 있읍니다.
5. 예수께서 “온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무슨 의미였읍니까?
5 ‘아마겟돈’ 후에 밤낮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분의 보좌 앞에 서 있을 “큰 무리”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봉사가 마지 못해 하는 것이나 미지근하거나 불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것이 될 것임을 여호와께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그 점은 여호와의 찬양자들의 밤낮 행해지는 끊임없는 활동을 통해 예시되었읍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서 온 영혼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라는 ‘히브리’어 및 희랍어 단어는 개인 즉 독자나 필자 등과 같은 개체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온 영혼을 다한 봉사란 사실상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온 영혼”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정신, 마음, 힘을 포함한 개체로서의 우리의 존재 전체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누가 10:27, 신세)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봉사에서 우리의 영혼(혹은 개체로서의 생명)의 각 부분을 사용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의 거룩한 봉사에는 우리의 생명 전체가 관련되어야 합니다.
6. 골로새 3:23, 24은 거룩한 봉사에 좋은 소식을 말하는 것 이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6 거룩한 봉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 이상이 관련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예수께서 자기 추종자들에게 세우신 본에 포함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봉사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어떤 것을 나누어 주는 것 즉 매일의 생활 방식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숭배는 직장에서의 우리의 행실에 반영됩니다. 골로새 3:23, 2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온 영혼, 신세]을 다하여 [여호와]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여호와]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여기에는 우리 모든 생활 부면—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때나 가정에 있을 때나 직장에서나—이 포함될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여호와의 지도에 어떻게 응하고 있는가를 반영합니다.
7, 8.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하여 수행하여야 할 일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예를 들면 남자들이나 여자들에게는 가정 내에서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맡기신 어떤 책임과 임무가 있읍니다. 그들의 생활에서 여호와의 인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러한 천적 교훈을 적용하고 수행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거룩한 숭배의 일부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골로새 3:18-22(현대인을 위한 좋은 소식)은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오늘날의 고용인]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8 그러므로 어떤 여자가 자기 가정을 충성스럽게 돌보는 것도 거룩한 봉사의 일부입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임무를 그 여자에게 주신 분은 여호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명에 합당하게 온 영혼을 다하여 그러한 일을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 31:15, 27)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가족을 사랑으로 감독하도록 임명받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 부모들에 대한 자녀들의 순종에 있어서 모두가 여호와를 기쁘게 하도록 온 영혼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즉 우리는 여호와의 마련 가운데서 우리의 위치를 거룩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상적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9. (ㄱ) 성경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또 다른 봉사를 어떻게 지적합니까? (ㄴ) 우리는 어떠한 점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9 이러한 가족적인 책임 외에도 예수와 사도들의 본을 따라 진리를 증거하는 것도 거룩한 봉사의 매우 중요한 부면입니다. (마태 24:14; 요한 18:37; 히브리 13:15; 계시 1:5; 12:17) 물론 사람들이 그러한 공개적인 봉사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은 나이, 건강, 가족적인 책임 등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리고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우리의 기회와 힘을 사용하도록 여호와의 숭배에 온 영혼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0. 마태복음 13:23을 설명해 보십시오.
10 마태복음 13:23에서 예수께서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어떤 사람은 백배, 어떤 사람은 육십배,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삼십배를 생산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비유를 사람들에게 적용시키셨읍니다. 많든지 적든지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하여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예수의 그 비유에 나오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각자는 개인 환경에 따라 생산하였지만 세 가지 형태의 사람들 모두가 “좋은 땅”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11. ‘바울’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졌으며, 그는 그 점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1 전 시간 종인 ‘바울’처럼 여호와의 봉사에 자신의 전체 생활을 바칠 특권을 즐기는 사람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온 영혼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처럼 왕국 봉사에 가능한 한 더 많은 활동을 하려는 간절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적, 신체적으로 활력이 있고 이러한 기회를 붙잡기 위해 환경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왕국 선포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과분하신 친절]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과분하신 친절]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과분하신 친절]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고린도 전 15:10, 11) 여호와께 대한 봉사에 대해서 당신도 그와 같이 느낍니까?
12. 경건으로부터 오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12 ‘베드로’도 비슷한 사상을 표현하였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 후 1:3, 4) 여기에서 ‘베드로’는 천적 소망을 가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의 말은 경건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역시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지식을 온 영혼을 다하여 적용함으로써 육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오게 되는 부패와 고난을 피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생명수의 강과 생명 나무로부터 얻게 되는 영속적인 유익을 즐길 웅대한 약속이 있읍니다.
열매 맺는 봉사
13. (ㄱ) 여호와의 모든 종들은 어떠한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ㄴ) 우리의 봉사가 성공적이 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3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러한 경건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은총을 받고 있으며 그 행하는 일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자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1:5-8(새번역)에서 그 점을 논하고 있읍니다. ‘베드로’는 “열심을 다하여”라는 말을 통해서 온 영혼을 다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쓸모없는 자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수적인 몇가지 특성들을 지적합니다. 사실상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열거된 이러한 특성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영적 병을 일으키거나 무활동이 되게 하는 것이 어떤 점인지 알아 볼 수 있읍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러한 특성을 나타낸다면 여호와께 대한 봉사에서 활동적이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14, 15. (ㄱ) ‘베드로’가 처음에 언급한 세 가지 특성은 무엇이며, 맨 처음에 나오는 특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까?
14 ‘베드로’가 언급한 특성들 중에는 열심, 믿음, 덕이 들어 있읍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는 열심 즉 노력—이해력을 얻기 위한 연구,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 배운 것을 적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전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심는 대로 거두는 법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원할 때도 먼저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갈라디아 6:7.
15 믿음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우리 자신에게 믿음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넣어 줄 수 없읍니다. 믿음은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로서 주의 깊이 배양한다면 믿음이 증가될 수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됩니다. (로마 10:17) 그러면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히브리 11:6.
16. (ㄱ) 덕이란 무엇입니까? (ㄴ) 덕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봉사에 어떠한 영향을 줍니까?
16 그러나 ‘베드로’는 노력과 믿음 외에 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읍니다. 덕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의 노력을 축복하시지 않거나 진리의 씨가 자라게 하시지 않는 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과 모든 말이 허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따라 생활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덕이란 도덕적인 미점으로서 우리가 흰 옷 입은 사람들 중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는 데 필요한 특성입니다. (계시 7:9) 아주 바쁘면서도 성서에 관하여 말하는 데 깨어 있고 성서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은 어떤 지역에서 더 많은 시간을 증거하는 데 바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 사람보다 진리를 증진시키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증거하는 데 바친 시간과 노력이 열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요소는 아닙니다. 오히려 증가를 가져오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즉 그분은 우리의 행동이나 우리의 사람됨을 잘 알고 계십니다.
17. 성서 지식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7 ‘베드로’는 계속하여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 공급하라”고 말합니다. 성서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데 있어서 훌륭하고 정확한 성서 지식이 효과적이고 가치있는 것임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방어만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항상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은총을 받기 위한 요구 조건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얻게 되면 우리는 온전한 마음과 정신으로 모든 것을 그분의 방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 가치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됩니다.
18. (ㄱ) 우리가 자제를 나타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신자인 ‘바울’은 자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함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8 이것은 절제의 문제로 우리를 인도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과 욕망—혹은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 우리의 발이 우리를 인도하는 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어하는 데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활이 온 영혼을 다한 충성스런 생활이 될 수 있겠읍니까? 연구할 시간이 되었는데 ‘텔레비젼’을 끌 정도의 자제력이 없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읍니까? 우리는 어느 것에 시간을 가장 많이 바칩니까? ‘텔레비젼’을 보거나 다른 오락을 즐기는 데 바칩니까 아니면 영적인 일에 바칩니까?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시간을 일주일에 단지 한두번이 아니라 “밤낮” ‘거룩한 봉사’와 관련된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여호와의 마련으로 받아들이는가? 여호와께 온 영혼을 다 한 충성을 나타내려면 자기를 제어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나 주로 자기 만족을 위해서 정력을 사용하거나 시간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정력이나 시간이 여호와와 관련하여 사용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갈라디아 5:16, 17, 22-24.
19.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와 경건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그러나 지식이 있고 자제하더라도 일단 우리가 발견한 그 진리에 고착함으로써 인내와 경건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별로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전망은 우리가 인내하는 데 달려 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라위’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신체적인 학대를 인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노력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혹은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받는 압력과 조롱으로 고통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인 반대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바와 같이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읍니다. (디모데 전 4:8)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거룩한 봉사에서 무활동이 되거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고 계속 충실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경건이 필요합니다.
20. 어떻게 형제 우애와 사랑이 우리의 봉사에서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줍니까?
20 끝으로 ‘베드로’는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후 1:7) 우리는 이러한 특성을 육적인 가족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갈라디아 6:10)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과 ‘아가페’ 혹은 원칙에 근거한 사랑을 나타낼 때 사람들이 진리를 전파하는 노력에 훌륭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신 바와 같이 우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형제 우애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을 영적으로 도와 주려는 성실한 욕망을 포함하여 그들 각자에게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점들을 적용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있어서 쓸모없는 자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베드로 후 1:8.
축복을 가져오는 봉사
21, 22. (ㄱ) ‘베드로’의 어떠한 권고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각자에게 적용됩니까? (ㄴ) 어떻게 우리는 누가 13:24, 25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적용할 수 있읍니까?
21 ‘베드로’는 격려의 말을 다음과 같이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 후 1:10, 11) 우리가 그리스도의 후사인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이거나 “큰 무리”이거나 간에 여기서 말한 ‘더욱 힘쓰’라는 ‘베드로’의 권고는 왕국의 축복을 즐기기를 원하는 모두에게 적용합니다.
22 지금은 우리의 거룩한 봉사를 늦출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베드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라.]” (베드로 후 3:11, 12) 예수께서는 천사들이 물질화하여 “양”과 “염소”의 분리 사업을 할 것으로 기대하여 그들에게 제자를 삼는 임무를 맡기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그 임무를 자신들의 봉사와 온 영혼을 다한 충성을 통해 자기의 참된 추종자임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맡기셨읍니다. (계시 12:17) 지금은 가끔 봉사하거나 비정규적으로 봉사함으로써 불완전하거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왕국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천적 왕을 기쁘시게 할 때인 것입니다.—말라기 1:6-8; 누가 13:24, 25.
23. 지금 온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사람들 앞에는 어떠한 놀라운 전망이 있읍니까?
23 우리의 생활을 온 영혼을 다하여 바치는 거룩한 봉사로 가득 채운다면 우리는 큰 환난이 끝난 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 그러한 봉사를 드릴 행복한 ‘아마겟돈’ 생존자들 중에 분명히 들어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 7: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리라.]” 우리가 온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께 거룩한 봉사를 계속 드린다면 우리 앞에 참으로 놀라운 전망이 전개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