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시 100:1-3.
1, 2. (ㄱ) 많은 사람들은 생활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알게 됩니까? (ㄴ)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생활을 인도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삶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마치 돌과 소용돌이에 부딪치듯이 매일같이 문제들에 부닥치며, 때로는 그들의 목표와 욕망을 놓치는 수가 있읍니다. 흔히 젊은이들은 그들의 흥미 혹은 존경을 자안낸 그럴듯한 목표를 가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젊었을 때 가졌던 그러한 소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살아나가기만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러므로 그들은 젊었을 때에 가졌던 목표를 이루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애에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입니까? 그들은 그들의 ‘부름’을 놓친 것입니까?
3. 사람이 여러 가지 종류의 직업을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3 그 이유는 확실히 정부 기관이나 지침을 제시하는 고문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가지 기관이 있읍니다. 어떤 직업이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그에게 최대의 유익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읍니다. 성경도 인간의 창조주께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놀라운 다양한 일들을 그에게 주셨음을 알려 줍니다. 창세기 4장은 도시 건축과 관련해서 건축 기술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같은 장에서는 목축업, 농업, 또한 음악가 그리고 철물 공업 기술 등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읍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택한 직업에서 성공하면서도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세상적 표준으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현대 사회는 물질주의로 향하고 있읍니다. 여러 곳에서는 만일 훌륭한 집과 현대 이기(利器), 최신형 자동차를 갖지 않았으면 그 사람은 성공한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유복하다는 것은 곧 출세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앤드류 카네기’는 “내 생명을 다시 가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기꺼이 팔겠다”고 말한 일이 있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빈손으로 간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그들의 성공과 생활의 낙이 너무나 짧다는 것에 좌절감을 갖습니다. 행복은 재산이나 직장에서의 승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5. (ㄱ) 요한 1서 2:15-17에는 어떠한 좋은 충고가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떠한 질문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까?
5 사람들이 세운 생활 목표는 영속하는 행복을 가져오기에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들이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지 않음에 따라 더욱 그러합니다. (예레미야 10:23) 그러므로 연로한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한 데는 좋은 이유가 있었읍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 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 1서 2:15-17)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우리 생활에 얼마만한 영향을 미치는가? ‘텔레비’ 수상기나 훌륭한 양옥집, 최신형 자동차, 육체의 쾌락의 추구 등 이러한 것들이 당신에게 중요합니까? 당신은 이러한 것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있읍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뜻있는 생활 목표
6. 현명한 왕 ‘솔로몬’은 인간이 추구하는 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6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생활을 더욱 충만하고 보람있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을 마칠 때에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었다고 느낄 필요가 없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예술이나 교육, 의술 분야에서 그들 자신의 재능과 경향을 발전시킴으로써 하나님께 최선의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것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읍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불리우며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솔로몬’은 그가 그 모든 것을 뒤에 있는 사람에게 남기고 죽어야 할 것을 생각하는 것을 슬퍼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최선의 노력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더 좋습니까! 그렇게 하는 데는 헛됨이 없읍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악인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환경이 닥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에는 목표와 목적과 여호와의 인도와 축복이 있읍니다.—전도 2:10, 11, 18; 3:13; 8:14.
7. (ㄱ)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관한 그리스도교국의 어떠한 가르침이 성서와 배치됩니까? (ㄴ) 성경은 “위로 부르신 부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7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왔읍니다. 즉 그것은 특별한 부름을 받은 자를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읍니다. 성서에 “부름”이라는 말이 언급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전도 봉사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이해된 바와 같이, 창조주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름이란 충성스러운 선택된 집단의 일부로서 예수의 하늘 왕국에서 왕들과 제사장들로서 예수와 연합하게 될 “적은 무리”의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땅으로부터 속량함을 받은” 144,000명을 형성하는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누가 12:32; 계시 14:1-3, 새번역) ‘바울’은 이 부름을 빌립보 3:1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로 부르신 부름”이라고 하였읍니다. (난외주) 로마서 8:30은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받을 것을 알려 줍니다. 이들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베드로 후 1:10, 11.
8. 전도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적은 얼마의 이유들은 무엇입니까?
8 그러나 전도 봉사에 참여하는 데는 특별한 부름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귓속말을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무시하는 일이 없읍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해서 신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부르시지 않는 일도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그들의 교구민들에게 전도 봉사에 들어가도록 종교 기관을 통하여 초대해도 그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염려하게 되었읍니다. 수입이 적은 것이 하나의 요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염려합니다. 그들은 사제들의 독신주의를 반대하거나 교회가 변화되는 일, 종교력(歷)에서 “성도”들이 탈락되는 일, 현대어로 ‘미사’ 예식을 행하는 일, ‘째즈’ 음악 예배, 사제들과 목사들이 연좌 시위를 하는 일, 산아 제한 문제, 사회 문제나 정치 논쟁에서의 종교의 개입, 심지어 성경 원칙을 “현대 도덕”으로 바꾸려는 움직임 등으로 혼란에 빠져 있읍니다. 이런 혹은 저런 사상은 어떤 사람들에게 교회를 등지게 만들었으며, 더는 자신들을 위한 의미깊은 소식이 없다고 느끼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듣지 못하였읍니다. 사실상 어떤 자들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9. 학생들과 교직자들 사이에 어떠한 추세가 있다고 보도되었읍니까?
9 ‘에모리’ 대학의 ‘윌리암 캐논’ 학장은 “우리 대학에서 전도 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수는 점점 줄어 들고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유. 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읍니다. “성직자들이 수천명씩 완전히 교회를 떠나고 있다. ··· 전국 목회 부흥 협회에서 9월에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일선 성직에서 떠난 사제들의 비율이 금년에 들어와서 1967년보다 31‘퍼센트’나 높아졌다. ··· 수천명의 수녀들—1966년에 3,600명으로 추산됨—이 또한 그들의 성직을 떠나고 있다.” 이 보고는 계속해서 연합 감리 교회는 42,000개 회중에 현재 33,000명의 교직자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교직자들을 훈련시킬 자금을 증가시킬 계획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추세이기 때문에 1969년 3월 8일자 「뉴욕 타임즈」지에서 종교 사업을 떠난 사제들과 수녀들에게 세속 직업을 알선하는 미국 주요 도시에 14개의 사무소를 가진 한 전국적인 단체에 관한 언급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0.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 교직계급과 평신도의 구별이 있었다는 근거가 있읍니까?
10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마땅치 않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교회들이 육성한 교직자-평신도 구별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교직자-평신도 구분이 없었으며, 참 그리스도교에는 오늘날에도 그러한 것이 없읍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의 희망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땅에 이루어졌을 때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든지,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성경에 있는 대로 일치하게 전도인으로서 일할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교직 계급을 따로 세우는 일은 이교 숭배인 ‘바벨론’ 종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나 그의 제자들의 전도 봉사에서 그러한 선례를 볼 수 없읍니다. 「‘맥클린톡’과 ‘스트통’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 복음 28장 19절 20절에 있는 위대한 사명은 다만 열한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 그러므로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있는 믿는 자들의 온 무리는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의 영감을 받은 것 같다.” “교직 계급과 평신도 사이의 전문적 구별”에 관하여 이 편자들은 계속하여 “이것은 신약 전서에서 거의 무시되어 있으며 우리는 교회 성원들이 공적이든지 사적이든지, 남자든지 여자든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이 예수를 선포할 자유를 행사하였음을 볼 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봉사를 위하여 열려진 문
11. 예수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옹호하였읍니까?
11 이 점에 관하여 초기 교회사의 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주의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반대자로서 첫 필자인 ‘셀서스’는 노동자들이나 제화공, 농부, 무식한 촌 사람들이 복음의 열렬한 전파자였다는 것을 비방거리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교육이 아니라 (첫 제자들은 천한 어부들이 아니었는가?)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진성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교직자들과 평신도 사이의 전문적 구별”을 두신 것이 아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행해진 바로 그러한 구별을 단죄하셨읍니다. (마태 23:1-33)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과 그들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일, 화려한 종교 제복, 잔치 좌석에서 상좌를 차지하는 일, 그들이 채택한 칭호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너희는 다 형제”라고 강조하셨읍니다. 믿음 안의 형제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포함한 봉사에서 형제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목자로서, 가르치는 자로서 그리고 봉사의 종들로서 섬겼다는 사실이 그들을 양떼보다 높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에 부가적인 책임이 주어졌던 것입니다.—마태 23:8; 28:19, 신세; 빌립보 2:3, 4.
12. 그리스도교국의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떠한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여 왔읍니까?
12 여호와의 증인들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에 참여하는 이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왔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과 같이 “그것은 우리 목사나 사제가 할 일이다. 그가 그러한 일을 배웠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도 봉사를 위한 자격은 여호와로부터 그리고 그의 성령에 의하여 오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느 교회 필자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와 특별한 일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모든 신자들의 일반적 의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만 의심할 수 없는 내부적, 외부적 표시로서 성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일반적으로 교회에 의하여 재가를 받은 사람들만의 유일한 혹은 전적인 의무이다.”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들은 진실한 사람들을 전도 봉사로부터 떠나게 한 책임이 어느 정도 이러한 가르침에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성원들 가운데서 특별한 일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 의무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됩니까?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사실상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데 종사하고 있읍니까? 오히려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교구민들은 전도 봉사는 그들의 사제들과 목사들에게 맡기고 있지 않습니까?
13.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이 수행될 수 있읍니까?
13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오순절날 “모든 육체”에 부어진 하나님의 성령의 지시와는 매우 반대됩니다. ‘베드로’는 ‘요엘’이 기록한 이 예언은 “마지막 날”에 적용될 것이며, 그때에 “너희 아들과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 그러나 주[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사도 2:17-21, 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언의 성취로서 여호와의 백성들이 전세계에서 예언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기도와 그들의 공개적 전도 봉사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께서 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한 공개적 선포’를 하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있으며, ‘바울’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라고 격려한 대로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읍니다. (로마 10:8-15)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의 말씀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것을 그들의 생활에 적용시키며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함을 공개적으로 선포합니다. 1970년에 1,483,430명이 좋은 소식의 선포자들로서 여호와의 증인들과 함께 활동하였읍니다.
14. 어떤 부름이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며, 당신이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바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합니다.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그들에게 맡겨진 왕국 지식을 잘 사용한 사람들을 칭찬하셨읍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서 단죄되었읍니다. (마태 25:14-27)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중천을 나르는 천사”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는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는 큰 음성으로 이렇게 재촉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계시 14:6, 7) 반응은 매우 훌륭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 큰 무리”가 이 초대에 응합니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 어느 모퉁이에서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여호와의 숭배에 참여합니다. 계시록 7:10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당신도 믿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큰 무리”의 한 사람입니까?
어떻게 자격을 갖게 되는가?
15.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자격을 갖게 되었읍니까?
15 그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봉사를 위하여 자격을 갖게 됩니까?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부들이었던 예수의 사도들은 어떻게 자격을 갖게 되었읍니까?—또는 ‘누가’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배울 때 그는 한 전도인이 아니라 의사였었는데 그는 어떻게 자격을 갖게 되었읍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디모데 전 2:7) 그가 이 임명을 하나님께 받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받았겠읍니까? 어떤 사람은 ‘바울’이 ‘베드로’에게서 전도 봉사의 임명을 받았다고 생각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바울’ 자신은 “우리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고 설명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3:5, 새번역)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어부였던 사람들은 그들이 전도 봉사를 위하여 자격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봉사를 위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유대’인으로서 그들은 부모로부터 율법과 예언자들에 관하여 배웠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발에 등이요 그들의 길에 빛’이라고 느꼈읍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하고 기도하였었을 것입니다. (시 119:105, 33) 그리고 그들은 이제 진리의 탁월한 선생님이신 그분과 교제할 특권을 가졌었읍니다. (요한 13:13) 그들은 성경이 예수의 생활에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자 즉시 그들이 아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었읍니다. (마태 4:18-22) 성경에 대한 그들의 명백한 이해와 그들의 전도 봉사에서의 여호와의 영의 인도는 이들 사도들과 제자들로 권위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들까지도 “그들이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았읍니다. (사도 4:13)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전도 봉사를 위하여 자격을 갖도록 살피셨읍니다.
16.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참 숭배자들이 전도 봉사를 위하여 자격을 갖도록 어떠한 마련을 하시고 계십니까?
16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를 위한 문을 온갖 생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즉 주를 위하여 열심을 가진 온갖 교육 수준의 사람들에게 열어 놓으시고 계십니다. (열왕 하 10:15; 요한 4:34)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철학이나 고등 비평과 같은 무익한 교육을 위하여 여러 해를 보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도 봉사를 위한 훈련과 교육이 그들의 믿음을 세우도록 도우며 그들로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해 줍니다. 그들은 ‘바울’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하고 말한 지혜를 인정합니다. (로마 2:21) 그러므로 그들은 성서를 가정에서 혼자 연구하는 일 외에 전세계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26,524개 회중에서 마련된 매주 다섯 가지 집회에 정기적으로 연합하고 있읍니다. 이 집회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사용할 자격을 갖게 하는 신권 전도 학교가 있읍니다.—골로새 2:8; 디모데 후 2:15.
17. (ㄱ) ‘야고보’는 다른 사람이 진리의 가르치는 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읍니까? 그러한 견해에 대한 논증은 무엇입니까? (ㄴ) 그러면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그의 말의 요점은 무엇이었읍니까?
17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예수의 명령을 성취시키는 것인데, 야고보 3:1에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예수 자신의 교훈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까? ‘야고보’가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든가 제자를 삼는 일이 더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옹호하고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봉사를 위한 길이 열려져 있을 때에 창조주를 온전히 섬기기 위하여 그들에게 맡겨진 왕국 ‘달란트’를 사용하지 말라고 아무에게도 격려하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인 회중의 감독자요 가르치는 자로서 그는 그러한 행로를 따르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그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논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성귀에서 그는 혀의 현명한 사용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서 가르치는 자로서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지식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 4:11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자]와 교사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읍니다. (새번역) 그리스도인 조직에는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봉사 분야가 있었읍니다. 어린양의 사도들은 열둘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언자로서 혹은 복음 전파자로서 봉사할 수 있었읍니다. 초기 회중에서 어떤 사람은 마치 예언자 학교가 있었던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서와 같이 가르치는 자와 양떼의 목자로서 교훈하는 일을 인도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하실 일 가운데에는 자기가 죽은 후에도 일이 계속 수행되어 나가도록 그의 사도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더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데 있어서 예수의 본을 따랐읍니다. (디모데 후 2:2)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들의 회중에는 회중에게 교훈을 주는 일을 인도하는 종들이 있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길르앗’ 학교에서 선교인 봉사를 위하여 가르치는 자로서 혹은 천국 전도 학교에서 회중 활동을 위하여 가르치는 자로서 봉사합니다. 어떤 형제들은 회중이 교육 계획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일의 목적은 에베소 4:12에 있는 바와 같이 “성도들을 준비시켜 섬기는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가르치는 자들로서 좀더 전문적인 분야에서 봉사한다고 해서 이것은 예수께서 명령하신 바와 같이 열국에서 좋은 소식의 전도인 혹은 가르치는 자로 섬길 수 있는 특권으로부터 제외되지 않습니다.—히브리 5:12.
‘왕국을 첫째로 구함’
18. (ㄱ) 예수께서는 생활 목표에 관하여 무엇을 추천하셨읍니까? (ㄴ) 그것은 왜 현명한 목적이 됩니까?
18 어느 남녀도 그의 생애를 이보다 더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은 없읍니다. 여호와를 섬기고 전 시간 그렇게 하는 것은 훌륭한 특권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승인을 받는 생활 방식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만족을 줌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목표는 재정적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길입니다. ‘바울’과 같은 복음의 참다운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 그밖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길 것입니다. 그들은 “땅의 것만” 생각하지 않고 “왕국과 [하나님의] 의를 첫째로 구하는” 일에 있어서 예수의 본을 따릅니다.—마태 6:33, 신세; 빌립보 3:8, 19, 새번역.
19. 전도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요구 조건들이 있읍니까?
19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진실하게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길의 의로움을 인식하는 사람들에 대한 요구 조건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마땅히 자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 110:3) 예수께서 하신 바와 같이 당신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는 당신의 결정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마땅히 여호와의 의로운 요구 조건에 일치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매일 그의 생활에서 그의 말씀에 일치하게 삶으로써 전 시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전파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봉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함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자신에게만 간직하고 있지 않고 그들은 예수께서 격려하신 바와 같이 왕국의 좋은 열매를 삼십배, 육십배 혹은 백배 결실합니다. (마태 13:23) 당신도 그렇게 결실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더욱 온전히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왕국 선포의 더 많은 일군들을 부르는 소리는 외쳐졌읍니다. 이 일은 긴급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 일에 온 마음으로 응한다면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풍부하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실제 시간이 많든지 적든지 당신은 참 하나님의 전 시간 종임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