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랑—오늘날 죽었는가, 살아있는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다발성 경화증으로 10년간 ‘휘일체어’에 갇힌 생활을 해 온 ‘에스더’는 흐느꼈다. 그 여자의 집에 막 도둑들이 들어 그들 눈에 뜨이는 것은 모조리—282‘달러’(미화), 닭고기 4‘파운드’, 우유 및 10살된 아들이 개학 때 입을 옷까지 털어가 버린 것이다. 이 무력한 불구자는 이제 남은 돈, 겨우 25‘센트’로 자기 자신과 아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해야 했다.
이 여자의 경험은 전세계적으로 보다 불운한 사람들이 약탈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백만건의 실례들 중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비극적인 기사를 읽으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은 참으로 이기심과 탐욕이 포화 상태에 있다. 폭력과 ‘테러’ 활동이 자주 신문의 표제가 되어 떠들어 댄다. 많은 사람들이 참된 사랑은 죽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의 전세계적인 일련의 대회들에 참석한 사람들은 참 사랑이 매우 뚜렷하게 살아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대회에 참석한 100,000여명의 사람들 가운데는 불구자들과 신체 장애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들이 받은 사랑의 돌봄은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장면을 생각해 보라. 한 구획의 좌석 전체가 신체 장애자들을 위해 따로 정해진다. 수십명의 무력한 불구자들이 ‘휘일체어’를 타고 들어온다. 식사 시간에는 자진 봉사자들이 이들에게 점심을 가져다 주고 그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움을 베푼다. (다음 ‘페이지’의 그림을 보라) 너무 무력하고 허리가 너무 굽어서 성한 한쪽 손만으로는 거의 식사를 할 수 없는 한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 조그만 식탁을 차린 한 벗의 훌륭한 도움을 받고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베푸는 이러한 보살핌은 정말로 가슴을 뭉클케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러한 친절은 이러한 일본의 “하나님의 사랑”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레곤’, ‘플로렌스’의 세명의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은 대회에 참석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보호소의 특별한 보살핌에서 떠나 밤을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 증인들이 그들을 매일 대회에 데리고 갔다가는 도로 데려다 주었다—이것은 274‘킬로미터’나 되는 여행길이었다. 또한 그 증인들은 대회 4일간 내내 이들 병자들의 식사를 도와주는 등 그들의 필요를 온전히 돌봐주었다.
그러나 이미 39개국에서 2,290,855명이 참석한 이러한 대회들에서 뚜렷이 나타난 사랑은 단순히 신체 장애자들에 대한 염려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가정 내에서 촉진된 사랑
많은 가정에서 사랑이 저하되어 일단의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여러 가정 내에서의 “격렬한 신체적 폭력의 정도”는 “전쟁과 폭동에서 볼 수 있는 것의 바로 다음 자리”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대회에 참석한 가족들은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발전시키도록 권고를 받았다. 한 연사는 “행복한 결혼은 용서를 잘 해주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한 주의깊은 대표자는 특히 이 교훈에 감사하였다. 이전에 그는 자기 남편에 대한 불신을 견디지 못하여 이혼을 하려고 했었다. 사실상 그는 어느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되었고 과음과 성적으로 부도덕한 생활을 시작하여 자살을 계획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과의 성서 연구의 도움으로 그는 이 모든 것을 고치고 자기 남편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대회에서 현재까지 침례를 받은 25,389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미국의 한 대회에서 침례를 받은 ‘타미’는 “내 나이는 겨우 열 여섯이지만 범할 수 있는 갖가지 부도덕한 일은 다 범해보았읍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근처에 계실 때면 언제나 괜히 반항을 한 것 같았읍니다.” 그는 집을 뛰쳐 나와 자기 “친구”들과 “난잡한 시간”을 보냈지만, 때때로 ‘증인’ 젊은이들과 교제하곤 했다. ‘타미’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증인’들과 만나고 난 그 다음 날에는 항상 기분이 좋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점이, ‘증인’들이 베풀어 준 사랑 및 도움과 함께, 나로 하여금 여호와의 가족이 되게 만들었읍니다.” 이제 그의 가정 생활은 참 사랑으로 꽃 피우게 되었다.
대회 ‘프로그램’ 중에 홀어버이들을 돕기 위한 연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 이러한 부모들 중 한 사람은 대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회를 바로 몇 주일 앞두고 심각한 사고로 그 여자의 자동차가 파손되었다. ‘자네트’와 그의 세명의 자녀들이 상처와 타박상을 회복했을 때 그는 이제 자기의 여행용 ‘트레일러’를 대회장까지 끌고갈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낙담하였다.
곧 한 ‘증인’이 그에게 유개 ‘트럭’을 사용하라고 제공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그의 파손된 ‘트레일러’를 수리해 주었다. 그리고 여행중에도 ‘트레일러’ 바퀴 하나가 빠져 나갔을 때 한 ‘증인’이 그를 도와주어 여행을 다시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자네트’는 청중석에 앉아 자기가 받은 사랑으로 인해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음과 같은 연사의 말에 충심으로 동의했다. “여러분 홀로된 부모님들은 하나님의 영적 가족의 일원이며 많은 형제 자매들의 사랑과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즐거워하십시오!”
형제 사랑
‘자네트’에게 베풀어진 사랑은 어쩌다 볼 수 있는 사례에 불과하였는가? 2,400명의 ‘증인’들이 관련된 후대의 뛰어난 본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정부 당국의 협조로 ‘헝가리’와 ‘폴란드’로부터 오는 수천명의 ‘증인’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마련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묵을 것이었는가? 그들 각자는 단지 제한된 량의 외화를 가지고 여행하였으므로 그들은 식비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비엔나’의 ‘증인’들은 국경에서 다수의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그 다음 4일 동안,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그들은 이들에게 먹을 것, 잠잘 곳 및 교통 편의를 제공했으며 그외 다른 마련도 해주었다. ‘비엔나’ 시에는 회중이 31개뿐임을 고려할 때, 그처럼 많은 방문객들을 돌보는 데 나타낸 반응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였다. ‘오스트리아’의 어떤 ‘증인’들은 동료 ‘증인’들을 돌보기 위해 문자 그대로 수백 ‘킬로미터’를 자동차로 다니면서 무수히 여행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10내지 15명의 방문객이 머물게 했다. 대회장 부근에 사는 한 ‘증인’은 자기 집에 40명이나 묵게했다!
잊지 못할 한 순간이 그 대회의 폐회를 절정에 이르게 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방문객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모였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는 폐회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 커다란 ‘스타디움’에 모든 집단이 함께 모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오로지 믿음으로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이 여기 함께 모인 것이다. 이제 그들이 “오, 감사합니다. 형제 주시니” 하고 노래할 때 대부분은 감격하여 목이 메었다. 부끄러움을 잊은 채, 빛나고 있는 얼굴들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폴란드’인 한 사람은 눈물을 억제하려고 애를 쓰면서 미국에서 온 한 대표자에게 “이 곳에 있게 된 즐거움을 정말 억제할 수가 없군요”라고 말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증인’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를 설명하는 말을 시작할 때 울음이 터져나와 사과를 해야만 했다. 노래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떠나려하지 않았다. 떠나질 못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손을 흔들기도 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이것은 국제적인 형제애의 감동적인 표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연합을 주시하였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증인’이 아닌 한 사람은 몇명의 ‘증인’들에게 “모두가 다 ‘여호와의 증인’같다면 정말로 평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사람들은 ‘증인’들 사이에서 참된 사랑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의미 심장하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 13:34, 35.
‘테러’ 행위가 사랑으로 대치되다
미국 ‘텍사스’, ‘산안토니오’의 「익스프레스 뉴스」지에 실린 최근의 한 표제는 “세상은 미쳐버렸는가?”라고 외쳤다. 그에 뒤따른 기사는 ‘테러’ 활동이 “놀랄 만한 비율로 번지고 있으”며 “세상을 괴롭히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당신 자신도 최근의 ‘테러’ 사건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을 중단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상태가 개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테러’ 분자가 변화될 수 있는가?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던 한 수감자는 ‘테러’ 행위와 무장 강도 행위로 인해 총계, 거의 500년이나 되는 형을 살고 있다! 10년 남짓 형을 살고 난 후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실은 놀랍게 개선되었다. 깜짝 놀란 교도소 당국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 대회에 참석하도록 4일간의 특별 외출을 허가해 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참석한 대회에 경탄을 금치 못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너무나 훌륭해서 꿈인가 싶습니다. 내 느낌을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읍니다!” 하고 말했다. 참된 사랑이 그의 개성을 바꾸어 놓았다.
‘이탈리아’ 신문 「지오날레디 버가모」지에 실린, 이러한 대회 중 한 대회에서 침례를 받은 또 다른 사람에 관한 기사는 “폭력 속에서 자라나서 암살 청부업자가 되기 위해 군 수용소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말로 기사를 시작했다. 그 기사는 말하기를 이 젊은이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 위해] 이 범죄 소굴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의 난폭한 성격이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어 그 신문 기자까지도 깊은 인상을 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날 수 있다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틀림없이 우리의 지구는 살기에 훨씬 더 안전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기꺼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까닭에, 성서 예언이 알려주듯, 조만간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압제하는 사람들을 “꺽”고 현재 성서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강포에서 구속”할 것이다. 그 다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땅끝까지” 번성할 것이다.—시 72:1-14.
진정한 이웃 사랑
사람들이 이러한 고무적인 희망에 대해 알게 되도록 돕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친다. 심지어 대회중에도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이 사랑과 희망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졌었다. 일본에서 이 전도 활동에 참여한 수천명 가운데는 한 조그만 회사를 방문한 두 그리스도인 여자가 있었다. 그 회사 사장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출판물 몇권을 달라고 했다. 그의 결혼 반지(일본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음)를 보고서 그 중 한 ‘증인’은 그의 아내에 대해 물었다.
슬픔에 젖은 그 사장은 “아내는 4년 전에 사망했읍니다” 하고 말했다. 그 다음 ‘증인’들이 그에게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에 대한 성서의 희망을 알려 주자 그의 눈은 놀라움에 눈물이 넘쳐 흘렀다. (사도 24:15, 신세) 그 다음 일요일에 그는 대회에 참석하여 더 많은 성서 지식을 열심히 탐구하였다. 그 두 여자의 사랑의 방문을 그는 얼마나 감사했겠는가?
무엇이 참된 사랑을 세우는가?
이 세상은 보다 많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거의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을 발전시키는 비결은 무엇인가?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 1서 4:8)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려면 그분의 말씀 즉 성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지식을 통해 사람은 창조주께서 참으로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자기에게 참으로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은 그에 감동되어 자기 실생활에서 그분의 사랑과 똑같은 사랑을 본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근의 대회들에서 매우 뚜렷하게 살아 활동하는 사랑을 촉진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접촉하여, 성서를 이해하도록 돕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도록 돕는 이러한 무료 마련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유익을 얻는 것이 어떠한가? 당신 자신의 생활이 참된 사랑이 오늘날 세상에도 살아 있다는 부가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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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고 있는 참 사랑: 일본에서 대회에 참석한 한 신체 장애자가 식사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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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함께 있지 않다는 것이 이들 식구들이 사랑을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막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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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유혈 행위가 많던 곳인 ‘로마’의 ‘콜로세움’ 근처에서 ‘증인’들이 희망의 소식을 전함으로써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