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여호와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느니라’
“보라! 주[여호와]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다 14, 15, 신세 참조.
1. 최고의 심판관이신 여호와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최고의 심판관이신 여호와께서는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이사야 33: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매우 불경한 태도로 대합니다. 그처럼 오만한 악행자들 가운데는 제자 ‘유다’가 하나님의 영감받은 서한에 기술한 “경건치 않은 자”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누구도 형벌을 면할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여호와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시기 위해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유다 14, 15; 욥 9:1-4.
2. (ㄱ) 이제까지의 ‘유다’의 서한에 대한 고찰에서 우리의 주의를 끈 요점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유다’의 계속되는 교훈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줄 것입니까?
2 앞서 우리가 살펴본 ‘유다’의 서한에 대한 토론에서는 거짓 선생들과 기만적인,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을 저항하는 한편 성경적인 경고에 유의하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권위를 존경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읍니다. (유다 1-10) 이제 계속되는 ‘유다’의 교훈은 최고의 심판관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을 드높여, 우리로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진 그분의 증인들 가운데 확고하게 서도록 해 줄 것입니다.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3. ‘가인’은 무슨 죄를 지었읍니까?
3 여호와를 무시하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관하여 ‘유다’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반역적인 말, 신세]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 11)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라고 말함으로써, ‘유다’는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재난이 닥칠 것임을 지적하였읍니다. (누가 11:42-47, 52 비교) 그러한 자들은 “‘가인’의 길에 행”하였읍니다. ‘아벨’ 그리고 그가 바친 동물의 고기와 피로된 제물은 여호와께서 승인하신 반면, 부당한 정신으로 바친 ‘가인’의 피없는 제물은 열납지 않으셨읍니다. ‘가인’은 믿음이 부족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아벨’에게 부여하신 영광 혹은 위엄을 존경하지 않았읍니다. 시기심과 증오심으로,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의 동생을 살해하기까지 하였읍니다.—창세 4:2-8; 히브리 11:4; 요한 1서 3:12.
4. (ㄱ) “‘가인’의 길”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왜 “‘가인’의 길”을 피해야 합니까?
4 첫째로, ‘가인’은 여호와께 대하여 불경을 나타내었으며, 그의 불경한 행로는 “‘가인’의 길”이라고 불리웠읍니다. 그의 반항적인 행동과 악한 동기가 전적으로 잘못인 것처럼,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 중 한 사람이라고 공언하면서도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을 방종의 구실로 삼으려는 자들은 누구나 그와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누구나 ‘가인’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동생을 미워하고 살해한 ‘가인’같이, 그러한 개개인들은 ‘살인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에 대한 봉사로 존귀하게 하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3:15)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저주하셨으며, 그의 후손들은 대홍수 중에 사라지고 말았읍니다. 마찬가지로 “‘가인’의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여 멸망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ㄱ) ‘발람’은 어떠한 행로를 추구하였읍니까? (ㄴ) ‘유다’ 시대에 누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읍니까? (ㄷ) 오늘날 거짓 가르침과 동물적인 정욕에 빠뜨리는 방종으로 여호와의 백성을 부패시키려고 노력하는 자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5 육체를 더럽히는 경건치 않은 자들은 또한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읍니다. ‘모압’ 왕 ‘발락’의 보상을 약속하는 거듭된 제의에 굴복한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세번씩이나 저주하려고 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그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읍니다. 그러자, 탐욕적인 ‘발람’은 ‘발락’에게 ‘이스라엘’을 거짓 종교로 꾀어 들여 동물적인 정욕에 빠지게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필경은 자기의 백성을 저주하시게 될 것이라고 제안하였읍니다. 이 악한 충고는 이행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방종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과 즉각적인 심판으로 24,000명이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민수 22:1-25:9; 계시 2:14) 나중에는 ‘발람’ 자신도 그가 저주하려 했던 사람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민수 31:8)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주장하면서 탐욕적이고, 거짓 가르침과 동물적인 정욕에 빠뜨리는 방종으로 여호와의 백성을 부패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누구나 재난을 당할 것입니다. 현대에도 이러한 예들이 있어 왔으므로 여호와의 충실하고 헌신한 증인들은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6, 7. (ㄱ) ‘레위’인 ‘고라’는 어떤 죄를 범하였읍니까? (ㄴ) ‘고라’와 그에게 가담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였읍니까? (ㄷ) 우리는 “반역적인 말”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6 ‘유다’가 언급한 또 하나의 경고의 본은 “반역적인 말”을 한 ‘레위’인 ‘고라’의 경우였읍니다. 야심에 사로 잡힌 그는 ‘모세’가 자기 형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도록 이기적으로 일을 꾸몄다고 거짓 비방하였으며, ‘아론’이 자기와 가족을 위해 제사직의 영예를 장악하였다고 비난하였읍니다. ‘고라’는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부여하신 영광 또는 위엄을 존경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임명에 대하여 반항하였읍니다.
7 ‘고라’와 그의 편에 미혹된 일부 ‘루우벤’ 자손들은 ‘애굽’에서 구원받기는 하였지만 약속의 땅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하였읍니다. 도리어 땅이 갈라져 그들 중 일부는 생매장되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불에 타 죽고 말았읍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이러한 심판에 대해 투덜거린 ‘이스라엘’인 14,700명이 여호와의 징벌로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민수 16장) 그러므로 ‘유다’가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말한 반역적인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은 어김없이 집행되었읍니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반역적인 말”을 피하도록 강력히 촉구해 줍니다!
8. ‘가인’, ‘발람’ 및 ‘고라’의 경고의 본들은 오늘날 어떠한 의미가 있읍니까?
8 그렇습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적 마련에 대하여 반역적인 행로를 추구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틀림없이 재난이 임할 것입니다. ‘유다’는 (‘가인’같이) 사랑과 믿음이 결핍된 자들과 (‘발람’같이) 방종을 조장하는 가르침에 대한 대가를 열망하는 자들 및 (‘고라’같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에 대하여 불경을 나타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임을 보여 주었읍니다. 그리고 확실히 「유다서」의 말씀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공언하면서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신권적인 마련에 대하여 비평적이거나 불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됩니다.
비유적인 경고
9. 경건치 않은 거짓 선생들을 “암초”에 비유한 취지는 무엇이었읍니까?
9 계속 경고하면서, ‘유다’는 비유로 이같이 말하였읍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정해진 진로가 없는, 신세] 별들이라.” (유다 12, 13)
무엇보다도 거짓 선생들은 “암초”와도 같았읍니다. 그런 자들은 신자들을 사랑하는 척하므로 마치 수영하는 사람들을 상처입게 하고 죽게 하거나 혹은 배를 파선시킬 수 있는, 수면 아래 숨기운 울퉁불퉁한 바위와도 같았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계속하여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지 않는다면, 그러한 기만적인 선생들은 견고하지 못한 개개인들을 미혹하여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케 할 수 있읍니다.—디모데 전 1:19.
10. (ㄱ) 초기 그리스도인의 “애찬”은 어떠한 것이었을 것이며, “경건치 않은 자”들은 어떠한 동기로 참석하였읍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교적인 모임에서는 무엇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10 이들 경건치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애찬”에 빠지지 않았읍니다. 그러한 행사들은 물질적으로 여유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동료 신자들을 초대한 일종의 연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만적인,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은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참석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2:13 비교)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교적인 행사를 과식, 과음 및 세상적인 노래와 춤을 위한 기회로 변질시키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읍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들의 사교적인 모임에서 이런 일들이 결코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11. (ㄱ) 경건치 않은 거짓 선생들은 어떠한 종류의 목자들이었읍니까? (ㄴ) 오늘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1 경건치 않은 거짓 선생들은 또한 양들의 털을 깎고 그들을 희생시켜 자기 일신만을 입히며 살찌우는 목자들과도 같았읍니다. 그들은 견고하지 못한 자들로 제멋대로 택한 행로를 걷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들을 적절한 영적 양식으로 먹이지 않았읍니다. (에스겔 34:7-10 비교) 오늘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같은 모든 거짓 선생들의 견해를 배척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2. ‘유다’ 시대의 거짓 선생들은 어떻게 물없이 바람에 불려 다니는 구름과도 같았읍니까?
12 또한, ‘유다’ 시대의 거짓 선생들은, 절실히 필요한 비를 내려 줄 듯 하지만 실상은 물기없이 바람에 불려 다니는 기만적인 구름과도 같았읍니다. 그런 자들은 오류의 바람으로 이리 저리 밀려다니고 있었으며, “물없는 구름”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텅 비어 있어 유익을 줄 수가 없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처럼 뻔뻔스러운 온갖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3. 거짓 선생들이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나무와도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이들 사악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또한 가을에 결실기가 끝나도록 열매가 없는 나무들과도 같았읍니다. 그들은 “죽고 또 죽[은]” 혹은 “완전히 죽은”(오늘날의 영어 역본) 나무와도 같았읍니다. 그런 자들은 형식적으로 물침례를 받은 후 영적으로 살아있는 체 가장함으로써 회중 안으로 “가만히 들어”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지 못한 자들이었으므로 고대 ‘팔레스타인’의 비생산적인 과일 나무들과 같은 취급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이런 나무들은 과목세를 면세받기 위해 뿌리채 뽑아 없애버렸읍니다. “뿌리까지 뽑힌”다 함은 분명히 그처럼 회개하지 않는 배교적인 선생들에게 멸망이 닥칠 것임을 지적하였읍니다.
14. 거짓 선생들은 어떻게 “바다의 거친 물결”과도 같았읍니까?
14 그러한 거짓 선생들에게는 성령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또한 “바다의 거친 물결”과도 같았읍니다. 그들은 흙탕물을 일으키고 해초를 뒤흔드는 사나운 바다 물결처럼 소란을 피웠읍니다. 이와 같이, 그처럼 불안하고 동물같이 육욕을 좇는 자들은 외견상으로는 요란하게 믿음을 공언하였지만, 그들의 경건치 않은 행실과 가르침들은 그들이 수치를 당해 마땅한 추악한 행악자들임을 밝혀 주었읍니다.—이사야 57:20, 21.
15. 거짓 선생들은 어떠한 별과도 같았으며 그들을 위해서 무엇이 예비되어 있었읍니까?
15 이들 거짓 선생들은 의로운 행로를 확고하게 유지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유리하는 별들”과도 같았읍니다. 물론 별들이 예상할 수 없게 이리 저리 유리한다면 별의 움직임에 따르는 항해는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정해진 진로가” 없는 별들과 같은 그러한 배교자들에게서 건전한 영적 지침이 나올 것으로 믿을 수가 없었읍니다. 그러한 거짓 광명들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다만 “캄캄한 흑암”만을 영원히 “예비”해 두셨으며, 이것은 그들이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충실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거짓 선생들과 그들의 교리를 철저히 배격하는 데는 실로 많은 이유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심판 집행을 위해 조치를 취하심
16. ‘에녹’은 누구였으며, 그는 무엇을 예언하였읍니까?
16 ‘유다’는 여호와께서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하여 조치를 취하실 것임을 증거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여호와]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다 14, 15 신세 참조)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헤아려 볼 때, ‘에녹’은 “칠세 손”이었읍니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렛’ 및 ‘야렛’이 있었읍니다. (창세 5:3-18) 여호와께서 밝혀 주신 진리와 일치한 행로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창세 5:24; 히브리 11:5) ‘에녹’은 영적 부패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담대하게 봉사하였읍니다.
17. ‘유다’는 ‘에녹’의 예언에 대하여 어떻게 알게 되었을 것입니까?
17 ‘유다’가 ‘에녹’의 예언에 관하여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 이전의 하나님의 영감받은 성경들 가운데는 그것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 예수께서 교훈을 베푸실 때 ‘에녹’의 예언을 인용하셨을 것이며, 그것이 구두로 전해 내려 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가 외경인 「에녹서」에 나와 있는 그와 유사한 말을 인용하였다는 증거는 없읍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으므로, ‘에녹’의 예언이 그의 서한 가운데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그 말씀이 참됨을 확증해 줍니다.
18. (ㄱ) ‘에녹’이 ‘유다’ 시대의 거짓 선생들에 관하여도 예언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에녹’의 예언에 의하면, 최고 심판관께서는 그분을 불경스럽게 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루실 것입니까?
18 ‘에녹’은 그가 일찌기 행악자들에 관하여 예언한 것이 또한 ‘유다’ 시대의 거짓 선생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였읍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 혹은 불손한 자들이 불경을 나타낸 최고 심판관,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불리한 심판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수행하심에 있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수만의 거룩한 자” 곧 막대한 수의 의로운 천사들과 함께 임하실 것입니다. (신명 33:2; 다니엘 7:9, 10 비교) 이들 “수만의 거룩한 자” 가운데 우두머리는 ‘메시야’이며,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임하시고 심판을 베푸십니다.—누가 1:35; 요한 5:27; 사도 17:30, 31.
19. (ㄱ) ‘에녹’ 시대의 악인들처럼, “경건치 않은 자”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거스려 “강퍅한 말”을 하였읍니까? (ㄴ) 육체를 더럽히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무엇이 임할 것이 확실합니까? (ㄷ)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19 여호와께서는 그와 같이 경건치 않은 자들이나 불손한 자들이 “방종”과 같은 일을 통하여 그들의 죄악을 드러내도록 충분한 기회를 허락하셨읍니다. 그들이 경건치 않음은 그들의 사악한 언행으로 명백해졌으며, 그것을 근거로 그들이 죄를 범하였음이 입증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받게 되’었읍니다. ‘에녹’ 시대의 악인들이 하나님을 거스리는 “강퍅한 말”을 한 것과 같이, “경건치 않은 자”들도 주권을 업신여기고 여호와께서 얼마의 영광을 부여한 자들에 대하여 모욕적으로 말하였읍니다. (유다 8-10) 이와 같이, 그들은 여호와를 거스리는 “강퍅한 말”을 하여 정죄받게 되었읍니다. ‘에녹’의 예언과 일치하게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의 홍수 기간에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더럽히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은 확실하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현 시대에 유사한 심판 집행을 목격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참으로 우리는 우리의 언행에 조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멸망을 피하도록 해야 합니다.
투덜거리는 말과 과장하는 말을 금하라
20. 여호와의 종들은 “경건치 않은 자”들이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20 경건치 않은 자들의 또 다른 특성을 언급하면서, ‘유다’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투덜거리는 자들, 신세]며 불만을 토하는[생활상의 자기 처지에 대하여 불평하는, 신세]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과장, 신세]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 16)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모든 일을 원망 ··· 없이 하라”는 훈계를 받고 있읍니다. (빌립보 2:14, 15) 그러나, “경건치 않은 자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해 투덜거리다가 사실상 하나님을 거스려 불평한 것이었으므로 결국 광야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투덜거리는 자들”이었읍니다. (민수 14:1-38; 고린도 전 10:10) 육욕을 좇는 자들 역시, “생활상의 자기 처지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이었읍니다. 그들은 마치 세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자기들이 부하지 못한 것등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물론, ‘유다’ 시대의 참 그리스도인들처럼,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역경을 견디어내는 데 천적 지혜와 하나님의 영의 도움에 의존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유다’ 시대의 불경건한 투덜거리는 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1. (ㄱ) “경건치 않은 자”들은 어떠한 면으로 ‘그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읍니까? (ㄴ) 이들 제멋대로 행동하는 개개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며, 그것이 옳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그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그분의 아들의 계명이 아니라, 관능적인 부도덕한 욕망의 지배를 받아 ‘그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였읍니다. (야고보 4:1-3 비교) 그리고 ‘그들의 입이 과장하는 말을 내’거나 “뽐내는 말이 가득”(‘예루살렘’ 성서)한 가운데 그들은 일부 사람들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진심에서가 아닌 거짓된 칭찬을 늘어 놓았읍니다. (시 140:11; 디도 1:10, 11; 베드로 후 2:18, 19 비교) 그런 부도덕한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였읍니다. 그들은 물질이나 또는 사교상의 이득을 바라면서 부자들이나 탁월한 자들 또는 그 밖의 사람들의 은총과 지원을 얻으려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이기적인 일로서, 그 행악자들로 여호와의 은총을 구하는 훨씬 더 고상하고 경건한 목표를 보지 못하게 하였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최고 심판관에게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분에게 멸망의 선고를 받게 되었읍니다.
22. 이제까지 고려해 본 결과, ‘유다’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무엇을 제시하였으며, 그의 결론적인 말들에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읍니까?
22 동료 신자들에게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한 ‘유다’의 권고는 직선적인 것이었읍니다. 그는 부도덕, 반역 및 불평에 대한 성경적인 경고를 알려 주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에 관하여 의문의 여지가 없게 해 주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숙고해 보는 것은 참으로 시기 적절한 일입니다! 또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간청을 내포한 ‘유다’의 결론적인 말들도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당신은 아래의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가?
◻ “‘가인’의 길”은 무엇이며, 여호와의 백성은 왜 그것을 피해야 하는가?
◻ 누가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우리가 그것을 피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레위’인 ‘고라’의 경우는, 우리에게 어떠한 경고의 본이 되는가?
◻ ‘유다’가 언급한 “경건치 않은 자”들을 어떻게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나무에 비할 수 있는가?
◻ ‘에녹’은 무엇을 예언하였으며, 그의 말은 무엇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 ‘유다’의 교훈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투덜거리는 일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14면 삽화]
비생산적인 과목이 뿌리채 뽑혔던 것처럼, 회개하지 않는 배교적인 선생들은 멸망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