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리”는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는가?
“이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역에서 낮과 밤에 그분께 신성한 봉사를 하고 있다.”—계시 7:15, 로더함의 「강조된 성서」.
1. 세계적으로 종교 문제에 있어서 “무리” 즉 대중의 일반적인 경향은 어떠합니까?
종교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건물, 사원 및 성전에서 하는 “신성한 봉사” 혹은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가 감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서 특히 그러합니다. 불신자들과 회의론자,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및 반종교적인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종교 부흥의 어떠한 노력도 그들을 회복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리” 혹은 대중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2. 우리는 로마 정부가 밧모 섬으로 유배시킨 한 노인이 환상에서 본 어떠한 “무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2 그러나 우리는 로마 제국 정부가 밧모 섬으로 유배시킨 한 노인이 미리 본 특별한 무리, “큰 무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 144,000명에 관한 환상을 본 후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더라.]”—계시 7:9, 10.
3. “큰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적절한 옷을 입고 서 있는 것을 본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이 하늘에 있다고 널리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이 “큰 무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얼마나 존엄성을 갖춘 모습이라고 하였습니까! 현대에도 보좌에 앉은 군주를 알현할 때에는 그 앞에 서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본 이들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앉아계신 보좌 앞에 서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환경에 잘 어울리게도 점 하나 없는 흰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 밖에 모여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까? 아닙니다. 계시록 7:15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 그의 성전[나오스, 희랍 원어]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더라.]” 그러면 이것은 이 “큰 무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그들의 “구원”에 대하여 그들이 감사하는 분인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입니까?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대답들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분께 공개적 봉사 혹은 “신성한 봉사”를 하는 곳이 “그의 성전” 혹은 “그분의 성역”(로더함역)이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어떠한 희랍어 원어를 중심으로 질문이 생기며, 그것은 요한 복음 2:19-21에서 무엇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까?
4 그러면 그러한 견해는 성서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모든 사실과 일치합니까? 또한 오늘날 현재 형성되고 있는 그 “큰 무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하늘로 올라가서 천사들과 같은 영물(靈物)이 되기를 기대합니까? 그들은 과연 하늘로 올라가기를 원하기라도 합니까? 그들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하늘 희망을 갖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한 자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막”(tent), “성전”(temple) 및 “성역”(sanctuary)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 희랍어 원어를 중심으로 질문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헤롯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신 성서 기록에 사용된 희랍어 원어는 나오스입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성역[나오스]을 파괴하라. 내가 사흘이면 그것을 일으킬 것이다.’ 유대인들이 대답했다. ‘이 성역[나오스]을 짓는 데 사십 육년이 걸렸는데 네가 사흘 만에 세운단 말이냐?’ 그러나 그분은 자기의 몸인 성역[나오스]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요한 2:19-21, 예루살렘 성서) 이들 유대인들이 말한 “성역”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까?
5. (ㄱ)유대인들이 짓는 데 46년이나 걸렸다고 말한 것은 어떤 건축물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ㄴ) 이사야 66:6의 희랍어 70인역에 사용된 나오스라는 말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 분명합니까?
5 현관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로 되어 있는 내부 성역을 말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성전뜰들을 포함한 성전 구조물 전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이러한 뜰 중 하나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꾼들이 그들의 영업을 했던 것입니다. 헤롯 성전은 기원 70년에 전체적으로 로마인들에게 파괴되었습니다. 기원전 607년에 멸망된 솔로몬의 이전 성전과는 달리 헤롯의 성전은 결코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관하여 이사야 66:6은 예언적 의미가 있는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나오스, 희랍어 70인역]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들으라! 성읍으로부터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라! 성전[나오스]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주께서 자기의 적들에게 보응하심을.” (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 판) 성전, 성역 즉 나오스는 단순한 내부 성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전 건축물을 포함한 성전 구역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6. 기원 33년 유월절 밤에 유대인들이 예수와 예루살렘의 나오스에 대하여 어떠한 거짓 증거를 하였습니까?
6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유월절 밤에 제사장들과 산헤드린 앞에서 어느 유대인들이 증언을 하였었는데, 만일 이들 증인들이 기원 70년에 살아 있었다면 그들이 그 중요한 날 밤에 예수 그리스도를 쳐서 증언한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나오스]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마가 14:58) 그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기원 70년에 그들의 성전이 완전히 파멸되는 것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7. (ㄱ) 유대인들은 갈보리에서 못박히신 예수를 어떻게 조롱하였습니까? (ㄴ) 배반자인 유다는 마침내 뇌물로 받은 돈을 어디에다 던졌습니까?
7 같은 날, 후에 적의 있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바깥에서 형주에 달려 있는 이 예수를 보았을 때, 그들은 아마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그들이 잘못 생각했던 것을 예수께서 이행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나오스]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형주]에서 내려 오라 하[더라.]” (마태 27:39, 40; 마가 15:29, 30) 그러나 피에 굶주린 적들에게 예수를 은 30에 판 제자는 예수께서 못박히시기 전에 도로 무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열두 사도들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뇌물인 돈을 돌려주려고 하였으나 뇌물을 준 자들은 그것을 돌려 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깨끗이 할 수 없었으므로 이 배반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마태 복음 27:5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유다가 돈을 성역[나오스]에다 던지고 그들을 떠나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었다.” (좋은 소식 성서, 예루살렘 성서, 영의 축자 번역 성서) 현대의 다른 성서 번역판들은 왜 나오스를 “성전”(temple)이라고 번역하였습니까?
8. 분명히 성서의 많은 번역자들이 이 말을 “성역”(sanctuary)이라는 말 대신 “성전”(temple)이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8 분명히 이 희랍어가 낭실과 성소 및 대제사장이 연례 속죄일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들어간 지성소로 이루어진 내부 성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이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뜰들을 포함한 성전을 의미하였습니다.
9. (ㄱ) 그러므로 “큰 무리”가 하나님의 나오스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하늘에 있어야 합니까? (ㄴ) 계시록 3:12에 의하면 나오스에는 제한된 의미가 있습니까?
9 따라서 “큰 무리”는 나오스 즉 하나님의 “성전”에 있지만 하나님의 “적은 무리”를 형성하는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영물로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 7:1-9, 15; 누가 12:32) 나오스는 또한 제한된 의미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아시아 필라델피아에 있는 제1세기 회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나오스)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 3:12.
10. 계시록 7:9-17은 “큰 무리”가 그 제한된 나오스에 있는 회중에서 어떠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알려 줍니까?
10 “큰 무리”의 성원들 위에 그러한 기록을 한다는 것은 계시록 7:9-17에 언급조차 없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리라는 말도 없습니다. 상징적 기둥이 될 사람들은 12지파의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11, 12. (ㄱ) 이름들과 관련해서 정해진 수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은 “큰 무리”와 어떻게 다릅니까? (ㄴ) 계시록 14:1-5에 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성의 이름이 어떻게 144,000명에게 적합합니까?
11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와는 달리 정해진 수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 위에 예수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그들 위에는 또한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성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마치 시온 산이 고대 예루살렘과 연관되었던 것처럼 영적 시온 산도 천적인 이 새 예루살렘과 연관되었습니다. 이와 일치하게, 사도 요한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에 관한 둘째 환상을 보고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12 “보라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저희가 보좌 ···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더라.]”—계시 14:1-5.
13. (ㄱ)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도 144,000명처럼 천적 시온 산 위에 서 있습니까? (ㄴ) 그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까?
13 이러한 자세한 묘사는 또한 계시록 7:9-17에 나오는 국제적 “큰 무리”에게도 어울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에도 그들이 하늘 시온 산 위에 서 있다고 말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2:22) 그들은 원래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에게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큰 무리”에 속한 자들은 영원히 땅에 남아서 땅을 낙원이 되게 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형성되기 시작한 144,000명의 “구속을 받”은 자들에게 속해 있지 않습니다. 오순절 날에 유대인 대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밀 수확의 “첫 열매”를 바쳤던 것입니다. 그날에 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하나님께 자기의 흘린 피로 사는 값을 치르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로로 사용하시어 같은 날 기다리고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으며, 그 후에 회개하고 그날 침례를 받은 약 3,000명의 유대인들과 유대 귀의자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사도 2장; 요엘 2:28, 29; 히브리 4:15, 16.
차이를 알려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
14. 144,000명과 “큰 무리” 모두 구원받은 상태로 들어오게 되지만 인(印)이 어떻게 이들 사이를 구별해 줍니까?
14 흰옷 입은 “큰 무리”와 144,000명의 “구속을 받”은 자들 사이의 분명한 한 가지 차이점을 알려 주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입니다.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과 “큰 무리” 두 가지를 다 다루고 있는 계시록 7장에서는 144,000명만 “하나님의 종들”로서 “이마에” ‘인침’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또한 하늘과 땅에 관한 하나님의 마지막 마련에 있어서 그들의 임명된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무리”에 속한 자들과 144,000명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인정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은 상태에 있게 되지만 여전히 다릅니다. (요한 1:29, 36; 요한 1서 2:1, 2) 이렇게 해서 “큰 무리”에 속한 자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습니다. (계시 7:9, 14)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대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구조물 전체로써 예표 혹은 전영되었던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여호와를 숭배할 자격을 갖습니다.—요한 4:21-24.
15. 보호받기 위하여 어떻게 외치는 일이 있을 때가 가까와 오고 있으며, 어떠한 해로운 바람이 아직도 붙잡혀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일반 대중이 사실상 지상 사회의 오랫동안 견고해진 높은 조직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계시 6:16, 17) 폭풍이 일어날 찰나입니다. 그 환상의 다음 말에서 그것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사도 요한]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이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다섯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시 7:1-4.
16. “큰 무리”는 인침을 받지 않았지만, 왜 어린 양의 진노의 표현으로 불게 될 폭풍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습니까?
16 “큰 무리” 중 아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만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왜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땅 사방으로부터 불게 하는 “사방의 바람”의 결과인 그 사나운 회리바람에게 해를 받지 않습니까? 또한 어찌하여 인맞지 않은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144,000명의 인치는 일이 끝난 후에 “어린 양의 진노”를 느끼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시 7:14) 그들은 이제 그분의 대속 희생의 혜택을 믿고 죄를 속량하는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죄로부터 깨끗해지고자 노력합니다. 그들은 보호를 받기 위하여 미약한 인간의 깊이 뿌리박은 제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 같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감사함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시 7:9, 10.
17. 우주 지배라는 쟁점과 관련하여 “큰 무리”는 누구에게 충성을 지키며,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고, 또 누구에게 합니까?
17 우주 지배라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 해결될 때까지 그들은 어린양,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에 충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나오스]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라트류에인, 희랍어 동사][더라.]” (계시 7:15) 거기에서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종들”인 144,000명의 생존한 남은 자들과 연합합니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18.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무엇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며, 그것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8 “큰 무리”가 경험하는 “구원” 가운데는 계시록 7:14에 다음과 같이 예언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축자 희랍어 원본도 “큰 환난에서 나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국 행간 번역) 그러면 이제 이 “큰 환난”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성서 번역들은 “환난”(tribulation)이라는 말 대신에 “고뇌”(affliction)a, “고난”(distress)b, “박해”(persecution)c, “압제”(oppression)d, “호된 시련”(ordeal)e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번역판들은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19, 20. (ㄱ) “환난”이라는 말의 라틴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ㄴ) 계시록 7:14에 나오는 이 단어에 대하여 로버트슨의 주석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예언은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19 이렇게 여러 가지로 번역된 희랍어는 틀맆시스입니다. 그것은 좋지 않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환난”이라는 말(tribulation)은 라틴어 트리불륨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것은 “탈곡판(큰 메)”을 의미합니다.
20 계시록 7:14에 사용된 “큰 환난”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로버트슨 저 「신약 용어 주석」(제6권, 352, 353면)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큰 위기를 예측함이 분명하다. (마태 13:19부터, 24:21; 마가 13:19) 혹은 연속적인 전체 예언을 생각하므로 마지막 심판을 기대할 것이다.” 첫째로 기원 70년에 있을 고대 예루살렘의 멸망에 적용되는 마태 복음 24:21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틀맆시스)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가 복음 13:19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는 그날들은 환난(틀맆시스)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 환난은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의 징조’의 일부였습니다. (마가 13:4) “이 모든 일”에는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치는 일의 완성도 포함됩니다.—계시 7:1-8.
21. 다니엘 12:1을 번역할 때 「칠십인역」에서 사용한 그 중요한 희랍어 단어는 무엇이며, 미가엘은 누구입니까?
21 희랍어 70인역 히브리어 성경은 다니엘 12:1에 나오는 같은 사건을 언급할 때 틀맆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틀맆시스]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틀맆시스]일 것이[라.]” (찰스 톰슨의 칠십인역; 사무엘 박스터 앤드 선스 회사 출판 칠십인역) 계시록 12:7에 의하면 미가엘은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상응합니다.
22. “환난”은 “큰 무리”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현입니까? 그리고 이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2 이상의 모든 사실로 볼 때 “큰 환난”은 “큰 무리”를 징계하고 이 악한 사물의 제도와 관련하여 그들을 정화할 목적으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혹은 불쾌감의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된 “큰 환난”은 세계적 고난, 운명이 결정된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환난”입니다. 그것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지막 성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을 받”을 소유, “우리 하나님”의 옮길 수 없는 “종들”로서 인침을 받을 때까지 땅 사방에서 네 천사들이 붙잡고 있는 상징적 바람입니다. “큰 무리”가 그 “큰 환난”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생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 생존한 “큰 무리”는 어떠한 새로운 것의 시작이 될 것이며, 그들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습니까?
23 그 때 구원받은 “큰 무리”가 “그의 성전” 즉 하나님의 큰 성전 배열의 지적 뜰에서 ‘밤낮 거룩한 봉사를 하나님께’ 계속하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일 것입니다! 그들 위에 “새 하늘”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은 끝없이 의가 거할 “새 땅”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 후 3:13) 깨끗이 된 땅 위에서는 새로운 낙원이 꽃피기 시작할 것이며, 거기에는 불의를 행하도록 그들을 유혹할 마귀가 더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생존할 “큰 무리” 앞에 놓여 있는 전망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계시 16:13-16.
[각주]
a 엠파틱 다이아글롯.
b 현용 영어 성서, 현대어 신약.
c 미국역, 좋은 소식 성서, 예루살렘 성서.
d 필립스역 현대 영어 신약.
e 신 영어 성서.
[37면 네모]
희랍어 나오스는 종종 하늘 자체를 의미하는 내부 성역에 적용된다.
● 그러나 그것은 건축하는 데 46년이 걸렸던 전체 성전(나오스)이었다.
●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한 전체 성전(나오스)이었다.
● 유다가 은 30개를 도로 던진 곳은 외부 성전(나오스)이었다.
● 그러므로 “큰 무리”가 영적 성전의 지적 뜰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일관성있는 것이다.
[38면 네모]
기름부음받은 144,000명만—
●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며
● 정확한 수를 가진 “적은 무리”이고
● 아버지와 어린양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기록되었고
● 천적 시온 산에 서 있고
● “땅에서 ···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고
●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고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
[39면 네모]
“큰 무리”가 받을 특권들—
● 운명이 결정된 지상 사회 조직들로부터 도망해 나옴
● 어린양의 대속을 통하여 구원을 발견함
●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승인을 받아 서 있음
●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함
● 이 단죄된 세계에 임할 마지막 “환난”을 생존함
● 깨끗한 “새 땅” 사회의 기초가 됨
●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됨
[36면 삽화]
여호와의 성전 배열
내부 성역
종려 가지를 든 “큰 무리”
제사장들이 섬기는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