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에서 승리의 편에 서서 생존함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함께 외쳤읍니다. ‘승리는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읍니다!’”—계시 7:10, 신 영어 성서.
1. 다가오는 ‘아마겟돈’에서의 우주 전쟁이 끝난 후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합니까?
천년 평화는 ‘아마겟돈’ 전쟁터에서 우주 전쟁이 끝난 다음에 있을 것입니다. 현 세상 사물의 제도의 그 최종적 전쟁을 생존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생존의 즐거운 특권은 승리의 편에 서는 사람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핵무기를 동원하는 제3차 세계 대전에서는 승리하는 편이 없을 것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예언자들의 비관적인 견해와는 전혀 다른 전망입니다. 양편이 패자가 될 것이며, 그러한 세계 대전은 인류에게 자살을 의미할 것이라고 그들은 예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인간의 추리를 듣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읍니다. 다가오는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승리하는 편이 있을 것입니다. 차후 승리의 훌륭한 결과를 즐기기 위하여 우리가 지금 틀림없이 승리할 편에 서는 것이 현명합니다.
2. 우리가 지금 승리의 편에 서기 위하여 이 세상의 어떠한 정치에도 가담하는 것이 요구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이 경우에 있어서 승리는 한 정당이나 국가 진영이 다른 정당이나 다른 국가 진영에 대하여 거두는 승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 때에는 인간 통치권의 한가지 개념을 다른 정치적 통치권의 개념을 가진 어쩔수 없이 패배한 백성에게 강제로 주입시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승자는 패자에게 전 인류 세계를 포용하는 하나의 정치적 진영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지상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지도 못할 것이며 피정복민을 자진적으로 순복하게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승리는 정치적 개선이 아닐 것이며, 오히려 모든 인간 정치를 지상에서 일소할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편에 서기 위하여 이 세상의 분열된 정치에 가담하는 것이 요구되지 않을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관심있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3 이 중요한 사실이 ‘아마겟돈’에서 있을 다가오는 우주 전쟁의 매력적인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쟁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함에도 그러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관심있는 질문은 이러합니다. 승리자는 그의 승리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 승리는 현재 승리자의 편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그것은 ‘아마겟돈’에서 우리가 생존하는 것을 보람있게 할 것인가?
4. 하나의 정치 세력이나 정치 세력 모두가 또 다른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 승전국은 우리 백성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것입니까?
4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현 사물의 제도의 정치 국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란 그들 모두가 혹은 그들 중 단 하나의 국가 진영이 승리를 거두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읍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기원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돌발 이후로 그들이 인류에게 제공해 온 것보다 더 나은 것일 수 없읍니다. 그들이 제공하여 온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어려움 뿐이며, 그것은 백성에게 일반적으로 더욱 더 심한 어려움이 되고 있읍니다. 세상 상태에 대한 낙관할 만한 이유는 더욱 더 줄어들고 있읍니다. 비관할 근거는 더욱더 넓어지고 있읍니다. 현대 과학과 진보된 공학 및 국제적 협조 기관으로서의 국제 연합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명석한 경제학자들, 사회 연구가들 및 환경 공해 연구가들은 우리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입법자도, 정치인도, 경찰 당국도, 교육자도 타개책을 알지 못하고 있읍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면 인명, 재산 및 환경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사실을 부가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렇게 되면 정치 국가들은 1914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보다 훨씬 악화된 것을 가져다 줄 것이 뻔한 일입니다.
5. 그러므로 누가 ‘아마겟돈’에서 바람직한 승리자가 될 것이며, 왜 그러합니까?
5 그러므로 확실히 의로운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다가오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생존을 보람있게 할 미래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어떤 분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아마겟돈’에서의 그 훌륭한 승리자는 원래 인간의 지적 환경을 창조하신 분 즉 하나님 자신 이외에 다른 분일 수 없읍니다. 이것이 이치적입니다. 왜냐 하면 인간의 자연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나님께도 영향을 미칩니다.
6. 다가오는 ‘아마겟돈’에서의 우주 전쟁은 인간의 원래 지적 환경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까?
6 인간의 원래 환경은 인간 진화론의 옹호자들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상상적인 혈거인이 사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인간의 처음 자연 환경은 완전한 동산 곧 자연미와 즐거운 생활 조건을 구비한 낙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의 승리의 영광스러운 한가지 결실은 이 땅에, 전세계적인 규모로, 낙원을 재설립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오로지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의 승리를 통해서만 낙원으로 복귀할 수 있읍니다. 그 한가지만 고려하더라도 우주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불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전쟁
7. 그러면 모든 나라는 누구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며, 그러한 일에 대한 그들 자신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7 이러한 논리는 지상의 모든 나라들이 ‘아마겟돈’ 전쟁터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울 것이라는 의미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나라들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그러한 대결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듣고 화를 냅니다. 사실 정치 국가들에게, 특히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에게 그들이 바로 성서의 하나님에 대항하여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기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종교 교직자들은 항상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에게 그들이 기원 4세기 이후로 모든 국제적 투쟁에서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싸워왔다고 확인하여 왔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을 설립하기 전에 십자가의 표지아래 싸운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와 같은 종교적 감정으로 그들의 전쟁에 개입하였읍니다. 이 ‘콘스탄틴’은 그의 정치적 적수와 결전을 하기 전에 “이것으로 정복하라”(희랍어로 ‘엔토우토 니카’)는 어렴풋한 말과 함께 빛나는 십자가의 천적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였읍니다.
8. 다가오는 전쟁터는 어떻게 명명되었으며, 그것은 어느 정도의 지역을 망라합니까?
8 그러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싸울 곳을 ‘아마겟돈’이라고 이름지은 분도 바로 그 분입니다. 그 전쟁터는 땅에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 하면 나라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지상이며 외계로 도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전쟁터는 온 땅을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지상의 아무도 그 전쟁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9. 우리가 나라들과 같은 길을 함께 계속 걷는다면 누구를 대항하여 싸우게 될 것이며, 그러나 우리는 누가 복음 14:31, 32에 있는 무슨 영감받은 충고를 청종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까?
9 나라들은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든지 우리 개개인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생각을 좋아합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여러 나라에 속하여 있으므로,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우리는 교활한 책략의 조종을 받아 나라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울 것입니까?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의 기록된 말씀인 성서로 가서 그분이 우리에게 그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의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훈계를 따라야 합니다.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 (누가 14:31, 32)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 나라들과 함께 ‘아마겟돈’으로 계속 행진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10.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어떠한 묘사적인 언어로 그분이 ‘아마겟돈’에서 나라들과 싸우실 것임을 말씀하셨읍니까?
10 그러면 우리가 나라들 편에 있는 대열에 끼지 않으므로 ‘아마겟돈’으로 행진하는 대열에서 빠져 나오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마겟돈’에서 그분이 나라들과 싸우실 것임을 어디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까? 성서의 「계시록」 혹은 「묵시록」이라고 하는 책 16장 16절에서 알려 주십니다. 그 앞 귀절들은 나라들이 보이지 않는 초인간적 영향 즉 악의적인 악귀의 인도를 받아 이 예외적인 전쟁으로 행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을 보이지 않는 악귀들에 의한 “영감받은 표현”으로 묘사하면서 성서 필자이며 복음 전도자인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영감받은 표현들, 신세]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1. 이 전쟁터의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1 이러한 예언은 원래 복음 전도자 ‘요한’에 의하여 통용 희랍어로 기록되었읍니다. 그러나 그 예언이 19세기에 ‘히브리’어로 번역되었을 때에 16절의 번역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히브리’인들이 ‘므깃도’ 산[‘하르 메기돈’]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모았다.”—계시 16:16, ‘살킨슨’-‘긴스버그’에 의한 ‘히브리’어 번역판; ‘에프. 델리치’에 의한 번역도 이와 같음.
12. 그러므로 일부 사람들은 최후 전쟁이 어디에서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2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이 ‘므깃도’ 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부 성서 주석가들과 ‘라디오’를 통하여 세계적으로 방송을 하는 일부 저명한 교직자들은 다가오는 우주 전쟁이 ‘이스라엘’ 땅 ‘므깃도’ 골짜기 곧 고대 도시 ‘므깃도’의 폐허에서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사실상 관광객이 오늘날 그러한 폐허들을 가보면 그는 그 장소를 알리는 표지와 일부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곳이 최후의 전쟁이 있을 곳이라는 말이 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고대 ‘므깃도’ 폐허 언덕 맞은편 골짜기 평야가 아무리 넓다 해도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의 왕들과 통치자들의 군대 전부가 모일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리고 문자적 ‘므깃도’ 앞에서의 전쟁은 무슨 쟁점을 해결할 것입니까? 군함과 항공기 편대, 전차와 대륙간 탄도탄과 기계화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비‘유대’ 나라들이 ‘므깃도’를 온 땅의 초점이 되는 전략적 전쟁터로 삼아 ‘이스라엘’ 공화국과 싸울 것입니까? 그러므로 ‘아마겟돈’이라고 불리우는 장소에서 바로 ‘이스라엘’ 공화국이 승리의 편에 설 것입니까?
13. 그렇게 적용하는 사람들은 “큰 강 ‘유브라데’”라는 말의 사용으로 보아 알수 있듯이 「계시록」에 대한 무슨 사실을 무시합니까?
13 ‘아마겟돈’ 혹은 ‘므깃도’ 산이라는 이름을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질문이 생기게 합니다. 그들은 성서 「계시록」 혹은 「묵시록」이 주로 상징적 언어로 기록되었으며 여러 가지 상징 혹은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무시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16장 12절은 하나님의 여섯째 재앙이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아지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여섯째 상징적 재앙이 현재 ‘이락’이 차지하고 있는 문자적 ‘유브라테스’ 강에 성취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대 성서 시대에는 그 강의 초점이 ‘바벨론’ 시였는데, 이 시가 나중에 성서 역사상 세째 세계 강국인 ‘바벨론’ 제국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상징적으로 ‘유브라데’를 사용한 것은 같은 「계시록」 16장 19절에서 언급한 큰 ‘바벨론’이라고 불리우는 현존하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주의를 이끌어 줍니다. 이와 같이 16절은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을 그 역사적 관련성 때문에 상징적으로 사용합니다.
14. ‘므깃도’라는 이름은 어떠한 이중적 의미를 가졌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4 ‘므깃도’라는 이름은 활력적입니다. 세속 역사에서나 성서 역사에서나 그 이름은 결정적 전쟁을 기억케 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당시 그 도시는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사이의 전략적 육지 통로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거민들은 그 곳에서 침략자들에게 도전해서 유리하게 물리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므깃도’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즉 한편으로는 비참한 패배를 의미하였고 다른 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승리를 의미하였던 것입니다.
15. 어떠한 분이 특히 ‘므깃도’와 관련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러합니까?
15 성서의 하나님께서는 그 곳과 그 근처의 ‘기손’ 강과 관련을 가지게 되셨읍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모세’의 후계자인 사사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을 정복하고 ‘므깃도’를 점령할 때 그와 함께 하셨읍니다. (여호수아 12:21; 17:11) ‘여호수아’의 뒤를 이은 사사들의 기간 중에 하나님께서는 ‘므깃도’ 근처에서 그의 선민에게 주목할 만한 승리를 주셨읍니다. 그 시기는 사사 ‘바락’과 여예언자 ‘드보라’ 시대였읍니다.
16, 17. (ㄱ) 그 전쟁은 누구에게 중요하였으며,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바락’과 ‘드보라’는 노래 가운데서 승리를 누구에게 돌렸읍니까?
16 현대 전쟁에서 동원되는 인원수와 군장비와 비교할 때 당시의 전쟁은 소규모적인 사건이었으며, 사사 ‘바락’은 단지 만명의 군대와 여예언자 ‘드보라’를 자기 편에 두고 있었고 적진의 ‘시스라’ 장군은 보병 외에 철병거 구백승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당시의 전쟁은 하나님께 사소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을 위하여 전쟁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분 만이 절호의 기회에 폭우를 내려서 ‘기손’ 강 골짜기에 돌연한 홍수를 이루게 하여 적의 위협적인 병거 구백승을 마비시킬 수 있었읍니다. 압제적인 원수를 기적으로 패배시킨 후에 ‘바락’과 ‘드보라’는 하나님께 부른 승리의 노래 가운데에서 그들은 이처럼 적을 패배시키는 데 하나님의 역할이 절대 필요하였음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7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있는 자를 밟았도다. 그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사사 5:19-23; 4:1-3, 10, 12, 13.
18. ‘드보라’와 ‘바락’과 그의 군대가 생존한 이유를 사사기 4:14-16은 어떻게 지적합니까?
18 여예언자 ‘드보라’와 사사 ‘바락’과 그의 동료 용사들은 ‘므깃도’에서 승리의 편에 서서 전쟁을 생존하였읍니다. 이에 대한 이유가 사사기 4:14-16에도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읍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 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므깃도’ 맞은편 골짜기가 있는]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니라.]” 그 후에 사사 ‘바락’과 그의 군대가 무질서해진 적을 추격하여 그들 모두를 전멸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읍니다.
19. (ㄱ) ‘바락’과 ‘드보라’의 노래 끝에 있는 기도의 말은 다가오는 전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됩니까? (ㄴ) ‘므깃도’ 근처에서의 그 승리 후에 어떠한 의미심장한 일이 따랐읍니까?
19 의심의 여지없이 ‘바락’과 ‘드보라’가 고대 그 ‘므깃도’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부른 노래 끝에 나오는 영감받은 가사는 다가오는 ‘아마겟돈’ 전쟁과 관련된 기도로 적용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같게 하시옵소서.” (사사 5:31) 그 영감받은 기도의 성취는 ‘아마겟돈’에서 승리의 편에 설 여호와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찬란한 미래를 의미합니다. 이 점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은 ‘바락’과 ‘드보라’ 시대에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다고 기록된 사실입니다.
20. 우리 시대에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20 그러면 오늘날에는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고대 ‘므깃도’의 경우와 같이 그것은 결정적 전쟁을 포함한 세계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세계적 적의(敵意) 곧 그 적의를 발생케 한 쟁점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적의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땅에서 우뚝 솟아 있던 고대 ‘므깃도’는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통하는 길을 전략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으므로 ‘아마겟돈’도 세계의 제반사가 마침내 이르게 될 궁극적인 상태 곧 정치적 통치자들이 합세하여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상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에 따라 반대 세력으로 행동하시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미래는 서로 적대하는 세력의 대립의 결과에 의하여 결정되게 되어 있읍니다.
21. (ㄱ) ‘아마겟돈’에 대한 그러한 견해를 가질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까? (ㄴ) 우리가 성경을 더 조사하여 보므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21 ‘아마겟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러한 성경적 견해를 지니므로 우리는 그릇된 방향을 바라보거나 그릇된 것을 기대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땅에 있는 고대 ‘므깃도’의 지리적 위치를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무장한 군대가 ‘이스라엘’ 공화국을 공격 목표로 삼고 그 곳으로 모이는 것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공화국의 ‘유대’인들이 대거 개종하여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것을 바라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마겟돈’에서 승리의 편에 서서 생존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스라엘’ 공화국에 있는 ‘유대’인들과 같은 대열에 서야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므깃도’ 골짜기, 아니, ‘이스라엘’ 공화국 전체가 관련된 쟁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영감받은 거룩한 성경 전체를 조사해서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아, ‘아마겟돈’에서 진정한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아마겟돈’에서 승리자들과 함께 생존하기 위하여 쟁점의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쟁점
22. 오늘날 진정한 ‘아마겟돈’으로의 누구의 이동이 있읍니까?
22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합시다. 오늘날 진정한 ‘아마겟돈’으로의 이동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누구인가를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쟁점이 무엇인가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 역사의 전환점에서 ‘아마겟돈’으로 행진할 자들이 누구인가를 예언한 계시록 16:14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저희는 귀신의 영[영감받은 표현들, 신세]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23. (ㄱ) ‘아마겟돈’에서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며, 이것은 누구와의 문제입니까? (ㄴ) 그렇다면 ‘아마겟돈’에서의 쟁점은 무엇이며, 이것은 어느 정도입니까?
23 그들이 다름 아닌 전쟁으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의 쟁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전쟁은 그 쟁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있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이므로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쟁점을 가진 그리고 전쟁을 통하여 그분과의 쟁점을 해결하려는 자들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쟁점을 가지고 있고 전쟁으로써 그 쟁점을 해결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무엇을 상실할 것입니까? 사람이 거하는 온 땅과 관련한 이들의 공직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온 천하 임금들” 곧 정치적 통치자들입니다. 그들의 왕국이 문제가 되고 있읍니다. 그들이 ‘아마겟돈’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통치권, 그들의 왕권을 무력을 사용하여서라도 수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에서 최고의 쟁점은 왕국입니다! 여기서 “왕국”이라는 것은 영국을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며, ‘타일랜드’를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며, ‘스웨덴’을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며 “온 천하”를 다스리는 “왕국”입니다.
24. 그러므로 세상 상태가 현재와 같이 계속되게 하는 점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4 그러나 사람이 거하는 온 땅을 다스리는 왕국이 왜 ‘아마겟돈’에서 쟁점이 되어야 합니까? 지상의 왕들과 황제들과 대통령들과 기타 정치적 통치자들이 왜 지금 교란되고 그들의 계속적인 통치가 문제시 되어야 합니까? 인류 세계는 이들 정치적 통치자들을 매우 오랫동안, 사실상, ‘유브라데’ 강변의 ‘바벨론’의 ‘니므롯’ 왕 시대로부터 4천 여년간 겪어 왔읍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하여 온 현재의 지적 정부의 정치 체제를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 혹은 민주적 선거를 자주 하는 한, 현 상태를 그대로 존속하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어도 사람들이 그들 좋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상의 통치권에 있어서 세계적 변화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계는 이미 모든 쓰라린 경험을 다하지 않았읍니까?
25. (ㄱ) 지금 “변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변화”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온 천하 임금들”은 무엇이 일어날 필요가 있게 하며, 어떠한 영향을 받고 그렇게 합니까?
25 그러나 오늘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은 “변화가 올 때가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면 현 세계 정부 상태에서 어떤 상태로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또한 그들은 어떤 변화를 해야 하며 어떻게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합니까? 그들이 국제적 행동을 위한 기관으로 29년의 역사를 가진 국제 연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원하는 것, 인간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그리고 영원히 존속할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문제를 다루는 일이 방황하는 사람에게 맡겨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계시록 16장 14절에 의하면 현재 집권하고 있는 정치적 통치자들이 결코 평화로운 변화를 옹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이 일어나서 끝을 보게 할 필요가 있게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들 통치자들 배후에는 인간보다 우월한 악의적인 세력이 있읍니다.
26. 그러므로 무슨 전쟁이 있어야 하며,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옆으로 밀어 제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까?
26 따라서, 그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결코 옆으로 피하거나 완전히 피할 도리가 없읍니다. 성서의 견해를 가진 지각있는 사람으로서 누가 그것을 밀어 제치기를 원하겠읍니까? 그들은 올바른 편이 승리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 우주 전쟁뒤에 있을 변화, 곧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위한 변화를 열렬히 바라봅니다. 이 세대 사람들에게 놓여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생존해서 전쟁후에 있을 영광스러운 특권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27. 어떠한 사실로 보아 지금 올바른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으며, 어떠한 인도와 도움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27 우주적인 전쟁이 될 다가오는 전쟁에 있어서는 현재 중립이란 없읍니다. ‘아마겟돈’에서 승리의 편에 서려면 그 전쟁이 돌발하기 전에 지금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지 마음을 다하여 그 편에 서는 길만이 현재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지면상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지상에 생존할 수 있읍니다. 지금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데 인도와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쟁점이 무엇이며 이 쟁점에서 어느 편이 정당한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 편이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179면 삽화]
여예언자 ‘드보라’와 사사 ‘바락’과 그의 동료 용사들은 ‘므깃도’에서 승리의 편에 서서 전쟁을 생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