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말탄 자의 행렬—하나의 표징
‘또 내가 보니 흰 말과 불같은 붉은 말, 검은 말이 있었고, 청황색 말이 있었는데 그 위에 탄 자는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하데스’가 뒤따르고 있었읍니다.’—계시 6:2-8, 새번역 참조.
1. 1914년 10월 2일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은 아침 식탁에서 자리에 앉기 전에 ‘브루클린’ 본부에서 어떻게 하였읍니까?
때는 1914년 10월 2일 금요일이었읍니다. 미국 ‘뉴우요오크 브루클린’의 ‘콜롬비아 하이츠’ 124번지에 위치한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본부 요원 식당에 동 협회장이 들어 왔읍니다. 시간은 아침 일곱시 경이었읍니다. 그는 식탁 머리에 있는 자기 자리로 가기 전에 잠시 멈추었읍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벧엘’ 가족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손뼉을 쳤읍니다. 그리고는 「천년기 새벽의 찬송가」 책(영문) 162, 163면에 나오는 “우리의 왕이 행진하시네!”라는 제목의 노래 3절 가사의 서두를 인용하여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읍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 왕들의 날 찼도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의 자리에 앉아서 ‘벧엘’ 가족이 아침 식사시에 갖는 일상적인 종교 ‘프로그램’을 주재하였읍니다.
2. 협회장은 그 주목할 만한 해를 얼마나 앞서서 미리 지적하였으며, 그는 그 세계 전쟁이 얼마만큼 깊숙이 돌입한 때까지 살아 있었읍니까?
2 일찌기 1876년에 「사경」지에 발표하기 위해 제출했던 한 기사에서 그 협회장은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세계 인류는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임을 미리 지적하였읍니다. (누가 21:24, 흠정역) 놀랍게도, 협회장이 ‘브루클린 벧엘’ 가족에게 이방인의 때가 끝났다고 발표한 때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세계 대전이 66일째로 접어든 때였읍니다. 그때까지 그 끔찍한 전쟁의 참전국으로 이미 선전 포고를 한 나라들은 14개국에 달하였읍니다. 세계 지배와 상업적인 세계 시장의 확보를 위한 그 포악한 전쟁이 종식되기 전까지 29개에 이르는 나라와 제국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전쟁에 휘말려 들어 갔읍니다. 그처럼 시기 적절한 말을 했던 본 협회장은 자기의 본국인 북미 합중국이 1917년 4월 6일에 제 1차 세계 대전에 가담하여 중 ‘유럽’ 제국에 대항하는 대영제국의 동맹국이 되기 전에 사망하였읍니다.
3. 협회장은 1914년의 중요성을 어떻게 거듭 강조하였으며, 그는 “이방인의 때가 끝”났다고 말했을 때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읍니까?
3 협회장은 1879년부터 계속하여 「파수대」지의 지면과 특히 1889년에 발행된 「때가 가까왔다」라는 책을 통하여 1914년이 지극히 중요한 해임을 거듭 강조하였읍니다. 사실 1914년 10월 2일까지 그가 관찰한 세상사의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그 기억에 남을 만한 해에 관해 자기가 공개적으로 천명한 견해에 대하여 거듭 확신할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때와 시기에 대하여 예언하는 성서의 연대 즉 시간표를 면밀하고 주의깊게 연구한 그는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입증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읍니다.
4. 협회장은 그가 사망하기 전에 무슨 행렬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으며, 이것은 적절하게도 무엇의 한 “표징”이라고 부를 수 있었읍니까?
4 그리하여 1916년 10월 31일 화요일 저녁 그가 예기치 않게 사망하기 전에 협회장은 성서 연대 계산에 따라 이방인의 때가 끝나게 되어 있던 해로부터 「묵시록」에 나오는 네 명의 말탄 자의 행렬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 「묵시록」 즉 「계시록」은 보통 「신약」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맨 마지막 책입니다. 네 명의 말탄 자의 행렬은 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가족이 시대의 조류 속에서 어디에 와 있는지를 식별케 해주는 “표징”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들이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라고 부른 상태에 살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마태 24:3, 신세) 그것이 하나의 “표징”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위해 「계시록」의 첫 귀절에 진술되어 있읍니다. 그것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표징으로 그것을 주셨다. 신세).”—계시 1:1.
5. 여러 성서 번역판들은 계시록에 들어 있는 상징들을 소개하는 방법에 있어 서로 어떻게 다르며, 그 서두와 일치하게 「계시록」은 무엇으로 가득차 있읍니까?
5 네 명의 말탄 자의 행렬은 계시록 6:1-8에 나와 있읍니다. 「신세계역」과 ‘로더함’의 「강조된 신약」은 똑같이 “표징들로 그것을 주셨읍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며, 1611년의 「제임스 왕역」 즉 「흠정역」과 ‘B. 윌슨’의 「엠파틱 다이아글롯역」 및 ‘영’의 「직역 성서」 등은 “그것을 표징화하였읍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 서두에서 한 말과 일치하게 성서 맨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인류 역사상 더할 나위없는 중요성을 띤 일들을 의미하는 표징들 즉 상징들로 가득차 있읍니다. 이러한 일들은 장차 “속히”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네 필의 말과 그 탄 자들
6. 계시록 1:3에 예언된 행복한 상태로 들어갈 기회가 누구를 위해 보존되어 왔으며, 어떻게 그러합니까?
6 기원 98년 사도 ‘요한’이 사망한 이후 18세기 동안은 그런 일들이 실제 발생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태 발전이 없었으므로 이제 우리의 주의는 현 20세기로 집중됩니다. 그렇게 함에 따라 우리는 흥분을 자아내는 금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감받은 사도 ‘요한’이 미리 지적한 행복한 상태로 들어갈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정해진 때, 신세]가 가까움이라.” (계시 1:3)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네 필의 말과 그 탄 자들로 된 “표징”을 조사해 보도록 합시다. 계시록 6:1-8을 읽어 보도록 합시다.
7. 하나님의 어린 양이 그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의 첫째 인을 떼셨을 때 무엇이 나타났읍니까?
7 “내가 보매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이 [그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의]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8. 사도 ‘요한’은 두루마리의 둘째 인이 떼어졌을 때 무엇을 보았읍니까?
8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불같은 붉은 말, 새번역]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9. 세째 인이 떼어졌을 때 ‘요한’은 무엇을 보고 들었읍니까?
9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10. 네째 인이 떼어졌을 때 ‘요한’은 환상 가운데서 무엇을 보고 들었읍니까?
10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하데스, 신세]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긴 칼, 신세]과 흉년[식량 부족, 신세]과 사망[치사적인 역병, 신세]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흰 말과 그 탄 자
11-13. (ㄱ) 흰 말은 무엇을 상징하며, 그 탄 자는 어떤 종류의 사람을 상징합니까? (ㄴ) 여기의 말탄 자는 시편 필자가 언급한 어떤 말탄 자와 상응하며 ‘바울’은 히브리서 1:8, 9에서 이 예언적인 말씀을 누구에게 적용시켰읍니까?
11 흰 말은 문자적인 말처럼 날쌔게 움직이는, 왕이 타고 다니는 것, 왕의 위엄을 지닌 것, 의로움과 순결성을 지닌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에게는 왕관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 신속한 여행 수단을 타고 있는 자는 새로 즉위한 왕을 상징하였읍니다. 그는 활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사인 왕이었읍니다. 더우기 그는 자기 왕국의 최후의 적이 정복될 때까지 계속 이기면서 나아갔읍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 사실과 일치하게 그에게는 긴 칼이 주어졌으며 그것은 전쟁 중에 왕이 사용하는 무기였읍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현 20세기에 누가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읍니까? 그는 분명히 시편 45편을 성취시키는 왕과 동일한 분일 것입니다. 그곳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12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공의, 신세]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1-7절.
13 히브리서 1:8, 9에서 사도 ‘바울’은 시편 45:6, 7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읍니다. 그러므로 승승장구의 흰 말을 타신 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서 하늘에서 즉위하신 예수 그리스도임이 분명합니다.
14. (ㄱ) 예수께서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즉위식을 하실 듯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으며, 이것은 어떤 예언의 성취였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그때 그러한 짐승을 타심으로써 어떤 유명한 조상의 본을 따르셨읍니까?
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즉위식을 하실 듯이 택함받은 왕으로서 짐승을 타고 나아가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때 그분은 활기찬 흰 말을 타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분은 나귀를 타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스가랴 9:9의 예언 성취였읍니다. 그곳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예언과 일치하게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유대’력으로 ‘니산’월 9일에 ‘예루살렘’으로, 절정을 이루는 입성을 하실 때에 온순한 짐승을 타셨읍니다. 그것은 유월절 양이, ‘니산’월 10일에 ‘유대’인들의 집안으로 잡혀 들어가 유월절 기념식을 행할 때까지 보관되던 것과 상응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한 짐승을 타신 면에 있어 예수께서는 ‘다윗’의 아들인 그의 유명한 조상 ‘솔로몬’을 본받으신 것이었읍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의 보좌에 앉은 지 40년이 지난 뒤 자기의 왕권을 물려줄 때 그는 ‘솔로몬’이 즉위식을 위해 암노새에 타게 하였읍니다. 그 다음 대제사장 ‘사독’이 그가 부친을 계승하도록 기름을 부은 후에 참관했던 ‘이스라엘’ 군중들은 큰 소리로 “‘솔로몬’ 왕 만세!”를 외쳤읍니다.—열왕 상 1:33-40.
15. (ㄱ)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민중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ㄴ) ‘예루살렘’은 그분을 어떻게 영접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5 유월절이 되기 나흘 전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감람산을 내려가 즉위식이 거행되는 성으로 향하실 때, 예수께 대한 대접은 어떠해야 하였읍니까? 그를 따르기 시작한 군중들은 그 일들의 배경으로 말미암은 그 행사의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그분이 ‘이스라엘’의 약속된 메시야 왕임을 느꼈읍니다. 그들은 종려 가지를 흔들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 위에 펴놓아 그분이 그 위로 타고 가시도록 하였읍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 (마태 21:1-9) 그것은 민중의 반응이었읍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그 자체는 자기들의 목전에서 전개된 예언 성취의 인도를 받지 않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 아래 있었읍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그분을 왕으로 환대하지 않았읍니다.
16. 성전 당국자들이 예수를 대한 태도는 그들이 장삿군들을 대한 태도와 어떻게 대조됩니까?
16 예수께서 성전에 가셨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는 그분을 ‘로마’ 제국에서 독립된 메시야 왕으로 기름붓지 않았읍니다. 제사장들은 장삿군들이 성전 구역을 이용하여 탐욕적인 상업 행위를 하도록 묵인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몰아내심으로 대제사장으로서의 합당한 특성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항의하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을 책망하셨읍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유대’인 가운데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그분에게 나아오자 그분은 그들을 고쳐 주셨읍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행해진 일들을 비난하였으며, 그분을 ‘다윗’의 아들로 영접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정당한 통치자로 취임시키는 것을 반대하였읍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성전에 남겨두신 채 ‘베다니’로 떠나 가셨을 때 그분은 새로 즉위하신 왕으로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마태 21:1-17.
17. ‘본디오 빌라도’는 어떻게 왕권에 대한 예수의 주장에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그는 예수의 왕권에 관한 대제사장들의 요구를 어떻게 묵살하였읍니까?
17 나흘 후에 예수께서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셨을 때, 이 이방인은 예수께 그분이 왕인지의 여부를 물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왕국이 ‘빌라도’가 속해 있는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고 대답하셨읍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고 말한 대제사장들의 요구에 따라 ‘빌라도’는 예수를 ‘갈보리’에서 못박도록 넘겨 주었읍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형주에 달리신 예수의 머리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를 붙이도록 고집하였읍니다.—요한 19:15, 19-22.
18. 무슨 의미 심장한 날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으며, 부활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자기의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사는 무엇이었읍니까?
18 이제 전능하신 여호와께서는 바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여호와께 바치는 날인 ‘니산’월 16일에 자기의 순교당한 아들을 일으키시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게 하셔야 하였읍니다. (계시 1:5) 그리하여 이 장차 왕이 되실 분은 바로 그 날 자기의 충실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실 수 있었읍니다. 며칠 후, 하늘로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마태 28:18, 19; 레위 23:10-12; 고린도 전 15:20.
정복을 완료하심
19. 그리하여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무슨 예언적 묘사를 성취시키실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은 그때 이래로 어떠한 종류의 왕이셨읍니까?
19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흰 말을 타는 일에 관한 예언적 묘사를 성취시키심으로 면류관을 쓴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적들의 정복을 완료하기 위해 돌진하실 수 있게 되었읍니다. (계시 6:1, 2, 신세 참조)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난 기원 1914년 이래, 그분은 말하자면 아주 멀리서도 원수들을 쏘아 맞힐 수 있는 활로 무장하신 용사인 왕이셨읍니다. 사실상, 시편 45:3-8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예언적 말씀은 바로 이 용사인 왕을 두고 한 말입니다.
20. 시편 필자가 그분에 관해 한 말은 그분이 무엇을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까?
20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왕의 오른 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살이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21. (ㄱ) 시편 필자의 말이 영화롭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ㄴ) 적을 겨냥한 그분의 명중률이 시편 45:5에 어떻게 강조되어 있읍니까?
21 히브리서 1:8, 9에서 사도 ‘바울’은 시편 45:3-8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 이제 드높여진 그분의 지위에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이것은 “‘고라’ 자손”이 영감받아 말한 그 “왕”이 정당하게 취임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명백히 하였읍니다. (시편 45편의 머리말 참조) 그분의 “활”에서 나가는 화살은 말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데 명수였던 고대의 ‘파르티아’인의 화살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자기 왕국을 반대하는 자들의 염통을 명중할 것입니다.
22. (ㄱ) 이 흰 말을 타신 분이 「계시록」의 다른 어느 부분에 묘사되어 있으며, 어떤 이름으로 묘사되어 있읍니까? (ㄴ) 우리의 눈은 무슨 환상을 보는 축복을 받고 있으며, 이 광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22 계시록 6:2에 묘사된 흰 말을 탄 자는 계시록 19:11-16에 서술된 흰 말을 탄 자와 동일한 분입니다. 이 후자의 경우는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며, 그 다리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칭호가 쓰여 있읍니다. 여기에서 그분은 자기의 적들에 대한 공격의 최절정에서 ‘아마겟돈’ 즉 ‘므깃도’ 산의 전장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 말을 타고 질주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계시 16:14-16; 19:17-21)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후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을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감금하기 위하여 결박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계시 20:1-3)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래 면류관을 쓰고 “흰 말”을 타신 왕이 행진하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은 실로 굉장한 축복입니다. 지금까지 그분의 승리하시는 것을 목격한 우리 영혼들은 깊은 감명을 받아 이렇게 소리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흰 말을 타신 왕이시여, ‘아마겟돈’에서 대승을 거두기 위하여, 그리고 이 예언적 “표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주권을 입증하기 위하여 전진하소서’
당신은 다음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 말탄 자들이 그들의 행진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
◻ 그때 어떠한 기대가 이루어졌는가?
◻ 첫 번째 말탄 자는 어떤 예비적 행렬을 가졌으며, 그는 어떤 대접을 받았는가?
◻ 계시록 6:1, 2; 19:11-16 및 시편 45:3-8은 그가 나중에 말을 탄 목적을 어떻게 알려 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