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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와 그의 “다른 양들”파수대—1980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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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 이루어지려면 그 복합적 ‘아브라함의 씨’로서 144,000명 성원들이 그분 아래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사실이 알려 주듯이 19세기란 기간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자들이 모든 족속과 민족의 양과 같은 사람들임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인도되는 “이 우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양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말해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19. 계시록 7장 앞 부분에 기록된 점을 고려해 볼 때, 계시록 7:9-17에 묘사된 “큰 무리”는 누구입니까?
19 이와 일치한 사실로서, 사도 요한은 계시록 7:1-8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영적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인치는 일을 본 다음에,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양들”에 속합니다. 그들은 보좌 앞에 서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고 외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을 살아 남을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그분의 전에서 밤낮 거룩한 봉사를 바칠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이들 “다른 양들”에게 사랑의 주의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리라.]”—계시 7:9-17.
20. “큰 무리”의 환상에 대한 성취가 언제 어디에서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점이 어떻게 증명되었습니까?
20 계시록 7장에 기록된 일의 순서와 일치하게 「계시록」의 “큰 무리”의 환상에 대한 설명이 나온 것은 1914년에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1935년 봄에 있었습니다. 이 일이 1935년 5월 31일에 미합중국 수도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의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인 J. F. 러더포드는 “큰 무리”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고 이 “큰 무리”가 종전의 생각처럼 이차적 천적 반열이 아니라 지적 반열이며 “선한 목자”의 “다른 양들”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이 설명이 나중에 「파수대」(영문)지에 발행되었습니다. 사실 그 때 “선한 목자”는 “다른 양들”을 인도하기 시작하셨으며, 그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였고 그분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7:9-15에 대한 그 설명이 있은 바로 다음날에 물침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을 상징한 사람들이 840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 대다수가 그리스도의 “다른 양”인 “큰 무리”임을 설명하였습니다.
21. (ㄱ)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적은 무리” 외에 또 누구를 위해 자기 영혼을 바치셨습니까? (ㄴ) 이 목자는 어떻게 자기 영혼을 다시 받으셨으며, 그것은 누구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까?
21 “선한 목자”는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상속자들이 들어 있는 “우리”에 속해 있지 않는 이들 “다른 양들”을 위해서도 자기 ‘영혼’을 바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씨” 반열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은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저[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 1서 2:1, 2)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는 자기 아들을 매우 사랑하셨습니다. 이 일을 진심으로 인식한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자기를 미워한 그들 앞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0:17)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희생한 “선한 목자”를 죽은 자로부터 삼 일 만에 일으키심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영혼’을 다시 받아 살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늘 수준의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22. 예수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분이 요한 복음 10:18의 말씀을 하실 때까지 아무도 그분의 인간 영혼을 빼앗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22 예수께서 “다른 양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까지 이 “선한 목자”의 생명을 취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에 의해 처형당할 만한 어떠한 일도 결코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 10:18.
23. 예수께서 스스로 자기의 인간 영혼을 바치신 때는 언제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23 수개월 후에 이 말씀에 대한 증거가 제시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제자 베드로가 칼을 들어 그분을 보호하고자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태 26:53, 54)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자기 옆을 떠나게 한 다음에 체포하러 온 군중에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내주시어 자기를 죽이려는 마지막 시도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예수께서 자기 생명을 헛되게 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4.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자기 영혼에 관한 어떠한 완전한 권세를 받으셨으며, 이 권세 행사를 막으려는 마지막 시도가 어떻게 실패했습니까?
24 예수께서 이 행로를 취하시는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지만 이렇게 할 것인가는 그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부활에 의해 자기 영혼을 다시 받는 권세는 그의 자진적인 자기 희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죽음에 버리셨기 때문에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는 그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부터 생명을 다시 받는 권세로 그를 옷 입히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어떠한 권세도 예수께서 자기의 ‘영혼’ 즉 생명을 다시 받는 이 권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무에서 죽은 후 그를 묻은 무덤의 입구를 막은 커다란 돌 위에 붙여진 총독의 봉인도 또한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하지 못하게 세워 놓은 경비병도 예수께서 삼 일 만에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습니다.—마태 27:62부터 28:15.
25. 예수께서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간 생명을 상실한 것이 아니므로 그 생명을 어떻게 인류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25 참으로 예수는 이 모든 일을 행하라는 천적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삼 일 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아들에게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 천적 아버지와 함께 영의 영역에서 다시 생명을 받으라는 명령을 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간 생명을 상실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하늘 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서 온 세상의 죄를 속할 수 있는 완전한 인간 생명에 대한 권리 혹은 자격을 받으셨습니다.
26. (ㄱ) 그리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어떻게 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까? (ㄴ) 특히 언제 예수의 “다른 양들”의 “큰 무리”가 그들 스스로를 축복하기 시작하였습니까?
26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씨’의 으뜸되신 분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족속과 민족이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창세 12:1-3; 22:15-18) “선한 목자”의 “다른 양들”의 “큰 무리”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 헌신을 물침례로 상징하였을 때 그분을 인하여 “그들 스스로를 축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었고 ‘아브라함의 씨’의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함께 그분을 따랐습니다. 이 일이 특히 1935년 워싱턴 (D.C.) 대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모든 “다른 양들”을 환영하였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되었습니다.
27. “큰 환난”을 살아 남은 “큰 무리” 외에 또 누가 선한 목자의 “다른 양들”의 일부가 될 것이며, 그 때는 언제일 것입니까?
27 왕으로 즉위하신 “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인류의 대속된 모든 죽은 자들이 죽음의 잠으로부터 일으킴을 받아 선한 목자의 “다른 양들”의 일부가 됨으로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마련을 대표하는 “양의 우리”의 이전 “문지기” 즉 침례자 요한도 포함될 것입니다. (요한 10:1-3) 예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가오는 “큰 환난”을 살아 남은 “큰 무리”는 부활된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들 역시 “생명수 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 7:9-17) 양과 같은 모든 자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고 외치는 “큰 무리”에 가담할 수 있을 것입니다.—계시 7:10; 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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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부터의 질문파수대—1980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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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부터의 질문
● 여호와의 증인은 왜 생일을 축하하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며 그 가르침에 순응하는 데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일 축하는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으며 수천 년간 지켜져 왔습니다. 흔히 파티가 열리고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성서에 생일에 관한 어떤 언급이 있습니까?
성서에서는 처음부터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주는 일을 억제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세 33:10, 11; 누가 15:22; 고린도 후 8:19) 또한 잔치나 파티를 즐기는 것 역시 억제하지 않습니다. 절도있게 먹고 마시는 것은 생을 즐기는 한 가지 수단으로 권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 3:12, 13) 예수께서는 결혼 잔치에 참여하셨습니다. 욥의 자녀들은 추수 잔치로 여겨지는 잔치를 열었으며 이것은 가족이 함께 모일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뗄 때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요한 2:1, 2; 욥 1:4, 5, 13; 창세 21:8)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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