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무리”는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는가?파수대—1980 | 12월
-
-
차이를 알려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
14. 144,000명과 “큰 무리” 모두 구원받은 상태로 들어오게 되지만 인(印)이 어떻게 이들 사이를 구별해 줍니까?
14 흰옷 입은 “큰 무리”와 144,000명의 “구속을 받”은 자들 사이의 분명한 한 가지 차이점을 알려 주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입니다.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과 “큰 무리” 두 가지를 다 다루고 있는 계시록 7장에서는 144,000명만 “하나님의 종들”로서 “이마에” ‘인침’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또한 하늘과 땅에 관한 하나님의 마지막 마련에 있어서 그들의 임명된 신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무리”에 속한 자들과 144,000명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인정함으로써 모두가 구원받은 상태에 있게 되지만 여전히 다릅니다. (요한 1:29, 36; 요한 1서 2:1, 2) 이렇게 해서 “큰 무리”에 속한 자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습니다. (계시 7:9, 14)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대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 구조물 전체로써 예표 혹은 전영되었던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여호와를 숭배할 자격을 갖습니다.—요한 4:21-24.
15. 보호받기 위하여 어떻게 외치는 일이 있을 때가 가까와 오고 있으며, 어떠한 해로운 바람이 아직도 붙잡혀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일반 대중이 사실상 지상 사회의 오랫동안 견고해진 높은 조직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계시 6:16, 17) 폭풍이 일어날 찰나입니다. 그 환상의 다음 말에서 그것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사도 요한]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이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다섯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시 7:1-4.
16. “큰 무리”는 인침을 받지 않았지만, 왜 어린 양의 진노의 표현으로 불게 될 폭풍으로부터 해를 받지 않습니까?
16 “큰 무리” 중 아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는 보고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만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왜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땅 사방으로부터 불게 하는 “사방의 바람”의 결과인 그 사나운 회리바람에게 해를 받지 않습니까? 또한 어찌하여 인맞지 않은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144,000명의 인치는 일이 끝난 후에 “어린 양의 진노”를 느끼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시 7:14) 그들은 이제 그분의 대속 희생의 혜택을 믿고 죄를 속량하는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음으로써 그들의 죄로부터 깨끗해지고자 노력합니다. 그들은 보호를 받기 위하여 미약한 인간의 깊이 뿌리박은 제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어린양 같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감사함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시 7:9, 10.
17. 우주 지배라는 쟁점과 관련하여 “큰 무리”는 누구에게 충성을 지키며,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고, 또 누구에게 합니까?
17 우주 지배라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 해결될 때까지 그들은 어린양,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에 충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나오스]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라트류에인, 희랍어 동사][더라.]” (계시 7:15) 거기에서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종들”인 144,000명의 생존한 남은 자들과 연합합니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18.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무엇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으며, 그것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8 “큰 무리”가 경험하는 “구원” 가운데는 계시록 7:14에 다음과 같이 예언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축자 희랍어 원본도 “큰 환난에서 나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국 행간 번역) 그러면 이제 이 “큰 환난”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성서 번역들은 “환난”(tribulation)이라는 말 대신에 “고뇌”(affliction)a, “고난”(distress)b, “박해”(persecution)c, “압제”(oppression)d, “호된 시련”(ordeal)e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번역판들은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19, 20. (ㄱ) “환난”이라는 말의 라틴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ㄴ) 계시록 7:14에 나오는 이 단어에 대하여 로버트슨의 주석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예수의 예언은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19 이렇게 여러 가지로 번역된 희랍어는 틀맆시스입니다. 그것은 좋지 않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환난”이라는 말(tribulation)은 라틴어 트리불륨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것은 “탈곡판(큰 메)”을 의미합니다.
20 계시록 7:14에 사용된 “큰 환난”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로버트슨 저 「신약 용어 주석」(제6권, 352, 353면)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큰 위기를 예측함이 분명하다. (마태 13:19부터, 24:21; 마가 13:19) 혹은 연속적인 전체 예언을 생각하므로 마지막 심판을 기대할 것이다.” 첫째로 기원 70년에 있을 고대 예루살렘의 멸망에 적용되는 마태 복음 24:21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틀맆시스)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가 복음 13:19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는 그날들은 환난(틀맆시스)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 환난은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의 징조’의 일부였습니다. (마가 13:4) “이 모든 일”에는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의 인치는 일의 완성도 포함됩니다.—계시 7:1-8.
21. 다니엘 12:1을 번역할 때 「칠십인역」에서 사용한 그 중요한 희랍어 단어는 무엇이며, 미가엘은 누구입니까?
21 희랍어 70인역 히브리어 성경은 다니엘 12:1에 나오는 같은 사건을 언급할 때 틀맆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틀맆시스]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틀맆시스]일 것이[라.]” (찰스 톰슨의 칠십인역; 사무엘 박스터 앤드 선스 회사 출판 칠십인역) 계시록 12:7에 의하면 미가엘은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상응합니다.
22. “환난”은 “큰 무리”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의 표현입니까? 그리고 이들이 “큰 환난”에서 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2 이상의 모든 사실로 볼 때 “큰 환난”은 “큰 무리”를 징계하고 이 악한 사물의 제도와 관련하여 그들을 정화할 목적으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혹은 불쾌감의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된 “큰 환난”은 세계적 고난, 운명이 결정된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환난”입니다. 그것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자손들의 마지막 성원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을 받”을 소유, “우리 하나님”의 옮길 수 없는 “종들”로서 인침을 받을 때까지 땅 사방에서 네 천사들이 붙잡고 있는 상징적 바람입니다. “큰 무리”가 그 “큰 환난”에서 나온다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생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 생존한 “큰 무리”는 어떠한 새로운 것의 시작이 될 것이며, 그들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습니까?
23 그 때 구원받은 “큰 무리”가 “그의 성전” 즉 하나님의 큰 성전 배열의 지적 뜰에서 ‘밤낮 거룩한 봉사를 하나님께’ 계속하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일 것입니다! 그들 위에 “새 하늘”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은 끝없이 의가 거할 “새 땅”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 후 3:13) 깨끗이 된 땅 위에서는 새로운 낙원이 꽃피기 시작할 것이며, 거기에는 불의를 행하도록 그들을 유혹할 마귀가 더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생존할 “큰 무리” 앞에 놓여 있는 전망은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계시 16:13-16.
-
-
이 “마지막 때”의 거룩한 봉사파수대—1980 | 12월
-
-
이 “마지막 때”의 거룩한 봉사
1. 우리가 지금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며, 다니엘 12:4은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개봉된 성서 예언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지금 예언된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위급한 기간과 관련하여 다니엘 12:4의 예언은 이러합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희랍어 「70인역」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너 다니엘아 말씀을 닫고 마지막 때까지 인봉하라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지식이 증가할 때까지.” (박스터역, 톰슨역, 라틴 벌게이트역, 고대 동방 사본의 람사역 성서) 성서 마지막 책에 기술되어 있는 “큰 무리”는 성서 지식과 이해의 증가로부터 유익을 얻어 왔습니다.—계시 7:9-17.
2. (ㄱ) “큰 무리”가 어떻게 “거룩한 봉사”를 하는가 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ㄴ) ‘봉사하다’라고 번역된 희랍어는 “거룩한 봉사”라고 번역된 희랍어와 어떻게 다릅니까?
2 이 “큰 무리”는 기원 1935년에 모여지기 시작한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해 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일을 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마지막 밤에 충실한 열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하는, 신세] 예라 하리라.” (요한 16:1, 2) 「예루살렘 성서」는 “거룩한 봉사”(sacred service) 대신 “거룩한 임무”(holy duty)라고 번역하였고, 「신 영어 성서」는 “종교적 임무”(religious duty)라고 하였고, 로더함의 「강조된 성서」는 “신성한 봉사”(divine servic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번역된 희랍어 원어는 라트레이아입니다. 이 희랍어 명사의 동사형은 라트류에인입니다. 이것은 “섬기다 혹은 봉사하다”라는 뜻의 희랍어 동사 디아코네인과는 다릅니다. 이 동사는 심지어 일반적인 일, 보통 일, 마태 복음 8:15에서처럼 거룩한 것이 아닌 세속적인 일에도 사용됩니다.
3. 율법 언약에 고착한 유대인들은 왜 그들이 예수를 죽이고 그의 제자들을 박해해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까?
3 소아시아 다소의 사울은 그가 개종할 때까지는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릇 인도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동료 유대인들에 관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거룩한 봉사, 신세; 라트레이아]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로마 9:4, 5) 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 언약에 정해진 “거룩한 봉사”에 고착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고 그의 충실한 제자들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박해하는 것이 잘못일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바울은 제사장들의 성막 봉사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의 모형이었습니까?
4 그 율법 언약이 유효했고 그 언약하의 “거룩한 봉사”가 마땅히 행해졌을 그 때에는 그것은 하나님께 가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높은 수준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거룩한 봉사, 신세; 라트레이아]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거룩한 봉사, 신세; 라트레이아]를 행하[니라.]” (히브리 9:1-6) 이 의식적(儀式的)인 거룩한 봉사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바쳐진 희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