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
(clean, cleanness)
깨끗하고 정결한 것, 그리고 정결케 하는 행동 즉 흠이 없고 점이 없는, 때 묻거나 불순물이 섞이거나 부패한 것이 전혀 없는 상태로 회복시키는 행동을 묘사하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단어들은 신체적인 깨끗함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혹은 영적인 깨끗함을 묘사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신체적인 깨끗함과 의식상의 깨끗함은 중복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히브리어 동사 타헤르(깨끗하다, 깨끗하게 하다)는 대개 의식상의 깨끗함 혹은 도덕적인 깨끗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히브리어 타헤르의 동의어인 바라르라는 말은 여러 가지 변화형으로 사용되면서, “깨끗이 없애 버리다, 골라내다, 깨끗함을 지키다, 깨끗한 자로 자신을 나타내다, 깨끗하게 하다” 등의 의미를 전달한다. (겔 20:38; 전 3:18; 시 18:26; 렘 4:11) “깨끗한, 정결한”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타로스는 신체적·도덕적·종교적 의미로 사용된다. (마 23:26; 5:8; 딛 1:15) “부정, 더러움”은 히브리어 타메에서 나온 말이고 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의 번역어이다.—레 5:3; 마 23:27; 갈 5:19.
신체적인 깨끗함(청결)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도는 방랑 생활을 했는데도 그들의 개인적 습관 덕분에 비교적 건강을 누렸다. 의문의 여지 없이, 그런 결과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들의 야영 생활을 지배한 하느님의 율법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마련 아래서는 깨끗한 물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모든 동물이 먹기에 깨끗한 것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었다. (동물 참조) 사체를 다루고 처리하는 일에 관해 규정하는 예방 법규들도 있었다. 격리 조치는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막아 주는 장벽 역할을 하였다. 배설물을 묻어서 오물을 처리하는 방식은 시대를 훨씬 앞서는 위생상의 요구 조건이었다. (신 23:12-14) 또 그 나라의 법전에서 유익한 규정으로는 자주 목욕을 하고 의복을 빨아야 한다는 요구 조건도 있었다.
성경에서는 청결함이 영적인 깨끗함을 상징하는 혹은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례로, “밝게 빛나는 깨끗하고 고운 아마포 옷”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거룩한 자들의 의로운 행동”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계 19:8)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영적인 더러움과 위선을 지적하실 때에도 청결함의 원칙에 의거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의 기만적인 행실은 잔이나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 속은 깨끗이 하지 않는 것에 비하여졌다. (마 23:25, 26) 예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중에 이스가리옷 유다가 참석해 있는 가운데 제자들에게 이야기하실 때에도 비슷한 예를 사용하셨다. 그들이 목욕을 하였고 주께서 그들의 발을 씻어 주셨기에 신체적으로 “온전히 깨끗”하였지만, 영적으로 말해서는 “여러분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요 13:1-11.
성서에서는 신체적 부정함 및 의식상의 더러움의 원인이 되는 것 약 70가지를 열거한다. 그중에는 시체와 접촉한 경우(레 11:32-40; 민 19:11-19), 부정한 사람이나 물건에 접촉한 경우(레 15:4-12, 20-24; 민 19:22), 나병(레 13:1-59), 성 관계 중에 사정한 정액 등 성기의 유출물(레 15:1-3, 16-19, 32, 33), 자녀 출산(레 12:1-5), 부정한 새나 물고기나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레 11:41-47) 등이 있다. 특히 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서 봉사할 때 신체적으로 그리고 의식상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출 30:17-21; 레 21:1-7; 22:2-8) 살인이나 우상 숭배를 행하면 특별한 의미로 그 땅은 더럽혀질 수 있었다.—민 35:33, 34; 겔 22:2-4; 36:25.
의식상의 깨끗함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는 이 깨끗함을 위반하면 사형을 당하였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부정에서 분리되어 있게 하여, 그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나의 장막을 더럽힘으로써 그들의 부정 가운데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레 15:31) 깨끗하게 하는 일을 수행하는 데는 대개 물과 붉은 암소의 재가 사용되었고, 그 의식은 사람, 장소 및 물건을 위하여 거행되었다. (민 19:2-9) 민수기 5:2에는 사람이 연루된 부정함의 가장 흔한 원인 세 가지가 열거되어 있는데, “[1] 나병에 걸린 모든 사람과 [2] 유출이 있는 모든 사람과 [3] 죽은 영혼으로 인해 부정해진 모든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나병 이것은 모든 질병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병으로서 엄격하게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였는데, 여기에는 장기적인 격리 수용과 더불어 치료가 다 되었는지 판정하기 위한 주의 깊고 반복적인 검사가 포함되었다. (레 13:1-46; 신 24:8) 그러므로 부정한 나병 환자가 예수께 “주여, 당신이 원하기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데는 대단한 믿음이 필요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되십시오” 하고 명하시어 이 혐오스러운 질병을 고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그다음에 예수께서는 이 회복된 사람에게 “당신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지정한 예물을 바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마 8:2-4; 막 1:40-44. 나병 참조.
원래 율법에 규정된 법규에 따르면, 나병 환자가 병이 나으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 전에 두 부분으로 된 세밀한 의식을 거쳐야 하였는데, 첫 번째 부분은 물과 실삼나무와 연지벌레 진홍색 실과 히솝 및 두 마리의 새를 사용하는 것이 관련되어 있었다. 회복된 나병 환자는 이스라엘 진영 밖에서 제사장에게 자신의 몸을 보일 때 그러한 것들을 가져와야 하였다. 그다음에 새 한 마리를 흐르는 물 위에서 죽이고는 그 피를 옹기그릇에 받았다. 그 피에 실삼나무와 연지벌레 진홍색 실과 히솝과 살아 있는 새를 담갔고, 제사장은 나병이 나은 환자에게 그 피를 일곱 번 뿌린 다음 살아 있는 새는 풀어 주었다. 깨끗하다는 선언을 들으면 그 사람은 털을 깎고 목욕을 하고 옷을 빤 다음에 진영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칠 일 동안은 자기 천막 밖에서 지내야 하였다. 칠 일째 되는 날에 그는 다시 자신의 털을 모두 깎았는데, 눈썹도 그렇게 하였다. 그다음 날 그는 죄과 제물, 속죄 제물, 번제물 및 곡식 제물로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이 되어 가는 어린 암양 한 마리, 그리고 약간의 고운 가루와 기름을 함께 가져왔다. 제사장은 우선 어린 숫양 한 마리와 기름을 죄과 제물로 삼아 여호와 앞에 흔들 제물로 바치고 그다음에 그 숫양을 잡았다. 제사장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의 일부를 발랐다. 그다음에 그와 비슷하게 기름의 일부도 앞서 언급된 세 군데의 신체 부위에 바른 피 위에 덧발랐으며, 기름의 일부는 또한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리고 나머지 기름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의 머리에 발랐다. 그다음에 제사장은 속죄 희생과 번제 희생과 곡식 희생을 바쳐서 속죄를 행하고 병이 나은 나병 환자가 깨끗해졌다고 선언하였다. 만일 신청자가 환경상 매우 가난하다면, 속죄 제물과 번제물로 사용되는 숫양 중 한 마리와 어린양 대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칠 수 있었다.—레 14:1-32.
유출물 남성과 여성의 신체에서 나오는 정상적인 유출물과 질병으로 인한 유출물, 즉 성기에서 나오는 유출물에 관하여 규정하는 법들이 있었다. 남자가 밤중에 무의식중에 사정을 할 경우, 그는 목욕을 하고 옷을 빨고는 다음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로 있어야 하였다. 여자는 주기적인 월경 기간이 되면 부정한 기간으로 칠 일을 세어야 하였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 유출이 불규칙하고 비정상적이거나 장기적이 되면, 유출이 멈춘 이후로도 칠 일을 세어야 하였다. 마찬가지로 남자도 유출물의 흐름이 멈춘 다음에 칠 일을 세어야 하였다. (그처럼 비뇨기계에 병이 든 상태를 정상적인 정액 배출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 남자나 여자가 부정한 상태에 있는 동안 몸에 닿거나 앉는 물건(침대, 의자, 안장, 옷 등)은 어느 것이나 부정해졌으며, 따라서 그런 물건이나 부정한 사람에게 몸이 닿은 사람도 누구나 목욕을 하고 옷을 빨고는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로 있어야 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목욕을 하고 옷을 빠는 것에 더하여 팔 일째 되는 날 만남의 천막으로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야 하였으며, 제사장은 그중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침으로 깨끗해진 사람을 위해 속죄를 행해야 하였다.—레 15:1-17, 19-33.
남편과 아내가 성 관계를 갖다가 사정을 하게 되면 두 사람은 목욕을 해야 하였으며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레 15:16-18) 성 관계 도중에 아내의 유출이 우발적으로 시작되면 남편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칠 일 동안 부정하였다. (레 15:24) 부부가 고의적으로 하느님의 법을 경멸하여 아내가 월경 중인데도 성 관계를 가졌다면 남녀 모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레 20:18) 이상과 같은 이유들로 말미암아, 이를테면 남자들이 군대의 원정을 위해 거룩하게 될 때처럼 의식상의 깨끗함이 요구될 경우, 그들은 아내와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었다.—삼첫 21:4, 5; 삼둘 11:8-11.
출산 역시 산모에게는 부정한 기간을 의미하였다. 사내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산모는 월경 기간의 경우와 같이 칠 일간 부정하였다. 팔 일째 되는 날 아이는 할례를 받았지만, 산모는 거룩한 것에 닿는 일이나 신성한 곳에 들어가는 일과 관련하여 33일 동안 추가로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몸이 닿는 모든 것이 부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아가 태어나면 이 40일 기간은 두 배가 되었는데, 14일 더하기 66일 동안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서는 출생 시부터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여 여자를 종속적인 위치에 두었다. 어느 경우이든지 정결 기간이 끝나면 번제물로 일 년이 되어 가는 숫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로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가져와야 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의 경우처럼 부모가 숫양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다면, 깨끗하게 하는 희생 제물용으로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레 12:1-8; 누 2:22-24.
모세의 율법에서 성 관계와 출산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월경이나 배우자 간의 성 관계나 출산 같은 일들은 정상적이고 합당한 일인데도 율법에서 그러한 일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여긴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한 가지는 그로 인해 결혼 생활의 가장 친밀한 관계가 신성한 수준으로까지 높여지고, 양쪽 배우자는 모두 자제를 가르침받으며 생식 기관을 높이 존중하고 생명과 피의 신성함을 존중하도록 가르침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규정들을 성실하게 지킴으로 위생적인 유익을 얻었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 문제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시초에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 남녀에게 성적인 충동과 생식력을 창조해 주시고서 함께 살며 자녀들을 낳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그 완전한 부부가 성 관계를 갖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성 관계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하느님께 불순종했을 때 극적인 변화가 있게 되었다. 갑자기 죄의식에 사로잡힌 양심으로 인해 그들은 벌거벗었음을 의식하게 되어 즉시 생식 기관들을 하느님이 보시지 못하도록 가렸다. (창 3:7, 10, 11) 그때부터 인간은 출산에 관한 명령을 완전한 상태로 이행할 수 없게 되었으며, 도리어 부모는 자녀에게 죄라는 유전적인 흠과 죽음의 형벌을 이어 주게 되었다. 아무리 올바르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부모일지라도 죄에 감염된 자녀를 낳게 된 것이다.—시 51:5.
생식 기관들의 기능에 관한 율법의 요구 조건들은 남녀 모두에게 자기 징계를 하고 정욕을 억제하며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생명 전달 방식을 존중할 것을 가르쳤다. 율법의 규정들로 인하여 피조물은 자기가 죄인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 규정들은 단순히 깨끗함이나 예방책을 강구하여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건강 관리법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남녀 모두가 신체의 정상적인 기능으로 인한 생식기 유출물에 대해 부정한 기간을 지키는 것은 인간이 유전죄를 가지고 있음을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서 적절한 일이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비정상적으로 장기적인 유출을 겪을 경우에는 요구되는 부정한 기간이 더 길어졌으며, 목욕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산모가 출산했을 때처럼 속죄 제물을 바쳐서 하느님의 제사장이 그 사람을 위해 속죄를 행하게 해야 하였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처럼 첫아들을 낳고 나서 속죄 제물을 바침으로 자기가 죄 없거나 완전무결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유전죄가 있음을 고백한 셈이다.—누 2:22-24.
시체 시체와 관련하여 규정한 모세의 율법에서 부정한 정도는 경우마다 달랐다. 죽은 짐승에 닿았을 경우에는 그날만 부정하였고 죽은 사람에게 닿았을 경우에는 일주일 동안 부정한 상태에 있었다. 전자의 경우에는 옷을 빨기만 하면 되었는데, 자연사하였거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동물의 고기를 무심코 먹었을 경우에는 옷을 빠는 것에 더하여 목욕을 해야 하였다. (레 5:2; 11:8, 24, 27, 31, 39, 40; 17:15) 제사장들에게도 동일한 명령이 부과되었는데, 제사장들의 경우에는 만일 부정한 상태에 있는 동안 거룩한 것을 먹는다면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명령이 추가되어 있었다.—레 22:3-8.
인간의 주검에 닿은 사람들에게는 더 복잡한 정결 의식이 필요하였다. 그 의식을 위해서는 진영 밖에서 붉은 암소를 잡아 재를 마련하였다. 제사장은 그 피 얼마를 만남의 천막을 향하여 일곱 번 뿌렸다. 그다음에는 그 암소 전체(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를 태우고 그 불 속에 실삼나무와 히솝과 연지벌레 진홍색 실을 던졌다. 그 재는 보관했다가 “깨끗하게 하는 물”에 사용하였는데,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인간의 주검에 닿았던 사람에게 정결케 하기 위해 뿌렸다. 일곱째 날이 끝나면 그는 옷을 빨고 목욕을 해야 하였는데, 그런 다음에 그는 깨끗하다고 선언되었다.—민 19:1-13.
이 법규하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집이나 천막 안에 있던 사람 모두와 그 거처 자체, 열려 있는 그릇 전부가 부정하게 되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의 뼈에라도 닿았거나 매장지 혹은 무덤에 닿은 경우도 그와 비슷하게 부정해졌다. 그런 이유에서 예수 시대에는 유월절이 되기 한 달 앞서 묘에 흰 칠을 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무덤 위에 걸려 넘어져서 유월절에 참여할 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 19:14-19; 마 23:27; 누 11:44) 나실인의 서원 기간 중에 그 나실인이 있는 곳에서 혹은 그의 곁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나면 그가 서원 기간으로 이미 보낸 시간은 무효가 되었고, 희생 제물을 바칠 필요가 있었다.—민 6:8-12. 나실인; 삼손 참조.
율법 계약 아래서는 장소나 물건이 오염되면 깨끗하게 해야 하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살해자가 밝혀지지 않을 경우, 우선 거리 측정을 해서 범행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디인지 판정하였다. 그다음에 그 도시의 장로들은 (살해자 대신에) 일한 적이 없는 어린 암소 한 마리를 취하여 물이 흐르는 급류 골짜기에서 그 목을 꺾어야 하였으며, 결백한 자들로서 그 동물 위에서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들을 여하한 책임으로부터 상징적으로 깨끗하게 하면서 범죄의 책임이 자기들에게 지워지지 않기를 간청해야 하였다.—신 21:1-9.
시체에 닿게 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더럽혀진 옷이나 그릇은 규정된 방식에 따라 깨끗하게 해야 하였다. (레 11:32-35; 15:11, 12) 옷이나 건물 벽에 나병이 발생한 경우는 훨씬 더 심각한 일이었다. 그 병을 억제할 수가 없고 병이 퍼져 나가는 것같이 보인다면 그 옷은 폐기해 버리고 집은 완전히 허물어 버려야 하였다.—레 13:47-59; 14:33-53.
전리품들도 들여오기 전에 깨끗하게 해야 하였다. 가연성 물품들은 물로 씻으면 되었지만, 금속 물건들은 불을 지나게 해야 하였다.—민 31:21-24.
그리스도인의 깨끗함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이나 율법에 따라 깨끗하게 하는 요구 조건 아래 있지 않다. 그러나 예수께서 지상에 계시던 시대에는 그러한 율법과 그 관습이 여전히 유효하였다. (요 11:55) 율법에는 “오게 될 좋은 것들의 그림자”가 있고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한다. (히 10:1; 골 2:17) 그러므로 바울은 이 정결 문제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렇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해지며[모세는 책과 백성과 천막과 그릇에 피를 뿌렸다], 피가 쏟아지지 않고는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적 표상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염소와 수소의 피와 어린 암소의 재를 더럽혀진 사람들에게 뿌려도 육체를 깨끗하게 할 정도로 거룩하게 된다면,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피는 얼마나 더 우리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께 신성한 봉사를 드리게 하겠습니까?”—히 9:19-23, 13, 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온갖 죄와 불의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요첫 1:7, 9) 그리스도께서는 “회중을 사랑하시고, 그것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셨는데, “그것은 그분이 회중을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에 의한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 하시려는 것”으로서 회중이 점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의 특별한 소유이며 훌륭한 일에 열심인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엡 5:25-27; 딛 2:14)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은 누구나 “오래 전의 자기 죄에서 깨끗해진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계속 나타내면서(베둘 1:5-9)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하느님이] 깨끗이 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요 15:2,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신체적·도덕적·영적으로 높은 표준의 깨끗함을 유지하면서 “육과 영의 모든 더러운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고둘 7:1)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 이들 그리스도의 깨끗하게 하는 피의 수혜자들은 영적인 깨끗함을 더 크게 중요시한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을 유지한다. (막 7:15; 디첫 1:5; 3:9; 디둘 1:3) 깨끗한 양심을 가진 그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양심이 더럽혀지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다. (딛 1:15) 마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사야 52:11의 이러한 훈계를 청종한다.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아라. 여호와의 기구를 나르는 자들아, ···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라.” (시 24:4; 마 5:8)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손”은 비유적인 의미로 깨끗해지고(야 4:8),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깨끗한 사람으로 대하신다.—삼둘 22:27; 시 18:26. 또한 단 11:35; 12:10 참조.
사도 바울은 자신이 더는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성전에서 자신을 의식상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함으로 율법의 요구 조건을 지킨 일이 있다. 이것은 일관성 없는 행동이었는가? 바울이 율법이나 그 절차를 적대하여 싸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요구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그 절차가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진리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느님께서 율법하에 규정하셨던 일을 행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반대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바울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공연히 자신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듣지 않게 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행 21:24, 26; 고첫 9:20) 그와 비슷한 취지로 그 사도는 또한 식품 자체는 깨끗하더라도 자기가 그것을 먹음으로 인해 그의 형제가 걸려 넘어지게 된다면 자신은 먹지 않겠다고 논증하기도 하였다. (로 14:14, 15, 20, 21; 고첫 8:13) 이 모든 일을 통해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행 20:26;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