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생명에 대해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 3:19.
1, 2. (ㄱ) 내세에 관해 어떤 서로 다른 사상들이 존재합니까? (ㄴ) 영혼에 관해 성서에서 가르치는 바가 어떠한지를 알아내기 위해 무엇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까?
“영원한 고초설은 하느님께서 창조물들을 사랑하신다는 신앙과 조화가 되지 않는다. ··· 몇 년간의 잘못 때문에 시정할 기회도 받지 못한 채 영혼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고 믿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힌두교 철학자인 니킬라난다의 말입니다.
2 니킬라난다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고초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열반(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이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이 성서에 근거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영혼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 서로 상충되는 개념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성서는 영혼에 관해 실제로 어떻게 가르칩니까? 그 점을 알아내기 위해, 성서에 “영혼”으로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 단어와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혼에 대한 성서의 견해
3. (ㄱ) 히브리어 성경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단어는 무엇이며, 그 단어의 기본 의미는 무엇입니까? (ㄴ) 창세기 2:7은 “영혼”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람 전체를 가리킬 수 있음을 어떻게 확증해 줍니까?
3 “영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네페시이며, 히브리어 성경에 754회 나옵니다. 네페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서·종교 사전」(The Dictionary of Bible and Religion)에 의하면, 그 단어는 “대개 그 생물 전체, 그 개체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점은 창세기 2:7(「신세」 참조)에 나오는 영혼에 관한 성서의 묘사에 의해 증명됩니다. 그 구절은 이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생명의 호흡”]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산 영혼”]이 된지라.” 첫 사람이 영혼이 ‘되었다’는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그러니까 그것은 아담이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담 자신이 영혼이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면, 그 사람 자신이 의사인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영혼”이라는 단어는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4.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단어는 무엇이며, 그 단어의 기본 의미는 무엇입니까?
4 “영혼”(프시케)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0회 이상 나옵니다. 네페시처럼 이 단어도 흔히 어떤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내 영혼이 괴로우니” (요한 12:27), “두려움이 모든 영혼에게 엄습하기 시작하였으며” (사도 2:43), “모든 영혼은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십시오” (로마 13:1),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고” (데살로니가 첫째 5:14), “겨우 몇 사람, 곧 여덟 영혼만이 안전하게 물을 통과하였습니다.” (베드로 첫째 3:20) 네페시처럼 프시케도 분명히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학자 나이절 터너에 의하면, 이 단어는 “인간의 특징을 가진 존재, 자기 자신, 하느님의 루아흐[영]가 그 속으로 불어넣어진 육체를 의미[하며], ··· 강조되는 것은 그 자신 전체”입니다.
5. 동물도 영혼입니까? 설명하십시오.
5 흥미롭게도, 성서에서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바다 생물의 창조를 묘사하면서 창세기 1:20(「신세」 참조)에서는, 하느님께서 “물들은 생물[“산 영혼들”]로 번성케 하라”고 명령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 창조의 날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생물[“산 영혼들”]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창세 1:24, 「신세」 참조; 비교 민수 31:28, 「신세」 참조.
6. “영혼”이라는 단어의 성서 용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6 그러므로 성서에서 사용하는 “영혼”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거나 혹은 사람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을 가리킵니다. (위 네모 참조) 영혼에 대한 성서의 정의는 간명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복잡한 철학과 사람들의 미신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러하기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이 필연적으로 제기됩니다. 성서에 의하면, 사망시에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죽은 자는 무의식 상태에 있다
7, 8. (ㄱ) 성경은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해 무엇을 밝혀 줍니까? (ㄴ) 영혼이 죽을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성서에 나오는 예를 들어 보십시오.
7 죽은 자의 상태는 전도서 9:5, 10에서 명확히 밝혀 줍니다. 그 구절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 음부[“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모팻역」 참조) 그러므로 죽음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상태입니다. 시편 필자는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생각”]가 소멸”한다고 썼습니다. (시 146:4, 「신세」 참조) 죽은 자는 무의식 상태 즉 무활동 상태에 있습니다.
8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선고를 내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 3:19) 하느님께서 땅의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시기 전에, 아담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죽은 후에 그러한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아담이 받은 벌은 죽음이었지,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아담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서에서는 흔히 “영혼”이라는 단어가 단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죽었다고 말한다면,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혼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이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는 이렇게 언명합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4) 레위기 21:1(「신세」)에서는 “죽은 영혼”(“시체”, 「공동번역」)에 관해 말합니다. 그리고 나실인들은 “그 어떤 죽은 영혼”(“시체”, 「개역 한글판」)에게도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민수 6:6, 「신세」.
9. 라헬의 ‘영혼이 떠나려 하’였다는 성서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9 하지만 라헬이 둘째 아들을 낳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일에 관해 언급하는 창세기 35:18(「신세」 참조)의 표현은 어떠합니까?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영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이 구절은 라헬에게 어떤 내재된 존재가 있어서 사망시에 몸을 떠났음을 시사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혼”이라는 단어가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생명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이 경우에 라헬의 “영혼”은 단지 그의 “생명”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성서 번역판들에서는 “그 영혼이 떠나려 할”이라는 표현을 “그의 생명이 꺼져 갈”(「녹스역」), “숨을 거두면서”(「공동번역」), “그의 생명이 그에게서 나갈”(「기본 영어 성서」) 등으로 번역합니다. 라헬의 일부인 어떤 신비한 존재가 라헬이 사망했을 때에도 계속 살아 남았다는 암시는 전혀 없습니다.
10. 과부의 부활받은 아들의 영혼은 어떤 의미에서 ‘몸으로 돌아왔’습니까?
10 열왕기 상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한 과부의 아들의 부활과 관련된 경우도 그와 비슷합니다. 22절(「신세」 참조)을 보면, 엘리야가 어린 소년을 위해 기도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영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영혼”이라는 단어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 미표준역 성서」에서는 “그 아이의 생명이 그에게 돌아오자 아이가 살아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그림자 같은 어떤 것이 아니라 생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그 소년의 어머니에게 한 이러한 말과도 조화를 이룹니다. “보라 네 아들[그 사람 전체]이 살았느니라.”—열왕 상 17:23.
영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11. “영”이라는 단어가 사람의 일부로서 육체에서 분리되며 사망시에도 계속 살아 남는 부분을 가리킬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성서에 의하면, 사람은 죽을 때 “그 호흡이 끊어지면[“그의 영이 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시 146:4, 「신세」 참조) 이 말은 육체에서 분리되는 영이 문자적으로 몸을 떠나서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산다는 의미입니까? 그런 의미일 수는 없는데, 이어서 시편 필자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그의 모든 생각이 끝나게 된다,” 「신 영어 성서」) 그렇다면 영이란 무엇이며, 사람이 죽을 때 영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나갈’ 수 있습니까?
12. 성서에서 “영”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에는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까?
12 성서에서 “영”이라고 번역된 단어(히브리어, 루아흐; 그리스어, 프네우마)의 기본 의미는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R. A. 녹스의 번역판에서는 “그의 영이 나가면”이라는 표현 대신에 “호흡이 그의 몸을 떠나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시 145:4) 그러나 “영”이라는 단어에는 호흡한다는 의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대홍수 때 인간과 동물의 생명이 멸망된 것을 묘사하면서, 창세기 7:22(「신세」)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힘[또는 영; 히브리어 루아흐]의 호흡이 그 콧구멍에서 작용하는 모든 것, 즉 마른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죽었다.” 그러므로 “영”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든 생물 속에서 작용하는 생명력을 가리킬 수 있으며, 그 생명력은 호흡에 의해 유지됩니다.
13. 사람이 죽을 때 영은 어떻게 하느님께로 돌아갑니까?
13 그러면, 전도서 12:7(「신세」 참조)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신[“영”]은 그 주신 [“참”]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기술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은 영이 문자적으로 우주를 여행하여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간다는 의미입니까?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영이 생명력이므로, 이제 그 사람의 장래 생명에 대한 어떤 희망도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다는 의미에서 그 영은 “참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오직 하느님께서만이 그 영 즉 생명력을 회복시키셔서,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시 104:30)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가 살아날 것입니다’
14. 예수께서는 오라비를 여읜 나사로의 누이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베풀고자 무슨 말씀을 해 주셨으며 또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14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오라비인 나사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셨는데, 그분은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은 그들에게 어떤 난해한 이야기를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실제 사실을 말씀해 주심으로 위로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간단하게 “당신의 오라비는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무덤으로 가셔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셨습니다. 나흘 동안이나 죽어 있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요한 11:18-23, 38-44.
15. 마르다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하신 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5 예수께서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마르다는 놀랐습니까? 놀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르다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라고 대답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르다는 이미 부활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죽어도 살아날 것입니다.” (요한 11:23-25)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기적은 마르다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한 11:45) 그런데 정확히 말해서 “부활”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6. “부활”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6 “부활”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단어 아나스타시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다시 일어섬”입니다. 그리스어를 히브리어로 번역하는 번역자들은 아나스타시스를 “죽은 자의 소생”을 의미하는 표현(히브리어, 테히야트 함메팀)으로 번역해 왔습니다.a 따라서 부활에는 생명이 없는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일으키는 것—그 사람의 생명의 형태를 회복시켜서 그것이 다시 활동하게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17. (ㄱ) 개개인들의 부활이 왜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기념 무덤에 있는 자들과 관련하여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17 무한한 지혜와 완전한 기억력을 소유하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쉽게 사람을 부활시키실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의 생명의 형태—그들의 개성, 그들 각자가 살아 온 과정 및 그 밖의 그들 개개인의 모든 세부점—를 기억하는 것이 그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욥 12:13; 비교 이사야 40:26) 더욱이 나사로의 경험이 알려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을 기꺼이 부활시키기를 원하시며 또한 그렇게 할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교 누가 7:11-17; 8:40-56)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념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예수]의 음성을 듣고 나올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요한 5:28, 29)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기억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활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성서에 의하면, 분명히 영혼은 죽으며, 죽음에 대한 해결책은 부활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어 갔습니다.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누가 하느님의 기억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18. 누가 부활될 것입니까?
18 여호와의 종들로서 의로운 행로를 추구하였던 사람들은 부활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의로운 표준에 순응할 것인지의 여부를 나타내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요구 조건들에 대해 몰랐거나 필요한 변화를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들 역시 하느님의 기억 속에 있으며, 따라서 부활될 것입니다. 성서에서 이렇게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사도 24:15.
19. (ㄱ) 사도 요한은 부활에 관한 어떤 환상을 받았습니까? (ㄴ) 무엇이 “불못에 던져”지며, 이 표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9 사도 요한은 부활된 자들이 하느님의 왕좌 앞에 서 있는 가슴 설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주고 죽음과 하데스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주어, 그들이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죽음과 하데스는 불못에 던져졌다. 불못, 이것은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 (계시 20:12-14)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기억 속에 있는 죽은 자들 모두가 인류의 일반 무덤인 하데스 즉 스올에서 풀려날 것입니다. (시 16:10, 「신세」 참조; 사도 2:31) 그리고 나서 “죽음과 하데스”는 “불못”이라고 하는 곳에 던져질 것인데, 그곳은 완전한 멸망을 상징합니다. 인류의 일반 무덤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독특한 전망!
20. 현재 죽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부활될 것입니까?
20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되어 일으킴을 받을 때, 그들은 텅 빈 땅에서 다시 살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45:18) 그들은 아름답게 변모된 환경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며, 거할 곳과 의복과 풍부한 식품이 자기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 67:6; 72:16; 이사야 65:21, 22) 누가 그 모든 준비를 할 것입니까? 땅에서 부활이 시작되기 전에 그보다 앞서 신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신세계에 살고 있을 것입니까?
21, 22.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는 무슨 독특한 전망이 놓여 있습니까?
21 성서 예언의 성취는 우리가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b (디모데 둘째 3:1) 이제 머지않아 곧, 여호와 하느님께서 인간사에 개입하실 것이며 땅에서 악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시 37:10, 11; 잠언 2:21, 22) 그때, 하느님을 충실하게 섬기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22 여호와께서는 의로운 사람들을 악한 사람들과 함께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시 145:20) 그분은 결코 그렇게 하신 적이 없으며, 땅에서 모든 악을 깨끗이 제거하실 때에도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비교 창세 18:22, 23, 26) 사실, 성서의 마지막 책에서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오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해 말합니다. (계시 7:9-14) 그렇습니다. 현 악한 세상이 끝나게 될 큰 환난에서 큰 무리의 사람들이 생존하여 하느님의 신세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신세계에서, 순종하는 인류는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는 하느님의 놀라운 마련을 통해 온전히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시 22:1, 2) 따라서 “큰 무리”는 결코 죽음을 경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으로 독특한 전망입니다!
죽음이 없는 삶
23, 24. 지상 낙원에서 죽음이 없는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23 이러한 놀라운 희망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물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들이 결코 죽는 일이 없이 살 때가 있을 것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친구인 나사로를 부활시키시기 바로 전에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살아서 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11:26.
24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까?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그 욕망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머물러 있습니다.” (요한 첫째 2:17) 지금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살겠다고 결심할 때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이미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각주]
a “부활”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지는 않지만, 부활 희망은 욥기 14:13, 다니엘 12:13, 호세아 13:14에 명확히 나와 있다.
b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 98-107면 참조.
기억하십니까?
□ “영혼”으로 번역된 원어들의 기본 의미는 무엇입니까?
□ 사망시에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 성서에 의하면, 죽음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 오늘날 충실한 사람들 앞에는 무슨 독특한 전망이 놓여 있습니까?
[15면 네모]
피조물이 누리는 생명으로서의 “영혼”
때때로 “영혼”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나 동물이 영혼이라는 성서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하면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그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영혼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 있는 한, 그 사람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생명[“영혼”]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모세의 적들은 모세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출애굽 4:19, 「신세」 참조; 비교 여호수아 9:24, 「신세」 참조; 잠언 12:10, 「신세」 참조) 예수께서는 그와 비슷한 용법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도 ··· 자기 영혼을 많은 사람들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입니다.” (마태 20:28; 비교 10:28) 위에 나오는 각각의 경우에, “영혼”이라는 단어는 “생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의미한다.
[15면 삽화]
이들은 모두 영혼이다
[자료 제공]
벌새: U.S. Fish and Wildlife Service, Washington, D.C./Dean Biggins
[17면 삽화]
예수께서는 죽음에 대한 해결책이 부활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18면 삽화]
“누구든지 살아서 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