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
(altar)
기본적으로 참 하느님이나 다른 신을 숭배할 때 희생 제물을 바치거나 분향을 하려고 돋운 구조물이나 장소. 히브리어 미즈베아흐(제단)는 어근 동사 자바흐([짐승을] 잡다, 희생을 바치다)에서 온 것으로, 기본적인 의미는 짐승을 잡거나 희생을 바치는 곳을 가리킨다. (창 8:20; 신 12:21; 16:2)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어 티시아스테리온(제단)은 어근 동사 티오에서 온 것인데 이 단어 역시 “잡다, 희생을 바치다”를 의미한다. (마 22:4; 막 14:12) 그리스어 보모스는 거짓 신의 제단을 가리킨다.—행 17:23.
제단이 처음 언급된 것은 대홍수 이후인데,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물을 바쳤다고 되어 있다. (창 8:20) 대홍수 이전에 언급된 제물은 카인과 아벨이 바친 제물뿐이며, 이들도 제단을 사용했을 법하지만, 실제로 제단을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창 4:3, 4.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곳으로는 세겜(창 12:7), 베델과 아이 사이의 어느 지점(창 12:8; 13:3), 헤브론(창 13:18)이 있고, 또 모리아 산에도 제단을 쌓았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바치도록 하느님이 마련하신 숫양을 희생으로 바쳤다. (창 22:9-13) 아브라함이 쌓은 그 제단들 가운데 희생 제물을 바친 것으로 명확하게 언급된 것은 모리아 산의 경우뿐이다. 하지만 그 히브리어 단어의 기본 의미는 각 경우에 제물이 바쳐졌을 것임을 시사한다. 후에 이삭도 브엘-세바에 제단을 쌓았고(창 26:23, 25), 야곱도 세겜과 베델에 제단을 쌓았다. (창 33:18, 20; 35:1, 3, 7) 족장들이 만든 이 제단들은 후에 율법 계약 가운데 하느님이 언급하신 형태의 제단 즉 토단이나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된 단이었을 것이다.—출 20:24, 25.
모세는 아말렉에 승리를 거둔 뒤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대)라 하였다. (출 17:15, 16) 이스라엘과 율법 계약을 맺을 때, 모세는 시나이 산 기슭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희생 제물을 바쳤다. 희생 제물의 피를 제단, 책, 백성 위에 뿌림으로 계약이 발효되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였다.—출 24:4-8; 히 9:17-20.
장막의 제단들 장막을 세울 때 하느님이 지시하신 모형대로 제단 두 개를 만들었다. 아카시아나무로 만든 번제 제단(“구리 제단”[출 39:39]이라고도 함)은 속이 빈 상자 형태로서 윗면도 아랫면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로세로가 각각 2.2미터이고 높이는 1.3미터로서 위쪽 네 모퉁이에 “뿔들”이 돌출해 있었다. 표면은 전부 구리로 입혔다. 제단의 테두리 아래, “안쪽 밑에”, “가운데 쪽”으로 구리 격자 곧 구리 망을 놓았다. 격자 가까이 네 귀퉁이에 고리 네 개를 달아서, 제단을 옮기는 데 사용하는 두 개의 채를 바로 그 고리에 끼우게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채들도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서 구리를 입힌 것이다. 이로 보건대 납작한 격자망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제단 양면에 길쭉한 홈을 파 놓고, 양쪽 면 밖으로 고리들이 달려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학자들 간에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 많은 학자들은 고리 두 세트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둘째 세트는 운반용 채들을 끼우도록 제단 외벽에 직접 부착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재를 치우는 데 쓸 통과 삽, 동물의 피를 담을 대접, 고기를 다룰 때 쓸 갈고리 및 불 그릇 같은 도구를 구리로 만들었다.—출 27:1-8; 38:1-7, 30; 민 4:14.
구리로 만든 이 번제 제단은 장막의 입구 앞에 놓았다. (출 40:6, 29) 오름 수단이 필요할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단 안에 놓인 희생 제물을 손쉽게 다루려면 제단 주위로 흙이 돋워져 있거나 제단에 오르는 경사로가 있었을 법하다. (레 9:22 비교. 이 성구에서는 아론이 제물을 바친 뒤 “내려왔다”고 알려 준다.) 동물을 잡는 곳은 “제단 옆 북쪽”이었고(레 1:11), 제단에서 치운 “기름 재를 모아 두는 곳”은 동쪽이었으며(레 1:16), 씻기 위한 구리 대야는 서쪽에 있었으므로(출 30:18), 이치적으로 볼 때 그런 오름 수단을 둘 만한 자리로 비어 있는 곳은 남쪽이었을 것이다.
분향 제단 분향 제단(“금 제단”[출 39:38]이라고도 함) 역시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었고, 윗면과 옆면을 금으로 입혔다. 윗면 둘레에 금테를 둘렀다. 분향 제단은 가로세로가 각각 44.5센티미터이고 높이는 89센티미터였으며, 이 제단에도 위쪽 네 모퉁이에 “뿔들”이 나와 있었다. 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운반용 채들을 끼우기 위해 금 고리 둘을 만들었는데, 이 고리들은 금테 아래, 제단의 맞은편 양쪽에 있었다. (출 30:1-5; 37:25-28) 날마다 두 차례씩, 아침저녁으로 이 제단 위에 특별한 향을 피웠다. (출 30:7-9, 34-38) 분향할 때 향로 즉 불 그릇을 사용했다고 언급된 곳이 있는데, 분향 제단과 관련하여 그런 그릇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레 16:12, 13; 히 9:4; 계 8:5. 대둘 26:16, 19 비교) 분향 제단이 있는 자리가 장막 안의 지성소 휘장 바로 앞이라서 그 제단이 “증언의 궤 앞에” 있다고 되어 있다.—출 30:1, 6; 40:5, 26, 27.
장막 제단들을 거룩하게 하고 사용함 임직식을 행할 때 두 제단에 기름을 부어 성별하였다. (출 40:9, 10) 그때에 그리고 그 이후 특정한 속죄 제물을 바칠 때에도 희생 동물의 피를 번제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나머지는 제단의 기부(基部)에 쏟았다. (출 29:12; 레 8:15; 9:8, 9) 임직식이 끝나 갈 무렵 기름부음용 기름과 제단 위에 있는 피 얼마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그들의 옷 위에 뿌려서 거룩하게 하였다. (레 8:30) 번제 제단을 성별하는 데 모두 칠 일이 걸렸다. (출 29:37) 다른 번제물과 친교 희생, 죄과 제물을 바칠 때는 제단 위에 피를 둘러 뿌렸고, 새를 바칠 때는 피를 제단 옆면에 뿌리거나 흘렸다. (레 1:5-17; 3:2-5; 5:7-9; 7:2) 곡식 제물은 여호와를 위한 “평온하게 하는 향기”로 제단 위에서 살라 연기를 올렸다. (레 2:2-12) 곡식 제물의 남은 부분은 대제사장과 아들들이 제단 곁에서 먹었다. (레 10:12) 연례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희생 동물의 피 얼마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림으로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였다.—레 16:18, 19.
동물 희생을 바칠 때는 언제나 동물의 일부를 제단 위에서 살라 연기를 올렸으며, 이 목적을 위해 제단에 불을 늘 피워 두고 결코 꺼뜨리지 않았다. (레 6:9-13) 이 제단에서 가져온 불을 사용하여 분향을 하였다. (민 16:46) 아론과, 그의 자손 중 결함이 없는 사람들만 제단에서 섬기도록 허락되었다. (레 21:21-23) 그 밖의 레위 사람들은 돕는 역할만 하였다. 아론의 씨가 아닌 사람이 가까이 오면 누구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민 16:40; 18:1-7) 고라와 그의 회는 하느님이 정하신 이 마련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되었다. 그들이 가져온 구리로 된 불 그릇은 얇은 금속판이 되어 제단에 입혀져서, 아론 자손이 아닌 사람은 누구도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는 표가 되었다.—민 16:1-11, 16-18, 36-40.
금으로 된 분향 제단 역시 일 년에 한 번 그 뿔들 위에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 속죄를 하였다. 제사장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칠 때에도 그 제단의 뿔들에 피를 발랐다.—출 30:10; 레 4:7.
고핫 자손은 분향 제단과 번제 제단을 운반할 때, 분향 제단을 청색 천과 바다표범 가죽으로 덮었고, 번제 제단은 붉은보라색으로 염색한 양모 천과 바다표범 가죽으로 덮었다.—민 4:11-14. 장막 참조.
성전의 제단들 솔로몬 성전이 봉헌되기 전,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들었던 구리 제단을 사용하여 기브온의 산당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다. (왕첫 3:4; 대첫 16:39, 40; 21:29, 30; 대둘 1:3-6) 그 이후 성전을 위해 만든 구리 제단은 장막을 위해 만든 구리 제단의 16배나 되는 면적을 차지한 것으로, 가로세로가 각각 8.9미터 정도에 높이는 4.5미터 정도였다. (대둘 4:1) 그 높이로 볼 때 어떤 식으로든 오름 수단이 있어야 하였다. 하느님의 법에서는 은밀한 부분이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제단에 층계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다. (출 20:26)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아론과 아들들이 아마포 속바지를 입었으므로 그 명령이 불필요하게 되어 층계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긴다. (출 28:42, 43) 하지만 번제 제단에 오를 때는 경사로를 사용하였던 것 같다. 요세푸스(「유대 전쟁사」 The Jewish War, V, 225 [v, 6])는 후에 헤롯이 지은 성전 제단에 그런 오름 수단이 사용되었다고 알려 준다. 성전 제단도 장막 제단처럼 배열되었다면 경사로는 제단의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장들이 “주조한 바다”에서 씻기가 편리했을 것인데, 그것 역시 남쪽을 향하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둘 4:2-5, 9, 10) 성전을 위해 지은 제단은 다른 면으로도 장막의 제단을 본뜬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한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제단 자리는 앞서 다윗이 모리아 산에 임시 제단을 쌓은 곳이었다. (삼둘 24:21, 25; 대첫 21:26; 대둘 8:12; 15:8)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한 곳 역시 이 장소였다고 한다. (창 22:2) 제단의 기부에 희생 동물의 피를 쏟았으며, 성전 지역에서 피를 밖으로 보내는 배수로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헤롯 성전에는 그런 배수로가 제단의 남서쪽 뿔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성전 지역의 바위에서는 기드론 골짜기에 이르는 지하 배수로의 개구부가 발견되었다.
성전의 분향 제단은 실삼나무로 만든 것으로, 이 제단과 장막의 분향 제단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그뿐인 것 같다. 이 분향 제단도 금으로 입혔다.—왕첫 6:20, 22; 7:48; 대첫 28:18; 대둘 4:19.
성전 낙성식 때 번제 제단 앞에서 솔로몬이 기도를 올렸는데,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희생 제물들을 태웠다. (대둘 6:12, 13; 7:1-3) 이 구리 제단이 79제곱미터 이상이나 넓게 차지하였는데도 당시 바쳐진 엄청난 분량의 희생 제물에 비할 때 너무 작아서, 성전 뜰의 일부를 거룩하게 하여 그곳에서도 제물을 바칠 수 있게 하였다.—왕첫 8:62-64.
솔로몬의 통치 후기에 그리고 르호보암과 아비얌의 통치 때에 번제 제단이 소홀히 취급되었으므로 아사 왕은 제단을 개수할 필요를 느꼈다. (대둘 15:8) 웃시야 왕은 금으로 된 분향 제단에 분향하려다가 나병에 걸렸다. (대둘 26:16-19) 아하스 왕은 구리로 된 번제 제단을 한쪽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 이교 제단을 놓았다. (왕둘 16:14) 하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구리 제단과 그 기구들을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 다시 봉사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대둘 29:18-24, 27. 성전 참조.
바빌론 유배 기간 이후의 제단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인도 아래 돌아온 유배자들이 예루살렘에 제일 먼저 세운 것은 번제 제단이었다. (라 3:2-6) 때가 되자 분향 제단도 새로 만들었다.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금으로 된 분향 제단을 가져갔고, 2년 뒤(기원전 168년)에는 여호와의 큰 제단 위에 제단을 세우고 그 위에 제우스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쳤다. (마카베오 1서 1:20-64) 그 후 유다 마카베오는 다듬지 않은 돌들로 제단을 새로 쌓고, 분향 제단도 원래대로 갖추어 놓았다.—마카베오 1서 4:44-49.
헤롯 성전의 번제 제단은 다듬지 않은 돌들로 만들었다. 요세푸스는(「유대 전쟁사」, V, 225 [v, 6]) 그 제단의 길이와 너비가 각기 50큐빗이고 높이는 15큐빗이었다고 하는데, 유대교의 「미슈나」(미도트 3:1)는 그보다 작게 묘사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당시에 언급하신 제단이었다. (마 5:23, 24; 23:18-20) 그 성전의 분향 제단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누가 1:11에서는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에게 나타난 한 천사가 분향 제단의 오른편에 서 있었다고 알려 준다.
에스겔이 본 성전의 제단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성전의 번제 제단도 그와 비슷하게 성전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겔 40:47), 이전 제단들과는 모양이 달랐다. 몇 단으로 이루어진 이 제단은 단계별로 넓이가 줄어들어 좁아지는 형태였다. 그 치수는 긴큐빗(51.8센티미터)으로 잰 것이다. 제단의 기부는 두께가 1큐빗이고, 윗면의 가장자리에는 빙 돌아가면서 한 뼘(아마 26센티미터) 되는 “테두리”가 있어서 일종의 홈 또는 배수로를 형성하였는데, 쏟아지는 피를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일 수 있다. (겔 43:13, 14) 기부 위에 놓여 있는 단은 기부의 가장자리에서 1큐빗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높이는 2큐빗(약 104센티미터)이었다. 셋째 단도 1큐빗 안으로 들어가 있고 높이는 4큐빗(약 207센티미터)이었다. 그것을 둘러싼 테두리는 반 큐빗(약 26센티미터)이었으며, 둘째 배수로 또는 보호용 턱이었을 수 있다. 끝으로 제단 화덕도 4큐빗이나 솟아 있고, 그 아래단에서 1큐빗 안으로 들어와 있으며, 이 화덕에서 “뿔” 네 개가 솟아 있다. 동쪽에 있는 계단으로 제단 화덕에 올랐다. (겔 43:14-17) 광야에서 세운 제단처럼 칠 일간 속죄 기간과 임직식 기간을 가져야 하였다. (겔 43:19-26) 해마다 니산월 초하루에 신성한 곳의 여느 부분과 더불어 제단을 위해 속죄를 해야 하였다. (겔 45:18, 19) 치료하는 강물이 성전의 동쪽으로 흘러서 제단의 남쪽을 지나는 것을 에스겔은 보았다.—겔 47:1.
이 환상에 분향 제단이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에스겔 41:22에 묘사된 “나무 제단”을 볼 때, 특히 그 제단이 “여호와 앞에 있는 상”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진설빵 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분향 제단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출 30:6, 8; 40:5; 계 8:3 비교) 이 제단은 높이가 3큐빗(약 155센티미터), 가로세로는 각각 2큐빗(약 104센티미터)이었을 것이다.
다른 제단들 대홍수 이후 사람들이 노아와 더불어 순결한 숭배를 계속 행하지 않았으므로, 자연히 거짓 숭배용 제단이 많이 생겨났고, 가나안이나 메소포타미아 및 다른 지역들에서 행해진 발굴 작업 결과가 알려 주듯이 아주 초기부터 그런 제단들이 존재했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헛된 시도를 하면서 세 장소에 제단 일곱 개씩 연이어 쌓았다.—민 22:40, 41; 23:4, 14, 29, 30.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교 제단을 모두 허물어뜨리고, 그런 제단 곁에 으레 세워져 있던 신성한 기둥과 목상을 없애 버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출 34:13; 신 7:5, 6; 12:1-3)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코 그런 것을 본받아서는 안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처럼 자녀를 불태워 바치는 일을 해서도 안 되었다. (신 12:30, 31; 16:21) 이스라엘에는 많은 제단이 아니라 한 분의 참 하느님을 숭배하는 데 단 하나의 제단만 두어야 하였으며, 이 제단을 여호와께서 택하시는 곳에 두어야 하였다. (신 12:2-6, 13, 14, 27. 이것을 바빌론과 대조해 보자. 바빌론에는 이슈타르 여신 하나만을 위해서도 제단이 180개나 있었다.) 처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르단 강을 건넌 뒤 다듬지 않은 돌들로 제단을 쌓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며(신 27:4-8),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 이 제단을 쌓았다. (수 8:30-32) 정복한 땅이 분배된 뒤,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요르단 강가에 두드러진 제단을 하나 쌓았다. 이로 말미암아 잠시나마 다른 지파들 사이에 긴장이 감돌다가, 그 제단이 배교의 표시가 아니라 참 하느님 여호와에 대한 충실을 기념하게 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수 22:10-34.
다른 제단들도 세워졌으나, 계속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시용으로만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천사가 나타난 일과 관련하여 또는 천사의 지시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보김에 세운 제단 그리고 기드온과 마노아가 사용한 제단들도 그러한 제단이었다. (판 2:1-5; 6:24-32; 13:15-23) 백성이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베델에 제단을 쌓은 일이 하느님의 승인을 받은 것인지 그냥 ‘그들의 눈에 옳은 일을 행’한 것인지는 기록에서 알려 주지 않는다. (판 21:4, 25)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무엘은 미스바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고, 라마에도 제단을 쌓았다. (삼첫 7:5, 9, 10, 17) 이렇게 한 이유는 ‘궤’가 치워진 후 실로의 장막에 더는 여호와의 임재의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삼첫 4:4, 11; 6:19-21; 7:1, 2. 시 78:59-64 비교.
임시 제단들이 사용됨 여러 경우에 임시 제단들이 세워졌다. 예를 들어 사울은 길갈에서 희생 제물을 바쳤고, 아얄론에 제단을 쌓았다. (삼첫 13:7-12; 14:33-35) 길갈에서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희생을 바친 것 때문에 정죄되었는데, 희생을 바친 장소가 합당한가의 여부는 고려되지 않았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베들레헴에서 가족의 연례 희생제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신월의 날에 사울의 식탁에 가지 못함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구실을 대기 위한 말이었기 때문에 그런 희생제가 실제로 있었는지의 여부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 (삼첫 20:6, 28, 29) 후에 다윗은 왕으로서 아라우나(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았으며,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그렇게 하였다. (삼둘 24:18-25; 대첫 21:18-26; 22:1) 열왕기 첫째 9:25에서 솔로몬이 ‘제단 위에 희생을 바쳤다’고 언급한 내용은 권위를 받은 제사장을 통하여 그런 일을 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말임이 분명하다.—대둘 8:12-15 비교.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짐으로, 제단은 이제 ‘하느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 당신이 가야 할 곳’에 분명히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신 12:5) 갈멜 산에서 엘리야가 바알의 사제들과 불 시험을 할 때 사용한 제단을 제외하고는(왕첫 18:26-35), 이제 다른 제단이 세워진 이유는 오로지 배교 때문이다. 솔로몬 자신이 바로 그런 배교 죄를 범한 첫 인물이었다. 그는 타국인 아내들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하였다. (왕첫 11:3-8) 새로 형성된 북쪽 왕국의 여로보암은 자신의 신민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베델과 단에 제단을 세웠다. (왕첫 12:28-33) 그때 한 예언자는 유다 왕 요시야의 통치 중에 베델의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이 살육당할 것과 그 죽은 자들의 뼈가 제단 위에서 태워질 것을 예고하였다. 한 가지 전조로서 제단이 갈라졌으며, 그 예언은 후에 온전히 성취되었다.—왕첫 13:1-5; 왕둘 23:15-20. 암 3:14 비교.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는 이교 제단들이 무수히 많았다. (왕첫 16:31-33) 유다 왕 아하스 시대에는 “예루살렘의 모퉁이마다” 제단이 있었고 “산당들”도 많이 있었다. (대둘 28:24, 25) 므낫세는 여호와의 집 안에 제단들을 세우고 성전 뜰에 ‘하늘의 군대’를 숭배하기 위한 제단들을 세우기까지 하였다.—왕둘 21:3-5.
이따금 충실한 왕들이 그런 우상 숭배용 제단들을 없애기는 하였으나(왕둘 11:18; 23:12, 20; 대둘 14:3; 30:14; 31:1; 34:4-7),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전에 예레미야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유다야, 너의 신들은 너의 도시만큼이나 많아졌다. 예루살렘의 거리만큼이나 많은 제단을 너희가 수치스러운 것을 위해 세웠으니, 곧 바알에게 희생의 연기를 올리는 제단이다.”—렘 11:13.
바빌론 유배 기간에 그리고 사도 시대에 바빌론 유배 기간 중에 상(上)이집트의 엘레판티네로 도피한 유대인들은 성전과 제단을 세웠다고 엘레판티네 파피루스는 알려 준다. 그리고 몇 세기 후 레온토폴리스 근처의 유대인들도 그와 같은 일을 하였다. (「유대 고대사」 Jewish Antiquities, XIII, 62-68 [iii, 1]; 「유대 전쟁사」, VII, 420-432 [x, 2, 3]) 후자의 이 성전과 제단은 이사야 19:19, 20을 성취시키려고 제사장 오니아스가 세운 것이었다.
서력기원 이후, 사도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을 언급하였다. (행 17:23) 이 점을 확증할 만한 역사 자료는 충분히 있다. 바울이 아테네를 방문한 지 얼마 뒤에 그곳을 방문한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신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은 지혜와 중용의 더 큰 증거이다. 알려지지 않은 신들까지 공경하려고 제단들을 세우는 곳인 아테네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필로스트라토스,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 The Life of Apollonius of Tyana, VI, III) 기원 2세기의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팔레론 만 항구부터 아테네 시에 이르는 도로에서 “‘알려지지 않은 신’으로 일컬어지는 신들의 제단과 영웅들의 제단”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는 올림피아의 “‘알려지지 않은 신들’의 제단”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그리스 이야기」 Description of Greece, 아티카, I, 4; 엘리스 I, XIV, 8) 1909년 페르가몬(버가모)의 데메테르 신전 경내에서도 그와 비슷한 제단이 발견되었다.
제단들의 의의 히브리 8,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장막·성전 봉사와 관련된 것들이 모두 모형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히 8:5; 9:23) 두 제단의 의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내용으로 분명해진다. 번제 제단은 하느님의 “뜻”을, 다시 말해서 자신의 독생자의 완전한 인간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그분의 뜻을 상징하였다. (히 10:5-10) 제단의 위치가 신성한 곳의 입구 앞이라는 사실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려면 먼저 그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해 준다. (요 3:16-18) 희생 제단이 하나만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 것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선언과 일치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연합이 그리스도인 믿음에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고 선언하는 여러 성구들과도 일치한다.—요 14:6; 마 7:13, 14; 고첫 1:10-13; 엡 4:3-6. 또한 모든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제단으로 올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사 56:7과 60:7 유의.
제단으로 도피하여 제단 뿔을 잡고 보호받기를 바란 사람들이 있었지만, 고의적인 살인자는 ‘나의 제단에 있더라도 죽여야 한다’고 하느님이 법으로 규정하신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출 21:14. 왕첫 1:50-53; 2:28-34 비교) 시편 필자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내 손을 결백함으로 씻고 당신의 제단 주위를 돌겠습니다, 오 여호와여.”—시 26:6.
그리스도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히브리 13:10을 근거로 문자적인 제단을 세워 왔지만, 문맥을 보면 바울이 말한 “제단”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히 13:10-16) 매클린턱과 스트롱 공편 「백과사전」(Cyclopædia, 1882년, 1권, 183면)은 초기 그리스도인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한다. “고대 호교론자들은 성전도 제단도 신당도 없냐는 비난을 들을 때면 그저 ‘우리에게는 신당도 제단도 없다’고 답변하였다.” 히브리 13:10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M. R. 뱅상의 「신약 단어 연구」(Word Studies in the New Testament, 1957년, 4권, 567면)는 이렇게 기술한다. “그리스도교 경륜에서 제단에 대응하는 어떤 특정 대상—십자가이든 성찬대이든 그리스도 자신이든—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제단이라는 표상에는 하느님께 다가간다는 사상—희생, 속죄, 죄 사함, 가납, 구원—이 한데 모여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마치 유대인의 제단이 그 모든 사상의 집약점이었던 것과 같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제단을 많이 세우는 것을 단호히 정죄하였다. (사 17:7, 8) 호세아는 에브라임이 “죄를 지으려고 제단들을 늘렸”다고 말하였고(호 8:11; 10:1, 2, 8; 12:11),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가 “그들의 제단 뿔들에” 새겨져 있다고 말하였으며(렘 17:1, 2), 에스겔은 거짓 숭배자들이 “그들의 제단들 둘레”에서 살육될 것을 예언하였다(겔 6:4-6, 13).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 역시 참 제단과 관련하여 표현되어 있다. (사 6:5-12; 겔 9:2; 암 9:1) 하느님을 위해 증언한 일 때문에 살육을 당한 자들의 영혼이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권자인 주여, 언제까지 당신은 심판을 미루셔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우리의 피에 대한 복수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상징적으로 외친 곳은 “제단 아래”였다.—계 6:9, 10. 계 8:5; 11:1; 16:7 비교.
계시록 8:3, 4에는 금으로 된 분향 제단이 의로운 자들의 기도와 특별히 연관되어 있다. “분향하는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유대인의 관례였다. (누 1:9, 10. 시 141:2 비교) 또한 분향 제단이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약술되어 있는 접근 통로가 하나라는 사상과 일치한다.—요 10:9; 14:6; 16:23; 엡 2:18-22. 제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