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분을 바라보십시오!
“가만히 서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욥 37:14.
1, 2. 1922년에 무슨 놀라운 발견이 있었으며,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한 고고학자와 영국의 한 귀족이 함께 힘을 합쳐 여러 해 동안 보물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두 사람은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와 카나번 경이었는데, 마침내 1922년 11월 26일에, 그들은 왕들의 계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묻힌 장소에서 그들이 기울인 노력의 대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봉해져 있는 무덤 입구까지 간 다음, 구멍을 뚫었습니다. 카터가 구멍 속으로 촛불을 집어넣고 그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2 후에 카터는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카나번 경은 참다 못해 ‘뭐가 좀 보이나요?’ 하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습니다. 그때 내가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던 말은 고작해야 ‘예, 굉장합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 무덤에 있던 수천 점의 보물 가운데는 순금으로 된 관(棺)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그때 발견된 굉장히 놀라운 보물들 중 얼마를 사진으로 보았거나 박물관에서 구경하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박물관 소장품들이 놀라운 것일지는 몰라도 아마 당신의 생명과는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당신에게 가치가 있는 놀라운 일들에 대해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3. 우리에게도 매우 가치가 있을 수 있는 놀라운 일들에 관한 지식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3 예를 들어, 여러 세기 전에 살았던 한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 사람은 현대의 어떤 인기 영화배우나 스포츠 스타나 왕실 가족보다도 훨씬 더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모든 동방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자”로 일컬어졌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은 바로 욥입니다. 그에 관한 기록이 성서의 한 책 전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과 동시대의 사람인 엘리후라는 젊은 사람은 욥을 시정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엘리후가 지적한 대로, 사실 욥은 자기 자신과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욥기 37장에서 그러한 점 외에도 여러 가지 구체적이고 현명한 권고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러한 권고는 우리 각자에게도 참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욥 1:1-3; 32:1–33:12.
4. 엘리후는 어떤 상황에서 욥기 37:14에 기록되어 있는 권고를 하게 되었습니까?
4 욥의 친구로 자처하는 세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욥의 생각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부면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욥 15:1-6, 16; 22:5-10) 엘리후는 그 대화가 끝나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통찰력과 지혜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요점들을 지적하였지만, 그의 말 가운데 나오는 다음과 같은 주된 요지에 유의해 보도록 합시다. “욥이여, 이것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가만히 서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욥 37:14.
놀라운 일들을 하신 분
5. 엘리후가 언급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 가운데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5 엘리후가 욥에게 욥이나 엘리후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제안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엘리후는 현명하게도 욥에게—그리고 우리에게—여호와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이라는 표현에는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더군다나, 건강 문제나 재정 상태나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할 일들이 있을 수 있으며 가족과 직장 동료와 이웃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하느님의 일들에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문의 여지 없이, 여호와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 가운데는 그분의 지혜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는 물질적 창조물들을 다스리는 그분의 권위가 포함될 것입니다. (느헤미야 9:6; 시 24:1; 104:24; 136:5, 6) 이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한 가지 요점에 유의해 보도록 합시다.
6, 7. (ㄱ) 여호와께서는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에 무슨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까? (ㄴ) 당신이 모세 시대와 여호수아 시대에 있었던 그러한 일들 중 하나를 목격하였다면,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 것입니까?
6 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시고 그 후에 홍해를 가르심으로, 모세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탈출 7:1–14:31; 시 106:7, 21, 22) 그런데 그와 비슷한 사건이 여호수아 3장에도 나옵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또다시 물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내일 여호와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호수아 3:5) 무슨 놀라운 일들이었습니까?
7 기록이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물의 장벽을 열어 주셔서, 다시 말해서 요르단 강에 길을 내셔서, 수많은 남녀와 아이들이 마른 땅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3:7-17)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서 강에 길이 나고 그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면, 그 일이 얼마나 놀랍게 이루어지는지를 보고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창조물을 제어하는 하느님의 능력이 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도—우리 생애 중에도—그에 비할 만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 중 일부를 살펴보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일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욥기 37:5-7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8, 9. 욥기 37:5-7에서는 무슨 놀라운 일들을 지적하며, 우리가 그러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엘리후는 이렇게 단언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음성으로 놀랍게 천둥이 치게 하시고, 우리가 알 수 없는 큰일들을 행하십니다.” 엘리후는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느님께서 “놀랍게” 일들을 행하신다고 말한 것입니까? 그는 눈과 큰비에 대해 말합니다. 눈과 큰비 때문에 농부는 한동안 밭에서 일을 못하게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농부는 하느님의 일들에 관해 생각해 볼 시간과 이유를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농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비나 눈의 영향은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눈과 비는 우리의 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놀라운 일들 배후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볼 시간을 냅니까? 당신은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습니까?
9 욥기 38장에서 여호와 하느님께서 욥에게 의미 깊은 질문들을 던지신 내용을 읽어 보면, 의미심장하게도 그분이 엘리후와 생각의 방향이 비슷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욥을 대상으로 그러한 질문들을 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질문들은 분명히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하신 질문들을 살펴보고, 그 질문들에 내포된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렇습니다. 욥기 37:14에서 우리에게 강력히 권하는 일을 해 보도록 합시다.
10. 욥기 38장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어야 하며, 그 장에는 어떤 질문들이 나옵니까?
10 욥기 38장은 이러한 말로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폭풍 속에서 욥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지식 없는 말로 내 뜻을 흐리게 하는 이자는 누구냐? 청컨대, 대장부처럼 네 허리를 졸라매어라. 내가 네게 질문할 터이니, 너는 답해 보아라.’” (욥 38:1-3) 이것은 이어지는 논증의 기본 틀을 설정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욥은 자신이 우주의 창조주 앞에 서 있으며 그분에게 답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다음, 엘리후가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일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정말 이해력이 있다면, 내게 말해 보아라. 네가 알고 있다면, 누가 그 치수를 정하였느냐, 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쳤느냐? 그 장부 받침은 무엇에 박혔느냐, 또 누가 그 모퉁잇돌을 놓았느냐?”—욥 38:4-6.
11. 욥기 38:4-6을 보고 우리는 어떤 사실을 마음속 깊이 깨달아야 합니까?
11 지구가 생길 때에 욥은, 아니 우리 모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지구를 설계한 건축가입니까? 그래서 마치 자를 대고 줄을 긋듯이 설계도대로 치수에 따라 줄을 그었습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그때 인간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이 지구가 하나의 건축물인 양 “누가 그 모퉁잇돌을 놓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우리가 살고 번성하기에 딱 알맞은 거리만큼 태양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의 크기도 알맞습니다.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크다면 수소 가스가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누군가가 알맞은 장소에 “그 모퉁잇돌을 놓았”습니다. 욥에게 영예가 돌아가야 합니까? 우리에게 영예가 돌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느님께 영예가 돌아가야 합니까?—잠언 3:19; 예레미야 10:12.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인가?
12. 욥기 38:6에 나오는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까?
12 하느님께서는 또한 “그 장부 받침은 무엇에 박혔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적절한 질문이 아닙니까? 아마 우리는 욥이 몰랐던 용어인 중력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태양의 엄청난 질량에서 나오는 중력의 힘 때문에 지구가 제자리를 유지한다는 것, 말하자면 지구의 장부 받침이 튼튼하게 박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에 관해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13, 14. (ㄱ) 중력과 관련하여 어떤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까? (ㄴ) 욥기 38:6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우리는 어떤 반응을 나타내야 합니까?
13 최근에 발행된 「설명된 우주」(The Universe Explained)라는 책에서는 ‘중력은 자연의 힘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가장 이해를 못하고 있는 힘’임을 시인합니다. 그 책은 이렇게 부언합니다. “중력은 아무 뚜렷한 수단도 없이 빈 공간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근년에 들어 물리학자들은 중력이 중력자라고 불리는 입자로 만들어진 파동을 통해 이동할지 모른다고 추론하기 시작하였다. ··· 하지만 그러한 입자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14 과학은 여호와께서 욥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제기하신 후로 3000년 이상 발달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론이고 전문 지식을 갖춘 물리학자들도 중력에 대해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중력으로 인해 지구는 제 궤도를,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꼭 알맞은 경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욥 26:7; 이사야 45:18)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중력의 신비를 깊이 연구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 중 하나인 이 부면에 주의를 기울여 보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그분의 지혜와 지식에 대해 외경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의 뜻에 관해 더 많이 배워 알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까?
15-17. (ㄱ) 욥기 38:8-11에서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며, 따라서 어떤 질문들이 제기됩니까? (ㄴ) 대양과 대양이 지표면에 분포되어 있는 모습에 대한 지식과 관련하여 무엇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까?
15 창조주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누가 문으로 바다를 막았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터져 나오듯 나오기 시작할 때에, 내가 구름을 그 의복으로, 흑암을 그 감싸는 띠로 삼으며, 내 규정을 그 위에 세우고 빗장과 문을 두며, ‘네가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도도한 파도는 여기가 한계이다’ 하고 말할 때에.”—욥 38:8-11.
16 바다를 막는 일과 관련되는 것으로, 대륙과 대양과 조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한 것들을 관찰하며 연구해 왔습니까? 수천 년 동안 관찰하고 연구해 왔으며, 특히 지난 세기에는 매우 집중적인 연구가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 밝혀져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쯤은 대부분 다 밝혀졌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2001년인 지금 큰 도서관들에서 이 제목에 대해 조사해 보거나 매우 광범위한 조사가 가능한 인터넷을 이용하여 가장 최근에 발견된 사실들을 찾아본다면 무엇을 알게 될 것 같습니까?
17 널리 인정받고 있는 한 참조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시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표면에 대륙과 해분(海盆)이 분포되어 있는 모습과 특색 있는 주요 지형들이 분포되어 있는 모습은 오랫동안 과학적 연구 조사와 이론 정립의 가장 흥미 있는 대상 가운데 한 부면이 되어 왔다.” 이 말을 한 후에, 그 백과사전에서는 단지 네 가지 가능성 있는 설명을 인용하여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책에 의하면, 그러한 설명들도 어디까지나 “많은 가설들 중”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아시다시피, 가설이란 “임시변통적인 설명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18. 욥기 38:8-11을 검토해 볼 때, 당신은 무슨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18 이것은 우리가 욥기 38:8-11에서 읽은 질문들이 아주 시기적절한 것임을 잘 보여 주지 않습니까? 지구가 그 모든 특징을 갖추게 된 것에 대한 영예가 우리 인간에게 돌아가서는 안 됨이 분명합니다. 달의 인력으로 인해 조수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달을 그 자리에 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그러한 조수의 변화 때문에 바다가 넘쳐서 해안 지역이나 우리가 사는 지역이 물에 잠기는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누가 그러한 일들을 하셨는지,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습니다.—시 33:7; 89:9; 잠언 8:29; 사도 4:24; 계시 14:7.
여호와께 합당한 영예를 돌리라
19. 욥기 38:12-14에 나오는 시적인 표현들은 어떤 자연 현상들에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까?
19 욥기 38:12-14에 언급되어 있는 지구의 자전에 대한 영예도 인간에게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새벽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밝아 옵니다. 태양이 떠오름에 따라 지구 위의 갖가지 모습들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은, 진흙에 인장을 찍으면 그 위에 인영(印影)이 뚜렷이 새겨지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운동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지구가 지나치게 빨리 돌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지구가 너무 빨리 돈다면 큰 재난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또한 너무 천천히 돌지도 않습니다. 만약 지구가 너무 천천히 돈다면, 밤과 낮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져서 극도의 더위와 추위가 있게 됨으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지구의 자전 속도를 어떤 인간 집단이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안도감을 느낍니다.—시 148:1-5.
20. 당신은 욥기 38:16, 18에 제기되어 있는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20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더 하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너는 바다의 근원에 가 보았느냐, 깊은 물을 찾아 돌아다녀 보았느냐?” 해양학자라 할지라도 완벽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는 땅의 넓은 공간에 대해 이지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네가 이 모든 것을 알거든, 말해 보아라.” (욥 38:16, 18) 당신은 땅의 모든 지역을, 아니 대부분의 지역이라도 가 보았거나 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구의 아름다운 곳이나 경이로운 곳들에 주의를 기울이려면 현재의 수명으로 몇 평생을 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기간은 참으로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21. (ㄱ) 욥기 38:19에 나오는 질문들을 통해 어떤 과학적인 견해들을 검토해 보게 될 수 있습니까? (ㄴ) 빛과 관련된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까?
21 욥기 38:19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질문들도 살펴보기로 합시다. “빛이 거하는 곳으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 있느냐? 어둠, 그것의 자리는 과연 어디 있느냐?” 아시다시피,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는, 빛이 파동처럼, 다시 말해서 연못에서 볼 수 있는 잔물결처럼 움직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05년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이 에너지의 덩어리처럼, 마치 입자처럼 움직인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한 설명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까? 최근에 나온 한 백과사전에는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파동설과 입자설] 두 이론은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빛은] 그 어느 것도 될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적절한 대답은, 엄밀히 말해서 빛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햇빛으로부터 온기를 얻습니다. 인간이 아직 이 점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일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식물이 햇빛에 반응을 보여 생산한 식품과 산소를 즐깁니다. 그리고 독서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일몰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할 때,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시 104:1, 2; 145:5; 이사야 45:7; 예레미야 31:35.
22. 고대의 다윗은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22 우리가 여호와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 묵상하는 목적은, 단지 그 모든 것들을 묵상함으로 감동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까? 외경감에 휩싸여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면, 우리의 목적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 시편 필자인 다윗은 하느님의 모든 일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시인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은 많은 것을 행하셨습니다, 오 나의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 행하셨[습니다]. ··· 내가 그것들에 대해 말하고 이야기하려 하여도, 내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시 40:5) 하지만 다윗은 그러한 위대한 일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위와 같이 말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시편 9:1에서 자신의 결심을 이렇게 표현한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여호와여, 내가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의 모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렵니다.”
23.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당신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게 되며, 또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23 우리도 그처럼 감명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신 위대한 일들에 대한 경이감에서 우러나와,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이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는 “나라들 가운데 그 영광을, 모든 백성들 가운데 그 놀라운 일들을 선포”해야 합니다. (시 96:3-5)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분에 관해 배워 알게 된 것을 전해 줌으로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한 겸손한 인식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회에서 성장하였다 하더라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유익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그들도 하느님을 인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분인 여호와에 관해 배우고 그분을 섬기려는 간절한 열망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계시 4:11.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욥기 37:14에 기록되어 있는 권고는 하느님의 무슨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까?
● 욥기 37장과 38장에 두드러지게 언급된 것으로, 과학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당신은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며, 그로 인해 어떻게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까?
[7면 삽화]
바다를 막고, 그 한계를 정하신 분은 누구인가?
[7면 삽화]
누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의 아름다운 곳을 모두 가 본 적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