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태도를 배양하라
“여러분이 합리적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계십니다.”—빌립보 4:5, 「신세」.
1. 오늘날의 세상에서 합리적이 되는 것은 왜 도전이 되는 일입니까?
“합리적인 사람”—영국의 언론인, 앨런 패트릭 허버트 경은 그런 사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불화로 사분 오열된 이 세상에 합리적인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성서는 이 위급한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사납고”, “제 고집대로 하고”, “쉽게 합의하지 않”을 것임을—달리 말해서, 전혀 합리적이 아닐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디모데 후 3:1-5, 「신세」) 그렇기는 하지만, 참 그리스도인들은 합리적인 태도가 하나님의 지혜의 표임을 알기 때문에 합리적인 태도를 대단히 중요시합니다. (야고보 3:17) 우리는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합리적이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빌립보서 4:5(「신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영감받은 교훈의 도전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이 합리적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십시오.”
2. 빌립보서 4:5(「신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말은 우리가 합리적인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2 바울의 말이 우리가 합리적인지의 여부를 시험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며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알려져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필립스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십시오.” 우리 각자는 이러한 질문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가? 나는 합리적이고 양보하며 온순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완고하거나 가혹하거나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가?’
3. (ㄱ) “합리적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에는 무슨 뜻이 있으며, 이 특성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좀더 합리적이 되는 법을 배워 알 수 있습니까?
3 이 면에서의 우리의 평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정도를 분명하게 나타낼 것입니다. (고린도 전 11:1) 예수께서는 이 곳 지상에 계실 때 합리적인 태도에 대한 아버지의 최고의 본을 완벽히 반영하셨습니다. (요한 14:9) 사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온화함과 친절”에 대해 썼을 때, 그가 사용한 친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에피에이키아스)는 또한 “합리적임” 혹은 문자적으로 “양보함”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후 10:1, 「신세」) 「해설자의 성서 주석」(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은 이 단어를 가리켜 “신약에서 사람의 특성 묘사에 사용된 주요 단어들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한 학자가 “상쾌한 합리적인 태도”라고 번역할 정도로 매력적인 특성을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분의 아버지인 여호와처럼 합리적인 태도를 분명히 나타내신 세 가지 부면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좀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 알게 될 것입니다.—베드로 전 2:21.
‘기꺼이 용서하라’
4. 예수께서는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임을 어떻게 친히 보이셨습니까?
4 예수께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기꺼이 용서”하심으로써 자기 아버지처럼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시 86:5, 「신세」) 예수께서 체포되어 재판받으시던 밤에 친밀한 동료인 베드로가 세 번 그분을 부인하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앞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겠습니다”라고 친히 언명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마태 10:33, 「신세」) 예수께서는 이 법칙을 베드로에게 완고하고도 무자비하게 적용하셨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나타나셔서, 분명히 이 회개하고 실의에 빠진 사도를 위로하시고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누가 24:34; 고린도 전 15:5) 그 후 얼마 안 있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큰 책임 있는 일을 맡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사도 2:1-41) 상쾌한 합리적인 태도를 더할 나위 없이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예수를 온 인류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신 점을 생각해 보면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이사야 11:1-4; 요한 5:22.
5. (ㄱ) 장로들은 양들 가운데서 무슨 평판을 들어야 합니까? (ㄴ) 장로들은 사법 문제를 다루기 전에 무슨 내용을 검토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장로들은 회중에서 재판관 역할을 할 때, 합리적이신 예수의 본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장로들은 양들이 자기들을 처벌하는 자로 여겨 두려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장로들은 양들이 자기들을 인자한 목자들로 여기면서 안전을 느낄 수 있도록 예수를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사법 문제에서, 장로들은 합리적이 되고 기꺼이 용서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일부 장로들은 「파수대」 1992년 7월 1일 호의 “여호와, ‘세상을 심판하시는’ 편파적이 아닌 분”과 “장로 여러분, 의로 판결하시오” 기사들을 복습하는 것이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재판하시는 방법을 요약하자면 “필요할 때는 단호하시면서도 가능할 경우 자비를 베푸시는 것”임을 장로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때 판결에서 자비를 베푸는 쪽으로 기우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마태 12:7) 가혹하거나 무자비한 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에스겔 34:4) 그러므로 장로들은 공의의 한계 내에서 가능한 한 가장 인자하고 자비로운 행로를 적극 추구함으로써 잘못을 범하는 일을 피합니다.—비교 마태 23:23; 야고보 2:13.
상황 변화에 직면할 때의 융통성
6. 예수께서는 악귀 들린 딸이 있는 이방인 여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합리적인 태도를 나타내셨습니까?
6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예수께서도 새로운 상황이 벌어질 때 신속히 행로를 바꾸시거나 그 상황에 적응하시는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한번은 이방인 여자가 심하게 악귀 들린 자기 딸을 고쳐 달라고 그분께 간청하였습니다. 세 번에 걸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자신이 그 여자를 도와 주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셨습니다. 즉 첫 번째는, 그 여자에게 대답하지 않으려 하심으로써, 두 번째는, 자기는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직접 언명하심으로써, 세 번째는, 동일한 요점을 친절하게 강조하는 예를 드심으로써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이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면서 뛰어난 믿음의 증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예수께서는 이번은 일반적인 규칙을 시행할 때가 아니고 더 높은 원칙에 순응하여 융통성을 나타낼 때라고 생각하셨습니다.a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지 않겠다고 세 번이나 시사했던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의 딸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마태 15:21-28.
7. 부모들은 어떻게 합리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으며, 그러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우리도 적절한 때 기꺼이 융통성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부모들은 자주 그러한 합리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마다 독특하기 때문에, 한 자녀에게 효과가 있는 방법이 다른 자녀에게는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녀들이 자라감에 따라 그들의 필요도 변합니다. 귀가 시간을 조정해야 합니까? 더 생기 있게 구성함으로 가족 연구가 유익한 것이 되게 할 것입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로서 어떤 사소한 허물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였을 때, 기꺼이 자기를 낮추어 문제를 바로잡습니까? 그런 식으로 양보하는 부모들은 불필요하게 자녀들을 화나게 하여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에베소 6:4.
8. 회중 장로들은 구역의 필요에 적응하는 데 어떻게 솔선할 수 있습니까?
8 장로들도 새로운 상황이 벌어질 때 결코 하나님의 특정한 법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 상황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파 활동을 감독하면서, 장로 여러분은 구역의 변화에 깨어 있습니까? 이웃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변하면서, 아마 저녁 증거나 가두 증거 혹은 전화 증거를 권장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식으로 적응하는 것은 우리의 전파 임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태 28:19, 20; 고린도 전 9:26) 바울은 또한 봉사의 직무에서 온갖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도, 예를 들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지방 종교나 문화에 관해 충분히 알아둠으로써 봉사의 직무에서 적응하고 있습니까?—고린도 전 9:19-23.
9. 장로는 왜 과거에 늘 하던 대로 문제를 다루기를 고집하지 않아야 합니까?
9 이 마지막 날이 점점 더 위급해짐에 따라, 목자들은 또한 지금 양 무리가 직면하고 있는, 당황케 하는 복잡하고 불쾌한 일부 문제들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모데 후 3:1) 장로들이여, 지금은 완고함을 나타낼 때가 아닙니다! 확실히 장로는 자기의 방법이 비효과적인데도 혹은 “충실하고 분별 있는 종”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는데도, 과거에 하던 대로 문제를 다루기를 고집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 24:45, 「신세」; 비교 전도 7:10; 고린도 전 7:31) 한 충실한 장로는 잘 들어 주는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울증에 걸린 자매를 진심으로 도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장로는 그 자매의 우울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지나치게 단순한 해결책을 제안하였습니다. 그 후에 워치 타워 협회가 바로 그 자매가 겪는 문제를 다룬, 성서에 근거한 내용을 발행하였습니다. 그 장로는 그 자매와 다시 이야기를 나눌 마련을 하였고, 이번에는 새로운 내용을 적용하면서 자매가 처한 곤경에 대해 감정 이입을 나타냈습니다. (비교 데살로니가 전 5:14, 15) 합리적인 태도를 나타낸 참으로 훌륭한 본입니다!
10. (ㄱ) 장로들은 서로에 대해 그리고 장로의 회 전체에 대해 어떻게 양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까? (ㄴ) 장로의 회는 비합리적으로 처신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0 장로들은 또한 서로 양보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장로의 회가 모임을 가질 때, 한 장로가 모임의 진행을 독점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 9:48) 모임을 주재하는 사람은 특히 이 면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두 장로가 장로의 회 전체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고집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성경 원칙을 범하는 것이 아닌 한, 그들은 합리적인 태도가 장로들에게 요구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양보해야 합니다. (디모데 전 3:2, 3) 반면에, 장로의 회는 바울이 “탁월한 사도들”로 자처한 ‘비합리적인 사람들을 참아 준 것’에 대해 고린도 회중을 질책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 11:5, 19, 20, 「신세」) 그러므로 장로들은 고집 세고 비합리적으로 처신하는 동료 장로에게 기꺼이 교훈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화하고 친절하게 그러한 교훈을 해야 합니다.—갈라디아 6:1.
권위 행사에서의 합리적인 태도
11. 예수 시대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권위를 행사한 방법과 예수께서 권위를 행사하신 방법 사이에는 어떤 대조점이 있었습니까?
11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하나님에게서 부여받은 권위를 행사하신 면에 그분의 합리적인 태도가 진실로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르셨습니다! 한 가지 예를 고려해 봅시다. 하나님의 법은 안식일에 어떤 일도 심지어 나무를 모으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명하였습니다. (출애굽 20:10; 민수 15:32-36)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이 이 법을 정확히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규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 한 사람이 들어 올려도 되는 정확한 양을 정하는 일을 스스로 떠맡았습니다. 그들은 말린 무화과 두 개보다 더 무거운 것은 어떤 것도 들어 올리면 안 된다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못이 박힌 샌들에 대해, 가외의 무게의 못을 들어 올리는 것도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금지 규정을 발표하였습니다! 랍비들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법에 총 39가지 규칙을 부가한 다음 그러한 규칙들에 끝없이 많은 점을 부가하였다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끝없는 제한 규정을 정함으로써 혹은 엄격하고도 도달할 수 없는 표준을 정함으로써 수치를 느끼게 하여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 23:2-4; 요한 7:47-49.
12. 우리는 왜 예수께서 여호와의 의로운 표준과 관련하여 흔들리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2 그러면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을 확고하게 옹호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그분은 분명히 확고하게 옹호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법 배후에 있는 원칙들을 마음속 깊이 새길 때 법이 매우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이해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수많은 규칙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데 몰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음행을 피하십시오”와 같은 하나님의 법과 관련하여 양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고린도 전 6:18, 「신세」)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부도덕으로 인도할 수 있는 생각에 대해 사람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마태 5:28) 그러한 가르침은 단지 엄격하고 형식적인 규칙을 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혜와 분별력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13. (ㄱ) 장로들은 왜 융통성 없는 법과 규칙을 만드는 일을 피해야 합니까? (ㄴ)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한 어떤 부면들이 있습니까?
13 오늘날 책임 있는 형제들도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 똑같이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일방적이고도 융통성 없는 규칙들을 정하는 일이나 개인적인 관점과 견해를 법으로 만드는 일을 피합니다. (비교 다니엘 6:7-16) 이따금 옷차림 및 몸단장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친절하게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적절하고 때에 맞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로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되풀이하여 말하거나 주로 개인적인 기호를 반영하는 것을 강요하려 한다면, 합리적인 사람으로서의 그의 평판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참으로, 회중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비교 고린도 후 1:24; 빌립보 2:12.
14.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과 관련하여 합리적이었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4 장로들은 다른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에서 합리적인가?’ 하고 자신을 검토하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면에서 분명히 합리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추종자들에게 영혼을 다한 노력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그러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일관성 있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적은 가치의 동전을 기부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마가 12:42, 43) 그분은 제자들이 마리아의 값비싼 헌물에 대해 비난하였을 때 그들을 꾸짖으시면서 “그 여자를 그냥 두십시오. ···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14:6, 8, 「신세」)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이 자기의 기대를 저버렸을 때에도 합리적인 태도를 나타내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체포되시던 밤에 가장 친밀한 세 사도에게 졸지 말고 자기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강력히 권하셨는데도 그들은 거듭거듭 잠이 듦으로써 그분을 실망케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동정심을 나타내시면서 “영은 물론 간절하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 14:34-38, 「신세」.
15, 16. (ㄱ) 장로들은 왜 양 무리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위압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까? (ㄴ) 한 충실한 자매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어떻게 조절하게 되었습니까?
15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기운을 다해 힘쓰십시오” 하고 권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누가 13:24, 「신세」) 그러나 그분은 결코 추종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추종자들을 분발하게 하고 본을 세우고 인도하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영의 힘에 의지하여 그 밖의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장로들도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도록 양 무리를 격려해야 하지만, 양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서 최근에 한 일이 어떤 면으로 부족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음을 암시하는 위압적인 말을 하여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갖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좀더 하라, 좀더 하라, 좀더 하라!”고 가혹하게 다그치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낙심시킬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장로가 “기쁘게 하기 어렵다”는 평판을 쌓아 가고 있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며—그것은 합리적인 태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베드로 전 2:18.
16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면에서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한 자매는, 병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남편과 함께 선교 임명지를 떠난 후에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지금은 이 곳 회중에 있는 우리 전도인들에게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순회 및 지역 활동을 하여서 그러한 여러 가지 압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갑자기 그리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그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 자매는 왜 이 달의 제공 서적을 전하지 않지? 「왕국 봉사」도 읽어 보지 않나?’ 하고 혼잣말을 하곤 하였지요. 이제는 그 이유를 압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봉사에] 나오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지요.” 우리 형제들이 한 일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는 것이 그들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그들을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17. 예수께서는 합리적인 태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본을 세우셨습니까?
17 예수께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권위를 행사하신 훌륭한 예를 고려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조바심하면서 권위를 지키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 역시 능숙한 위임자로서, 이 곳 지상에 있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충실한 종 반열을 임명하십니다. (마태 24:45-47, 「신세」) 그리고 그분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기울이기를 꺼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종종 자기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혹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마태 17:25, 「신세」; 18:12; 21:28, 「신세」; 22:42)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모든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어떤 권위를 가졌다 해도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들이여,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남편들이여,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장로들이여,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18. (ㄱ) 우리는 자기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ㄴ) 우리 모두는 무슨 결심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까?
18 단연코, 우리 개개인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싶어합니다. (빌립보 4:5, 「필립스역」) 그러면 우리가 그러한 평판을 얻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싶으셨을 때 신임하는 동료들에게 물어 보셨습니다. (마태 16:13) 그분의 본을 따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솔직성에 있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기가 합리적이고 양보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지를 물어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우리 모두에게는 합리적인 태도에 대한 예수의 완전한 본을 더 밀접히 본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권위를 행사할 경우, 언제나 그 권위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여, 즉 적절할 때 늘 기꺼이 용서하거나 융통성을 나타내거나 양보함으로 여호와와 예수의 본을 항상 따르도록 합시다. 참으로, 우리 모두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하기 바랍니다!—디도 3:2, 「신세」.
[각주]
a 「신약 단어집」(New Testament Words)은 이렇게 해설한다. “에피에이케스한[합리적인] 사람은 어떤 것이 법적으로는 완전히 정당화될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완전히 그릇된 일일 수 있는 때가 있음을 안다. 에피에이케스한 사람은 법보다 더 높고 더 큰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법을 완화시킬 때가 있음을 안다.”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 그리스도인들은 왜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 합니까?
◻ 장로들은 기꺼이 용서하는 면에서 어떻게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융통성을 나타내려고 노력해야 합니까?
◻ 우리는 권위를 행사하는 방법에서 어떻게 합리적인 태도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습니까?
◻ 우리가 참으로 합리적인 사람인지 어떻게 자신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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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를 기꺼이 용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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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뛰어난 믿음을 나타내자, 예수께서는 일반적인 규칙을 시행할 때가 아님을 이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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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여, 귀기울여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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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여, 귀기울여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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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이여, 귀기울여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