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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음은 불명예를 초래한다파수대—2000 |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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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넘음은 불명예를 초래한다
“주제넘음이 왔는가? 그렇다면 불명예가 올 것이다. 그러나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1:2.
1, 2. 주제넘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재난을 초래하였습니까?
한 레위 사람이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거스르는 반역자들의 무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한 왕자가 야심에 차서 자기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교활한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한 왕이 조급한 나머지 하느님의 예언자가 분명히 알려 준 지시 사항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세 명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주제넘음입니다.
2 주제넘음은 모두에게 심각한 위협을 미치는 마음의 특성입니다. (시 19:13) 주제넘은 사람은 그렇게 할 권한이 없는데도 서슴없이 자기 멋대로 행동합니다. 흔히 그러한 행동은 재난을 초래합니다. 실제로, 주제넘음 때문에 왕들이 파멸에 이르고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예레미야 50:29, 31, 32; 다니엘 5:20) 심지어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 일부도 주제넘음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파멸에 이르렀습니다.
3. 우리는 어떻게 주제넘음의 위험성에 대하여 배울 수 있습니까?
3 성서에서 이와 같이 단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제넘음이 왔는가? 그렇다면 불명예가 올 것이다. 그러나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잠언 11:2) 성서는 이러한 잠언이 참됨을 확증하는 예들을 알려 줍니다. 이러한 예들 가운데 얼마를 살펴보는 것은 합당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두에서 언급한 세 사람이 어떻게 시기심과 야심과 조급함으로 주제넘게 행동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겪게 되었는지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고라—시기심으로 가득 찬 반역자
4. (ㄱ) 고라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틀림없이 어떤 역사적 사건들에 참여하였을 것입니까? (ㄴ) 고라는 말년에 어떤 악한 행위를 선동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까?
4 고라는 고핫 자손인 레위 사람으로, 모세와 아론의 사촌이었습니다. 분명히 고라는 수십 년 동안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섬겼을 것입니다. 그는 기적에 의해 홍해를 통과하여 구출받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되는 특권을 누렸으며, 아마도 시나이 산에서 송아지 숭배를 행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심판을 집행하는 일에도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탈출 32:26) 그런데도 결국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일어난 반역의 주동자가 되었습니다. 그 반역에는 르우벤 사람들인 다단과 아비람과 온 그리고 이스라엘의 수장 250명이 가담하였습니다.a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들에게는 그만하면 충분하오. 총회가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오.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여호와의 회중 위에 자신을 높이는 거요?”—민수 16:1-3.
5, 6. (ㄱ) 고라는 무슨 이유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반역하였습니까? (ㄴ) 고라가 하느님의 마련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과소평가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여러 해 동안 충실했던 고라가 무슨 이유로 반역을 하게 되었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방식은 압제적인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단연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수 12:3) 그렇지만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고 그들의 탁월한 지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고라는 그들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회중 위에 자신들을 높이고 있다고—잘못—생각하게 되었습니다.—시 106:16.
6 틀림없이 고라에게 있었던 한 가지 문제점은 하느님의 마련 안에서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고핫 자손인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장막을 이동할 때 그 가구와 기구들을 옮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들만이 그 거룩한 기구들에 손을 댈 수 있었으므로, 그것은 결코 비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52:11) 그러므로 모세가 고라를 대면하여 말하였을 때, 모세는 사실상 ‘당신의 임명이 그토록 하찮은 일로 여겨져서 제사직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고 질문한 셈이었습니다. (민수 16:9, 10) 어떤 특별한 신분이나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마련에 따라 그분을 충실하게 섬기는 것 자체가 최고의 영예라는 점을 고라는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시 84:10.
7. (ㄱ) 모세는 고라와 그에게 가담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였습니까? (ㄴ) 고라의 반역은 어떻게 재난으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까?
7 모세는 고라와 그에게 가담한 사람들에게 다음날 아침에 불 그릇과 향을 가지고 만남의 천막으로 모이라고 제의하였습니다. 고라와 그에게 가담한 사람들은 제사장이 아니었으므로 향을 바칠 권한이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불 그릇과 향을 가지고 온다면, 그것은 그 사람들이 여전히—하룻밤 동안 꼬박 그 문제를 재고해 보고 나서도—자기들에게 제사장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내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다음날 아침에 나타나자, 여호와께서는 정당하게도 진노를 표현하셨습니다. 르우벤 사람들은 “땅이 입을 벌려 ··· 삼켜” 버렸습니다. 고라를 포함하여 남은 사람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불에 소멸되었습니다. (신명 11:6; 민수 16:16-35; 26:10) 고라의 주제넘음은 최대의 불명예, 즉 하느님의 승인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시기하는 경향”을 저항하라
8. 어떻게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시기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8 고라에 관한 기록은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시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지어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야고보 4:5) 예를 들면, 우리는 지위에 대해 매우 민감할지 모릅니다. 고라처럼 우리도 자기가 갖고 싶어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시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또는 1세기 그리스도인인 디오드레베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사도들의 권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는데, 아마도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은 디오드레베가 “첫째 자리 차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썼습니다.—요한 셋째 9.
9. (ㄱ) 우리는 회중에서 책임을 맡는 것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져서는 안 됩니까? (ㄴ) 하느님의 마련 안에서 우리의 자리에 대한 합당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9 물론, 그리스도인 남자가 회중에서 책임을 맡으려고 힘쓰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심지어 바울은 그렇게 힘쓰라고 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디모데 첫째 3:1) 그렇지만 우리는 봉사의 특권을 명예나 능력의 상징 정도로 여겨서, 마치 그러한 특권을 얻으면 소위 출세의 사닥다리를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와 같은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 20:26, 27)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가 그분의 조직 내에서 우리의 “등급”에 따라 정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큰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3:8) 그렇습니다. 전도인이든 파이오니아이든, 새로 침례받은 사람이든 오랫동안 충절을 지킨 사람이든, 영혼을 다해 여호와를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의 마련 안에서 각자 가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누가 10:27; 12:6, 7; 갈라디아 3:28; 히브리 6:10) “서로에 대하여 자기를 낮춘 정신으로 허리를 졸라매십시오”라고 한 성서의 교훈을 적용하려고 애쓰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일하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베드로 첫째 5:5.
압살롬—야심에 찬 기회주의자
10. 압살롬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는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떻게 하였습니까?
10 다윗 왕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의 행로는 야심과 관련하여 교훈점을 제공합니다. 이 교활한 기회주의자는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먼저 다윗이 사람들의 필요에 무관심하다는 식으로 넌지시 말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둘러말하지 않고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압살롬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된다면, 소송이나 재판할 일이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올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반드시 그에게 공의를 베풀 것입니다.” 압살롬의 교활한 책략은 끝을 모르고 계속되었습니다.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람이 다가와서 그에게 몸을 굽히려 하면, 그는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맞추었다. 압살롬은 재판을 위하여 왕에게 들어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계속 하였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였습니다.—사무엘 둘째 15:1-6.
11. 압살롬은 어떻게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였습니까?
11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5년 전에 압살롬은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을 살해한 일이 있었는데, 표면상으로는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보인 것에 대한 복수였습니다. (사무엘 둘째 13:28, 29) 하지만 암논을 살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었음을 생각할 때, 압살롬은 이미 그때에도 왕위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b 아무튼, 기회가 무르익자 압살롬은 자기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온 나라에 자기가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사무엘 둘째 15:10.
12. 압살롬의 주제넘음이 어떻게 불명예를 초래하였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12 압살롬은 한동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모반이 점점 더 강해졌고, 압살롬과 함께 있는 백성의 수가 계속 늘어났”습니다. 얼마 후에 다윗 왕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 둘째 15:12-17)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요압이 압살롬을 죽여서 구렁에 던지고 돌로 덮음으로써 압살롬의 행로는 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 되고 싶어했던 그 야심에 찬 사람이 결국에는 죽어서도 예를 갖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였습니다!c 압살롬의 경우에 주제넘음은 참으로 불명예를 초래하였습니다.—사무엘 둘째 18:9-17.
이기적인 야심을 피하라
13. 어떻게 야심에 찬 영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될 수 있습니까?
13 압살롬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일어났다가 결국 패망하고 만 일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는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윗사람의 비위를 맞춰서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하거나 어쩌면 모종의 특권이나 승진 기회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아랫사람의 환심을 사거나 지원을 얻어 내고 싶은 마음에서 아랫사람에게 우쭐대며 허풍을 떨지 모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러한 야심에 찬 영이 우리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될 수 있습니다. 1세기에도 일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강력히 경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갈라디아 4:17; 요한 셋째 9, 10.
14. 야심에 차서 자기를 높이는 영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의 영광을 찾아 내”려고 자기를 과시하는 책략가들을 자신의 조직 내에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잠언 25:27) 실제로 성서에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여호와께서 잘라 버리실 것입니다, 모든 매끄러운 입술을, 큰일을 말하는 혀를.” (시 12:3) 압살롬은 매끄러운 입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심을 살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허세를 부리는 말을 하였는데, 모든 것이 자기가 탐내는 권위 있는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이와 같은 바울의 교훈을 따르는 형제들 가운데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된 일입니다. “아무 일도 다툼이나 자기 본위로 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를 낮춘 정신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빌립보 2:3.
사울—조급한 왕
15. 어떻게 사울은 한때 겸허한 사람임을 나타냈었습니까?
15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은 한때 겸허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젊은 시절에 있었던 일을 고려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예언자 사무엘이 그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하자, 사울은 겸손하게도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가장 작은 베냐민 사람이고, 또 저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의 모든 가족 중에서 가장 미천한 가족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사무엘 첫째 9:21.
16. 사울은 어떻게 조급한 태도를 나타냈습니까?
16 하지만 나중에는 사울의 겸허함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사울은 길갈로 물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희생 제물을 가지고 하느님께 간청을 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한 때가 되어도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은 주제넘게도 직접 번제 희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희생 제사를 마치자 곧바로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입니까?” 하고 묻자, 사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보니 백성이 나에게서 흩어졌고, 당신은—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않[기에] ···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이 번제 희생을 바쳤습니다.”—사무엘 첫째 13:8-12.
17. (ㄱ) 얼른 생각해 보면 어째서 사울의 행동이 정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까? (ㄴ) 여호와께서 사울의 조급한 행동을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얼른 생각해 보면, 사울의 행동이 정당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어찌 되었거나, 하느님의 백성이 “심한 곤경”에 처하여 “몹시 압박을 받”고 있었고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떨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첫째 13:6, 7) 물론, 상황상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나서서 행동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d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읽으실 수 있고 우리의 가장 깊숙한 동기를 보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 첫째 16:7) 그러므로 그분은 틀림없이 사울에게서 성서 기록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은 어떤 요소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여호와께서는 사울의 조급함이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셨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울은 온 이스라엘의 왕인 자기가 어떤 사람을—자기가 보기에 늙어서 꾸물거리는 예언자에 불과한 사람을—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났을지 모릅니다! 어쨌든 사울은, 사무엘이 늦었으므로 자기가 직접 일을 처리하고 자기가 받은 분명한 지시를 무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이 나서서 행동한 것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사울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왕국은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명령하신 것을 당신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첫째 13:13, 14) 이 경우에도 주제넘음은 불명예를 초래하였습니다.
조급함을 경계하라
18, 19. (ㄱ) 현대의 하느님의 종이 어떻게 조급한 나머지 주제넘은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ㄴ) 우리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운영과 관련하여 어떤 점을 기억해야 합니까?
18 사울의 주제넘은 행동에 관한 기록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 가운데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첫째 10:11) 우리는 형제들의 불완전성 때문에 화가 나게 되기가 참으로 쉽습니다. 사울처럼 우리도 조급한 나머지,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게 하려면 자기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한 형제가 조직적인 특정 부면에서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형제는 빈틈이 없고, 회중적인 절차와 관련된 최신 지침을 잘 알고 있으며, 연설하고 가르치는 면에서도 재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형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세워 놓은 세밀한 표준에 달하지 못하며 자기가 원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형제가 조급함을 나타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형제는 다른 형제들을 비평하면서, 자기가 수고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되는 것이 없고 회중이 흔들릴 것이라는 식으로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제넘은 행동일 것입니다!
19 실제로 그리스도인 회중을 연합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영 능력이나 효율성이나 지식의 깊이입니까? 이러한 것들이 회중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린도 첫째 14:40; 빌립보 3:16; 베드로 둘째 3:18) 하지만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식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3:35) 그렇기 때문에 양 떼를 잘 보살피는 장로들은 질서 있게 일을 하기는 하지만, 회중은 엄격한 경영을 필요로 하는 사업체가 아니라 부드러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양 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인식합니다. (이사야 32:1, 2; 40:11) 그러한 원칙들을 주제넘게 무시할 때 흔히 다툼이 생깁니다. 그와는 달리, 경건한 원칙에 근거한 질서는 평화를 가져옵니다.—고린도 첫째 14:33; 갈라디아 6:16.
20.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20 고라와 압살롬과 사울에 관한 성서 기록은, 잠언 11:2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주제넘음이 불명예를 초래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하지만 같은 성서 구절에서는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부언합니다. 겸허란 무엇입니까? 성서에 나오는 어떠한 예들이 이 특성을 분명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겸허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이었다. 그러므로 고라의 부추김을 받아 반역한 르우벤 자손들은 아마도 레위 자손인 모세가 자기들 위에 행정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b 다윗의 둘째 아들 길르압은 태어난 이후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기 이전 어느 때엔가 죽은 것 같다.
c 성서 시대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매장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므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이었으며 흔히 하느님의 은혜를 잃었다는 표로 여겨졌다.—예레미야 25:32, 33.
d 예를 들면, 비느하스는 수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의 목숨을 앗아 간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신속히 행동을 취하였으며, 다윗은 굶주리고 있는 자기 부하들에게 “하느님의 집”의 진설빵을 함께 먹자고 권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의 행동을 주제넘은 것으로 정죄하지 않으셨다.—마태 12:2-4; 민수 25:7-9; 사무엘 첫째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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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파수대—2000 |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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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고 계신 것은 다만 ··· 겸허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1, 2. 겸허란 무엇이며, 주제넘음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한 탁월한 사도는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이끌기를 거절합니다. 이스라엘의 용기 있는 한 재판관은 자신을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부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람은 자신이 무제한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겸허를 나타낸 것입니다.
2 겸허는 주제넘음과 반대되는 특성입니다. 겸허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 평가하며 자만이나 허영심이 없습니다. 겸허한 사람은 자존심을 앞세우고 잘난 체하거나 야심에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겸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견해를 존중하고 합당하게 배려할 줄 압니다.
3. 어떻게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습니까?
3 성서에서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잠언 11:2) 겸허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승인하시는 행로를 따르고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주제넘음의 영을 피하기 때문에 지혜가 있습니다. (잠언 8:13; 베드로 첫째 5:5) 겸허가 지혜로운 길이라는 것은 수많은 하느님의 종들의 행로에 의해 확증됩니다. 첫 항에서 언급한 세 사람의 예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바울—“종속된 사람”이자 “관리인”
4. 바울은 어떤 독특한 특권을 누렸습니까?
4 바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바다와 육지로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였으며 여러 회중을 설립하였습니다. 그에 더하여 여호와께서는 바울을 축복하셔서 환상을 보게 해 주셨으며 외국어로 말하는 능력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린도 첫째 14:18; 고린도 둘째 12:1-5) 그분은 또한 바울에게 영감을 주셔서, 지금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일부가 된 14통의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분명히, 바울이 수고한 것은 다른 모든 사도들의 수고보다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린도 첫째 15:10.
5.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5 바울이 그리스도인 활동에서 앞장섰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기를 좋아하고 심지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까지 하였을 것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겸허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부언하였습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회중을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첫째 15:9)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적이 있던 바울은, 특별한 봉사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고사하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과분한 친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요한 6:44; 에베소 2:8) 그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봉사의 직무에서 탁월한 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고린도 첫째 9:16.
6.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겸허를 나타냈습니까?
6 바울의 겸허한 태도는 특히 고린도 사람들을 대할 때 잘 나타났습니다. 고린도 사람들 중에 일부는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탁월한 감독자들, 이를테면 아폴로스나 게바 또는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 첫째 1:11-15)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서 은근히 칭찬을 유도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자기를 우러러보게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방문할 때 “말이나 지혜를 과장하여” 자신을 내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종속된 사람이자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의 관리인으로 평가해야 합니다.”a—고린도 첫째 2:1-5; 4:1.
7. 바울은 심지어 교훈을 할 때에도 어떻게 겸허를 나타냈습니까?
7 바울은 심지어 강력한 교훈과 지시를 할 때에도 겸허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의 권위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동정심으로” 그리고 “사랑을 근거로” 간청하였습니다. (로마 12:1, 2; 빌레몬 8, 9)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진실로 자신을 형제들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동료 일꾼”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 둘째 1:24) 바울의 겸허한 태도는 틀림없이 그가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특별히 소중히 여김을 받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사도 20:36-38.
특권에 대한 겸허한 견해
8, 9. (ㄱ)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한 견해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느 정도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어떻게 겸허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8 바울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무슨 책임을 맡았든 상관없이,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3)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로마 3:23; 5:12)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으로부터 죄와 죽음을 유전받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한 특권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죄 많은 비천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 9:2) 바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권받은 위치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 자체만도 과분한 친절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로마 3:12, 24.
9 겸허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자기가 받은 특권으로 인해 우쭐하거나 자기가 이룬 일에 대해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첫째 4:7) 교훈이나 지시를 할 때에도 주인 즉 윗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동료 일꾼으로서 그렇게 합니다. 특정한 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어떤 사람이 동료 신자들에게서 은근히 칭찬을 유도하려고 하거나 자기를 우러러보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그릇된 일입니다. (잠언 25:27; 마태 6:2-4)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칭찬은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칭찬, 즉 은근히 유도하지 않아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칭찬뿐입니다. 그리고 설령 그러한 칭찬을 받게 되더라도, 그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잠언 27:2; 로마 12:3.
10.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참으로 “믿음에 부유”할 수 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10 우리가 어느 정도 책임을 맡게 되었을 때, 자신에 대해 겸허한 견해를 갖는다면, 회중이 발전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노력과 능력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는 식으로 자신을 부당하게 강조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가르치는 면에서 특별한 재능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에베소 4:11, 12) 하지만 우리가 겸허하다면, 회중 집회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들 중에는 연단에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닌 것들도 있다는 점을 인정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왕국회관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홀어머니를 볼 때 격려를 받지 않습니까? 또한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과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충실하게 집회에 나오는 우울한 영혼을 볼 때, 또는 학교나 그 밖의 곳에서 직면하는 나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청소년을 볼 때 격려를 받지 않습니까? (시 84:10) 그들은 특별히 주목을 받는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들이 직면하는 충절의 시험은 그다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다 탁월한 사람들 못지 않게 “믿음에 부유”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 2:5) 결국,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은 충실함입니다.—마태 10:22; 고린도 첫째 4:2.
기드온—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
11. 기드온은 하느님의 천사와 대화를 나눌 때 어떻게 겸허를 나타냈습니까?
11 므낫세 지파의 용기 있는 젊은이인 기드온은 이스라엘 역사상 매우 험난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 아래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출하실 때가 왔습니다. 그리하여 한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 강한 용사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기드온은 겸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영광스러운 뜻밖의 칭찬을 듣고 흐뭇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존경심을 가지고 천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주여, 죄송합니다만,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칩니까?]” 천사는 문제를 분명히 설명해 주면서 기드온에게 “너는 반드시 미디안의 손바닥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드온은 그것이 자기가 민족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여 그 임명을 얼른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죄송합니다. 무엇으로 제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의 천인대는 므낫세에서 가장 작고,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참으로 겸허한 태도입니다!—재판관 6:11-15.
12. 기드온은 자기가 맡은 임명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슬기를 나타냈습니까?
12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을 전쟁터로 내보내기 전에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어떻게 시험하셨습니까? 기드온은 바알에게 바치는 자기 아버지의 제단을 허물어뜨리고 그 곁에 서 있는 신성한 목상을 잘라 버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임명을 수행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또한 그 일을 하면서 겸허와 슬기를 나타냈습니다. 기드온은 사람들 앞에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가장 적은 밤 시간을 이용해서 그 일을 하였습니다. 더욱이, 기드온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 임명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종 열 명을 데리고 갔는데, 그것은 아마도 일부는 자기를 도와 제단과 신성한 목상을 부수는 일을 하고 또 일부는 주위를 살피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b 아무튼, 여호와의 축복으로 기드온은 자기가 맡은 임명을 수행하였으며, 때가 되자 그는 하느님에 의해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에게서 해방시키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재판관 6:25-27.
겸허와 슬기를 나타냄
13, 14. (ㄱ) 우리는 봉사의 특권을 받게 될 때 어떻게 겸허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ㄴ) A. H. 맥밀런 형제는 겸허를 나타내는 면에서 어떻게 훌륭한 모범을 세웠습니까?
13 우리는 기드온의 겸허한 태도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봉사의 특권을 받게 될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우리는 그로 인해 얻게 될 탁월함과 명성을 먼저 생각합니까? 아니면 겸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임명에 요구되는 일을 자신이 수행할 수 있을지 고려해 봅니까? 1966년에 지상 행로를 마친 A. H. 맥밀런 형제는 이 면에서 훌륭한 모범을 세웠습니다. 워치 타워 협회 초대 회장인 C. T. 러셀이 한번은 맥밀런 형제에게, 자기가 부재중일 때 누가 일을 책임 맡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계속된 대화에서 맥밀런 형제는 자기 자신을 추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러셀 형제는 맥밀런 형제에게 그 임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권하였습니다. 맥밀런 형제는 여러 해 후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나는 그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고 그 문제에 대해 얼마 동안 기도하고 나서 마침내 그를 지원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기꺼이 다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14 오래지 않아 러셀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워치 타워 협회장 직이 공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러셀 형제가 마지막 전파 여행을 하는 동안 맥밀런 형제가 책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한 형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맥밀런 형제, 이제 당신이 책임을 맡을 가능성이 아주 크겠군요. 당신은 러셀 형제가 부재중일 때 그의 특별 대표자로 일했고, 러셀 형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이 지시하는 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러셀 형제는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일을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맥밀런 형제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형제, 문제를 그런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주의 일이고, 주의 조직에서 우리가 맡을 수 있는 지위는 오로지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시는 것뿐입니다. 나는 내가 그 일을 맡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후에 맥밀런 형제는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추천하였습니다. 기드온처럼, 맥밀런은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 역시 그러한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15.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파할 때 분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실용적인 부면들이 있습니까?
15 우리도 자신이 맡은 임명을 수행하는 방식에서 겸허를 나타내야 합니다. 기드온은 슬기롭게 행동하였으며, 반대자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파 활동을 할 때 사람들에게 말하는 방식에 있어서 겸허와 슬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가 “강하게 방비된 것들”과 “추리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영적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린도 둘째 10:4, 5)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거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불쾌하게 여길 만한 정당한 근거를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의 견해를 존중하고, 서로 생각이 일치하는 점을 강조한 다음, 우리가 전하는 소식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사도 22:1-3; 고린도 첫째 9:22; 계시 21:4.
예수—겸허의 최상의 모범
16. 예수께서는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한 견해를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셨습니까?
16 겸허의 가장 훌륭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c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셨지만, 어떤 문제들은 자신의 권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점을 주저하지 않고 인정하셨습니다. (요한 1:14) 예를 들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기의 두 아들을 그분의 왕국에서 예수 곁에 앉게 해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께서는 “내 오른편과 왼편에 앉는 이 일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0:20-23) 또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기꺼이 이렇게 인정하셨습니다. “나는 단 한 가지 일도 자의로 할 수 없습니다. ··· 그것은 내가 내 자신의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요한 5:30; 14:28; 빌립보 2:5, 6.
17.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대하실 때 어떻게 겸허를 나타내셨습니까?
17 예수께서는 모든 면에서 불완전한 인간들보다 우월하셨으며, 자신의 아버지 여호와로부터 받은 비길 데 없는 권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을 대하실 때 겸허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인상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전시해서 그들을 압도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하셔서 동정심을 나타내시고 그들의 인간적 필요를 고려하셨습니다. (마태 15:32; 26:40, 41; 마가 6:3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완전한 분이기는 하셨지만 완벽주의자는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결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요한 16:12)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서 새 힘을 얻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마태 11:29.
예수의 겸허를 본받으라
18, 19. 우리는 어떻게 예수의 겸허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ㄱ)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에서. (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18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셨던 분이 겸허를 나타내셨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은 흔히 자기가 결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본받아 겸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책임을 맡기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교만을 부리지 않습니다. 또한 거만해져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협조적인 영을 나타냄으로써 회중의 모든 일이 “알맞게 마련에 따라” 진행될 수 있게 합니다.—고린도 첫째 14:40.
19 우리가 겸허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면에서 합리적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고려할 것입니다. (빌립보 4:5)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어떤 능력이나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겸허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겸허한 태도로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참작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베드로 첫째 4:8.
20. 우리는 겸허하지 않은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20 살펴본 바와 같이, 겸허한 자들에게는 참으로 지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겸허하지 않거나 주제넘은 태도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낙심하지 말고, 다윗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제넘은 행동을 하지 않게 당신의 종을 붙들어 주시고, 그것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시 19:13) 바울과 기드온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의 믿음을 본받는다면, “겸허한 자들에게는 지혜가 있다”는 말이 과연 참되다는 것을 우리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잠언 11:2.
[각주]
a “종속된 사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큰 배의 아래층에 한 줄로 늘어앉아 노를 젓는 노예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에 반해 “관리인”은 재산을 맡아서 돌보는 것과 같은 더 큰 책임을 맡은 사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주인들의 눈에는, 관리인도 갤리선의 노예와 마찬가지로 예속된 신분에 불과하였다.
b 기드온이 나타낸 슬기와 조심성을 비겁함을 드러낸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기드온의 용기는 히브리 11:32-38에서 확증하고 있는데, 그 성구에서는 기드온을 “강력해지”고 ‘전쟁에서 용감해진’ 사람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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