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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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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 깨어라!—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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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8 10/22 5-7면

언젠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면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한 율법학자가 방금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율법학자를 칭찬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바로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을 계속 행하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누가 10:25-28; 레위 19:18; 신명 6:5)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가 참으로 내 이웃입니까?”

그 율법학자는 틀림없이 예수께서 “당신의 동족인 유대인”이라고 말씀하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웃다운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심으로, 우리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 10:29-37; 요한 4:7-9) 예수께서는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동안,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창조주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마태 22:34-40.

하지만 이제까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1세기의 기적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인종과 국가를 비롯한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사랑으로 구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곧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요한 13:34, 35; 15:12, 13.

예수께서 친히 모범으로 보여 주신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1세기에 하나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분의 추종자들은 주인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들이 사랑을 나타낸 방식은 많은 사람의 관심과 감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기원 2세기와 3세기의 저술가 테르툴리아누스는 비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추종자들을 칭찬하면서 한 이런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서로를 위해 얼마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보라.’

사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내줄 의무가 있습니다.” (요한 첫째 3:16) 예수께서는 심지어 자신의 추종자들이 적들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 5:43-45)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사람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됩니까?

한 정치학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해 숙고해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천 센추리」지에 보도된 것처럼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께서 적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쏘아대고 화염 방사기를 휘두르며, 수많은 어머니와 아이를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핵폭탄을 투하하거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질문이라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예수의 성품에 배치되는 일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그분께 충실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해서 놀랄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은 많은 역사책을 통해 잘 증명됩니다. 그 점을 알려 주는 두 가지 경우만 고려해 보겠습니다.

N. 플랫과 M. J. 드루먼드 공저 「시대별로 본 우리의 세계」(Our World Through the Ages)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은 로마인들과 매우 달랐다. ·⁠·⁠· 그리스도가 평화를 전파했기 때문에, 그들은 군인이 되기를 거부했다.” 또한 에드워드 기번 저 「로마 제국의 쇠망」(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민정이나 국방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일절 거부하였다. ·⁠·⁠· 그리스도인이 더욱 신성한 의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군인의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가 나타내신 것과 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카나디아나 백과 사전」에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실천한 초기 그리스도교를 회복하고 재확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 그들은 모두 형제들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그 어느 것도—인종이나 국적도, 또는 민족적 배경도—이웃을 미워할 만한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어느 누구도 죽이지 않습니다. 성서에서 하느님의 참 종들에 대해 예언한 바와 같이, 그들은 상징적으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이사야 2:4.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에 실린 한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조에 따라 산다면 유혈과 증오가 끝나고 사랑이 왕노릇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헝가리의 「링」지에서 한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구상에 여호와의 증인만 산다면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경찰관이 할 일이라곤 교통 정리와 통행증 발급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교회 잡지 「안다레 알레 젠티」에서 로마 가톨릭의 한 수녀는 감탄한 듯한 논조로 여호와의 증인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은 여하한 형태의 폭력도 사용하기를 거부하며, 신앙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어도 그에 맞서 싸우는 일 없이 인내한다. ·⁠·⁠· 어느 날 아침 우리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떤 대가를 치르든 무슨 이유로든 다시는 무기를 들지 않기로, 바로 여호와의 증인처럼 굳게 결심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달라질 것이다!”

증인들은 솔선해서 이웃을 돕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갈라디아 6:10) 「소련 수용소의 여자들」(Women in Soviet Prisons)이라는 책의 저자인 한 라트비아 여자는, 자신이 1960년대 중반에 포트마 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던 중 심한 병을 앓은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병을 앓는 동안 [증인들은] 내내 나를 부지런히 간호해 주었다. 그보다 더 훌륭한 간호를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러했다.” 그는 이렇게 부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교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돕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최근에 체코 공화국의 언론에서는 강제 수용소에서 증인들이 나타낸 그러한 행실을 중점 보도하였습니다. 「세베로체스키 데니크」라는 신문은 브르노에서 제작된 “잃어버린 고향”이라는 다큐멘터리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유대인 생존자들]조차 대단히 감탄한 듯한 태도로 여호와의 증인 수감자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증언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의할 만하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매우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형당할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까지 가능한 한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항상 도와 주었다. 그들은 마치 한가족처럼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었으며,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그러면 우리를 실제로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다

적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성서의 다음과 같은 잠언과 맥을 같이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언 25:21; 마태 5:44) 한때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애정 어린 관심을 받게 될 때 나타나는 훌륭한 결과에 관해,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이 된 한 흑인 여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한번은 백인 증인들의 진정한 사랑을 맛보고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이었다면 나는 혁명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죽였을 겁니다.”

프랑스의 한 증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한 이웃 사람이 어머니를 게슈타포에 밀고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머니는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거의 죽을 뻔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경찰은 그 이웃 여자를 독일의 협력자로 고발하는 서류에 어머니가 서명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절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이웃 사람은 말기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 프랑스 증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많은 시간을 들여 그 여자가 생의 마지막 몇 달을 최대한 편하게 지내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미움을 이긴 이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전에 적이었던 사람들—투치족과 후투족, 유대인과 아랍인, 아르메니아인과 터키인, 일본인과 미국인, 독일인과 러시아인, 프로테스탄트교인과 가톨릭교인—이 모두 성서 진리로 연합되었습니다!

이전에 증오심을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사랑하고 있으므로, 분명히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 역시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려면 물론 세계적인 규모의 거대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 것입니까?

[7면 삽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과 흑인

유대인과 아랍인

후투족과 투치족

상징적으로 말해서, 증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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