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이사야가 여호와의 ‘이상한 일’을 예언하다
1, 2. 이스라엘과 유다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시 이스라엘과 유다는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위험한 세상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더 크고 강력한 나라들과 정치 동맹을 맺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이웃 나라인 시리아로 향하였고,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무자비한 아시리아에 희망을 두었습니다.
2 새로운 정치 동맹국에 신뢰를 두는 것에 더하여, 북쪽 왕국의 일부 사람들은 숭배에서 금 송아지를 사용하는 일을 계속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다도 여호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여호와의 성전이 그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두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영감을 주시어, 엇나간 백성에게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사태 진전을 예언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는 오늘날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
3, 4.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3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깜짝 놀랄 만한 말로 예언을 시작합니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탁월한 면류관과, 포도주에 곯아떨어진 자들의 기름진 골짜기의 머리 위에 있는 그 아름다운 장식의 시들어 가는 꽃에 화가 있다! 보라! 여호와께서는 강하고 기운 있는 자를 가지고 계신다. 우박의 뇌우[처럼], ··· 그는 틀림없이 힘으로 땅에 던지는 일을 할 것이다.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탁월한 면류관들은 발에 짓밟힐 것이다.”—이사야 28:1-3.
4 북쪽의 열 지파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지파인 에브라임이 이스라엘 왕국 전체를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의 머리”에 있는 아름답고 전망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의 다윗 왕권으로부터 독립하여 가지고 있는 자기들의 “탁월한 면류관”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들은 “술 취한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를 대적하여 시리아와 맺고 있는 동맹 때문에 영적으로 취해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모든 것은 곧 침략자들의 발에 짓밟힐 것입니다.—비교 이사야 29:9.
5. 이스라엘은 어떤 위태로운 입장에 놓여 있으며, 하지만 이사야는 어떤 희망을 제시합니까?
5 에브라임은 자기가 위태로운 입장에 처해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기름진 골짜기의 머리 위에 있는 그 아름다운 장식의 시들어 가는 꽃은 여름이 되기 전의 이른 무화과처럼 되고 말 것이다. 보는 자는 그것을 보고서 그것이 아직 자기 손바닥에 있는 동안 삼켜 버린다.” (이사야 28:4) 에브라임은 아시리아의 손에 떨어진, 한입에 삼켜 버릴 달콤한 과일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면 희망이 전혀 없습니까? 흔히 있는 일로서, 이사야의 심판 예언에는 희망의 소식이 섞여 있습니다. 그 나라가 멸망된다 하더라도, 충실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의 남아 있는 자들에게 장식의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시고, 재판석에 앉은 이에게는 공의의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들에게는 위력이 되실 것이다.”—이사야 28:5, 6.
‘그들이 길을 잃었다’
6. 이스라엘은 언제 붕괴를 맞게 되며, 하지만 유다는 왜 고소해해서는 안 됩니까?
6 기원전 740년에 사마리아에 결산의 날이 닥칩니다. 그때 아시리아 사람들이 그 땅을 황폐시키고, 북쪽 왕국은 더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유다는 어떻게 됩니까? 유다 땅도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겠지만, 후에 바빌론이 그 수도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의 생애 중에는, 유다의 성전과 제사직이 계속 기능을 발휘할 것이며 유다의 예언자들도 계속 예언을 할 것입니다. 유다는 북쪽에 있는 이웃이 당할 붕괴를 고소해해야 합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유다와 그 지도자들의 불순종과 믿음의 부족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과도 결산을 하실 것입니다.
7. 유다의 지도자들은 어떤 식으로 취해 있으며,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7 이사야는 이제 소식을 유다에 전하며,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도—포도주 때문에 길을 잃고 독주 때문에 헤매고 다녔다. 제사장과 예언자—그들이 독주 때문에 길을 잃고 포도주로 말미암아 혼란에 빠지고 독주로 말미암아 헤매고 다녀서, 보는 일에서 길을 잃고 판결과 관련하여 휘청거렸다. 식탁들에는 온통 토해 낸 불결한 것이 가득하여—그것이 없는 곳이 없다.” (이사야 28:7, 8)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입니까! 하느님의 집에서 문자적으로 술에 취한다면 참으로 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영적으로 취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맺은 동맹에 대한 과신 때문에 정신이 어두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속여서 자기들의 행로가 실용적으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로라고 생각하며, 아마 자기들이 이제는 여호와의 보호만으로 불충분할 경우 그것을 보완할 만한 계획을 갖게 되었다고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취한 상태에서,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반역적이고 불결한 표현을 마구 토해 냅니다.
8. 이사야의 소식에 대한 반응은 어떠합니까?
8 유다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경고에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이사야를 조롱하며, 이사야가 자기들에게 유아에게 하듯 이야기한다고 이사야를 비난합니다. “누구에게 지식을 일러 주며, 들은 것을 누구에게 이해시켜 주려고 하는가? 젖을 뗀 자들, 젖가슴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고 하는가? ‘명령에 명령, 명령에 명령, 측량줄에 측량줄, 측량줄에 측량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이사야 28:9, 10) 이사야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는 똑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같이 생소하게 들립니다! 이사야가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이것이 여호와의 표준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표준이다!’a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머지않아 유다의 주민들에게 행동으로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바빌론 군대를 보내실 것인데, 그들은 실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외국인들입니다. 그 군대는 틀림없이 여호와의 “명령에 명령”을 시행할 것이며, 유다는 멸망될 것입니다.—낭독 이사야 28:11-13.
오늘날 영적으로 취한 자들
9, 10. 이사야의 말은 언제 어떻게 후세대들에게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까?
9 이사야의 예언은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에만 성취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와 바울도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그 당시의 그 나라에 적용하였습니다. (이사야 29:10, 13; 마태 15:8, 9; 로마 11:8) 오늘날도 이사야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존재합니다.
10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에 신뢰를 둡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취한 자들처럼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정치 문제에 간섭하고, 소위 이 세상의 탁월한 자들이 자기들에게 자문을 구하러 오면 기뻐합니다. 그들은 순결한 성서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결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영적 시력이 약해져 있으므로, 인류를 위한 안전한 인도자가 못 됩니다.—마태 15:14.
11.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에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11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한 참된 희망인 하느님의 왕국으로 주의를 이끌 때,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증인들이 어린 아기처럼 의미 없는 말을 되풀이하여 재잘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자(使者)들을 업신여기며 조롱합니다. 예수 시대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원하지 않으며, 그들의 양 떼가 그 소식을 듣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마태 23:13) 따라서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언제나 무해한 사자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통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 ‘깨어지며 올무에 걸리고 잡힐’, 즉 철저히 멸망될 때가 올 것입니다.
‘“죽음”과 맺은 계약’
12. 유다가 ‘“죽음”과 맺은 계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2 이사야는 자기의 선언을 다음과 같이 계속합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죽음”과 계약을 맺었고, 스올과 더불어 환상을 이루었다. 넘치는 돌발 홍수가 지나간다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가 거짓을 우리의 도피처로 삼고 허위 속에 우리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사야 28:14, 15) 유다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맺은 정치 동맹 때문에 자기들은 패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뽐냅니다. 그들은 죽음이 자기들은 건드리지 않기로 “‘죽음’과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허울 좋은 그들의 도피처는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맺은 동맹은 거짓이고 허위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과 결산하실 때가 오면, 그리스도교국이 세상 지도자들과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는 그리스도교국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관계는 오히려 그리스도교국의 파멸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계시 17:16, 17.
13. 누가 “시험받은 돌”이며, 그리스도교국은 어떻게 그분을 배척해 왔습니까?
13 그러면 이 종교 지도자들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이사야는 이제 여호와의 약속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제 내가 시온에 하나의 돌을 기초로 두리니, 시험받은 돌이요, 확실한 기초의 귀중한 모퉁잇돌이다.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의를 측량줄로 삼고 의를 수준기로 삼을 것이다. 우박이 거짓의 도피처를 쓸어 버리겠고, 물이 은신처에 범람할 것이다.” (이사야 28:16, 17) 이사야가 이 말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충실한 히스기야 왕이 시온에 즉위하고, 그의 왕국은 이웃의 동맹국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개입에 의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영감받은 말씀은 히스기야에게 성취되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히스기야의 먼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시험받은 돌”이며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베드로 첫째 2:6)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도 예수께서 거부하신 일을 해 온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는 그분의 왕국을 가져오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이 세상에서 탁월함과 권력을 얻으려고 애써 왔습니다.—마태 4:8-10.
14. 유다가 ‘“죽음”과 맺은 계약’은 언제 깨어질 것입니까?
14 “넘치는 돌발 홍수” 같은 바빌론 군대가 유다 땅을 지나갈 때, 여호와께서는 유다의 정치적 도피처가 거짓임을 실상 그대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죽음”과 맺은 너희의 계약은 틀림없이 깨어질’ 것이라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넘치는 돌발 홍수, 그것이 지나갈 때에,—너희는 또한 그것에게 짓밟히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켜 주는 것은 떨게 할 이유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8:18, 19)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나라들과 맺은 동맹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로부터 강력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15. 유다가 세운 보호책이 부적절한 것임을 이사야는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합니까?
15 이 유다의 지도자들이 이제 어떤 입장에 처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십시오. “침상이 너무 짧아서 몸을 펴지 못하고, 홑이불은 몸을 감싸기에 너무 좁다.” (이사야 28:20) 그들은 쉬고 싶어 누워 보지만 헛수고인 것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찬 공기 속으로 발이 삐져나오든지, 아니면 다리를 끌어당기니까 이불이 너무 좁아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지 못하든지 하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시대의 불편한 상황을 묘사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누구든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도피처를 신뢰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정치에 참여한 결과 그리스도교국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결국 인종 청소나 종족 말살과 같은 끔찍한 잔학 행위에 연루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얼마나 혐오스러운 일입니까!
여호와의 ‘이상한 일’
16. 여호와의 ‘이상한 일’이란 무엇이며, 그 행위가 기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사태의 최종 결과는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의 영적으로 취한 자들에게 이상한 일을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처럼 일어서시고, 기브온 근처의 저지 평야에서처럼 동요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자신의 일을 이루시고—그 일은 이상하다—자신의 행위를 이루시기 위함이다—그 행위는 기이하다.” (이사야 28:21) 다윗 왕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브라심 산과 기브온의 저지 평야에서 자신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주목할 만한 승리를 거두게 해 주셨습니다. (역대 첫째 14:10-16) 여호수아 시대에는, 심지어 태양이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 있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들에게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10:8-14) 그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다시 싸우실 것인데, 이번에는 자신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싸우실 것입니다. 이보다 더 이상하거나 기이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숭배의 중심지이고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왕이 거주하는 도시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보다 더 이상하거나 기이한 일은 없습니다. 그때까지는, 예루살렘의 다윗 왕가가 전복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상한 일’을 틀림없이 이루실 것입니다.—비교 하박국 1:5-7.
17. 빈정거리는 일은 이사야의 예언 성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17 따라서 이사야는 이렇게 주의를 줍니다. “너희는 빈정거리는 자가 되지 말아라. 너희의 결박이 강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진멸이 온 땅에 대하여 결정된 것임을, 나는 주권자인 주, 만군의 여호와에게서 들었다.” (이사야 28:22) 지도자들은 빈정거리지만, 이사야의 소식은 참된 것입니다. 그는 그 소식을 그 지도자들과 계약 관계에 있는 여호와에게서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이상한 일’에 대해 들을 때 빈정거립니다. 심지어 고함을 치며 폭언을 퍼붓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선포하는 소식은 참된 것입니다. 그 지도자들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책인 성서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18.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징계를 베푸실 때 나타내시는 균형을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합니까?
18 여호와께서는 그 지도자들을 따르지 않는 진실한 사람들의 상태를 바로잡아 그들이 다시 은혜를 받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낭독 이사야 28:23-29) 농부가 쿠민과 같은 좀더 약한 곡식을 타작할 때는 더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하듯이, 여호와께서도 개인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징계를 조절하십니다. 그분은 결코 독단적이거나 압제적인 태도를 나타내시지 않고, 잘못을 저지른 자가 회복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호소에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교국 전체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여호와의 왕국에 복종하는 개개인은 다가오는 불리한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화가 있다!
19. 예루살렘은 어떻게 “제단 화덕”이 될 것이며, 그러한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19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아리엘에게, 아리엘에게, 곧 다윗이 진을 쳤던 성읍에 화가 있다! 너희는 한 해에 한 해를 더하면서, 축제들이 돌아오게 하여라. 내가 반드시 아리엘을 조여 가리니, 애통과 애곡이 있겠고, 그는 나에게 하느님의 제단 화덕처럼 되고 말 것이다.” (이사야 29:1, 2) “아리엘”은 “하느님의 제단 화덕”이란 뜻일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서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과 그 희생 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관례에 따라 그곳에서 축제를 열고 희생을 바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숭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6:6)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그 도시가 다른 의미로 “제단 화덕”이 될 것이라고 포고하십니다. 그 도시는 제단처럼, 피가 흐르고 불이 타는 곳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심지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도 묘사하십니다. “나는 너를 향하여 사방으로 진을 쳐서, 말뚝 울타리로 너를 포위하고 너를 향하여 포위 공격용 보루를 세우고야 말겠다. 그러면 너는 낮아져서 땅바닥에서 말하겠고, 네 말소리는 흙먼지에서 나듯이 낮아질 것이다.” (이사야 29:3, 4) 이 말씀은 기원전 607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성취됩니다. 그때 바빌로니아 군대가 그 도시를 포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성전을 불태워 버립니다. 예루살렘은 그 도시가 세워질 때 그 기초가 된 땅바닥처럼 낮아질 것입니다.
20. 하느님의 적들의 최종 운명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20 그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기 전에, 유다에는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는 왕이 있는 때가 이따금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싸우십니다. 적이 그 땅을 뒤덮을지라도 그들은 “고운 가루”와 “겨”처럼 되고 맙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때에, 그들을 “천둥과 지진과 큰 소리와 사나운 바람과 광풍과 삼키는 불길로” 흩으십니다.—이사야 29:5, 6.
21. 이사야 29:7, 8에 나오는 예를 설명하십시오.
21 적대적인 군대는 예루살렘을 약탈하여 전리품을 잔뜩 획득할 때를 학수 고대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이 진수 성찬을 즐기는 꿈을 꾸다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배가 고픈 상태로 깨어나는 것처럼, 유다의 적들은 그렇게도 학수 고대하던 잔치를 즐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낭독 이사야 29:7, 8) 충실한 왕 히스기야 시대에 산헤립 휘하의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하다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사야 36장과 37장)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던 아시리아 군대는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하룻밤 만에 돌아가게 됩니다. 용감한 전사들이 18만 5000명이나 죽게 된 것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마곡의 곡의 군대가 여호와의 백성을 칠 준비를 할 때도 정복의 꿈이 또다시 좌절될 것입니다.—에스겔 38:10-12; 39:6, 7.
22. 영적으로 취한 유다의 상태는 유다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22 이사야가 이 부분의 예언을 할 당시, 유다의 지도자들에게는 히스기야와 같은 믿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불경건한 나라들과 맺은 동맹으로 인해 취해서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습니다. “너희는 꾸물거리고 크게 놀라라. 자기 눈을 멀게 하여, 눈먼 사람이 되어라. 그들은 취하였으나,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비틀거렸으나, 독주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이사야 29:9) 영적으로 취한 이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참 예언자에게 주어진 환상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여호와께서 깊은 잠의 영을 부으셔서, 너희의 눈, 곧 예언자들을 감기시며, 너희의 머리, 곧 환시가들마저 덮으셨다. 그래서 너희에게 모든 것에 대한 환상은 봉인된 책의 말씀처럼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글을 아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면서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소리내어 읽어 주시오’ 하면, 그는 ‘봉인되어 있어서 못 읽겠소’ 하고 말할 것이며,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책을 주면서 말하기를 ‘청컨대, 이것을 소리내어 읽어 주시오’ 하면, 그는 ‘글을 전혀 알지 못하오’ 하고 말할 것이다.”—이사야 29:10-12.
23. 여호와께서 왜 유다에 책임을 물으실 것이며, 어떻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23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슬기롭다고 자처하지만, 여호와를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옳고 그른 것에 관한 자기들의 왜곡된 견해를 가르치면서, 자기들의 불충실하고 부도덕한 활동을 정당화하고 백성을 하느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길로 인도한 것을 정당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위선 때문에 “놀라운 일”—그분의 ‘이상한 일’—을 통해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가까이 오며, 입술로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고, 나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은 사람의 계명이 되어 가르쳐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여기 내가 있다. 내가 놀라운 방법으로, 놀라운 일로 다시 이 백성에게 놀랍게 행하리니, 그 지혜로운 사람들의 지혜가 소멸되겠고, 그 슬기로운 사람들의 이해도 숨어 버릴 것이다.” (이사야 29:13, 14) 여호와께서 일들을 조종하여 유다의 배도한 종교 제도 전체가 바빌로니아 세계 강국에 의해 제거되게 하실 때, 유다가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혜와 이해는 소멸될 것입니다. 1세기에 유대인의 자칭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그 나라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였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국에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마태 15:8, 9; 로마 11:8.
24. 유다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음을 어떻게 드러냅니까?
24 하지만 지금 유다의 뽐내는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참 숭배와 관련하여 비뚤어져 있으면서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만큼 영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사야는 그들의 가면을 벗겨서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 따라서 참된 지혜도 없다는 사실을 폭로합니다. “여호와에게서 계획을 아주 깊이 숨기려 하며, 어두운 곳에서 행동하면서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보겠으며, 누가 우리를 알겠느냐?’ 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의 비뚤어짐이 심하다! 도공이 진흙과 똑같이 여겨질 수 있겠느냐? 만들어진 것이 그 만든 이에 관하여 ‘그가 나를 만들지 않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그 지은 이에 관하여 ‘그는 이해력을 보이지 않았다’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사야 29:15, 16; 비교 시 111:10) 그들이 스스로 얼마나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든 간에, 그들은 하느님의 눈에 “벌거벗은 채 숨김없이 드러납니다.”—히브리 4:13.
‘귀먹은 이들이 틀림없이 들을 것이다’
25. “귀먹은 이들”이 어떤 의미로 듣게 될 것입니까?
25 하지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있습니다. (낭독 이사야 29:17-24; 비교 누가 7:22) “귀먹은 이들”이 “책의 말을 들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에서 나온 소식을 들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신체적으로 귀먹은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병 고침입니다. 이사야는 다시 한 번, 메시아 왕국이 설립될 때와 메시아의 통치에 의해 지상에 참 숭배가 회복될 때를 미리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시대에 일어났으며, 수백만에 달하는 진실한 사람들이 기꺼이 여호와께 시정을 받으며 그분을 찬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인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아니 호흡하는 것은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할 날이 올 것입니다.—시 150:6.
26. “귀먹은 이들”은 오늘날 영적으로 생각나게 하는 어떤 것들을 듣고 있습니까?
26 오늘날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그러한 “귀먹은 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회중이 모범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독주 때문에 길을 잃”는 일을 양심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사야 28:7) 더욱이, 우리는 하느님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듣는 일에 결코 싫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우리가 모든 일에 대해 영적인 견해를 갖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부 당국에 합당한 복종을 나타내며 그들이 특정한 봉사를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원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또한, 배도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과 마찬가지로 이 세대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도 반드시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사야처럼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경고를 계속 선포할 수 있습니다.—이사야 28:14, 22; 마태 24:34; 로마 13:1-4.
27. 그리스도인들은 이사야의 예언으로부터 어떤 교훈들을 얻을 수 있습니까?
27 장로들과 부모들은 여호와께서 징계를 베푸시는 방법으로부터 배워서, 잘못을 범한 사람을 단지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하느님의 은혜를 받도록 도와 주려고 언제나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28:26-29; 비교 예레미야 30:11) 그리고 청소년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상기해야 할 사실은,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사야 29:13) 유다의 불충실한 주민들과는 달리,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과 깊은 존경심이 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이사야 29:16) 더 나아가, 여호와께 기꺼이 시정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이사야 29:24.
28. 여호와의 종들은 그분의 구원의 행동을 어떻게 여깁니까?
28 여호와와 그분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해 믿음과 신뢰심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비교 시 146:3)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전파하는 경고의 소식이 유치하게 들릴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조직인 그리스도교국이 장차 멸망될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하고 기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상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문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 내내, 하느님의 종들은 그분의 왕국과 그분이 임명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기이한 행동’과 함께 수행될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이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축복을 가져다 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각주]
a 이사야 28:10은 원어인 히브리어로, 다소 어린아이의 동요와 같은, 반복적인 운율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사야의 소식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같이 유치하게 들렸다.
[289면 삽화]
그리스도교국은 하느님보다는 인간 통치자들과 맺은 동맹을 신뢰해 왔다
[290면 삽화]
여호와께서는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도록 허락하심으로 자신의 ‘기이한 일’을 이루신다
[298면 삽화]
영적으로 귀먹었던 사람들이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