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왕과 그의 방백들
1, 2. 이사야 사해 두루마리의 본문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난 1940년대 말경, 팔레스타인의 사해 근처에 있는 동굴들에서 주목할 만하게도 한데 모아 놓은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사해 두루마리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 70년 사이의 언젠가 기록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내구성이 강한 가죽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이사야 두루마리입니다. 이 두루마리는 거의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그보다 약 1000년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소라 본문의 사본과 내용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두루마리는 성서의 본문이 정확하게 전달되어 왔음을 실증해 줍니다.
2 이사야 사해 두루마리에서 주목할 만한 세부점 한 가지는, 현재 이사야 32장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을 구성하는 부분의 여백에다 어떤 서기관이 휘갈겨 쓴 글씨로 “X” 표시를 해 놓은 것입니다. 그 서기관이 왜 그런 표시를 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성서의 이 부분에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의와 공의를 위하여 통치함
3. 이사야서와 계시록에는 어떤 관리 체제가 예언되어 있습니까?
3 이사야 32장은 우리 시대에 놀랍게 성취되고 있는 감격적인 예언으로 시작됩니다. “보라! 한 왕이 의를 위하여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은 공의를 위하여 방백으로 다스릴 것이다.” (이사야 32:1)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이 외침은 성서의 마지막 예언서에 나오는 그와 비슷한 외침이 생각나게 합니다. “왕좌에 앉아 계신 분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계시 21:5) 성서 이사야서와 계시록은 기록 시기가 약 900년 차이가 나지만, 둘 다 새로운 관리 체제—1914년에 하늘에 즉위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 가운데서 사신”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로 이루어진 “새 하늘”—와 “새 땅” 즉 세계적으로 연합을 이룬 인간 사회에 대하여 가슴 뭉클한 묘사를 합니다.a (계시 14:1-4; 21:1-4; 이사야 65:17-25) 이러한 마련은 전부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4. 현재 새 땅의 어떤 핵심체가 존재하고 있습니까?
4 환상 가운데서 이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에게 최종적으로 인장을 찍는 일을 본 후에, 사도 요한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와 왕좌 앞과 ‘어린 양’ 앞에 ··· 서 있었다.” 여기에 새 땅의 핵심체를 이룰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들은 현재 그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는 큰 무리입니다. 그들은 14만 4000명 가운데 남은 자들, 대부분 연로한 소수의 사람들 곁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큰 무리는 신속히 다가오고 있는 큰 환난을 살아남을 것이며, 지상 낙원에서는, 부활되는 충실한 사람들과 그 밖에도 부활되어 믿음을 나타낼 기회를 받게 될 수십억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더해질 것입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시 7:4, 9-17.
5-7. 예언된 “방백들”은 하느님의 양 떼 가운데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5 하지만 증오심에 가득 찬 현 세상이 존재하는 한, 큰 무리의 성원들은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보호는 대부분, ‘공의를 위하여 다스리는’ “방백들”에 의해 베풀어집니다. 참으로 훌륭한 마련입니다! 이사야는 가슴 뭉클하게 하는 예언의 말로 이 “방백들”에 관해 한층 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들 각자는 틀림없이 바람을 피하는 피신처, 폭풍우를 가려 주는 은신처 같고, 물 없는 땅의 시냇물 같고, 피폐한 땅의 바위 그늘 같을 것이다.”—이사야 32:2.
6 바로 지금 이 세계적인 고난의 때에 “방백들”이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양 떼에 주의를 기울일’ 장로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양들을 돌보고 여호와의 의로운 원칙과 일치하게 공의를 시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20:28) 그러한 “방백들”은 디모데 첫째 3:2-7과 디도 1:6-9에 나와 있는 자격 조건에 달해야 합니다.
7 고난에 찬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을 묘사하는 대예언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겁내지 않도록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4:3-8) 예수의 추종자들이 오늘날과 같이 위험한 세계 상태에도 불구하고 겁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방백들”이 기름부음받은 자들이든 “다른 양들”이든, 충성스럽게 양 떼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10:16) 그들은 두려움 없이 형제 자매들을 돌보고 있으며, 심지어 민족 간의 전쟁이나 민족 말살과 같은 끔찍한 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합니다. 영적으로 피폐해 있는 세상에서, 그들은 우울한 영혼들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의 세워 주는 진리로부터 새 힘을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8. 여호와께서는 다른 양들에 속한 “방백들”을 어떻게 훈련시켜 사용하고 계십니까?
8 지난 50년 동안, “방백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져 왔습니다. 다른 양들에 속한 “방백들”은, 발전하고 있는 “수장” 반열로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큰 환난이 끝나면 그들 가운데서 나온 자격 있는 사람들은 “새 땅”에서 관리하는 지위에서 일하도록 임명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44:2, 3; 베드로 둘째 3:13) 그들은 왕국 봉사에서 솔선하며 영적 인도를 베풀고 새 힘을 줌으로써, 스스로 ‘바위 그늘 같은’ 사람, 숭배와 관련된 일에서 양 떼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b
9. 오늘날 어떤 상태를 볼 때 “방백들”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까?
9 사탄의 악한 세상의 이 위험한 마지막 날에,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보호를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디모데 둘째 3:1-5, 13) 거짓 교리와 왜곡된 선전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나 내전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의 충실한 숭배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의 형태로 폭풍우가 사납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영적 가뭄으로 바싹 말라 버린 세상에서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시내처럼 흐르는 순수하고 불순물을 섞지 않은 진리의 물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도,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바에 의하면, 그분의 통치하는 왕이 그 왕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과 그들을 지원해 주는 다른 양들에 속한 “방백들”을 통해서 이 위급한 때에 우울하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인도를 베풀어 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의와 공의가 널리 행해지게 하실 것입니다.
눈과 귀와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임
10.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영적인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어떤 마련들을 해 오셨습니까?
10 큰 무리는 여호와의 신권적 마련에 어떤 반응을 나타내 왔습니까? 예언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보는 사람들의 눈은 봉해지지 않고, 듣는 사람들의 귀는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이사야 32:3) 여호와께서는 여러 해 동안, 자신의 소중한 종들에게 교훈을 베풀고 그들을 장성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마련을 해 오셨습니다. 세계 전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들에서 운영하고 있는 신권 전도 학교를 비롯한 여러가지 집회들, 지역 대회와 전국 대회와 국제 대회들, 그에 더하여 양 떼를 사랑에 찬 관심을 가지고 대하도록 “방백들”을 훈련시키는 특별 마련들, 이 모든 것들이 수백만 명으로 이루어진 연합된 세계적 형제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지상 어느 곳이든 이러한 목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발전하는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조정하기 위해 그들의 귀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 덕분에, 그들은 언제나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시 25:10.
11. 하느님의 백성이 현재 확신 없이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예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주의를 줍니다. “지나치게 성급한 사람들의 마음은 지식을 고려하고, 말을 더듬는 사람들의 혀마저 분명한 것을 빠르게 말할 것이다.” (이사야 32:4)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아무도 지나치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을 성급히 하는 사람을 보았느냐? 그에게보다는 미련한 자에게 더 희망이 있다.” (잠언 29:20; 전도 5:2) 1919년 이전에는, 심지어 여호와의 백성도 바빌론적 사상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부터,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목적을 한층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밝혀 주시는 진리가 지나치게 성급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고려해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래서 현재 확신 없이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사람”
12. 오늘날 누가 ‘무분별한 사람들’이며, 어떤 면에서 그들에게는 관대함이 결여되어 있습니까?
12 이사야의 예언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대조하여 말합니다. “무분별한 사람을 더 이상 관대하다고 하지 않고, 원칙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존귀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무분별한 사람은 한낱 무분별한 것을 말[할 것이다].” (이사야 32:5, 6ㄱ) “무분별한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다윗 왕은 강조하기라도 하듯, 두 번이나 그 답이 되는 말을 합니다. “무분별한 자는 마음 속으로 ‘여호와는 없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파멸적으로 행동하여 그 행위 가증하게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구나.” (시 14:1; 53:1) 물론, 견해가 확고한 무신론자들이 여호와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무에게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지식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관대함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복음도 없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과는 대조적으로, 고난 가운데 처해 있는 궁핍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는 데 더디거나 아예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13, 14. (ㄱ) 현대의 배교자들은 어떻게 유해한 것을 지어 냅니까? (ㄴ) 배교자들은 굶주린 사람들과 목마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가려고 하며, 하지만 최종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13 그처럼 무분별한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유해한 것을 지어 내어 배교를 행하고, 여호와를 거슬러 어긋난 것을 말[한다].” (이사야 32:6ㄴ) 현대의 배교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배교자들은 진리를 반대하는 다른 자들과 합세하여,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이 금지되게 하거나 제한받게 할 목적으로 당국자들에게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들은 “악한 종”의 영을 나타내는데, 예수께서는 그 종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 속으로 ‘나의 주인이 지체되는구나’ 하면서 동료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며 인박인 술꾼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그가 예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가장 엄하게 처벌하고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정해 줄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마태 24:48-51.
14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배교자는 “굶주린 사람의 영혼을 비어 있게 [하]며, 목마른 사람을 마실 것 없이 지내게” 합니다. (이사야 32:6ㄷ) 진리의 적들은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에게서 영적 양식을 빼앗아 가려고 하며, 목마른 사람들이 왕국 소식의 새 힘을 주는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다른 예언자를 통해서 선언하시는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틀림없이 너를 대적하여 싸울 것이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이다.”—예레미야 1:19; 이사야 54:17.
15. 오늘날 특히 누가 “원칙이 없”으며, 그들은 어떤 “거짓된 말”을 해 왔으며,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습니까?
15 20세기 중엽부터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에서 부도덕이 공공연하게 만연해 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언은 한 가지 이유를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원칙이 없는 사람은 그 도구들이 악하여, 방종한 행위를 권고하고, 가난한 사람이 옳은 것을 말할 때에도,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거짓된 말로 파멸시킨다.” (이사야 32:7) 특히 많은 교직자들이 이 말을 성취시켜, 혼전 성관계,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일, 동성애 등—사실상 “음행과 온갖 더러움”—에 대하여 방임적인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에베소 5:3) 따라서 그들은 거짓된 말로 자기들의 양 떼를 “파멸”시킵니다.
16.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16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언자가 뒤이어 한 말의 성취는 참으로 새 힘을 줍니다! “그러나 관대한 사람은 관대한 일을 권고하고, 관대한 일을 지지하여 일어설 것이다.” (이사야 32:8) 예수께서는 관대함을 나타내도록 격려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주십시오. 그러면 사람들도 여러분에게 줄 것입니다. 그들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잘 되어 여러분의 앞자락에 부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사람들도 여러분에게 도로 헤아려 줄 것입니다.” (누가 6:38) 사도 바울도 관대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축복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말씀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20:35)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 부나 사회적 명성을 얻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관대하신 것처럼 관대함을 나타내는 데서 행복을 느낍니다. (마태 5:44, 45)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즉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좋은 소식”을 알려 주기 위해 자신을 관대하게 내주는 일에서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합니다.—디모데 첫째 1:11.
17. 오늘날 누가 이사야가 언급한 “염려 없는 딸들”과 같습니까?
17 이사야의 예언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안일하게 지내는 여자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염려 없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한 해와 몇 날 안에 너희 염려 없는 자들이 요동하리니, 포도를 따는 일이 끝나 가되 열매를 거두는 일이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일하게 지내는 여자들아, 떨어라! 염려 없는 자들아, 요동하여라!” (이사야 32:9-11ㄱ) 이 여자들의 태도를 보면, 오늘날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그분을 열심히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창녀들의 어미, ‘큰 바빌론’’에 속한 종교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시 17:5) 예를 들면,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종교의 성원들은 이사야가 이 “여자들”에 대해 묘사한 것과 아주 흡사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안일하게 지내”며, 머지않아 자기들을 삼킬 심판이나 요동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있습니다.
18. 누가 ‘자루천을 허리에 두르라’는 지시를 받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그 외침은 이제 다음과 같이 거짓 종교를 향합니다.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되고, 자루천을 허리에 둘러라. 탐스러운 밭과 열매 맺는 포도나무를 생각하며 가슴을 치고 애곡하여라. 내 백성의 땅에 한낱 가시나무, 가시덤불이 돋아난다. 그것들이 모든 환희의 집, 아니, 의기충천한 성읍에 있다.” (이사야 32:11ㄴ-13)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된다’는 표현은 옷을 완전히 벗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대에도 속옷 위에 겉옷을 입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겉옷은 흔히 어떤 사람인지를 식별하게 해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열왕 둘째 10:22, 23; 계시 7:13, 14) 따라서 이 예언은 거짓 종교의 성원들에게 하느님의 종인 체하는 표시인 겉옷을 벗고, 그 대신 그들에게 임박한 심판으로 인해 애도하는 것을 상징하는 자루천 옷을 입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계시 17:16) 하느님의 “의기충천한 성읍”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종교 단체들이나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속한 그 밖의 종교 단체들 가운데서는 경건한 열매를 전혀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활동 영역에서는 단지 게으름과 방치의 “가시나무, 가시덤불”만 돋아날 따름입니다.
19. 이사야는 배교한 “예루살렘”이 어떤 상태에 있음을 폭로합니까?
19 이 우울한 묘사는 배교한 “예루살렘” 전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거주 탑은 버려졌고, 왁자지껄하던 도시는 버림받았다. 오벨과 파수대는 황량한 들이 되어, 한정 없는 때까지 얼룩말의 환희, 가축 떼의 초장이 되었[다].” (이사야 32:14) 그렇습니다. 오벨까지도 포함됩니다. 오벨은 예루살렘에서도 높은 지대로서, 강력한 방어 기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오벨이 황량한 들이 된다는 말은 그 도시가 완전히 황폐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의 말은 배교한 “예루살렘”—그리스도교국—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깨어 있지 못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진리와 공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영적 황무지로서, 극도로 짐승과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대조!
20. 하느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 위에 부어진 결과는 무엇입니까?
20 이사야는 이어서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슴 뭉클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황폐시키는 일은 얼마간 지속되겠지만, “마침내 높은 곳으로부터 우리 위에 영이 부어지리니, 광야는 과수원이 되겠고, 과수원은 진정한 숲으로 여겨”지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2:15) 행복하게도, 1919년 이래 여호와의 영이 그분의 백성 위에 풍부하게 부어져, 비유적으로 말해서, 기름부음받은 증인들의 열매 맺는 과수원을 회복시키는 일이 있었고 뒤이어 다른 양들의 확장하는 숲이 있게 되었습니다. 번영과 성장이 오늘날 지상에 있는 하느님의 조직의 주된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다가오는 그분의 왕국을 세계 전역에 선포하면서, 회복된 영적 낙원에서 “여호와의 영광,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이사야 35:1, 2.
21. 오늘날 어디서 의와 평온과 안전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21 이제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광야에 틀림없이 공의가 거하고, 과수원에 의가 깃들일 것이다. 그런데 참된 의가 산출하는 것은 평화이며, 참된 의가 이루는 것은 한정 없는 때까지의 평온과 안전이 될 것이다.” (이사야 32:16, 17) 이 말은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의 영적 상태를 참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증오와 폭력과 심한 영적 가난으로 분열되어 있는 대다수의 인류와는 대조적으로, 참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왔는데도 세계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의와 일치하게 살고 일하며 봉사하고 있는데, 마침내 참다운 평화와 안전을 한정 없는 때까지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계시 7:9, 17.
22. 하느님의 백성의 상태와 거짓 종교에 속한 자들의 상태는 어떻게 다릅니까?
22 영적 낙원에서는 이사야 32:18이 이미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 성구는 이러합니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이 거할 곳과 온전한 확신의 거처와 평온히 쉴 곳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가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틀림없이 우박이 내리리니, 숲은 기울고 도시는 낮아져 낮춰진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32:19) 그렇습니다. 우박을 동반한 사나운 폭풍처럼, 여호와의 심판은 거짓 종교의 모조 도시를 치고 그 지지자들의 “숲”을 낮추어서 그 지지자들을 영원히 없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23. 어떤 세계적인 활동이 완수되어 가고 있으며, 그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합니까?
23 예언의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납니다.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의 발을 내보내는 너희는 행복하다.” (이사야 32:20) 소와 나귀는 하느님의 고대 백성이 밭에 쟁기질을 하거나 씨를 뿌릴 때 사용하던 짐바리 짐승이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은 인쇄 도구와 전자 장비와 현대식 건물과 운송 수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합된 신권 조직을 이용하여, 수십억 부에 달하는 성서 출판물을 인쇄하여 배부하고 있습니다. 자원하는 일꾼들이 이러한 도구들을 사용하여 왕국 진리의 씨를 지구 전역에, 문자적으로 “모든 물가에” 뿌리고 있습니다. 수백만에 달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남녀들이 이미 수확되어 왔으며,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합세하고 있습니다. (계시 14:15, 16) 그들 모두가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각주]
b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파수대」 1999년 3월 1일호 13-18면 참조.
[331면 삽화]
사해 두루마리에서 “X” 표시가 되어 있는 이사야 32장
[333면 삽화]
“방백들” 각자는 바람을 피하는 피신처, 비를 가려 주는 은신처 같고, 사막의 물, 햇볕을 피하게 해 주는 그늘 같다
[338면 삽화]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일에서 큰 행복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