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시험을 받았지만 여호와께 충실을 지키다!
1, 2. 어떤 중요한 사건들이 다니엘의 기록의 전주곡을 이루고 있습니까?
예언의 책 다니엘의 서막이 올라가는 때는 국제 무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아시리아는 불과 얼마 전에 수도인 니네베를 잃었습니다. 이집트는 유다 땅 이남으로 영역이 국한되어 대수롭지 않은 위치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빌론이 세계 지배를 위한 투쟁에서 주요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었습니다.
2 기원전 625년에,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는 바빌로니아가 남방으로 확장해 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자기의 군대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 상류 기슭에 있는 갈그미스로 향하였습니다. 소위 갈그미스 전투라고 하는 이 전쟁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황태자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파라오 느고의 군대에 치명타를 입힌 것입니다. (예레미야 46:2) 느부갓네살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휩쓸고 지나가며, 사실상 이 지역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를 종식시켰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사르의 사망만이 느부갓네살의 원정을 잠시 중단시킬 수 있었습니다.
3.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정벌하러 온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3 이듬해에, 이제 바빌론의 왕이 된 느부갓네살은 다시 한 번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정벌에 주의를 돌렸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정벌하러 온 것은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여호야김의 날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자, 여호야김은 삼 년 동안 그의 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돌이켜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하였다.”—열왕기 둘째 24:1.
예루살렘에 온 느부갓네살
4. 다니엘 1:1에 나오는 “여호야김 재위 제삼 년”이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까?
4 우리는 “삼 년 동안”이라는 표현에 특별히 관심을 갖습니다. 다니엘서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 재위 제삼 년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그곳을 포위하였다.” (다니엘 1:1) 기원전 628년부터 618년까지 통치한 여호야김의 전체 재위 기간 중 제삼 년에는, 느부갓네살이 아직 “바빌론 왕”이 아니었고 단지 황태자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620년에 여호야김에게 강제로 조공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약 3년 후에 여호야김이 반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618년에, 즉 바빌론에 예속된 왕으로서의 여호야김 재위 제삼 년에,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에 두 번째로 와서 반역한 여호야김을 징벌하였습니다.
5.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두 번째로 정벌하러 온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5 이 포위 공격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윽고 여호와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참 하느님의 집의 기구 일부를 그의 손에 넘겨 주[셨다].” (다니엘 1:2) 여호야김은 아마 포위 공격의 초기 단계에 암살이나 반역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22:18, 19) 기원전 618년에, 여호야김의 18세 된 아들 여호야긴이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의 통치는 삼 개월 열흘밖에 지속되지 못하였고, 그는 기원전 617년에 항복하였습니다.—비교 열왕기 둘째 24:10-15.
6.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의 신성한 기구들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6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전의 신성한 기구들을 전리품으로 취해서 “그것들을 시날 땅 자기 신[마르둑, 히브리어로는 므로닥]의 집으로 가지고 가서 그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어 두었”습니다. (다니엘 1:2; 예레미야 50:2) 바빌로니아의 한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그 비문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마르둑 신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나는 신전 안에 금은 보화를 쌓아 놓았다. ··· 그리고 그곳에 내 왕국의 보물 창고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벨사살 왕 시대와 관련하여 이 신성한 기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게 될 것입니다.—다니엘 5:1-4.
예루살렘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출중한 자들
7, 8. 다니엘 1:3, 4, 6을 통해,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의 배경에 대하여 어떠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7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들만 바빌론으로 가져간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그때에 왕은 수석 궁정 관리 아스브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과 왕손과 존귀한 자 가운데서 몇을 데려오게 하였는데, 즉 흠이 전혀 없고 용모가 좋으며, 모든 지혜에 대한 통찰력이 있고 지식이 있으며, 알려진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있고, 또한 왕궁에 설 능력이 있는 아이들이었다.”—다니엘 1:3, 4.
8 누가 선택되었습니까? 다니엘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그들 가운데 마침 유다 자손 몇이 있었으니,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였다.” (다니엘 1:6) 이 기록은, 이 기록이 없었더라면 알 수 없었을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의 배경을 어느 정도 알게 해줍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 젊은이들이 “유다 자손”, 즉 왕의 지파라는 사실에 유의하게 됩니다. 이 젊은이들이 왕의 가계에 속해 있든 속해 있지 않든, 적어도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중요한 가문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이 젊은이들은 정신과 신체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통찰력과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두 “아이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이가 어렸는데도 그러하였습니다. 아마 모두 십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틀림없이 예루살렘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출중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9.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의 부모들이 틀림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다니엘의 기록은 이 젊은이들의 부모가 누구인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틀림없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경건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만연해 있던 도덕적 영적 타락을 생각해 볼 때, 특히 “왕손과 존귀한 자” 가운데 그러한 일이 만연해 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탁월한 특성들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 아들들이 먼 나라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부모들은 틀림없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만 있었다면 그 부모들은 참으로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부모들이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규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에베소 6:4.
정신 투쟁
10. 히브리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으며, 그렇게 한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10 이 어린 유배자들의 정신 속에서는 즉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히브리 십대 청소년들이 틀림없이 바빌로니아의 체제에 맞게 틀잡혀지도록 하기 위해, 느부갓네살은 관리들에게 “그들에게 칼데아 사람들의 글과 말을 가르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 1:4) 이것은 통상적인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에서는, 그 교육에는 “수메르어, 아카드어, 아람어 ··· 를 비롯한 여러 언어 및 그 언어들로 쓰인 광범위한 문학을 연구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광범위한 문학”은 역사, 수학, 천문학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미나[전조]를 살피는 일과 점성술이 포함된 종교적인 성격을 띤 부교재들도 ···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1. 히브리 청소년들이 바빌론의 궁정 생활에 동화되도록 무슨 조처들이 취해졌습니까?
11 이 히브리 청소년들이 바빌론 궁정 생활의 관습과 문화를 완전히 익힐 수 있도록, “왕은 왕의 진미와 자신이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에게 매일 지급할 양을 정해 주어 삼 년 동안 그들을 양육하게 하였는데, 이 기간이 끝나면 그들을 왕 앞에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니엘 1:5) 뿐만 아니라, “궁정 관리장이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즉 다니엘에게는 벨드사살, 하나냐에게는 사드락, 미사엘에게는 메삭, 아사랴에게는 아벳느고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다니엘 1:7) 성서 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생애 중에 중요한 전기를 맞이하면 그 기념으로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 흔한 관행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창세 17:5, 15, 16) 어떤 사람이 남의 이름을 바꾸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권위나 지배력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식량 관리인이 되자, 파라오는 그에게 사브낫-파네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창세 41:44, 45; 비교 열왕기 둘째 23:34; 24:17.
12, 13. 히브리 청소년들의 이름을 바꾼 것이 그들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술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다니엘과 그의 세 명의 히브리인 동무의 경우에,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지어 준 이름들은 여호와에 대한 숭배와 일치 조화하는 이름들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냐”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입니다. “미사엘”은 아마 “하느님과 같은 자 누구인가?”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와 주셨다”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부모의 간절한 염원은 틀림없이, 자기 아들들이 여호와 하느님의 인도를 받고 성장하여 그분의 충실하고 충성스러운 종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13 그러나 네 히브리인에게 주어진 새 이름은 한결같이 거짓 신들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그것은 참 하느님이 그러한 신들에게 예속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소년들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참으로 음흉한 술책이었습니다!
14.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에게 지어진 새로운 이름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4 다니엘의 이름은 “왕의 생명을 보호하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필시 벨, 즉 바빌론의 주신(主神)인 마르둑에게 도움을 청하는 말의 축약형이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이 이름을 골라 주는 데 느부갓네살이 개입했든 개입하지 않았든 간에, 느부갓네살은 그 이름이 “[자신의] 신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것임을 자랑스럽게 인정하였습니다. (다니엘 4:8) 하나냐에게 새로 지어진 이름은 사드락인데, 일부 권위자들은 그 이름이 “아쿠의 명령”을 의미하는 합성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쿠는 수메르인의 한 신의 이름이었습니다. 미사엘에게 새로 지어진 이름은 메삭(미·사·아쿠의 축약형일 가능성이 있음)인데, “하느님과 같은 자 누구인가?”를 “누가 아쿠와 같은가?”로 교묘하게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아사랴의 바빌로니아식 이름은 아벳느고인데, 아마 “느고의 종”이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느고”는 “느보”라는 신의 이름의 변형입니다. 바빌로니아의 많은 통치자들도 이 신의 이름에 따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여호와께 충실을 지키기로 다짐함
15, 16. 이제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어떤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15 바빌로니아식 이름, 재교육 계획, 특별한 식사—이 모든 것은 다니엘과 세 명의 히브리 청소년을 바빌로니아의 생활 방식에 동화시키려는 시도인 동시에, 그들을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에게서 그리고 그들이 받은 종교적 훈련과 배경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모든 압력과 유혹에 직면하여, 이 청소년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16 영감받은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 (다니엘 1:8ㄱ) 여기에는 다니엘의 이름만 언급되어 있지만, 후에 언급된 내용을 볼 때 그의 세 동무도 그의 결정을 지지하였음이 분명합니다.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다”는 말은, 과거에 고향에서 다니엘의 부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베풀어 준 교훈이 다니엘의 마음에 이르렀음을 알려 줍니다. 그와 비슷한 훈련이 틀림없이 다른 세 히브리 청소년이 결정을 하는 데도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치 있음을, 심지어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나이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보여 주는 훌륭한 예가 됩니다.—잠언 22:6; 디모데 둘째 3:14, 15.
17.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이 다른 마련들은 거부하지 않았으면서 유독 왕이 매일 정해 주는 양식은 거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이 히브리 청소년들이 다른 마련들은 거부하지 않았으면서 유독 진미와 포도주만은 거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다니엘의 추리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려 줍니다. “칼데아 사람들의 글과 말”을 배워야 하는 것과 바빌로니아식 이름이 지어지는 것도 거부할 만한 일이기는 하였을지 모르지만, 그런 일이 반드시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1000년 전에 살았던 모세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로 교훈받았”지만, 여호와께 충성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부모에게 양육받은 것이 그에게는 견고한 기초를 놓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믿음으로, 모세는 성장하였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고 불리기를 거절하고, 일시적인 죄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쪽을 택하였습니다.”—사도 7:22; 히브리 11:24, 25.
18. 왕이 정해 주는 양식은 어떤 식으로 히브리 청소년들을 더럽힐 수 있었습니까?
18 바빌로니아 왕이 정해 주는 양식이 어떤 식으로 이 청소년들을 더럽힐 수 있었습니까? 첫째로, 왕의 진미 가운데는 모세의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율법에 의해 금지된 부정한 동물들을 먹었습니다. (레위 11:1-31; 20:24-26; 신명 14:3-20) 둘째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도살한 동물의 고기를 먹기 전에 그 동물의 피를 흘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피를 흘리지 않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피에 관한 여호와의 법을 직접적으로 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창세 9:1, 3, 4; 레위 17:10-12; 신명 12:23-25) 셋째로,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친교 식사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을 우상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결코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교 고린도 첫째 10:20-22) 마지막으로, 날마다 기름진 음식과 술에 탐닉한다면,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연령에 속한 사람도 건강에 결코 좋지 않을 것입니다.
19. 이 히브리 청소년들은 어떻게 합리화할 수도 있었으며, 그러나 그들이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19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것과 압력이나 유혹을 받을 때 용기를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는, 부모와 동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자기들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들이 모를 것이라고 추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달리 행동할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청소년들은 틀림없이 그 마련을 쉽게 받아들이며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을 고난이 아니라 특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릇된 생각은 은밀한 죄를 저지르는 함정으로 쉽게 인도하여, 많은 청소년에게 올무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히브리 청소년들은 “여호와의 눈은 어느 곳에나 있”다는 사실과 “참 하느님께서는 모든 부류의 일을, 숨겨진 모든 것과 관련하여, 선한지 악한지 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잠언 15:3; 전도 12:14) 우리 모두도 이 충실한 청소년들의 행로로부터 교훈을 얻도록 합시다.
상을 가져다 준 용기와 끈덕짐
20, 21. 다니엘은 어떻게 행동하였으며,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0 부패케 하는 영향력을 저항하기로 마음 속으로 다짐한 다니엘은 자신의 결정과 일치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궁정 관리장에게 계속 요청하였다.” (다니엘 1:8ㄴ) “계속 요청하였다”는 말이 주목할 만한 표현입니다. 유혹과 싸워 그것을 물리치거나 특정한 약점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흔히 끈덕진 노력이 필요합니다.—갈라디아 6:9.
21 다니엘의 경우, 끈덕짐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궁정 관리장 앞에서 사랑의 친절과 자비를 받게 해 주셨다.” (다니엘 1:9)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에게 결국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잘 생기고 총명한 청소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히브리 잠언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너 자신의 이해에 의존하지 말아라. 너의 모든 길에서 그분을 유의하여라. 그러면 그분이 너의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잠언 3:5, 6) 이러한 교훈을 따른 것이 참으로 상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22. 궁정 관리는 어떤 정당한 명분을 내세워 거절하였습니까?
22 처음에는, 궁정 관리장도 거절하였습니다. “내가 나의 주 왕을 두려워하는데, 그분이 너희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해 주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같은 나이의 아이들에 비해 풀이 죽어 보이는 너희 얼굴을 왕께서 보셔야 하느냐? 또 어찌하여 너희는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죄가 있게 하려 하느냐?” (다니엘 1:10) 이것은 정당한 거절이자 합리적인 두려움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거역하겠다는 말을 그냥 듣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 관리는 자기가 왕의 지시를 어긴다면 자기 “머리”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23. 다니엘은 자기가 취한 행동을 통해서 어떻게 통찰력과 지혜를 나타냈습니까?
23 이 때야말로 통찰력과 지혜를 발휘할 때였습니다. 어린 다니엘은 아마 다음과 같은 잠언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온화한 대답은 격노를 돌이켜 놓지만, 고통을 주는 말은 분노가 치밀게 한다.” (잠언 15:1) 다니엘은 자기의 요청을 들어 달라고 고집세게 주장하여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히도록 자극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시기적절한 때에 “보호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왕 앞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자유나마 좀더 기꺼이 허락해 줄지 몰랐습니다.—다니엘 1:11.
열흘 동안 시험을 해 보도록 제안하다
24. 다니엘은 어떠한 시험을 해 보도록 제안하였습니까?
24 다니엘은 그 보호자에게 다음과 같은 시험을 해 보도록 제안하였습니다. “부디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셔서, 우리에게 먹을 채소와 마실 물을 주게 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당신 앞에 보이게 하신 다음, 보시는 대로 당신의 종들에게 행해 주십시오.”—다니엘 1:12, 13.
25.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에게 식사로 나온 “채소” 가운데는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었습니까?
25 열흘 동안 ‘채소와 물’만 먹는다면, 그들은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풀이 죽어 보”일 것입니까? “채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씨”를 의미합니다. 어떤 성서 번역판들은 그 단어를 “여러가지 콩과 곡물(이를테면, 완두콩, 잠두, 렌즈콩)의 식용 씨”라고 정의할 수 있는 “콩류(puls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 단어가 단지 식용 씨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식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이 요청하고 있었던 것은, 왕의 식탁에 배설되는 것과 같은 훨씬 더 기름지고 육류가 많이 포함된 식사가 아니라 일반 평민이 먹는 평범한 채식이었다.” 그러므로 채소에는 잠두, 오이, 마늘, 리크, 렌즈콩, 멜론, 양파 및 여러가지 곡물로 만든 빵 등으로 준비된 영양가 있는 음식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식사를 하게 되면 아사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분명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보호자는 다니엘의 제안의 요지를 파악한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였다.” (다니엘 1:14)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6. 열흘 동안 시험을 한 결과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런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26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은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아이들보다 더 좋고 더 살이 올라 보였다.” (다니엘 1:15) 이러한 사실을, 채식주의자가 하는 식사가 그보다 훨씬 더 기름지고 육류가 많이 포함된 식사보다 우수함을 보여 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열흘은 어떤 식사가 확실한 결과를 나타내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시기에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축복—그것은 부유하게 해 주고, 그분은 거기에 고통을 더하시지 않는다”고 그분의 말씀은 알려 줍니다. (잠언 10:22)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은 여호와께 믿음과 신뢰를 두었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세기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40일 동안 음식을 잡수시지 않고도 생존하셨습니다. 그 점과 관련하여 그분은 신명기 8:3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이 한 경험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됩니다.
진미와 포도주 대신 통찰력과 지혜가 주어지다
27, 28.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가 따른 섭생법은 어떤 면으로 앞으로 닥칠 더 큰 일에 대비하게 해 주었습니까?
27 열흘은 단지 시험 기간이었지만, 그 기간에 나타난 결과는 대단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보호자는 그들에게 줄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치우고 채소를 주었다.” (다니엘 1:16) 훈련 계획에 참가한 다른 청소년들이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채소를 먹기 위해 왕이 베푸는 진수성찬을 매일 거절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매우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시험과 시련이 곧 닥칠 것이었기 때문에, 이 히브리 청소년들은 최대한도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금주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이 믿음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비교 여호수아 1:7.
28 여호와께서 이 청소년들과 함께하셨다는 증거를 뒤이어 나오는 표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 곧 그들 넷에게는 참 하느님께서 지식과 모든 글에 대한 통찰력과 지혜를 주셨으며, 또 다니엘은 온갖 환상과 꿈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니엘 1:17) 다가오고 있는 어려운 때에 대처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신체적 힘과 건강 외에도 더 많은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고 지식이 네 영혼에 즐거운 것이 되면, 사고력이 너를 지켜 주고 분별력이 너를 보호하여 너를 악한 길에서 ··· 건져 [낼 것이다].” (잠언 2:10-12) 앞으로 닥칠 일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네 명의 충실한 청소년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29. 다니엘이 ‘온갖 환상과 꿈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9 다니엘은 “온갖 환상과 꿈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영매술사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다니엘은 위대한 히브리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지만,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든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와 같은 선언을 할 수 있도록 영감받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사야 28:16; 예레미야 6:9) 하지만 다니엘은 오직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 아래, 여호와의 목적을 계시하는 환상과 꿈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중요한 시험이 닥치다
30, 31.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이 선택한 행로가 그들에게 유익하였음이 어떻게 증명되었습니까?
30 삼 년간의 재교육과 훈련이 끝났습니다. 뒤이어 중요한 시험이 닥쳤습니다. 왕과 개인적으로 면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라고 왕이 말했던 그 기간이 끝나자, 궁정 관리장은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다니엘 1:18) 이제 이 네 명의 청소년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답변할 때가 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법에 고착한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였음이 증명되었습니까?
31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니, 그들 모두 가운데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후로도 계속 왕 앞에 서게 되었다.” (다니엘 1:19) 지난 삼 년간 그들이 따른 행로가 옳았음이 아주 완벽하게 입증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믿음과 양심이 지시해 준 섭생법에 고착한 것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가장 작은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는 일에 충실함을 나타냄으로 더 큰 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왕 앞에 서”는 특권은 훈련 계획에 참가했던 모든 청소년이 추구했던 목표였습니다.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만 선택되었는지에 대해 성서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충실한 행로는 그들에게 참으로 “큰 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시 19:11.
32.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조정 신하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는 왕 앞에 설 것이[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잠언 22:29) 따라서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왕 앞에 서도록, 다시 말해서 조정의 신하의 일원이 되도록 느부갓네살에 의해 선택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우리는 여호와의 손이 일을 조정하여, 이 세 청소년을 통해서—특히 다니엘을 통해서—하느님의 목적의 중요한 부면이 알려지도록 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조정 신하의 일원이 되도록 선택되는 것이 영예로운 일이기는 하였지만, 우주의 왕 여호와에 의해서 그러한 놀라운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은 훨씬 더 영예로운 일이었습니다.
33, 34. (ㄱ) 왕이 히브리 청소년들에게 감명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무슨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33 느부갓네살은 여호와께서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에게 부여하신 지혜와 통찰력이 조정의 모든 조언자와 지혜로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통찰력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물어 본 지혜와 이해력에 대한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그들이 자신의 왕국 전역에 있는 주술을 행하는 제사장들과 초혼자들 모두보다 열 배는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니엘 1:20)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주술을 행하는 제사장들”과 “초혼자들”은 바빌론의 세속적이고 미신적인 학문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은 위에서 오는 지혜를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비교도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쟁 상대도 될 수 없었습니다!
34 세월이 흘러도 상황은 사실상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법이 인기를 얻고 있던 기원 1세기에도, 사도 바울은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에게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분은 지혜로운 자들을 그들 자신의 교활함으로 잡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추리가 헛됨을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고린도 첫째 3:19-21)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에 굳게 고착할 필요가 있으며, 세상의 매력적이고 화려한 것에 쉽게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요한 첫째 2:15-17.
끝까지 충실을 유지함
35. 다니엘의 세 동무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나 알 수 있습니까?
35 다니엘 3장에는,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야에 세운 금 형상 및 불타는 가마의 시험과 관련하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의 강한 믿음이 극적으로 예시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 히브리인들이 죽을 때까지 여호와께 충실을 유지하였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점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믿음을 통하여 ··· 불의 세력을 막”은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였을 때 틀림없이 이들을 언급한 것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1:33, 34) 그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여호와의 종들에게 뛰어난 모범이 됩니다.
36. 다니엘은 어떤 주목할 만한 생애를 누렸습니까?
36 다니엘에 대해서는 1장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알려 줍니다. “다니엘은 키루스 왕 제일 년까지 그대로 있었다.” 역사는 키루스가 바빌론을 기원전 539년에 하룻밤 만에 무너뜨렸음을 알려 줍니다. 다니엘은 필시 그의 명성과 능력 때문에 키루스의 조정에서도 계속 일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 10:1에서는 “페르시아 왕 키루스 제삼 년에” 여호와께서 다니엘에게 주목할 만한 한 가지 일을 계시해 주셨다고 알려 줍니다. 다니엘이 기원전 617년에 바빌론으로 끌려올 때 십대 청소년이었다면, 그 마지막 환상을 받았을 때는 100세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기며 참으로 오랫동안 축복받은 생애를 누려 온 것입니다!
37. 다니엘 1장을 고려해 봄으로 우리는 무슨 교훈들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37 다니엘서의 서막이 되는 장에서 알려 주는 것은, 단지 믿음의 시험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네 명의 충실한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다면 재난처럼 보이는 일도 유용한 목적에 기여할 수 있음을 이 기록은 증명해 줍니다. 그리고 작은 일에 충실한 것이 큰 상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어떤 점을 알게 되었습니까?
● 다니엘과 그의 세 명의 청소년 동무의 배경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이 얼마나 훌륭하게 양육받았는지가 바빌론에서 어떻게 시험받았습니까?
● 네 명의 히브리 청소년이 용기 있는 태도를 나타낸 것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상을 주셨습니까?
●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은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30면 전면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