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 14:1.
1. 요한 복음 14:1의 예수의 말씀은 왜 매우 시기 적절한 것이었읍니까?
때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이었읍니다.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 해진 후에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모여 있었읍니다. 그들의 지도자가 그들에게 고별의 교훈과 격려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 가운데서 그 지도자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14:1) 그 지도자의 말은 매우 시기 적절한 것이었읍니다. 이제 곧 그들의 희망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사건이 벌어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에 그 지도자는 체포되어 재판받고 이어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2. 그 날은 왜 그토록 중대한 날이었으며, 제자들은 무엇의 도움을 받았읍니까?
2 우리는 그 날을 인류의 장래 전체에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중대한 날로 여길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 지도자인 예수의 희생의 죽음은 많은 고대 예언을 성취시켰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근거를 갖게 하였읍니다. (이사야 53:5-7; 요한 3:16) 하지만 그날 밤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고 당황하게 된 사도들은 얼마 동안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꼈읍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기까지 하였읍니다. (마태 26:69-75) 그러나, 충실한 사도들은 약속된 돕는 자 곧 성령을 받은 후에 담대하게 되고 근심하지 않게 되었읍니다. (요한 14:16, 17)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은 극심한 반대를 받고 감금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읍니다.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었읍니다.—사도 4:1-3, 29-31.
3.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심히 근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오늘날, 우리는 근심거리가 매우 많은 세상에 살고 있읍니다. 이 낡은 사물의 제도의 끝은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5) 가정 생활의 심각한 파탄이나 도덕 표준의 저하, 원인 불명의 질병이 놀랄 정도로 증가하는 일, 정치적 불안정, 실직, 식량 부족, 테러 행위 그리고 핵전쟁의 위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매우 불안해 하고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떨쳐버릴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마음에 근심하고 있읍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민족들이 ··· 곤고하[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고 있읍니다.—누가 21:25, 26.
4. 무슨 요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압박감을 초래할 수 있읍니까?
4 그러한 우울하게 하는 요인들로 인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가족을 포함한 친척, 이웃 사람, 직장 동료, 급우 및 정부 권위로부터의 반대나 종교적 편견으로 인해 압박을 당하게 될 수 있읍니다. (마태 24:9) 그러면 우리는 이 어려운 때에 어떻게 평온을 유지하고 근심하지 않을 수 있읍니까?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질 때에도 어떻게 정신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미래에 대처할 수 있읍니까? 점점 흔한 일이 되고 있는 심한 염려를 극복하는 데 우리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우리는 현재, 예수께서 요한 복음 14:1의 교훈을 하셨던 때와 같은 시기에 살고 있으므로, 그 교훈을 면밀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가?
5.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격려적인 권면을 합니까?
5 예수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사랑에 찬 격려를 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1) 영감받은 성경은 우리에게 여러 차례 그와 비슷한 권면을 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로다.]” (시 55:22; 37:5)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이러한 중요한 충고를 하였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 4:6, 7; 사체로는 본지에서.
6, 7. (ㄱ) 압박감을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여호와와의 친밀한 유대 관계를 어떻게 배양할 수 있읍니까?
6 문제나 과중한 책임으로 인한 염려나 걱정이 때때로 우리의 정신만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한 의료 전문가는 「겁내지 말라」(Don’t Panic)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과 자신의 문제를 의논할 수 있을 때 ··· 압박감을 갖는 정도가 흔히 현저하게 줄어든다.” 동료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토록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훨씬 더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호와보다도 더 존경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이겠읍니까?
7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분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장성한 종들은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한 여호와와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나 오락을 삼가하려고 신중을 기합니다. (고린도 전 15:33) 여호와의 종들은 또한 하루에 단지 한두번이 아니라 수시로 여호와께 기도로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읍니다. 젊은 혹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정기적인 연구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인 교제와 봉사를 통해 여호와와의 이러한 친밀한 유대 관계를 배양할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강력한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야고보 4:8.
예수께서 베푸신 교훈
8, 9. 우리는 경제 문제에 대한 무슨 적극적인 교훈을 적용할 수 있읍니까?
8 많은 나라에서, 실직과 경제 불황은 걱정의 심각한 원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염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매우 적극적인 교훈을 하셨읍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 6:25;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습니다. 목숨과 몸, 즉 그 사람 전체는 음식과 의복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본 필수품을 마련해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예를 드셨읍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 6:26) 하나님께서 깃털 달린 피조물에게는 먹을 것을 주시면서, 그분께 매우 소중하여 그리스도로 생명을 바치게 하신 자신의 인간 종들에게는 소홀히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9 이어서 예수께서는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하신 들의 백합화를 언급하심으로써 이 점을 한층 더 강조하셨읍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는 그 부귀 영화로 유명하였읍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너희야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새번역)라고 위로가 되는 질문을 하셨읍니다.—마태 6:28-32; 아가 3:9, 10.
10. (ㄱ) 예수께서는 위안의 말씀을 누구에게 하신 것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미래에 관해 무엇이라고 충고하셨읍니까?
10 그러나,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 교훈이 “먼저 그의 나라[왕국, 신세]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임을 밝히십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하나님의 왕국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인식하며 그 왕국을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는 그러한 참 그리스도인들이 있읍니다.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하신 이러한 훈계가 적용됩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 6:33, 34) 다시 말해서, 각 문제는 그 문제가 생길 때 처리해야 하며 미래에 관해 지나치게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1, 12.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도움을 주심을 어떻게 실감하였읍니까?
1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온전히 믿을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합니다. 엘러너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의 남편은 병이 심했기 때문에, 1년간 일을 할 수 없었읍니다. 그는 어린 두 자녀와 노령의 아버지를 돌보아야 하였기 때문에, 전 시간 직장을 잡을 수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어느날 아침 그러한 기도를 한 직후에, 그들은 문 밑에 있는 봉투를 발견하였읍니다. 그 봉투 속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남편이 다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생활해 나갈 수 있을 만큼의 돈이 들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이러한 시기 적절한 도움에 대해 대단히 고마와하였읍니다. 곤경에 처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할 성서적 근거는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실 것이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실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12 남아프리카에 사는 한 그리스도인 과부는 어린 두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의 절반만 일하기를 간절히 원하였읍니다. 일자리를 얻은 후에, 그 자매는 경영자가 전 시간 일하는 비서를 구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다시 일자리가 없게 된 이 자매는 여호와께 열렬히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읍니다. 3주일 후에, 그 이전 경영자는 자매에게 하루의 절반만 일하는 조건으로 다시 와서 일할 수 있는지를 물었읍니다. 이 자매는 얼마나 기뻤겠읍니까! 이 자매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실감하였읍니다.
여호와께 간구하라
13. (ㄱ) “간구”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간구에 관한 어떠한 성경적 예들이 있읍니까?
13 바울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충고한 후에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덧붙인 것에 유의하십시오. (빌립보 4:6) “간구”가 언급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단어는 “간절한 청원” 혹은 “간청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 단어에는, 심한 압박을 받거나 위험에 처한 때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 매우 열렬히 간청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바울은 죄수로 있을 때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사신”으로서 “복음[좋은 소식, 신세]”을 두려움 없이 전파할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해 간구해 달라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요청하였읍니다. (에베소 6:18-20) 로마군 장교 고넬료도 “하나님께 항상 기도[간구, 신세]”하였읍니다.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하였을 때 고넬료는 얼마나 감격하였겠읍니까! 그리고 그가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은 최초의 이방인들 가운데 포함되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이었겠읍니까!—사도 10:1-4, 24, 44-48.
14. 여호와께 열렬히 간청하는 일은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4 여호와께 그처럼 열렬히 간청하는 일은 보통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유의할 만한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산상 수훈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읍니다. “계속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계속 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찾을 것입니다. 계속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입니다.” (마태 7:7, 신세) 많은 성서 번역판은 이 귀절을 “요청하십시오. ··· 구하십시오. ··· 두드리십시오”로 번역합니다. 그러나 원 희랍어는 계속적인 행위라는 사상을 전달합니다.a
15. (ㄱ)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술을 올리면서 왜 수심이 가득하였읍니까? (ㄴ) 느헤미야는 간단한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이상의 일을 하였읍니까?
15 느헤미야가 술 맡은 관원으로서 바사 왕 아닥사스다를 섬기고 있던 중에, 왕은 느헤미야에게 수심이 가득한 이유를 물었읍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 상태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러자 왕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읍니다. 그 즉시 느헤미야는, 틀림없이 짧은 표현이었겠지만 말없이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그런 다음 느헤미야는 자기가 사랑하는 고국의 성읍을 중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읍니다. 그의 요청은 수락되었읍니다. (느헤미야 2:1-6)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과의 그러한 중대한 면담이 있기 전에, 여러 날 간청과 간구를 하면서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느헤미야 1:4-11) 당신은 이 일에서 자신을 위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읍니까?
여호와의 응답
16. (ㄱ) 아브라함은 무슨 특별한 특권을 누렸읍니까? (ㄴ)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무슨 강력한 보조물들이 우리에게 있읍니까?
16 때때로 아브라함은 천사들을 통해 여호와와 의사 소통을 하는 특권을 누렸읍니다. (창세 22:11-18; 18:1-33)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우리는 아브라함이 가져 보지 못한 강력한 도움이 되는 것들로 축복을 받고 있읍니다. 그 중의 하나가 완성된 성서로서, 성서는 인도와 위로의 고갈되지 않는 근원입니다. (시 119:105; 로마 15:4) 너무나 자주 성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인도나 격려를 주며, 여호와께서는 원하는 귀절이 생각나게 하여 도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직을 통해 공급해 주신 컨코던스나 여러 성서 출판물들 중 하나가 우리에게 대답을 알려 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출판물들에 대한 상세하고 능률적인 색인은 필요한 지식을 찾는 일에서 또 하나의, 매우 귀중한 보조물입니다.
17. 여호와께서는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지 모르며,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읍니까?
17 만일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 근심하고 있거나 슬퍼하고 있거나 낙심해 있다면,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다른 방법으로도 올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회중이나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에서의 성서 강연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약”이 들어 있을 수 있읍니다. 어떤 때는,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담소가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것입니다. 많은 경우 회중 장로들이 격려나 충고를 줄 수 있읍니다. 귀기울여 잘 듣는, 장성되고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털어 놓기만 해도 흔히 기분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읍니다. 그것은 친밀하게 지내는 그 사람이 성서의 견해를 음미하도록 도움을 줄 때 특히 그러합니다. 그러한 의사 교환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게 할 수 있읍니다.—잠언 12:25; 데살로니가 전 5:14.
18.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특별한 활동을 통해 울적한 기간을 극복하도록 도움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활동이 한 젊은 파이오니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읍니까?
18 여러 형태의 우울한 기분은 이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디모데 후 3:1, 신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낙심하고 의기 소침해집니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며, 매우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 일시적인 울적한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b 당신도 그렇게 해본 적이 있읍니까? 기분이 다소 좋지 않을 때, 어떤 형태로든 왕국 봉사를 해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흔히 소극적인 생각에서 적극적인 생각으로 우리의 정신 자세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그분의 영의 열매의 하나—을 주며, 달리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신세 참조) 한 젊은 파이오니아 자매는 또한 왕국 봉사에 바쁘게 보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비해 볼 때, [자기의 문제는] 매우 작고 일시적인 문제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19. 건강이 좋지 않은 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였읍니까?
19 때때로, 아마도 걱정거리나 문제들의 가중으로 인해 쇠약해진 몸 상태가 우울한 기분을 야기할 수 있읍니다. 그로 인해, 근심이 되어 밤에 잠에서 깰 수 있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 한 중년 그리스도인은 때때로 그러한 경험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그리스도인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우울한 기분이 들어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그 그리스도인은 평온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기도하곤 하였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곧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었읍니다. 그 사람은 또한 시편 23편과 같은 위안이 되는 성서 귀절을 암송하는 것이 진정시키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혹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작용하는 여호와의 영은, 언제나 우울한 정신 상태를 더 만족스러운 정신 상태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읍니다. 나중에, 그 사람은 균형과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문제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제들을 극복하는 법을 알게 되거나 견딜 힘을 얻었다고 느끼게 되었읍니다.
20. 기도에 대한 응답이 때때로 늦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이것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어떤 식으로 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해결책을 찾는 일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읍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가 되어야 응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탄원자들이 그들의 관심의 깊이, 열망의 강도, 정성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편 필자 한 사람도 그러한 경험을 하였읍니다!—시 88:13, 14; 비교 고린도 후 12:7-10.
21.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 커다란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21 아뭏든, 전능하신 하나님과 기도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은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경험이며, 절망을 느끼는 상태에서 벗어나 우리로 확신에 차게 해줄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바울이 빌립보 회중에게 편지한 바와 같이, 우리는 기도와 간구를 하되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빌립보 4:6;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마음을 털어 놓으면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 5:18) 이렇게 하는 것은 친밀하고 따뜻한 유대 관계를 갖게 해줄 것이며,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 근심거리가 많은 위험한 시대에 그것이 여호와의 종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각주]
a 「신세계역 성경」의 정확한 번역과 일치하게, 찰스 B. 윌리엄스는 이 귀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계속 요청하십시오. ··· 계속 구하십시오. ··· 계속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문이 여러분에게 열릴 것입니다.”—「신약: 평민의 언어로 된 번역」.
b 일시적으로 울적한 기분은, 감정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훨씬 더 심각하고 복잡한 상태인 중증의 장기적인 우울증과는 다르다. 「깰 때이다」 1987년 11월 1일호 3-16면 참조.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무슨 요인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근심할 수 있읍니까?
◻ 염려를 극복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본 필수품을 마련해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 “간구”는 무엇을 의미하며, 과거의 예들은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는 방법에 대해 어떤 점을 예증해 줍니까?
◻ 어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읍니까?
[12면 삽화]
‘너희 천부께서 새들을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