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하는가?
“그분은 ···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마가 6:34.
1. 감탄할 만한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역사를 살펴보면 감탄할 만한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친절과 관대함을 비롯하여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특성들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러한 특성들을 나타내십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비롯하여 하느님을 닮은 특성들을 어느 정도 나타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 1:26; 로마 2:14, 15) 하지만 당신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그러한 특성을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2. 일부 사람들이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선행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어쩌면 당신은 병든 사람들을 자주 방문하여 도움을 베풀거나 장애인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베푸는 남녀들에 대해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자신의 생애를 바쳐 나환자촌이나 고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병원이나 호스피스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사람들이나, 집 없는 사람들이나 난민이 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필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들이 예수를 본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본을 남기셨는데, 복음서를 읽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신 기록이 나옵니다. (마가 1:34; 8:1-9; 누가 4:40) 예수께서 사랑과 부드러움과 동정심을 나타내신 것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반영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아버지를 본받으셨던 것입니다.—고린도 첫째 2:16.
3. 예수께서 하신 선행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갖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3 하지만 예수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동정심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오늘날 그리스도의 생각의 한 가지 주요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마가 6장을 주의 깊이 살펴보면 그 점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치료를 받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자신에게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굶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자 기적으로 그들을 먹이셨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마가 6:35-44, 54-56)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신 것은 사랑에 찬 동정심을 탁월하게 나타낸 것이었지만, 그것이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신 주된 방법이었습니까? 그리고 예수께서 여호와를 본받으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께서 세워 놓으신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의 완전한 모범을 어떻게 가장 잘 본받을 수 있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와 영적인 필요에 반응을 보이셨다
4. 마가 6:30-34에 나오는 기록의 배경은 어떠합니까?
4 예수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신 것은 주로 그들의 영적인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필요가 가장 중요한 것, 신체적인 필요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마가 6:30-34에 나오는 기록을 고려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기원 32년 유월절이 가까워 올 무렵 갈릴리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흥분해 있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넓은 지역을 여행하는 일을 이제 막 마치고 예수께 온 그들은 틀림없이 자기들이 경험한 것들을 그분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규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예수와 사도들은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십시오.” (마가 6:31) 아마도 가버나움 근처에서, 예수와 사도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서 조용한 곳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무리가 해변을 따라 달려가서 배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사생활이 침해당했다고 화를 내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5.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온 무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으며,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5 예수께서는 병자들을 포함하여 그분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무리를 보시자 마음에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마태 14:14; 마가 6:44) 마가는 예수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무엇이고 그분이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렇게 썼습니다. “그분은 ···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마가 6:34)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단지 하나의 집합적인 무리로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영적인 필요를 느끼고 있는 개개인들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그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거나 보호해 줄 목자도 없이 길을 잃고서 어쩔 줄 모르고 헤매고 있는 양들과 같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냉정한 종교 지도자들이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목자가 되어야 마땅한데도 실제로는 일반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에스겔 34:2-4; 요한 7:47-49)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르게 사람들을 대하시면서,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6, 7. (ㄱ)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을 보이신 것과 관련하여 무엇이 우선 순위에 있음을 알려 줍니까? (ㄴ) 예수께서는 무슨 동기로 전파하고 가르치셨습니까?
6 이 기록과 평행하는 다른 기록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일이 일어난 순서와 우선 순위에 관해 시사하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록을 쓴 사람은 누가인데, 그는 의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신체적 복지에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무리는 ··· [예수를] 따라왔다. 그분은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하여 하느님의 왕국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셨으며, 병 고침이 필요한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누가 9:11; 골로새 4:14) 기적에 관해 상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이 경우에 누가가 영감받아 쓴 기록에서는 무엇을 먼저 언급하였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였습니다.
7 이 기록은 우리가 마가 6:34에서 살펴본 강조점과 사실상 일치합니다. 그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주로 무엇 때문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셨는지를 명확히 보여 줍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에 반응을 나타내셔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봉사의 직무 초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도시들에도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이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4:43) 하지만 예수께서 자신이 해야 할 전파 활동을 마지 못해 시늉만 하듯이, 단지 의무감에서 왕국 소식을 선포하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찬 동정심이 그분이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신 주된 동기였습니다. 예수께서 하실 수 있었던 최고의 선행은—심지어 병든 사람들이나 악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굶주린 사람들에게도—사람들이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중심이 되는 중요한 진리였는데, 왕국이 여호와의 주권을 입증하고 인류에게 영구적인 축복을 가져다 주는 일에서 하게 될 역할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8. 예수께서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8 예수께서 수행하신 활발한 왕국 전파 활동은 그분이 땅에 오신 근본 이유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상 봉사의 직무가 끝나갈 무렵,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내가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내가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든지 진리의 편에 있는 사람은 내 음성을 듣습니다.” (요한 18:37) 우리는 앞서 살펴본 두 기사에서, 예수께서 부드러운 감정을 가지신 분—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접근하기 쉽고, 사려 깊고, 남을 신뢰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유의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그분의 성품의 그러한 부면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각에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우선 순위에 두는 태도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라고 강력히 권하셨다
9. 누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였습니까?
9 사랑과 동정심의 표현으로서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예수께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추종자들에게 그분의 동기와 우선 순위와 행동을 본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12사도를 선택하신 후에,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였습니까? 마가 3:14, 15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열둘로 된 집단을 구성하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지으셨다. 그것은 그들을 자기와 함께 계속 있게 하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 전파하게 하며 악귀들을 쫓아내는 권위를 갖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사도들에게 무엇이 우선 순위에 와야 하였는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10, 11. (ㄱ)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내보내시면서 무슨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ㄴ) 사도들을 내보내신 것과 관련하여,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10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12사도에게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악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마태 10:1; 누가 9:1) 그리고 나서 그분은 그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들”에게로 보내셨습니다. 무슨 일을 하도록 보내셨습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지시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기를 ‘하늘 왕국이 다가왔다’고 하십시오.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들을 일으키며,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악귀들을 쫓아내십시오.” (마태 10:5-8; 누가 9:2) 사실상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나가 [1]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전파하였다. 그리고 [2] 많은 악귀들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고쳐 주곤 하였다.”—마가 6:12, 13.
11 가르치는 일이 매번 먼저 언급되는 것은 아니므로, 앞의 문장들을 검토하면서 관련된 우선 순위나 동기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은 아닙니까? (누가 10:1-9)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병 고치는 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경우와 관련된 문맥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오. 예수께서는 12사도를 내보내시기 전에 무리가 처한 상황을 아시고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로 여행을 떠나시어,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며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다. 그분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때에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수확하는 “주인”에게 수확하는 일에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마태 9:35-38.
12. 예수와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은 어떤 부가적인 목적에 기여할 수 있었습니까?
12 사도들은 그분과 함께 있음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진실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내려면 왕국에 관해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은 그들이 하는 선행의 주된 부면이 되어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취지와 일치하게,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는 일과 같이 신체적인 면으로 돕는 훌륭한 일들은 단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이상의 일을 하였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병 고침이나 기적으로 마련된 식품 때문에 마음이 끌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4:24, 25; 8:16; 9:32, 33; 14:35, 36; 요한 6:26)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신체적으로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러한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모세가 예언한 그 “예언자”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요한 6:14; 신명 18:15.
13. 신명기 18:18의 예언은 오게 될 “예언자”의 무슨 역할을 강조하였습니까?
13 예수께서 그 “예언자”였다는 사실이 의미 심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언된 그 예언자의 주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예언자”는 병 고치는 기적을 행하거나 동정심을 나타내어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었습니까? 신명기 18:18의 예언은 이러합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킬 것이다. 내가 진정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넣어 줄 것이니, 그는 정녕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부드러운 감정을 소유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처럼, 그들 자신의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도 그리스도의 생각이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행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 병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짧은 수명이나 한두 끼의 식사만으로 얻는 한정된 유익이 아니라 영속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요한 6:26-30.
지금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라
14.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전파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까?
14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생각을 1세기만의 독특한 것, 다시 말해서 예수와 초기 제자들—사도 바울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썼던 그 사람들—만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2:16)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을 의무가 있음을 기꺼이 인정할 것입니다. (마태 24:14; 28:19, 20)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우리 자신의 동기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단지 의무감에서 그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는 주된 이유이며, 진실로 예수와 같이 되려면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마태 22:37-39.
15. 동정심을 가지고 우리의 공개 봉사를 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사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특히 냉담이나 거절이나 반대에 직면할 때—동정심을 느끼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동기를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정심을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보신 것처럼,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진 것으로 보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마태 9:36) 그러한 묘사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거짓 종교의 목자들에 의해 소홀히 취급되어 왔으며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성서에 나오는 건전한 지침에 대해서도, 머지않아 하느님의 왕국이 이 땅에 가져올 낙원 상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왕국 희망도 없이, 가난과 가정 불화와 병과 죽음을 비롯하여 일상 생활의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하늘에 설립되어 있는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생명을 구하는 좋은 소식입니다!
16. 우리가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16 이처럼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 필요에 관해 숙고해 보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에 찬 목적에 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려는 열망으로 당신의 마음이 가득 차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은 동정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느끼신 것처럼 사람들에 대해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의 말소리와 얼굴 표정과 가르치는 방식에 분명히 반영될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의 소식이 “영원한 생명에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호소력이 있는 것이 되게 해 줄 것입니다.—사도 13:48.
17. (ㄱ)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ㄴ) 선행을 하는 것과 공개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물론 우리의 사랑과 동정심은 우리의 전체 생활 행로를 통해 분명히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절을 나타내는 것,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포함됩니다. (누가 7:11-15; 요한 11:33-35) 하지만 그러한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나타내는 것이 일부 인도주의자들의 경우처럼 우리의 선행의 주된 부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지속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은, 그와 같이 하느님을 닮은 특성들이 동기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 참여하는 일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노력들입니다.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의 십분의 일은 드리지만,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해 왔기 때문이오. 이것들도 행해야 하지만, 다른 것들도 무시해서는 안 되오.” (마태 23:23) 예수의 경우, 이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신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든지 아니면 생명을 주는 영적인 것들을 가르치든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 일을 모두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분명한데, 그로 인해 그분이 거두게 되는 유익은 영원히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요한 20:16.
18. 그리스도의 생각을 살펴봄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까?
18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우리에게 밝혀 주신 데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분의 생각과 감정과 특성과 활동과 우선 순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서에서 예수에 관해 알려 주는 것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처럼 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불완전한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사물을 평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 더하여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겠다고 결심하도록 합시다. 삶을 영위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며 사람들을 대하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도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반영하신 분인 부드러우신 우리 하느님 여호와께 가까이 가는 최상의 방법이기도 합니다.—고린도 둘째 1:3; 히브리 1:3.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성서는 예수께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흔히 보이신 반응에 관해 어떤 통찰력을 갖게 해 줍니까?
● 예수께서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지시하시면서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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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은 무엇인가?